남자의 첫사랑 무덤까지 간다.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글..

원러브2009.11.22
조회1,011

안녕하세요. 톡을  평소 즐겨보고 있는 25살 대학생입니다.

남자의 첫사랑 무덤까지 간다고 하잖아요.

문뜩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적어 보았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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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금요일 후배와 술을 마시면서 나온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

잊고 지냈던 첫사랑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

난 첫사랑을 늦은 19살 2003년11월30일에 그 사람을 처음 보았고 , 스무살인 2004년 1월 17일에 시작하여 2005년 10월 4일에 헤어져 1년 10개월 정도 만난거 같다 .

그 사람을 만나면서 난 스무살이 시작 되었고 , 그 사람은 나보다 한살 많은 스물한살의 나이였다.

그 사람과 나는 처음부터 엉키기 시작했다 .

둘다 손씨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집안에서 처음부터 만나지 말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난 대학에서 강의를 받던중 그 사람의 어머님께 전화까지 받았다 .

내 나이 스무살에, 같은 성을 가진 손씨라고 만나지 말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이해도 가지 않았지만, 스무살에 결혼을 생각하는 나이도 아닌데 말이다. 첫사랑인 그 사람과 나는 그런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해서 만났다.

난 스무살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난 학생이었지만 그 사람은 조그마한 여행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었다. 난 그래서 항상 데이트도 부담이 되지 않길 노력했다.

그래서 항상 난 그사람에게 떡볶이를 사달라고 했던거 같다.

부담도 적고 배도 불렀기 때문에, 그리고 걷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겨울에도 우린 1시간이 되는 거리를 함께 걸어 다녔다 .

그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행복 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사람은 엄청 힘들었다고 한다. 겨울에 구두를 신고 걷는게 여자는 무척이나 힘이든다고 했다 . 차비도 아까워 걷기도 많이 했고 , 함께 걷고 있으면 한겨울에도 힘든줄을 난 몰랐다.

그렇게 만나면서 , 내가 중간에 큰 실수를 한번 했다 .

다른 여자에 관심을 갖게 된것이다 .

학생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매력있는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갔던 것이다..

첫사랑인 그사람이 그것을 알게 된건 어느 카페였는데,

그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던 말중에 나와 몰래 만나던 여자의 이름이 섞여나온것이다. 첫사랑인 그녀는 나에게 차마 말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가슴에 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항상 집에가던 버스 맨 뒷좌석에 누워 탔는데(철이 무척 없었기에) 전화가 왔다. 그때 첫사랑이 마치 다른사람의 예를 드는것 처럼 나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말했다. 나보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난 그게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남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뱉었고 , 그 사람은

그게 우리 이야기라며 눈물을 흘렸다. 난 정말 죄책감에 힘들었고, 용서를 구했다. 그 사람은 너그럽게 용서를 했고, 두번 다시 똑같은 잘못을 하지않았다. 그 사람의 나에대한 마음을 두번다시 져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용서해주고 받아준 그 사람에게 빚을 진 것만 같았고 그 사람밖에 없다고 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린 항상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것같다 .

매일 봐도 항상 보고 싶은 그런 그리움 말이다.

저녁엔 서로 바쁘고 시간도 없어서, 우린 아침일찍 만났다.

아침 7시에 데이트를 하는 커플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항상 7시에 만나 데이트를 마치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우린 특별한 사랑을 원했던것 같다 .

난 그 사람에게 항상 편지를 썼다.

편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런 감정들과 생각들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항상 그 사람에게 편지를 했다.

나중에는 녹음기로 테잎에 하고 싶은 말들을 남겨 주곤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잘때 항상 그 테잎을 틀어 놓고 잤다고 한다.

 

첫사랑과 내가 100일이 되던날 우린 그냥 평범하게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내 친구들(지금의 Best Friend)과 그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케익을 사서 축하했다 . 그때 그 사람의 친구들이 고깔 모자를 두개 준비해 왔다. 그걸 쓰고 다른 테이블에 가서 케익을 술로 교환해 오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장난을 치려고 말이다 .

