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와 "칼 프리드리히 니체" 는 흔히 "의지"의 철학자라는 계보를 새롭게 정초해낸 이들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시키는 대표적인 속성은 우리가 이제까지 알아왔던 "합리적 이성" 이 아니라 "의지"라고 주장된다.
쇼펜하우어는 단적으로 그 의지를 "삶"에의 의지 내지는 "살려는 의지"로 판단한다. 우리의 의지가..그리고 삶에의 염원이 모태에서 우리 몸에 혈관을 만들고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한다. 더 잘 살아 보려 하겠다는 의지(표현이 조금 이상한가?)가 수작업으로 구성되는 이전의 경제 체제를 뒤엎고 대량생산의 분업화 기계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의지가 인간들의 평균수명을 더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고 영원히 살려는 그 의지는 그 한계에 직면을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가 발전시킨 것이 바로 "자기복제" 즉 생식의 매커니즘이다. 우리는 영원히 살려는 우리의 의지로 자손을 낳아서 2세들에게 자신의 유전자와 살려는 의지를 함께 넘겨준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이 의지를 근본적으로 "악한 것"으로 보았다. 쇼펜하우어가 모든 의지를 "무"로 돌리라는 불교를 좋아했던 것은 무리가 아닌 일이다.
니체에 이르면 이 견해는 더 입체적으로 심오해진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평면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도 "생물학적"이지만 니체는 이를 형이상학적으로 변모시킨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를 단지 생물학적으로만 판단하려면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강도철학"이라는 오명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니체를 읽고 가슴이 얼얼하게 저려오는 이들은 권력에의 의지가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보고 느낀 감정일 게다. 그리고 그 권력에의 의지란 건 선한 것 악한 것의 범주에 넣을 것이 아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니체 자신에게 있어서 그건 선이며 "선악의 피안"이고 설사 그것이 악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것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이를테면 무한회귀)을 존재론적이고 그리고...인간적으로 뼈아프지만 "긍정"해야 한다.
골아픈 쇼펜하우어와 니체 이야기는 그만 접어두자.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 "진화론"과 맥락이 비슷하다.
십년 전 이십년 전에 비해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체격이 장대하고 얼굴들이 잘 생겼다.
올드 세대들은 이걸 두고 걔들이 잘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왜 잘 먹어서 체격이 커지고 늘씬해지면서 용모가 밝아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진화론 내지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에 해답이 있다. 잘 먹어서 체격과 용모가 좋아지는 그 조건이 "생존경쟁" 에 유리하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2세를 출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의지가 우리를 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따로 "발정기"라는 것이 없다.
비록 성욕을 느끼는 통로는 다르겠지만 남녀 불문 성욕에 대한 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시기나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왜일까? 언제든지 생식 매커니즘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그 조건이 평상시에 잘 되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2세에게 남겨 줄 준비를 항상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화론의 최고서열의 종이며 살려는 의지가 어느 종에 비해서도 월등하다는 걸 입증한다.
이번 바르셀로나의 우승으로 결말지어진 챔스 결승이 끝나고 내가 느낀 건...
축구는 정말 멋진 스포츠라는 생각에서이다. 농구나 배구의 경우 신장의 크기는 그가 가진 경기력의 가장 큰 조건이 될 수 있는데 축구선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17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단신의 사비, 이니에스타, 메시를 보라.
그들의 작은 신장은 오히려 큰 무기가 되었다. 장대한 체격의 선수들이 휘둘러오는 장창에만 대처하도록 습관이 들어버린 상대팀의 선수들은 꼬맹이(?)들이 작은 은장도를 고사리 손에 쥐고서 자신들을 위협하는 그런 상황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그 도발방식의 생소함이나 희귀성이 상대팀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물론 내가 열거한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나 그들이 전체로 합쳐지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는 은장도도 아니고 꼬맹이는 더더욱 아니겠지만 단순하게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메시는 왜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까?
그건 그가 주는 일종의 "낭만적인 대리만족 효과" 가 큰 몫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선수가 자신과 대등한 체격의 선수 여럿을 드리블로 따돌리면 놀랄 일이기는 하지만 어린애같은 체구를 지닌 메시가 같은 결과물을 빼면 그 경이의 강도는 보는 이에게 두 배 세 배가 된다.
우리는 암묵 가운데 나의 상사 또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알게 모르게 직급의 고저나 경제능력의 부족 내지는 신체조건의 열등감 등으로 위축되어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아무리 예쁘게 생긴 미인이라도 고쳐야 하는 자신의 얼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듯) 그럴 때마다 그 부족분을 통렬히 극복하면서 전면부로 나서는 즐거운 상상을 한 번씩 한다.
리오넬 메시...그는 축구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대리만족"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동일한 결과물을 빼 올 경우 그래서 메시는 타인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주목시키는 그 강렬함이 갑절로 두드러지는 것이다.
