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민학교 역사강좌 4강 후기 (안병욱 카톨릭대 교수 )번호 102111 글쓴이 해아를꿈꾸며 (cheonjeein) 조회 110 누리 68 (68-0, 1:11:0) 등록일 2009-12-14 11:35 대문추천 2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청산
강사 : 안병욱 카톨릭대학교 교수
이재정 전 장관님의 인사말 중에
- 내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이고, 또 4.19의거 50주년 인데, 카톨릭에서는 50주년을 희년(주빌리,성년)이라 하는데 성스러운 해라고 하시고, 다음주 강사이신 신영복교수님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성공회대에 석좌교수가 세분[신영복,이재정,김수영(?)] 계신데 누가 석좌교수가 뭐냐고 물어오면 한자로'석'자가 단단할 석인데 거기다 좌를 붙여 '단단한 좌파'라고 얘기한다는 말씀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또 참여정부 마지막 부대변인이고 같은 시민학교 수강생이신 김정섭님께서 사회를 보시다가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목은 < 50년 금단의 선을 걸어서 넘다 > 내용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있었던 일을 동행 취재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사화 하지 못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랍니다. 좃선 기자의 글도 실었다가 내용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어도 다시 정상회담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상황이 묘해지는 바람에 뺄 수밖에 없었다며 내용이 좋으니 일독을 권한다고 하셨습니다.
안병욱 교수님께서는 본강의에 앞서 모두 말씀으로
- 원래 전공은 한국사인데 어쩌다 한국 현대사에 관여하게 되었고, 또 임기말에 과거사위에서 일을해도 정권이 바뀌면 쫓겨나기 쉽상이고 쉽지도 않은 일에 인사검증까지... 다른 사람을 추천했었는데 잘 안되었고,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으로 선거는 지게 되어 있었고,바뀐 정권이 맨먼저 손을 볼 게 과거사위원회일 거고, 총선이 끝나고 6월까지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촛불집회가 일어났고,그러다보니 임기를 다 채우고 말았습니다. 전체적 구도상으로 과거사위가 폐지되면 사회적논란이 일어나고 그속에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촟불집회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촛불집회가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그걸 역사동력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난 촛불집회는 그런 동력이 없었습니다.
-왜 과거사를 정리해야 하는 지는 대통령의 어록을 보년 모든 내용이 다 있습니다.
[ 대통령의 어록 ]
'04년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 역사는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뿌리입니다. 우리 아이들에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는, 바른 역사를가르칠 때 그들이 바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반민족 친일 행위만이 진상규명의 대상은 아닙니다.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도 그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을 규명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만들 것을 제안드립니다.
'05년 8.15 경축사 요지
* 과거청산의 과정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과, 배상 또는 보상,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고, 국가가 앞장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확정판결에 대한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고, 민.형사상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적절하게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06년 4.3 위령제 추도사 요지
*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겁니다.
'05년 5.31 친일진상규명위 임명장 수여식시 말씀
* 역사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 공동체를 배반하지 않는 민족정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국운을 개척할 20년 내지 30년간의 시기에 역사를 진실되게 정리하여 우리 국민들이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지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긴요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진실에 근거하여 정통성 있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오마이뉴스에 추모사를 쓰고, 내가 볼 땐 아무런 내용도 없는데 그것 때문에 국회에 불려 나가 살아생전에 가장 큰 수모를 당했습니다. 추모사 내용이 문제가 있을까요?
