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는 대학원 조교 1년차의 눈칫밥으로 인해 시험기간이라야 합류한다는 조건부 합의였지만 다시 둘도 없을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아서 계속해서 꼬셨습니다. (저는 학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잠시 휴학을 한 상태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캠핑장비를 챙기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이안감독의 이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가로운 저 브로크백에서의 방목겸 캠핑을 떠올리기보다 그에 앞서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텐트안의 동침. 뜨거운 그들의 사랑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저는 그것에 관해 아주 난감했던 경험이 있는데, 군생활 하는 동안에 저는 주말마다 지휘통제실의 빔프로젝터를 저희 부대 안보교육관으로 가져다가 아이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곤 했었답니다. 그때 저는 대중성이 강한 영화를 고르기보다 실험성이 높은 영화를 주로 고르곤 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분명 군부대에서 틀어주면 안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나의 선택이 바로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습니다.
바로 몇주전에 오스카가 이안감독에게 동양인 최초의 감독상을 안겨준 이 영화를 저는 정말 무조건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다만 그 무조건적인 신뢰에 이 영화의 소재로 쓰인 남성간의 동성애코드는 무참히 묻혀져 버렸고, 또 이때 당시 영화를 고르는 것이 대단히도 귀찮아서 예고편만 보고 좋으면 바로 오케이였으므로 자세한 줄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겠거니.. 생각했었죠. 그리고 오늘은 무조건 재밌어. 예술성 가득한 영화로 너희들의 감수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겠다. 하며 자신만만하게 영화를 틀고 나서 채 30분도 되지 못해, 히스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이 위스키를 나눠 마시고 텐트안으로 들어가 동침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수십명의 군인들이 주황색 활동복을 입고 모인 그 안보통제실의 분위기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습니다.
"ㅅㅂ댜슿배ㅡ걋브4ㅑ3스ㅑㅐ4ㅡ햐븧뱌34스!!!!!"
이성의 존재에 굶주려 있는 이들에게 자칫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그때 즈음 흠칫 스쳐 지나가고..
드디어 그 경직을 이기지 못한 고참 몇명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며 안보통제실을 뛰쳐나갔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는 우리 소대 후임들 몇명만이 숨을 죽이고 스크린과 나의 눈빛을 교대로 살피고 있었죠.
얘들아 미안해. 오늘은 나의 결정적인 미스였다. 오늘은 일찍 올라가서 쉬도록 하자꾸나.
이 날의 영화 상영은 그야말로 개 실패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화장실에서라든지 샤워장에서 나의 성정체성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만 했구요. 아무리 오스카가 선택한 걸작이라도 어느 시간과 어느 공간에서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혹시 그 자리에서 그 영화를 보고 나의 이야기다 싶은 아이도 있었을까? 그런 고민을 내게 털어놓고 싶어 인사과 앞을 서성이던 아이가 혹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상황이 생겨버렸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했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그때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영화를 그 새벽에 혼자서 다 보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때 그것이 거대한 사회적 지탄을 받고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평생 마음 한켠에 묻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저에게도 있을까요?