내 기억엔 난 하지 못했던거 같다 . 그치만 내 첫사랑은 바꿔 온걸로 기억한다. 

그날 첫사랑이 나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었는데 ,

종이로 접은 장미꽃 99송이었다.

쑥스러움이 엄청 많은 그 사람은 항상 나에게 선물을 할때 얼굴이 빨개졌는데 , 그날도 그 장미꽃 99송이를 주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 옆에 그사람 친구가 왜 99송이냐고 안묻냐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난 왜 99송이냐고 물었는데, 첫사랑인 그사람은 쑥스러워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옆에 친구가 한송이는 첫사랑인 그사람이라며 대답을 했고, 나는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알고 보니 100송이를 접을 수 있는 양의 재료를 준비했는데, 한송이의 재료가 부족해서 어쩔수 없이 99송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한송이는 자신이라고 했단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100일 전에 발렌타인 데이였다.

우린 그 전에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데이는 그냥 조용히 조촐히 지나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렇게 약속을 했던터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데이트를 하려고 그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 장소는 솔찍히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그사람은 또 나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나에게 주려고,

골판지와 여러가지 재료들로 , 케익모양의 케이스를 직접만들어서

초콜렛을 넣어준것이다. 그 정성에 정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쁜 와중에도 그렇게 준비를 했던 그사람에게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사람의 친구 한명이 유아교육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사람과 함께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200일이 다가왔고 200일과 그 사람의 생일이 비슷해 생일과 200일을 함께 하자고 했다. 200일 선물을 준비 하려고 하니, 내 주머니는 항상 가난했고, 향수를 선물하자고 마음을 먹고 향수 가게에서 엘리자베스 향수를 하나 샀다. 그때 당시 2만 5천원정도 한것 같은데, 향수와 노래를 준비했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해주기로 마음을 먹고서 말이다. 그때 당시 히트를 친 노래가 이승기의 내여자라니까, 인가 ? 아무튼 우린 연상연하 커플 이었기 때문에, 그 노래연습을 많이 했던것 같다. 하지만 라이브 카페엔 그 신곡이 없었던것... 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엠씨더 맥스의 별을 불러줬다.

이건뭐 아무 관련도 없는 곡인데 .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

그리고 준비한 향수를 줬는데 , 그 사람은 역시 아무것도 아닌 선물이지만 감동했다 .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라면서 말이다.

어떻게 작은 선물 하나에 그렇게 감동 할 수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이 더욱더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에게 커플티를 선물했다. 난 그때 생전 처음으로 커플티를 입어보았다.

 

그후 우린 계속해서 좋은 시간들을 갖였고 , 난 군대를 걱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난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돈도 벌고 싶었다. 그래서 부사관이라는 군대의 간부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바로 지원을 했다.

그후 합격자 발표가 나오던 날도 , 그 사람이 직접 전화를 해서 합격여부를 물었고, 합격했다고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합격을 했고 10일 뒤가 입대 일이었다. 그날이 정확히10월 29일이었다. 입대일은 11월8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린 곧바로 여행을 준비했다. 난 여행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10월 30일이 나의 생일이었다. 우린 10월 30일에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고 , 10일 30일 낮 1시 15분 기차였던가 , 아무튼 그 기차를 타고 내 친구 한명을 더 데리고 , 셋이서 여행을 떠났다 . 너무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였고, 그사람과 함께여서 더 좋은 기차 여행이었다. 저녁에 우린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고 회를 사고, 술을 사서 숙소에세 술을 마셨다 . 아 그땐 정말 너무 많이 마셔서, 생략 ,,,,,,,,,,,,,,

그리고 우린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며 여행을 즐기고 안동으로 다음날 바로 돌아왔다.

 

입대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난 초조했다.

4년이라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지 두려움 뿐이었다.

그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할 시간이

난 두려웠고 단단히 먹은 내 마음은 하루에 수십번 무너졌다.

언젠가는 가야할 군대라지만 직접 내가 겪어보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그렇게 입대일이 다가왔다.

