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건설노동자와 물건 파는 상인, 꽃 사가는 금발의 미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불량스러운 모습으로 걸어가는 흑인 소년까지 역 주변에 거주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한참 동안 쳐다보았습니다. 미세한 주름까지 잡아내는 섬세한 덕에 전혀 지루하지 않더군요. 얼굴 표정에 생동감이 넘칩니다. 금발의 남녀는 꼭 보는이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네요.
빨간 사과, 노란 꽃, 퍼런 재킷 등 색상도 화려합니다. 다양한 색의 사용은 사람들이 걸친 옷의 질감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인 'MOMA'에 당장 옮겨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 벽화는 42번가 역에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추상, 은유 표현주의자 화가 잭 빌(Jack Beal)이 1999년에 제작했습니다.
2mX6m 크기의 그림 전체가 1cmX1cm 정도 크기의 타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초 제작은 유화로 그렸고 지하철 벽에 옮기면서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었습니다.
66번가 역과 링컨센터 역 사이의 벽에 있는 타일 모자이크 '아르테미스, 아크로바트, 디바와 댄서 (Artemis, Acrobats, Divas and Dancers)' 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페미니즘 예술가 낸시 스페로(Nancy Spero)가 2004년에 만들었죠.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입니다. 아크로바트는 곡예사를 의미합니다. 디바는 아시다시피 프리마돈나죠. 이들을 연극의 한 장면이나 춤을 주제로 벽에 붙여 넣었습니다.
곡예하는 여성, 피리부는 이집트인, 프리마돈나, 달리기 하는 남성 등이 벽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흩어진 조각이 모여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타일 조각이 떨어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위의 벽화 외에도 역 주변에 20여개의 다른 벽화가 있습니다. 모두 같은 작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캐링 온(Carrying on)' 입니다. 194명의 뉴욕 시민을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350m 이상 이어집니다. 차분히 벽을 따라 가다보면 모두와 만날 수 있죠. 급하면 놓칩니다.
캐리어 가방을 끄는 여행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또는 마주 보고 있는 연인, 고상한 차림새에 한 손에 커피를 든 여성, 가벼운 가방을 짊어지고 잰걸음을 놓는 시민, 꽃을 든 남자, 장바구니를 든 여자.
뉴욕에 며칠 있으면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벽화는 그림이라기 보다는 뉴욕의 삶 자체네요. 영어가 잘 안되면 이 그림과 소통해 보세요. 모든 뉴요커를 만난 느낌입니다.
설치미술가 자넷 즈위그(Janet Zweig)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2000명 이상의 뉴욕시민을 사진 촬영했습니다. 그 중 뉴욕과 뉴욕커의 모습을 일상으로 담아내는 194명을 추렸습니다.
제목 '캐링 온'에서 암시되듯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9/11 이후에도 '그들은 인생을 이어간다'는 메세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2004년에 제작했고 프린스가 역에 있습니다.
역 이름도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뉴욕지하철에는 이외에도 220개 이상의 '공익 미술(Public Art)' 작품들이 있습니다. 김정향, 허유미, 강익중씨 등 한국인 예술가들의 작품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행복한 눈물'로 잘 알려진 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참여했습니다. '행복한 눈물'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삼성 비자금 90억원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았죠.
역 내에서는 다양한 공연도 펼쳐집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탭 댄스를 추는 젊은이부터 색소폰을 부여잡은 노인까지 연령대도 천차만별이죠. 특별이 정해진 장소 없이 어디서든 자리를 깝니다. 터를 잡고 나면 자발적 공연비를 받는 상자를 만들기도 하죠.
물론 한국의 지하철에서도 문화공연을 합니다. 동대문역 등에 공연장이 있죠. 하지만 정해진 장소에서만 가능하고 관리를 받으며 하는 공연이기에 다양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간대도 정해져 있고요. 어딘가 관제되어진 느낌의 공연이기에 다양성과 활력을 잃습니다.
만약 한국지하철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골라 마음대로 공연을 했다가는 공익근무요원이 냉큼 달려와 그 임무를 다하겠죠. 마음 상합니다.
<여기까지 스크롤을 굴리셨다면 조금만 더 가봅시다. 힘내세요.>
광고천지 한국지하철. 창조력을 잃다
이젠 한국의 지하철로 가보겠습니다.
지하철을 애용하는 오천만 서민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국지하철에는 광고가 많습니다. 눈이 가는 곳이라면 광고도 함께 가죠. '눈 가는데 광고 간다' 입니다.
벽면에도 광고
머리 위에도 광고
스크린 도어에도 광고입니다. 바닥만 빼고 온통 제품선전에 열을 올립니다. 사람이 '광고 보는 동물'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네요.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9월 30일 <한겨레신문> 미디어전망대 기고에서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과 같은 돈인 광고비가 국제적으로 9, 10위에 이를 정도로 과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시민의 통제에 벗어난 광고비가 온전히 소비자와 경제에 부담을 지운다는 것입니다.