< 추모사 중 구케의원들에게 문제가 된 밑줄 부분 참조 >
(중략)' 무엇이 촌로로 살아가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죽음으로 마감하게 했습니까. 우리나라는 한 번 표적이 되면 무엇으로도 보호받지 못해 끝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란 말입니까.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치졸함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 권력사회입니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종교적 초탈로 억울함과 분노를 삼켜야만 합니까. (중략)
그러나 당신은 시대의 요구를 앞서 들었고 국민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미리 파악했습니다. 때로는 성급한 심정에 성큼 앞서다가 뒤따르지 못한 국민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천지사방 갇혀있는 동굴 속의 우리들에게 동굴 밖의 세상을 내다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비록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걷어내고 유폐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습니다만 탈출로를 짚어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지금까지의 어떤 정치인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상황을 되돌아 본다면 어떤 지도자도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세력들의 반발은 무섭습니다. 다시 장벽을 돋우고 열린 틈을 닦달하고 칼집의 칼을 꺼내 갈고 있습니다. 광풍의 먹구름으로 짙게 내리는 어둠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미 당신은 누구보다 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투항을 강요당했습니다. 당신이 투항한다면 저들의 잃어버린 10년은 몇 곱절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얄팍한 속셈이겠지요.
이런 치졸한 상황을 돌파할 방도가 당신의 육신을 던지는 희생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당신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 이후에 한 사람의 힘이 아니 노무현의 감각적인 예지가 얼마나 위대한 가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당신의 희생으로 희망의 문이 열리고 그 틈새로 밀려오는 신선한 바람이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이끌기 위해 다시금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당신은 우리가 이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인가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짤막한 인사만 남기고, 이미 떠나 버렸군요. 떠나보낸 가슴 휑한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도록 큽니다.
이승의 짐은 벗고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모두 함께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 과거사와 관련해서 세가지 정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사를 만드는 정권이고 또 하나는 , 과거사를 은폐하기위해 애를 쓰는 정권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사를 은폐할 수 없기에 역사 앞에 밝히려는 정권( 노무현 정권)입니다.
과거 청산과 한국현대사
1. 과거사 청산
- 과거사란 무엇인가? 지난날 지배권력이 자행한 억압과 폭력으로 야기, 그 진상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에 관해 사회적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사건. 청산이란 잘못된 것들을 교정하고 정화한다는 뜻.
'과거사 청산이란 사실 조어조차 되지 않는 말을 쓰는 거죠.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합니까? 역사 바로 세우기도 마찬가지로, 역사가 무너진 집도 아닌데 어떻게 바로 세웁니까?'
- 과거사 청산 : 과거의 사실 가운데 은폐되고 왜곡된 부분의 진실을 밝히고,아무리 대중이 알고있다고 해도 아무런 힘이 안되기 때문에, 과거 잘못을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이러한 점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하는 일.
* 프리실라 헤이너는 에서 " 아는 것(knowledge)과 인정하는 것(acknowledgement)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인정은 국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이 옳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 "인정되지 않는 사실은 진실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취급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가장 깊이있는 논쟁을 하는 나라이다.
2. 사회전환기의 사회 정의
-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사회 전환기라고 하는데 과거 청산은 사회전환기의 사회 정의에 관한 문제.
'전 근대사회의 혁명은 프랑스 혁명에서 시민사회가 왕(루이16세)을 단두대에 처형하는등 물리적수단으로 응징을 하였지만, 현대사회처럼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과거 청산을 통한 사회 전환의 방식이 더욱 유용한 거죠.만델라의 남아공이 대표적 케이스인데, 수백년 차별받던 흑인들을 더이상 착취할 수 없는 세상,흑인에게 권력을 내주어야 하는 세상이 왔는데,만약 흑인이 과거의 방법대로 응징을 하려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내년 남아공은 없을 겁니다'
-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호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는 자칫 그 과정에서 파괴적 혼란과 더불어 큰 희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희생이 없는 가운데 사회 전환이 이루어져야 함. -21세기 과거사정리 과제는 세계사적인 흐름.
3. 과거사 위원회( 문명사회의 사회적 전환의 방법으로 선택 )
# 헤이너가 제시한 '과거사 위원회'의 다섯 가지 기본 목표
a.과거의 폐해를 밝히고 명백히 하며,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b. 피해자들의 특별한 요구에 응한다.
c. 정의를 세우고 책임을 묻는다.
d. 제도의 신뢰성과 개혁을 위한 윤곽을 제시한다.
e. 화해를 촉진하며 과거에 대한 갈등을 해소한다.