2004년 11월 6일 토요일.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은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 모였다. 첫사랑도 함께 말이다. 그때 가족들에게 내 첫사랑인 그사람을 처음으로 소개했던거 같다 .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해야했기에 우리는 모여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는 첫째 고모가 사신다. 대전에 모두 모여 오랜만에 가족들의 결속을 다졌지만 , 난 입대의 부담감에 아무 정신이 없었다.

월요일이 입대라 그 사람은 일요일에 안동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토요일 그사람과 함께 잠이들어 일요일 아침일찍 내 몸이 안좋아 근처 약국에 들러 약을 사고, 고모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였다. 그때 그사람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

"누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 라고 ,

그때 그 사람이 흘린 눈물은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군대 가기전에 나는 나의 목소리로 음성편지를 만들었다.

테잎 한개분량으로 말이다.

그리고 손으로 적은 편지와 함께 선물로 줬다.

입대하기3일전에 주고 입대전날 물어봤는데 들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입대 하고 들어본다고 했다.

입대 전날 그 사람을 안동에 보내고 입대 날이 왔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그 사람에게 걸었고 , "잘 갔다 올께" 라는 말과 "사랑해" 라는 말을 남기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리고 난 가족들과 포옹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연병장으로 달려 들어갔고, 멀리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도 눈물로 가려졌다. 그렇게 군생활이 시작됐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난 그 그리움을 편지로 대신했다.

그 사람이 생각이 날때마다 난 편지를 썼다.

군대에서 그사람에게 보낸 편지는 500통이 넘을 것이다.

내가 그사람에게 보낸 편지가 얼마나 많았던지 , 그 사람아버지께서 나를 만나지 말라고 그 사람방에 있는 편지를 모조리 욕실에 넣고 수화기로 물을 뿌려버린적이 있다. 그때 그 편지들을 방에 펴서 말리려고 폈는데,, 방 전체를 편지로 매우고도 남았었다고 한다. 첫사랑이 방에 펼쳐진 편지를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준 적이있다.

낮에 훈련을 받을때도 난 그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옮겼다.

수첩에 난 편지를 썼다. 그래서 그 수첩을 찢어 나중에 편지를 보낼때 함께 보냈다.

군대에서 훈련을 하면서 힘들땐 항상 그사람 생각을 하면 힘이 났고, 버틸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난 무엇을 바라보고 버텼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분명 그사람도 나와 같은 하늘을 보고 있겠지? 라고,

같은 하늘아래 있지만 볼 수 없는 슬픔을 그렇게 달랬다.

입대후에 전화를 할 수 없다. 시켜주질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좀 다른것 같았다. 우리때는 전화를 시켜 주지않았다.

입대후 2주 후 쯤에 , 난 소대장과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공장으로 갔다. 그때 3명의 동기들과 함께 간것 같다. 그때 소대장이 자기 핸드폰을 주면서 전화 하고 싶은데 전화를 하라며 건네 주었다.

그 핸드폰을 받아들고 세탁공장 기계 뒤에서 먼저 집에 전화를 했다. 그래도 집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전화를 받질 않으셨다. 안계시는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그사람이 받았다 . 근데 말을 나오질 않았다. 그리움에 울음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못한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뒤에 더 많은 편지를 적은것 같다 .

 

100일 뒤 첫 휴가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그 사람을 보기위해 시내로 나갔다.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을 오락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왔고 , 그 사람의 그때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웨이브 펌을 했는데 얼마나 귀엽고 잘 어울리던지 ,

만나자 마자 안아 버렸다.

그때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 그사람의 친구들도 만나면서 말이다. 내 첫사랑은 참 강한 여자 였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내가 입대 해도 울지않을 거라고 장담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 그치만

입대후에 많이 울었단다 ,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더니. 내가 입대하던날 밤에 , 내가 녹음해주고 간 테잎을 들으니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단다... 그 뒤로도 항상 그 테잎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열흘의 시간이 지나고 후반기 교육을 받기위해 난 대전으로 또 향해야 했다. 첫사랑이 따라 나섰다 . 대전 동부 터미널에 도착해서 , 우린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내가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서 였다. 그리고 먼저 택시를 태워 보내야 겠단다 . 그래서 택시에 먼저타고 출발하는데 그사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터미널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전화를 했더니,, 울고있었다 .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니 잘해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거 같다 .