더불어 바르셀로나라는 팀 자체가 이번 시즌에는 그러했다.
사비와 이니에스타와 메시뿐만 아니더라도 상대 공격수보다 체격적으로 열등한 에투나 센터백을 보는 선수치고는 공중전 마크 능력에 의문이 드는 신장을 가진 푸욜등...
이건 진화론을 거슬러가는 풍경인가?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그 악한 의지들이 극복되는 징조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진화는 일방향 고정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방향 예측불허형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체격과 용모가 좋은 사람이 그 계통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때때로는 꼭 그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모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 이니에스타는 키가 작은 것도 모자라 불행하게도 머리카락의 숫자조차 유감스러운 상태란 걸 감안하면...
바르셀로나의 축구 그리고 현 스페인 국대의 축구를 보고 내가 놀라워하는 건 진화론 또는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철학이 가지는 의미가 그 예측불허의 다양성으로 축구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우승은 더욱 경이적이다.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팀들의 평균 체격보다 훨씬 열등한 그 조건으로 우승이라니...
위 글은 보면 알겠지만 경기감상평은 아니다. 그저 이것저것을 쓸어 모은 일종의 에세이적인 견해일 뿐...
2010년 남아공에서 만일 아주리가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스페인이 우승하길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마라도나의 경우 진화론의 예측불허성을 개인으로 일구어내는 사례였었지만 이를 구성원 전체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이란 생각이다.
한데 내 소망이 아니더라도 작금의 전력상 무적함대는 월드컵 우승후보 영순위이다.
컨디션이 좋았을 때의 사비와 이니에스타 둘로 조화되는 중원의 시너지효과를 감당할 팀이 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대여섯명을 갖다 붙여 쪽수로 처바르는 발상이 아니라 이들과 같은 인원수 매치인 두 명으로 말이다. 쪽수 땜빵은 쪽수를 끌어다온 그 공간에 당연히 헛점이 생길 것이니 논외라 치고...
둘의 컨디션이 나쁠 때라고? 그런데 그런 가정을 늘 하는 감독은 사실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축구감독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두 경우만을 따진다. 상대팀의 컨디션을 100퍼센트로 잡고 내 팀의 컨디션이 100퍼센트일 때의 매치와 컨디션 저조일 때의 매치...
축구의 진화
예전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와 "칼 프리드리히 니체" 는 흔히 "의지"의 철학자라는 계보를 새롭게 정초해낸 이들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시키는 대표적인 속성은 우리가 이제까지 알아왔던 "합리적 이성" 이 아니라 "의지"라고 주장된다.
쇼펜하우어는 단적으로 그 의지를 "삶"에의 의지 내지는 "살려는 의지"로 판단한다. 우리의 의지가..그리고 삶에의 염원이 모태에서 우리 몸에 혈관을 만들고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한다. 더 잘 살아 보려 하겠다는 의지(표현이 조금 이상한가?)가 수작업으로 구성되는 이전의 경제 체제를 뒤엎고 대량생산의 분업화 기계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의지가 인간들의 평균수명을 더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고 영원히 살려는 그 의지는 그 한계에 직면을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가 발전시킨 것이 바로 "자기복제" 즉 생식의 매커니즘이다. 우리는 영원히 살려는 우리의 의지로 자손을 낳아서 2세들에게 자신의 유전자와 살려는 의지를 함께 넘겨준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이 의지를 근본적으로 "악한 것"으로 보았다. 쇼펜하우어가 모든 의지를 "무"로 돌리라는 불교를 좋아했던 것은 무리가 아닌 일이다.
니체에 이르면 이 견해는 더 입체적으로 심오해진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평면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도 "생물학적"이지만 니체는 이를 형이상학적으로 변모시킨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를 단지 생물학적으로만 판단하려면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강도철학"이라는 오명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니체를 읽고 가슴이 얼얼하게 저려오는 이들은 권력에의 의지가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보고 느낀 감정일 게다. 그리고 그 권력에의 의지란 건 선한 것 악한 것의 범주에 넣을 것이 아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니체 자신에게 있어서 그건 선이며 "선악의 피안"이고 설사 그것이 악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것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이를테면 무한회귀)을 존재론적이고 그리고...인간적으로 뼈아프지만 "긍정"해야 한다.
골아픈 쇼펜하우어와 니체 이야기는 그만 접어두자.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 "진화론"과 맥락이 비슷하다.
십년 전 이십년 전에 비해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체격이 장대하고 얼굴들이 잘 생겼다.