# 1996년 유엔 인권소위원회 '중대 인권침해범 불처벌에 관한 보고서' 제출(루이 주아네 기초)
- 보고서는 불처벌의 역사가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됨. 불처벌은 억압자와 피억압자간, 국가와 시민사회간,야만성과 양심 사이의 충돌을 야기하며 영원한 갈등과 이상한 패러독스가 되었다고 함. 사슬에서 해방된 피억압자들이 국가적 화해라는 구조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불처벌에 반대하는 초기의 투재의지를 희석시키고 마는 잘못도 지적함.
' 진실이라는 것과 증거가 있다는 것, 이 두가지가 꼭 양립하는 건 아닙니다.'
4. 한국의 과거사
1) 일제 식민 유산의 청산
- 해방 당시 일제식민지배라는 오욕의 청산은 논란의 여지없는 국가과제였슴.
*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을 제정 * 이승만 정부는 일제식민지배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재등용 * 친일파들은 역대 정권을 통해 반공독재체제의 중심축으로 기능 * 이승만 정권 하의 각료 34%, 대법원장 및 대법관 중 68% 일제관리 * 1960년 당시 총경 70%, 경감 40%, 경위 15% 일제경찰 출신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육해공 참모총장, 검찰총장, 경찰총장, 시도지사등 한국사회의 역대 최고위층 가운데 121명이 일제시대 관리출신)
* 1960년 4.19 봉기는 유보된 역사적 과제인 민주적 사회전환의 요구임 * 5.16 쿠테타는 이런 요구에 대한 재반전. 박정희 집권 - 계엄령 4회, 위수령 2회, 비상조치 1회, 긴급조치 9회 - 수많은 민주시민을 고문 투옥 학살
-이에 한국사회 파행의 근본 원인이 친일파 미청산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사회쟁점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적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임종국 선생은 " 제 2의 매국, 반민법을 폐기한 것도 친일파였다. 한말 가렴주구로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제1의 매국을 했고, 총독부에 영합하면서 친일을 했다. 해방후에도 개과천선은 커녕 반민법을 폐기하면서, 독재와 부패 끝에 5.16과 유신을 불러들였다"라고 하였다.(임종국,<실록 친일파> 돌베개,1991,6쪽 )
2)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
- 1945년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을 배후에 업은 채 한국사회 내부의 첨예한 사상투쟁 - 일반 국민들은 이념에 대해 충분히 이해도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무수히 희생 - 남북한 두 개 정부 수립 -> 한국 전쟁 = 2차 대전후 5년 만에 발생한 또 다른 세계전쟁 - 한국 전쟁중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 사망.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함.
* 예비검속 =인민군에게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 미리 잡아 죽임. * 보도연맹원( 45~48년 까지 남북이 갈라지는 과정 속에서 서로 각기 논쟁과 갈등을 하다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사람과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정부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게하자는 목적으로 설립) => 성과가 미미 => 강제 가입 => 어설픈 민간인들 가입,진짜 좌파는 거부 =>전쟁이 터지고 퇴각하면서 학살/4950명 정도 밝혀졌는데 5%로 추정,실제는 10만명 이상. * 수감자 처형 # 좌익및 인민군의 보복 학살, 후퇴기에 우익인사 처형 #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 * 수복 후 부역자 색출 처형
'이런 과정 속에서 내 이웃들을 파리잡듯이 죽였어요.아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이 뭐했는지 모르겠습니까?... 다른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신명이 난다는데, 왜 내가 보는 역사는 눈물나고 피흘리는 것을 보게 되는지. 제 팔자가 이상한 건지... 내가 만일 1950년에 20살 전후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반드시 줄을 서야 했겟죠,좌든 우든. 왜 우리집은 그때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6.25전쟁 처음 1년 여에 걸쳐서 좌,우가 번갈아가며 톱질학살이 벌어진 나라. 이게 우리의 1950년 전후의 역사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도 못하는 세상,후세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세계사의 과거사와 다른 우리 과거사의 특징입니다. 피해를 받았음에도 스스로 숨겨야 했던 세상...50년대 우리사회의 야만성이나 지금의 야만성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리 모질 수 가 있는지...'