난 그사람이 간절 했기 때문에 , 그 간절함 때문에 , 사랑이 커져갔던것 같다 . 그 사람덕분에 철없던 내가 많은 변화를 겪을 수 있었던것 같다 .

 

첫 월급을 받고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발찌를 하나 장만했다.

발찌를 장만해서 어디에서 걸어준지 장소가 정말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

난 그 발찌를 나에게서 도망가지 말라는 의미로 그 사람에게 선물을 했고 , 그 사람은  그 고마움을 여느때와 같이 얼굴표정으로 드러냈다. 항상 선물 후엔 뿌듯했고, 감동하는 그 사람을 보며 내가 더욱 감동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처음으로 면회를 왔다. 내가 경남 창녕에 발령을 받아 근무 하던 시절이었는데 , 아마 6월달이었던것 같다 ,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사람이 직접 센드위치와 김밥을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해 온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사람은 음식을 정말 못한다. 그렇지만 그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사실 많이 먹지도 못했다. 같이 있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그런 말들이 정말 사실 처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한끼도 먹지 않았는데, 정말 배가 불렀고, 많이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다 먹지 못했다 ,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다 . 그리고 면회도 잠시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왔다 . 함께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만 갔다 .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또 그 사람이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계속 물었지만 버스타기 전에 헤어질때 이야기를 해주겠단다 . 그렇지만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물었고,, 그 사람은 말했다 . 전에 내가 사준 발찌를 잃어버려서 그렇단다..

내 첫사랑은 그런 사람 이었다.. 나와의 모든걸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난 정말로 괜찮다며 그 사람을 위로 했고 다음에 더 좋은것으로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 그런 행복도 잠시 그해 9월 우린 불행이 찾아왔다.

 

2005년 9월 어느날 그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다급하고 슬픈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였다..

놀란 나는 그사람을 먼저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그 사람의 말을 들었다.  그 사람의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셨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사람의 아버지께서 3년 전까지 도박에 빠져 그 도박 빚때문에 집에 압류가 들어온 것이다. 그걸 견디지 못하셨던 어머니께서는 친정으로 가버리신 것이다. 그에 놀란 첫사랑은 나에게 전화를 했고 , 나는 진심의 위로를 했고, 같이 고민했다.

그 사람은 정말 똑똑하고 머리 좋은 동생이 하나 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똑똑한 동생이었는데 , 그런 동생도 너무 안쓰러웠다 . 어떻게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도 항상 그렇게 밝은 표정과 씩씩함을 잃지 않았는지 난 그사람이 정말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그래서 우린 그 어린나이에 철도 없었지만 도망을 결심했다. 난 간부로 군생활을 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바로 할 수 있었고 , 그 사람도 그 사람 동생도 모두 떠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그때쯤 어머니께서 집에 돌아오셨고 우린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는 데리고 가도 좋다는 승락을 받았다.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첫사랑의 아버지 몰래 우린 도망을 가기 위해 모든걸 준비했다. 내 친구들에게도 필요한것들을  준비 시켜놓은 상태로 9월 10일 휴가를 잡았다. 휴가 아침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이었다 .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아셨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셨는가 하니 아버지께서 왠지 어머니의 행동이 수상쩍고 뭔가 숨기고 있는 듯 해서 계속 추궁했더니 ,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다 말씀을 하신것이었다 . 그래서 그사람의 아버지께서 그사람의 직장으로 그 사람을 잡으로 나갔을때 어머니께서 그사람에게 전화를 하신것이다. 그때 첫사랑은 나에게 전화를 했던것이다 . 그 사람 어머니께서는 도망을 가라고 전화를 하신것이었고, 첫사랑인 그사람은 도망가지 않고 , 설득을 시켜보겠단 생각에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그 시간에 난 첫사랑의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 정말 사랑해요?" 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네" 라고 대답했고 , "그럼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하셨다 .

그런데 , 첫사랑의 아버지께서 그사람의 핸드폰을 부숴버리고 집에 감금시켜 버렸다 . 그리고 나중에 그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람의 집전화 였다..