올드 세대들은 이걸 두고 걔들이 잘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왜 잘 먹어서 체격이 커지고 늘씬해지면서 용모가 밝아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진화론 내지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에 해답이 있다. 잘 먹어서 체격과 용모가 좋아지는 그 조건이 "생존경쟁" 에 유리하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2세를 출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의지가 우리를 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따로 "발정기"라는 것이 없다.
비록 성욕을 느끼는 통로는 다르겠지만 남녀 불문 성욕에 대한 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시기나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왜일까? 언제든지 생식 매커니즘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그 조건이 평상시에 잘 되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2세에게 남겨 줄 준비를 항상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화론의 최고서열의 종이며 살려는 의지가 어느 종에 비해서도 월등하다는 걸 입증한다.
이번 바르셀로나의 우승으로 결말지어진 챔스 결승이 끝나고 내가 느낀 건...
축구는 정말 멋진 스포츠라는 생각에서이다. 농구나 배구의 경우 신장의 크기는 그가 가진 경기력의 가장 큰 조건이 될 수 있는데 축구선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17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단신의 사비, 이니에스타, 메시를 보라.
그들의 작은 신장은 오히려 큰 무기가 되었다. 장대한 체격의 선수들이 휘둘러오는 장창에만 대처하도록 습관이 들어버린 상대팀의 선수들은 꼬맹이(?)들이 작은 은장도를 고사리 손에 쥐고서 자신들을 위협하는 그런 상황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그 도발방식의 생소함이나 희귀성이 상대팀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물론 내가 열거한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나 그들이 전체로 합쳐지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는 은장도도 아니고 꼬맹이는 더더욱 아니겠지만 단순하게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메시는 왜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까?
그건 그가 주는 일종의 "낭만적인 대리만족 효과" 가 큰 몫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선수가 자신과 대등한 체격의 선수 여럿을 드리블로 따돌리면 놀랄 일이기는 하지만 어린애같은 체구를 지닌 메시가 같은 결과물을 빼면 그 경이의 강도는 보는 이에게 두 배 세 배가 된다.
우리는 암묵 가운데 나의 상사 또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알게 모르게 직급의 고저나 경제능력의 부족 내지는 신체조건의 열등감 등으로 위축되어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아무리 예쁘게 생긴 미인이라도 고쳐야 하는 자신의 얼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듯) 그럴 때마다 그 부족분을 통렬히 극복하면서 전면부로 나서는 즐거운 상상을 한 번씩 한다.
리오넬 메시...그는 축구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대리만족"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동일한 결과물을 빼 올 경우 그래서 메시는 타인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주목시키는 그 강렬함이 갑절로 두드러지는 것이다.
더불어 바르셀로나라는 팀 자체가 이번 시즌에는 그러했다.
사비와 이니에스타와 메시뿐만 아니더라도 상대 공격수보다 체격적으로 열등한 에투나 센터백을 보는 선수치고는 공중전 마크 능력에 의문이 드는 신장을 가진 푸욜등...
이건 진화론을 거슬러가는 풍경인가?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그 악한 의지들이 극복되는 징조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진화는 일방향 고정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방향 예측불허형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체격과 용모가 좋은 사람이 그 계통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때때로는 꼭 그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모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 이니에스타는 키가 작은 것도 모자라 불행하게도 머리카락의 숫자조차 유감스러운 상태란 걸 감안하면...
바르셀로나의 축구 그리고 현 스페인 국대의 축구를 보고 내가 놀라워하는 건 진화론 또는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철학이 가지는 의미가 그 예측불허의 다양성으로 축구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우승은 더욱 경이적이다.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팀들의 평균 체격보다 훨씬 열등한 그 조건으로 우승이라니...
위 글은 보면 알겠지만 경기감상평은 아니다. 그저 이것저것을 쓸어 모은 일종의 에세이적인 견해일 뿐...
2010년 남아공에서 만일 아주리가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스페인이 우승하길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마라도나의 경우 진화론의 예측불허성을 개인으로 일구어내는 사례였었지만 이를 구성원 전체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이란 생각이다.
한데 내 소망이 아니더라도 작금의 전력상 무적함대는 월드컵 우승후보 영순위이다.
컨디션이 좋았을 때의 사비와 이니에스타 둘로 조화되는 중원의 시너지효과를 감당할 팀이 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대여섯명을 갖다 붙여 쪽수로 처바르는 발상이 아니라 이들과 같은 인원수 매치인 두 명으로 말이다. 쪽수 땜빵은 쪽수를 끌어다온 그 공간에 당연히 헛점이 생길 것이니 논외라 치고...
둘의 컨디션이 나쁠 때라고? 그런데 그런 가정을 늘 하는 감독은 사실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축구감독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두 경우만을 따진다. 상대팀의 컨디션을 100퍼센트로 잡고 내 팀의 컨디션이 100퍼센트일 때의 매치와 컨디션 저조일 때의 매치...
기다려지는 2010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