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세주

settler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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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시대극 중에는 국가나 대의명분보다 선명한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현대적인 군상들이 왕왕 눈에 띄는데 고현정이 분한 미실 세주는 그 중에서도 좀 진화된 모델인 것 같다. 말등에 올라타 이랴이랴 박차를 가하며 평원을 가로지르던 주몽 왕자가 선량한 백성과 고귀한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일생을 걸었다면 미실세주는 자기 성취와 자아 달성에 자신의 일생과 국가의 명운을 건다.

 

가끔 지나듯 구경을 하면 나중에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공주와 미실세주가 적수 대 적수로 마주 앉아 협상을 하기도 했는데 대화의 양상은 오히려 서로를 존경하고 염려하는 정치인으로써 나누는 교감과 깊은 인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적수를 통해 나를 고양시키고 대결을 통해 나를 키우는 덕만의 현대 감각의 성장기도 흥미로왔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잔혹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아낌 없이 자멸하는 미실의 좌절담이 이 드라마의 주축인 듯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은 어딘가 다른 곳에' theme에 취약하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면서 저것이 나의 삶이다,라고 확신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박탈감 같은 것, 나는 그 정체를 알고 있단 말이지. 이것은 배냇병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느낌을 잘 알았다.

 

누군가에게는 더 큰 꿈이 허용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어 있는 인생극장에서의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배역을 바꿀 수 있을까.

미실의 말대로 "어쩌겠습니까 그 꿈이 가장 탐이 나는 것을요"

 

돌아온 고현정의 연기는 매끄럽고 기교도 있었지만 대단히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에도 얕은 물에서 첨벙대는 기운이 있긴 했다.

그러나 여우 같기도 하고 선녀 같기도 한 그 수려한 얼굴과 기골장대한 체격, 맑고 선명한 발성과 발음, 인간적 카리스마, 본연의 자연스러움과 여유 등 가진 자산이 많아 지켜 보는 것이 즐거운 연기자였다.

미실도 그렇지만 고현정 역시 그녀의 절정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아찔아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