- 그동안 학살문제를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조차 정부의 탄압으로 불가능. 4.19 봉기 이후 학살문제를 제기하였다가 5.16 군사정부에 의해 처벌( 피학살자유족회 )
- 한국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에 대한 과거청산 문제가 지금 비로소 시작. 진실을 밝힘으로써 학살자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왜곡되었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
-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
3) 반독재운동과 민주화
- 30여 년간의 혹독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매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룸
[ 과거청산에 반대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 반민특위를 반대하던 때부터 오늘날 까지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되어 국론 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
*그 어떤 명제보다도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화합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여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며*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그르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자*
'7.80년대 그 많은 간첩사건의 대부분이 엉터리였습니다. 원래 간첩(스파이)는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간첩이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못쓰고,납북되었던어부가 돌아와 10년이 지나면 고정간첩이 되고,일본에 유학, 여행을 갔다오면 또 간첩이 되고 그랬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잘못한 것들을 스스로 고백하라고 만든 위원회가 있습니다.'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서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모의하다 미수에 그친 사건들입니다. 경찰이 그걸 과대포장해서 만들어 낸 거죠. 그럼 포상받고 승진하고 그랬어요.데모든 뭐든 실행에 옮겨버리면 오히려 아무 일 없었어요.'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서
- '삼청교육대 사건은 그 옜날 보도연맹원 사건과 같은 맥락으로 이른바 예비검속을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 사회 분위기를 통제하려고 자행한 일입니다.'
<국정원진실위원회>에 대해서
- 'KAL858기 폭발사건은 국정원 스스로 다른 사건들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진짜 억울하다,국정원이 한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제가 최고의 비밀을 알려 드릴께요. 우리나라 국정원 실력으로 꾸며낼 수 없어요.사람 잡아서 때리고 허위자백 받는 건 잘하지만, 칼폭파사건처럼 정교하게,암튼 실력이 안돼요.'
시간 때문에 마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노대통령의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이제는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일들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과거사 정리가 되겠느냐?... 그건 아니다. 마치겠습니다.'
[질의 응답]- 기억나는 것만 올립니다.
ㅁ 질문 : 과거에 그런 일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ㅁ 답변 : 과거사위의 하는 일은 피해자의 피해 사실 확인하는 것이고, 누가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가해자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괄적인 국가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은 밝히기 힘들다. 우리의 가해자들은 지금도 '과거 불온세력, 좌익집단,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인데, 지금 나보고 죄인이라니 말도 안된다'라고 말하는 현실입니다. 어찌보면 그들도 피해자이고 우리 시대,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죠. 진짜 가해자는 그 시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인데 밝혀지지 않습니다.
ㅁ 질문 : 3년 후 다시 과거사위가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ㅁ 답변 : 없습니다. 비사법기구인데 사법기구처럼 일을 하고 있는 게.. 증거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결국 지금 이런 식으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국회에서 누더기 법이 되어버린 게 '진상 규명법'입니다. 제가 국정원위원회로 가겠다고 해서 갔는데, 음 참 터무니 없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국정원의 비밀 문서고를 다 볼 수 있을 거라는...근데 하나도 못봤어요. 그리고 한홍구 교수도 내가 끌고 들어 갔는데. 한홍구 교수는 모르겠고 저는 못봤어요. 껍데기 밖에 없습니다.
ㅁ 질문 : 앞으로 해야 할 일은?
ㅁ 답변 : 활동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건의안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첫번째로 전국 도처에 집단 학살된 유해들이 방치되어 있는데 이것을 발굴하고 안장하고 제사를 지내줘야 한다는 것과,
두번째로 진실 규명했으니까 피해자나 후세 역사를 위해 조치를 해야합니다. 과거사 재단을 만들어서 위령사업, 역사정리, 장학금, 생계보전, 이런 일을 해야죠.