광고가 넘쳐나는 곳에서 개인의 창조성이 충분히 구현될까요? 요새 제각각 이유는 달라도 대통령, 기업가, 시민운동가 등이 "창의력을 키워야 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만큼 창의력이 부족하거나, 절박한 것이겠죠.
박원순 변호사는 <시사IN>이 주최한 강연에서 "한국은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라며 비스무레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교육을 창의력을 저해시키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박 변호사는 한국은 "놀이터마저 똑같이 만들 정도로 창의성이 부족한 나라"라고 지적했습니다. 똑같은 문화공간 역시 색다른 생각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란 것입니다.
창의력은 획일성을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광고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을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라 같은 것만 보는 소비자입니다. 광고의 목적이죠. 이런 네모난 광고에 갇힌 시민에게 창조력을 발휘하라고 쪼아대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과잉 광고'는 서민 삶에 부담을 주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 꾸고, 가꿀 창발적 사고를 가로 막습니다.
물론 뉴욕지하철에도 광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온 벽면을 뒤덮는 수준은 아니죠. 또한 뉴욕지하철은 숨가쁘게 이동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1986년 뉴욕메트로폴리탄교통국은 지하철 환경 개선을 위해 '운송을 위한 미술(Art for Transit)' 예산을 설립했습니다. 한 해 6만 달러 이상을 지하철 내 공익 미술을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220개 이상의 예술작품이 이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창조적 문화공간이라고 보는 단적인 예죠.
칼 융은 "창조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오는 놀이본능에서 비롯된다. 창의적 사고는 그것이 좋아하는 대상과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놀 수도 있고 지하철이 '좋아하는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도회지에 사는 이라면 많은 시간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지하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오랜시간을 보내는, 지상만큼이나 넓은 지하가 창조성이 결여된 공간이라면 시민에게 하루의 피곤을 더해주는 곳이 될뿐입니다. 놀다 갈 수 있는 곳이 되야 합니다.
광고를 치우고 벽화를 하나 그려봅시다. 다양한 문화공연을 허합시다. 그럼 지하철이 아무 생각 없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겠죠. 창조력도 샘솟을 겁니다.
지하철은 또한 공공의 공간입니다. 기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광고하는 기업에게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도 '과잉광고' 줄여야 합니다. 본래의 존재 이유 찾아야죠.
<쓰다 보니 길어 졌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수정보완> 10월 5일 23:50
1. 1986년 뉴욕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은 지하철 환경 정화를 위해 MTA 산하에 '운송을 위한 미술(Art for Trasit)'을 설립한 것은 맞습니다. 설립 후 지하철 설치미술가를 선정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 6만 달러 정도를 지하철 공익 미술(Public Art)에 지원하고 있다'고 한 것은 틀린 내용입니다.
2005년 기준으로 한 해 6만 달러가 아니라 약 300만 달러입니다. 6만 달러는 너무 적죠. 6만 달러는 설치미술가를 선정한 하나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평균 예산입니다. <뉴욕타임즈> 기사 등을 참고했는데 영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네요.
강익중, 허유미, 김정향씨 등 한인 화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퀸즈의 로슨역 개찰구와 정거장에 한국의 추석과 사물놀이 등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데로 이 사이트(http://www.nycsubway.org/perl/artwork)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2. 위에서 인용한 '칼 융'은 줄인 이름이고 펼치면 '칼 구스타프 융' 입니다. 분석심리학자의 개척자로 평가 받으며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외에 '로히'를 '로이'로 '동대문역'을 '동대문운동장역'으로 오타 수정했습니다. 한인 작가에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추가했습니다. 강익중 설치미술가는 광화문 복원 현장의 가림막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메인홀의 벽화 등을 제작했습니다.
댓글이 몰아쳤습니다. 이 정도 반응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논점을 일탈한 내용과 인신공격성 댓글이 대부분이나 합리적인 비판도 많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냥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겠네요.
제 블로그는 고정독자가 부족한 걸음마 단계이기도 하고, 메타블로그에 의존한 포스팅은 금세 사그라지는 불길과 같아 얼마나 많은 분이 다시 볼지는 모르겠지만 추가 포스팅을 올릴 계획입니다. 합리적 비판을 받아들인 차후 포스팅은 어떻게 해야 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광고천지 한국지하철, 예술천국 뉴욕지하철
뉴욕지하철에 가면 예술이 있고,
한국지하철에 가면 광고 밖에 없네
일단 뉴욕시에 있는 지하철에 가보죠.
벽화 '돌아온 봄(The Return of Spring)'입니다.
