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못한 건 맞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진내맘몰라2009.12.08
조회754

안녕하세요. 평범하게 대학 다니는 20살 남자입니다.

 

제가 미대(디자인과)를 다니고 있는데요, 가끔 과제량이 폭주하면(놀다가 미루면) 다음날까지 하기 위해서 밤을 새야 합니다. 자주 있는 일이죠(이건 바쁜 직장인분들이나 학생분들은 공감하실거에요 밤 하루 새는 건 이제 일상다반사죠) 주로 밤에 작업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밤에는 정신이 말짱하다가 해가 뜨고 출근(등교)시간이 되면 그 때 가서야 슬슬 졸리기 시작하고 몸이 나른해집니다. 심하면 목소리도 갈라져요.(도 미 솔 소리가 한번에 나오는 기적의 성대)

 

며칠 전 또 주말을 방탕하게 보낸 저는 또 벼락치기로 밤을 새고 오후 2시에 수업이 있는지라 오전 11시쯤 과제를 겨우 마무리짓고 한시간 쯤 자고 학교갈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몸의 피로는 1%도 가시지 않더군요.

 

아 학교가지말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학교에 과제 제출할려고 밤 새놓고 다했는데 자느라 안가는 건 바보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억지로 일어나 출발했습니다.

 

추운 데서 오들오들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도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은 오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잠들기로 하였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20분 약간 넘게 걸리니까 알람을 20분 뒤에 울리도록 해놓고 잠들면 딱 맞아요 ㅎㅎ

 

버스에 타니 자리가 꽤 많이 있었고(오후 1시쯤에는 사람이 많이 없나봐요) 저는 그 중에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밖은 추운데 버스 안은 따뜻하니 잠이 그냥 오더군요.

 

버스를 탄 지 1분도 안되어 정신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잠깐이지만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자고 있는 제 뒤통수를 때리는겁니다.

 

저는 세상모르고 자고있다가 깜짝 놀라서 헉 하고 일어나 누구지 하고 위를 쳐다봤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매우 화난 얼굴로 저를 쳐다보시고 있으신겁니다.

 

아직 정신이 잠이 덜깨서 할아버지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제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막말을 시작하시는겁니다.

 

"어디 젊은xx가 늙은이가 서서 가는데 자리 양보하기 싫어서 자는 척 하고 있냐.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으면 요즘 애x끼들은 이렇게 싸가지가 없느냐"라는 식으로 할아버지의 막말은 시작되셨습니다. 제 부모님 성함까지 물으시더군요.

 

처음 뵙는 분이 제 머리를 때리시고 제게 욕을 하셨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잠이 깨고 화가 나더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했던 부분이 [자리 양보하기 싫어서 자는 척 하고 있느냐]라는 부분이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뭐라 길게 말하지는 못했고

 

"저 진짜로 자고있었는데요" 이거 달랑 한마디밖에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잔뜩 열받으셔서 막말하는 중에 제가 뱉은 말이라 할아버지께서 못들으신 줄 알았는데, 들으셨는지

 

"꼬박꼬박 말대답하는거봐 이 xx가"라고 또 한바탕 퍼부어주시더군요.

 

너무 황당하고 열이 받아서 "아니 저는 진짜 피곤해서 졸고 있었는데.."라고 말대답(?!)를 보기좋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버스 기사분께서

 

"할아버지 학생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십니까 저 학생 버스 탈 때부터 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맨 뒤에 자리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버스기사분의 말을 들어보니 저는 맞을 이유가 없더군요. 이유도 없이 맞았다고 생각하니 화가 더 났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결정타

 

"내리기 편하게 내리는 문에서 가깝게 앉겠다는데 뭐가 잘못됐냐"

 

......

 

와우 이건 무슨경우? 자신은 노약자니까 자리를 양보받는것은 당연한 것이며 내가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권리가 있다 이건가요?

 

버스기사분도, 버스에 탄 다른 승객분들도 한마디씩 거들어주시다가 전부 할 말을 잃으셨습니다. 물론 저도 완전히 어이를 상실했구요. 나는 잘못한 것 없는데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마침 정류장 도착직전이고 그냥 벨 누르고 나가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노약자석에 앉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자리가 없을 때 많이 힘들어보이시는 노인분들이나 임산부 등 자리가 필요한 것 같아 보이는 분들에게는 주저없이 자리를 양보해드립니다. 자리를 양보할 때 먼저 제가 나서기가 뭣 해서 부끄러워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요.

 

그리고 할아버지, 저 진짜 자리 양보하기 싫어서 자는 척 한게 아니고 진짜 졸려서 잤습니다. 밤을 새서 너무 피곤했는데 마침 버스 안이 너무 따뜻하고 안락해서 저도 모르게 정신 놨습니다. 예.

 

물론 노약자분이 탔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건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졸고 있었는데 버스에 누가 타고 누가 내리는지 제가 그걸 어떻게 아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