세번째로 국가 배상의 분제인데 6.25때 부모가 다 죽은 사람들, 흔적도 없는 억울한 사람에 대한 배상을 해야죠. 국가 잘못의 시효가 얼마인지 아세요? 5년입니다. 5년 지나면 국가의 잘못이 없어지는 거죠. 올 2월 처음 국가 배상 판결이 나왔습니다. 당시는국가가 잘못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알게 된 시점으로 부터 3년이라는 시효를 판사가 적용한 겁니다. 저도 개인 배상은 힘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 판결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서대필사건은 지금도 살아있는 검찰이 자기 스스로 만든 사건인데 고등법원 판사가 재심을 수용해서 검찰이 발칵 뒤집혀 졌죠. 과거사위가 조사한 사건들 중 재심이 청구된 사건들이 모두 다 지금 100% 무죄로 판결이 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리고 피해 배상특별법을 만들도록 건의 했습니다.
ㅁ 질문 : 과거사위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으려면 ?
ㅁ 답변 : 우리 사회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ㅁ 질문 : 촛불집회가 역사적 동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나?
ㅁ 답변 : 지금 까지 조직화가 되지 않고 역사적 동력을 가졌던 일들은 없었다. 지도력이 있어야 했고, 조직화가 됐어야 합니다.
ㅁ 질문 : 김현희를 국정원이 보호하는 이유?
ㅁ 답변 : 그냥 신변보호다. 어느날 김현희가 조갑제, 이동복과 함께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자신에게 KAL기 폭파가 북한의 지시가 아니라 남한 정부의 강요라고 말하도록 했는데 자신이 거부해서 과거사위가 행패를 부렸다고 하는 소란이 있었는데, 조사기간 동안 김현희를 만나게 해주지도 않았는데 참...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백명을 죽인 테러범이 어느날 갑자기 가냘픈 여인으로 변신해서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고. 그랬는데 그 기사에 ' 야 임마, 너도 김현희처럼 반성하고 회개하면 우리사회가 보호해 준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참...
ㅁ 질문 : 아직도 빨갱이를 말하는 어르신들에 대해..?
ㅁ 답변 : 통일이 되기 전에 힘듭니다. 현재 세대가 기억을 하는 한 힘들고, 아직도 우리사회는 10만 이상을 학살할 잠재적 요소가 있는 불안한 사회 그런 정신병에 전염된 사회 입니다.
* 질의 응답 중에 우리 국민들은 과거사에 굉장히 이중적이다. 간도는 고구려 발해 시기 외에는 우리땅인 적이 없었고, 일본도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게 옳은데, 그런 문제에 대해 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가장 중요한 우리 내부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이중성을 보인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노무현 시민학교 역사강좌 4강 후기
강사 : 안병욱 카톨릭대학교 교수
이재정 전 장관님의 인사말 중에
- 내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이고, 또 4.19의거 50주년 인데, 카톨릭에서는 50주년을 희년(주빌리,성년)이라 하는데 성스러운 해라고 하시고, 다음주 강사이신 신영복교수님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성공회대에 석좌교수가 세분[신영복,이재정,김수영(?)] 계신데 누가 석좌교수가 뭐냐고 물어오면 한자로'석'자가 단단할 석인데 거기다 좌를 붙여 '단단한 좌파'라고 얘기한다는 말씀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또 참여정부 마지막 부대변인이고 같은 시민학교 수강생이신 김정섭님께서 사회를 보시다가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목은 < 50년 금단의 선을 걸어서 넘다 > 내용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있었던 일을 동행 취재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사화 하지 못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랍니다. 좃선 기자의 글도 실었다가 내용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어도 다시 정상회담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상황이 묘해지는 바람에 뺄 수밖에 없었다며 내용이 좋으니 일독을 권한다고 하셨습니다.