결론은 헤어지자는 것이었다 .. 힘들어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

난 그사람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그사람의 집으로 향했고, 그사람의 집에 도착해서 담을 넘어 그사람의 창문으로 그사람을 찾았다.

집앞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 그 사람은 포기하고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난 휴가 복귀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일주일 뒤,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

너무 힘들다는 이유에서 였다.

난 그때 부대에서 유격훈련을 나와 있었다.

유격훈련장에서 저녁 9시쯤 그사람의 전화를 받아 잠자리를 나와 밖에 나갔다 . 밖에서 전화가 길어졌고 우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아침에 씻으려고 욕실 거울만 봐도 눈물이나.."

라고 했다 . 사실 나도 그랬다.. 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쏟아졌다..

난 헤어진것을 집에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금새 아셨다 .

내가 밥을 먹다말고 , 표정이 좋지 않은걸 아셨는지 할머니께서 ,

무슨일 있냐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 밥을 먹다말고 눈물을 쏟았다.

이런 저런 감정을 서로는 전화로 이야기를 했고 , 우리는 다시 만났다.

 

2005년 10월 4일 난 휴가를 받고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의 아버지를 난 너무도 설득을 하고 싶은 나머지 ,

그의 아버지께 문자를 보냈다. 또 일이 터진것이다.

첫사랑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계속 들어왔다.. 그 사람의 아버지셨다. 두번정도 받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전화를 받았다 .

시청앞으로 당장 나오라는 전화였다. 둘이 함께 시청 앞으로 나갔다. 시청앞에서 기다리신 그의 아버지께서 나의 첫사랑을 마구 때리 셨다, 난 그런 아버지를 말렸고, 그의 아버지 께서도 화가 가라 앉으셨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3년동안 헤어져있어보고 , 그때까지도 서로를 사랑한다면 만나라"

라고 하셨다. 난 헤어지는 자체가 싫었다 . 설득도 통하지 않았다. 2년동안 반대해온 것을 단박에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첫사랑이 나에게 다가와서 했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우리 그만하자 .. 너무 힘들잖아.. "

그렇게 우린 더이상 이어 나갈 수 없었고,, 우린 정말 끝이 나고 말았다 .

 

나중에 했던 생각인데 , 난 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쉽게 놓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 사람과는 헤어짐을 한번도 생각하지 모했고,  그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했고 ,,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라는  너무도 큰 죄책감이 들었으며, 그 사람과 헤어진 후 6개월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며 지냈고 , 그 뒤 2년동안 그 사람을 잊지못하고 그리워 하며 지냈다 .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나는 정말 다시는 사랑이라는 감정 , 설레임을 가질 수 없을지 알았다 .

그 사람과 만약 친구로 남았더라면 , 난 그사람을 첫사랑으로 기억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 지금은 남이지만 길거리를 다니면서

아직도 아는척을 하지 못하는 사이로 남았지만 , 그사람을 영원히 첫사랑으로 기억할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 아직 남아 있지 않지만 , 사랑해서 잊지 못함이아니라 ,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었던 사람이기에 잊지 못하지 않을까? 남자는 누구나 첫사랑을 갖고있을 것이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도 있듯이 남자는 첫사랑의 로멘스를 잊지 못한다. 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때문이 아닌것은 분명하다. 그저 좋은 추억으로 남겨질뿐 , 그 후로 슬픔에는 많이 무뎌진것 같다. 난 그 설레임을 두번다신 느끼지 못할것 같았다 . 그렇지만 얼마전에 그 설레임과 좋아하는 감정이 다시 생겼지만, 두려움이 앞서 지켜내지 못했다 . 다시 잘 할 수 있을거라 깨달았을땐 이미 늦었으니까 , 말이다...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 정말 내 모든걸 바쳐 사랑해야겠다 ... 내 모든걸 말이다 ...

잊고 살았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후배와 , 나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들을 일깨워준 나의 마지막 사랑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정의는 난 뚜렷하다.

좋아함은 그저 호감이나 이끌리는 감정이며,

사랑한다 함은 그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감정이

사랑한다는 감정인것 같다 . 지금 난..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