글쎄. 당장 이번 여행 지리산에서 둘 중 한 녀석이 내게 사실은 너를 사랑했노라 고백하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그랬듯 나는 동성보다는 역시 이성에게 마음이 끌릴 것이기에 다행히 거대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거나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평생 마음 한켠을 내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찔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다만, 한 평생 가슴 한켠에 그리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묻고 살아오다 냉정한 세상사람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잭과 목놓아 울 수 없고 잭의 셔츠에 가슴을 파묻은 채 숨죽여 흐느낄 수 밖에 없는. 피묻은 그 셔츠에 대고 이제야 맹세하는 에니스. 그 감정선이 이전의 러브스토리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를 자극하더군요. 그리고 역시 이 영화는 음악까지도 너무 마음에 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번 산행, 예정대로 등산을 가게 되면 이 영화말고 다른 영화를 들고 가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틀어 주었어요
지난 가을, 저는 친구 둘과 함께 지리산을 종주키로 약속하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는 대학원 조교 1년차의 눈칫밥으로 인해 시험기간이라야 합류한다는 조건부 합의였지만 다시 둘도 없을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아서 계속해서 꼬셨습니다. (저는 학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잠시 휴학을 한 상태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캠핑장비를 챙기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이안감독의 이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가로운 저 브로크백에서의 방목겸 캠핑을 떠올리기보다 그에 앞서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텐트안의 동침. 뜨거운 그들의 사랑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저는 그것에 관해 아주 난감했던 경험이 있는데,
군생활 하는 동안에 저는 주말마다 지휘통제실의 빔프로젝터를 저희 부대 안보교육관으로 가져다가 아이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곤 했었답니다. 그때 저는 대중성이 강한 영화를 고르기보다 실험성이 높은 영화를 주로 고르곤 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분명 군부대에서 틀어주면 안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나의 선택이 바로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습니다.
바로 몇주전에 오스카가 이안감독에게 동양인 최초의 감독상을 안겨준 이 영화를 저는 정말 무조건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다만 그 무조건적인 신뢰에 이 영화의 소재로 쓰인 남성간의 동성애코드는 무참히 묻혀져 버렸고, 또 이때 당시 영화를 고르는 것이 대단히도 귀찮아서 예고편만 보고 좋으면 바로 오케이였으므로 자세한 줄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겠거니.. 생각했었죠. 그리고 오늘은 무조건 재밌어. 예술성 가득한 영화로 너희들의 감수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겠다. 하며 자신만만하게 영화를 틀고 나서 채 30분도 되지 못해, 히스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이 위스키를 나눠 마시고 텐트안으로 들어가 동침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수십명의 군인들이 주황색 활동복을 입고 모인 그 안보통제실의 분위기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습니다.
"ㅅㅂ댜슿배ㅡ걋브4ㅑ3스ㅑㅐ4ㅡ햐븧뱌34스!!!!!"
이성의 존재에 굶주려 있는 이들에게 자칫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그때 즈음 흠칫 스쳐 지나가고..
드디어 그 경직을 이기지 못한 고참 몇명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며 안보통제실을 뛰쳐나갔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는 우리 소대 후임들 몇명만이 숨을 죽이고 스크린과 나의 눈빛을 교대로 살피고 있었죠.
얘들아 미안해. 오늘은 나의 결정적인 미스였다. 오늘은 일찍 올라가서 쉬도록 하자꾸나.
이 날의 영화 상영은 그야말로 개 실패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화장실에서라든지 샤워장에서 나의 성정체성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만 했구요. 아무리 오스카가 선택한 걸작이라도 어느 시간과 어느 공간에서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혹시 그 자리에서 그 영화를 보고 나의 이야기다 싶은 아이도 있었을까? 그런 고민을 내게 털어놓고 싶어 인사과 앞을 서성이던 아이가 혹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상황이 생겨버렸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했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그때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영화를 그 새벽에 혼자서 다 보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때 그것이 거대한 사회적 지탄을 받고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평생 마음 한켠에 묻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저에게도 있을까요?
글쎄. 당장 이번 여행 지리산에서 둘 중 한 녀석이 내게 사실은 너를 사랑했노라 고백하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그랬듯 나는 동성보다는 역시 이성에게 마음이 끌릴 것이기에 다행히 거대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거나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평생 마음 한켠을 내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찔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다만, 한 평생 가슴 한켠에 그리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묻고 살아오다 냉정한 세상사람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잭과 목놓아 울 수 없고 잭의 셔츠에 가슴을 파묻은 채 숨죽여 흐느낄 수 밖에 없는. 피묻은 그 셔츠에 대고 이제야 맹세하는 에니스. 그 감정선이 이전의 러브스토리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를 자극하더군요. 그리고 역시 이 영화는 음악까지도 너무 마음에 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번 산행, 예정대로 등산을 가게 되면 이 영화말고 다른 영화를 들고 가야 겠다...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