땀 흘리는 건설노동자와 물건 파는 상인,
꽃 사가는 금발의 미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불량스러운 모습으로 걸어가는 흑인 소년까지
역 주변에 거주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한참 동안 쳐다보았습니다. 미세한 주름까지 잡아내는 섬세한 덕에 전혀 지루하지 않더군요. 얼굴 표정에 생동감이 넘칩니다. 금발의 남녀는 꼭 보는이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네요.
빨간 사과, 노란 꽃, 퍼런 재킷 등 색상도 화려합니다. 다양한 색의 사용은 사람들이 걸친 옷의 질감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인 'MOMA'에 당장 옮겨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 벽화는 42번가 역에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추상, 은유 표현주의자 화가 잭 빌(Jack Beal)이 1999년에 제작했습니다.
2mX6m 크기의 그림 전체가 1cmX1cm 정도 크기의 타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초 제작은 유화로 그렸고 지하철 벽에 옮기면서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었습니다.
66번가 역과 링컨센터 역 사이의 벽에 있는 타일 모자이크
'아르테미스, 아크로바트, 디바와 댄서
(Artemis, Acrobats, Divas and Dancers)' 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페미니즘 예술가 낸시 스페로(Nancy Spero)가 2004년에 만들었죠.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입니다. 아크로바트는 곡예사를 의미합니다. 디바는 아시다시피 프리마돈나죠. 이들을 연극의 한 장면이나 춤을 주제로 벽에 붙여 넣었습니다.
곡예하는 여성, 피리부는 이집트인, 프리마돈나, 달리기 하는 남성 등이 벽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흩어진 조각이 모여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타일 조각이 떨어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위의 벽화 외에도 역 주변에 20여개의 다른 벽화가 있습니다. 모두 같은 작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캐링 온(Carrying on)' 입니다.
194명의 뉴욕 시민을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350m 이상 이어집니다.
차분히 벽을 따라 가다보면 모두와 만날 수 있죠. 급하면 놓칩니다.
캐리어 가방을 끄는 여행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또는 마주 보고 있는 연인,
고상한 차림새에 한 손에 커피를 든 여성,
가벼운 가방을 짊어지고 잰걸음을 놓는 시민,
꽃을 든 남자, 장바구니를 든 여자.
뉴욕에 며칠 있으면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벽화는 그림이라기 보다는 뉴욕의 삶 자체네요. 영어가 잘 안되면 이 그림과 소통해 보세요. 모든 뉴요커를 만난 느낌입니다.
설치미술가 자넷 즈위그(Janet Zweig)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2000명 이상의 뉴욕시민을 사진 촬영했습니다. 그 중 뉴욕과 뉴욕커의 모습을 일상으로 담아내는 194명을 추렸습니다.
제목 '캐링 온'에서 암시되듯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9/11 이후에도 '그들은 인생을 이어간다'는 메세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2004년에 제작했고 프린스가 역에 있습니다.
역 이름도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뉴욕지하철에는 이외에도 220개 이상의 '공익 미술(Public Art)' 작품들이 있습니다. 김정향, 허유미, 강익중씨 등 한국인 예술가들의 작품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행복한 눈물'로 잘 알려진 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참여했습니다. '행복한 눈물'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삼성 비자금 90억원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았죠.
직접 찍은 사진이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대신 이 사이트(http://www.nycsubway.org/perl/artwork)에 가면
대부분의 작품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뉴욕지하철
이 사진은 뉴욕지하철이 아닌 동대문운동장역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밴드 사진.
역 내에서는 다양한 공연도 펼쳐집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탭 댄스를 추는 젊은이부터 색소폰을 부여잡은 노인까지 연령대도 천차만별이죠. 특별이 정해진 장소 없이 어디서든 자리를 깝니다. 터를 잡고 나면 자발적 공연비를 받는 상자를 만들기도 하죠.
물론 한국의 지하철에서도 문화공연을 합니다. 동대문역 등에 공연장이 있죠. 하지만 정해진 장소에서만 가능하고 관리를 받으며 하는 공연이기에 다양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간대도 정해져 있고요. 어딘가 관제되어진 느낌의 공연이기에 다양성과 활력을 잃습니다.
만약 한국지하철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골라 마음대로 공연을 했다가는 공익근무요원이 냉큼 달려와 그 임무를 다하겠죠. 마음 상합니다.
<여기까지 스크롤을 굴리셨다면 조금만 더 가봅시다. 힘내세요.>
광고천지 한국지하철. 창조력을 잃다
이젠 한국의 지하철로 가보겠습니다.
지하철을 애용하는 오천만 서민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국지하철에는 광고가 많습니다. 눈이 가는 곳이라면 광고도 함께 가죠. '눈 가는데 광고 간다' 입니다.
