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앞에서 벌거벗은 24살의 남자 이야기..........

하얀손2009.12.04
조회784

조조 앞에서 벌거벗은 24살의 남자 이야기..........


새들은 날아다니고, 들짐승들은 뛰어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살아간다. 그것들은 모두 새로 태어나는 것이 있는 반면, 늙어 죽어가는 것도 있다. 살기 위해 쫒아가는 것이 있는 반면, 살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있다. 민첩한 놈이 있고, 아둔한 놈이 있다. 먹이를 찾는 놈이 있고, 먹이를 놓치는 놈이 있다. 배가 불러 낮잠을 자는 것이 있고, 배고픔에 헤매고 있는 것도 있다. 혼자 먹는 놈이 있고, 무리와 나눠먹는 놈이 있다. 제 짝을 찾아 즐거워하는 것이 있고, 제 짝을 잃어 슬퍼하는 것도 있다. 인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제 스스로 깨달음을 찾으려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니. 그 깨달음 속에 자신이 있고, 자신이 그 깨달음을 지닌다. 그 깨달음은 권세와 부귀영화로도 얻을 수 없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오직 제 스스로 맑은 정신을 닦아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참으로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것이로되, 진실로 얻기가 어려우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깨달음을 성기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맛보지 못한 것을 맛보며, 느낄 수 없던 것을 느끼게 되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새벽에 읽던 책을 덮고 창문을 바라보니, 건너편 이웃집의 지붕에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겨울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그 집은 마음씨 착한 늙은 노인과 그의 아내가 단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는데, 그 집에는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감나무가 하나 있다. 감나무는 작년처럼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 있는데, 그 나무의 가지들 중에는 까치밥으로 몇 개의 감이 달려 있다. 한 겨울 배고픈 새들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매년 노부부가 뭇짐승을 위해 베풀어 놓은 그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눈이 맑아졌으니, 나는 자리에 돌아와 다시 책을 편다. 불과 며칠 전에 불서(佛書)의 정화(精華)인 <금강경(金剛經)>을 읽으니, 모든 상(相)을 지우라고 했지만, 뜻밖에 내가 황석영의 <삼국지, 전 10권>을 다시 읽고 있다. 영화나 만화 그리고 다른 저자의 책을 통해 <삼국지>의 줄거리는 대략 짐작하고 있으나,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이 독서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었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 모두를 위해 다시 정독하여, 중요한 것의 맥을 짚어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미련한 중생(衆生)인가?

 

 

어쨌건, 책을 많이 읽으면 무엇 하는가? 생각하지 아니하고, 깨달음이 없으면, 그저 읽었다는 자족감(自足感)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어제 읽었던 <삼국지>2권의 내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저 중원의 땅에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曹操, 자는 孟德)을 호되게 꾸짖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조조의 명(命)으로 아침조회 때나 잔치를 알리는 북을 치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조조는 부중에 연희를 베풀어 여러 사람들을 청했다. 그리고 북치는 자에게 북을 울리라 명했다.


당시 북을 칠 때는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로 조조를 욕보이기 위해 헌옷을 입고 북을 두드렸다. 이에 조조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어찌하여 그대는 옷을 갈아입지 않았느냐?”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입고 있던 헌옷을 서슴없이 훌훌 벗어던지고는 알몸으로 나섰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놀란 손님들이 모두 눈을 가리고 차마 바로 보지 못했다.

 

 

조조가 노하여 꾸짖는다. “묘당 위에서 이 무슨 무례한 짓인고!”하자, 그는 조조를 향하여 “임금을 속이는 것이 바로 무례한 짓이오. 나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청백한 몸을 드러냈을 따름이외다.”라며 마주 꾸짖는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 다는 당대의 영웅이며, 한 나라의 승상 앞에서 목숨을 걸고 당당히 꾸짖었던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예형이란 인물로 나이 스물네살이었는데, 자질이 맑고 곧으며 재주가 뛰어나서 처음 글을 익히자 곧 그 깊은 깨우쳤고, 눈에 한번 스친 것을 입으로 외우고, 귀로 한번 들은 것을 마음에 잊지 않았다 한다.


그의 성품도 도(道)와 합치되고 생각은 산에 가깝다는 정평이 있어, 널리 뛰어난 인재를 구하려던 조조에게 천거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사력으로 황제를 협박하고,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조조와 첫 대면에서부터 충돌을 빚었다. 이에 조조는 화가 나서 예형에게 북을 치는 낮은 관리를 주어 욕을 보이려다가, 그만 자신이 큰 곤경에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예형은 “그는 “항시 그대는 찬역할 뜻을 품으니 마음이 탁하다. 나는 천하의 명사인데, 네가 나를 북이나 치게 하니, 이는 공맹(孔孟, 공자와 맹자)를 업신여기고 욕하는 것과 닮 바 없다. 그래 천하를 얻으려는 자가 이렇듯 사람을 우습게 안단 말이냐!”고 하였다.


화가난 조조는 예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천하의 당대 영웅 조조도, 알몸으로 목숨을 내어놓고 담론을 펼치는 고절한 선비 예형을 당할 수 없었다. 결국, 예형은 낙양의 조조를 버리고, 형주 땅으로 떠나가 버린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옷을 걸치고 있는가? 부끄러운 옷을 입고, 웃고 떠들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무엇을 옷 속에 감추고, 무엇을 얻으려는가? 한 사람의 작가를 통해 숨겨져 있던 고매한 선비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추천글 : <나의 마음 하나를 열어서>입니다. 

추천글 : <담배 피우던 5명의 여중생 공주님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