벽면에도 광고
머리 위에도 광고
스크린 도어에도 광고입니다. 바닥만 빼고 온통 제품선전에 열을 올립니다. 사람이 '광고 보는 동물'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네요.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9월 30일 <한겨레신문> 미디어전망대 기고에서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과 같은 돈인 광고비가 국제적으로 9, 10위에 이를 정도로 과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시민의 통제에 벗어난 광고비가 온전히 소비자와 경제에 부담을 지운다는 것입니다.
광고가 넘쳐나는 곳에서 개인의 창조성이 충분히 구현될까요? 요새 제각각 이유는 달라도 대통령, 기업가, 시민운동가 등이 "창의력을 키워야 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만큼 창의력이 부족하거나, 절박한 것이겠죠.
박원순 변호사는 <시사IN>이 주최한 강연에서 "한국은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라며 비스무레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교육을 창의력을 저해시키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박 변호사는 한국은 "놀이터마저 똑같이 만들 정도로 창의성이 부족한 나라"라고 지적했습니다. 똑같은 문화공간 역시 색다른 생각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란 것입니다.
창의력은 획일성을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광고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을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라 같은 것만 보는 소비자입니다. 광고의 목적이죠. 이런 네모난 광고에 갇힌 시민에게 창조력을 발휘하라고 쪼아대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과잉 광고'는 서민 삶에 부담을 주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 꾸고, 가꿀 창발적 사고를 가로 막습니다.
물론 뉴욕지하철에도 광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온 벽면을 뒤덮는 수준은 아니죠. 또한 뉴욕지하철은 숨가쁘게 이동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1986년 뉴욕메트로폴리탄교통국은 지하철 환경 개선을 위해 '운송을 위한 미술(Art for Transit)' 예산을 설립했습니다. 한 해 6만 달러 이상을 지하철 내 공익 미술을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220개 이상의 예술작품이 이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창조적 문화공간이라고 보는 단적인 예죠.
칼 융은 "창조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오는 놀이본능에서 비롯된다. 창의적 사고는 그것이 좋아하는 대상과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놀 수도 있고 지하철이 '좋아하는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도회지에 사는 이라면 많은 시간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지하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오랜시간을 보내는, 지상만큼이나 넓은 지하가 창조성이 결여된 공간이라면 시민에게 하루의 피곤을 더해주는 곳이 될뿐입니다. 놀다 갈 수 있는 곳이 되야 합니다.
광고를 치우고 벽화를 하나 그려봅시다. 다양한 문화공연을 허합시다. 그럼 지하철이 아무 생각 없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겠죠. 창조력도 샘솟을 겁니다.
지하철은 또한 공공의 공간입니다. 기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광고하는 기업에게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도 '과잉광고' 줄여야 합니다. 본래의 존재 이유 찾아야죠.
<쓰다 보니 길어 졌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수정보완> 10월 5일 23:50
1. 1986년 뉴욕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은 지하철 환경 정화를 위해 MTA 산하에 '운송을 위한 미술(Art for Trasit)'을 설립한 것은 맞습니다. 설립 후 지하철 설치미술가를 선정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 6만 달러 정도를 지하철 공익 미술(Public Art)에 지원하고 있다'고 한 것은 틀린 내용입니다.
2005년 기준으로 한 해 6만 달러가 아니라 약 300만 달러입니다. 6만 달러는 너무 적죠. 6만 달러는 설치미술가를 선정한 하나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평균 예산입니다. <뉴욕타임즈> 기사 등을 참고했는데 영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네요.
강익중, 허유미, 김정향씨 등 한인 화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퀸즈의 로슨역 개찰구와 정거장에 한국의 추석과 사물놀이 등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데로 이 사이트(http://www.nycsubway.org/perl/artwork)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2. 위에서 인용한 '칼 융'은 줄인 이름이고 펼치면 '칼 구스타프 융' 입니다. 분석심리학자의 개척자로 평가 받으며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외에 '로히'를 '로이'로 '동대문역'을 '동대문운동장역'으로 오타 수정했습니다. 한인 작가에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추가했습니다. 강익중 설치미술가는 광화문 복원 현장의 가림막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메인홀의 벽화 등을 제작했습니다.
댓글이 몰아쳤습니다. 이 정도 반응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논점을 일탈한 내용과 인신공격성 댓글이 대부분이나 합리적인 비판도 많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냥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겠네요.
제 블로그는 고정독자가 부족한 걸음마 단계이기도 하고, 메타블로그에 의존한 포스팅은 금세 사그라지는 불길과 같아 얼마나 많은 분이 다시 볼지는 모르겠지만 추가 포스팅을 올릴 계획입니다. 합리적 비판을 받아들인 차후 포스팅은 어떻게 해야 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출처:http://blog.ohmynews.com/newphase/tag/%EC%A7%80%ED%95%98%EC%B2%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