안병욱 교수님께서는 본강의에 앞서 모두 말씀으로
- 원래 전공은 한국사인데 어쩌다 한국 현대사에 관여하게 되었고, 또 임기말에 과거사위에서 일을해도 정권이 바뀌면 쫓겨나기 쉽상이고 쉽지도 않은 일에 인사검증까지... 다른 사람을 추천했었는데 잘 안되었고,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으로 선거는 지게 되어 있었고,바뀐 정권이 맨먼저 손을 볼 게 과거사위원회일 거고, 총선이 끝나고 6월까지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촛불집회가 일어났고,그러다보니 임기를 다 채우고 말았습니다. 전체적 구도상으로 과거사위가 폐지되면 사회적논란이 일어나고 그속에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촟불집회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촛불집회가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그걸 역사동력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난 촛불집회는 그런 동력이 없었습니다.
-왜 과거사를 정리해야 하는 지는 대통령의 어록을 보년 모든 내용이 다 있습니다.
[ 대통령의 어록 ]
'04년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 역사는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뿌리입니다. 우리 아이들에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는, 바른 역사를가르칠 때 그들이 바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반민족 친일 행위만이 진상규명의 대상은 아닙니다.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도 그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을 규명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만들 것을 제안드립니다.
'05년 8.15 경축사 요지
* 과거청산의 과정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과, 배상 또는 보상,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고, 국가가 앞장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확정판결에 대한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고, 민.형사상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적절하게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06년 4.3 위령제 추도사 요지
*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겁니다.
'05년 5.31 친일진상규명위 임명장 수여식시 말씀
* 역사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 공동체를 배반하지 않는 민족정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국운을 개척할 20년 내지 30년간의 시기에 역사를 진실되게 정리하여 우리 국민들이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지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긴요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진실에 근거하여 정통성 있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오마이뉴스에 추모사를 쓰고, 내가 볼 땐 아무런 내용도 없는데 그것 때문에 국회에 불려 나가 살아생전에 가장 큰 수모를 당했습니다. 추모사 내용이 문제가 있을까요?
< 추모사 중 구케의원들에게 문제가 된 밑줄 부분 참조 >
(중략)' 무엇이 촌로로 살아가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죽음으로 마감하게 했습니까. 우리나라는 한 번 표적이 되면 무엇으로도 보호받지 못해 끝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란 말입니까.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치졸함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 권력사회입니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종교적 초탈로 억울함과 분노를 삼켜야만 합니까. (중략)
그러나 당신은 시대의 요구를 앞서 들었고 국민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미리 파악했습니다. 때로는 성급한 심정에 성큼 앞서다가 뒤따르지 못한 국민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천지사방 갇혀있는 동굴 속의 우리들에게 동굴 밖의 세상을 내다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비록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걷어내고 유폐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습니다만 탈출로를 짚어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지금까지의 어떤 정치인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상황을 되돌아 본다면 어떤 지도자도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세력들의 반발은 무섭습니다. 다시 장벽을 돋우고 열린 틈을 닦달하고 칼집의 칼을 꺼내 갈고 있습니다. 광풍의 먹구름으로 짙게 내리는 어둠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미 당신은 누구보다 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투항을 강요당했습니다. 당신이 투항한다면 저들의 잃어버린 10년은 몇 곱절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얄팍한 속셈이겠지요.
이런 치졸한 상황을 돌파할 방도가 당신의 육신을 던지는 희생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당신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 이후에 한 사람의 힘이 아니 노무현의 감각적인 예지가 얼마나 위대한 가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당신의 희생으로 희망의 문이 열리고 그 틈새로 밀려오는 신선한 바람이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이끌기 위해 다시금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당신은 우리가 이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인가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짤막한 인사만 남기고, 이미 떠나 버렸군요. 떠나보낸 가슴 휑한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도록 큽니다.
이승의 짐은 벗고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모두 함께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 과거사와 관련해서 세가지 정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사를 만드는 정권이고
또 하나는 , 과거사를 은폐하기위해 애를 쓰는 정권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사를 은폐할 수 없기에 역사 앞에 밝히려는 정권( 노무현 정권)입니다.
과거 청산과 한국현대사
1. 과거사 청산
- 과거사란 무엇인가?
지난날 지배권력이 자행한 억압과 폭력으로 야기, 그 진상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에 관해
사회적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사건.
청산이란 잘못된 것들을 교정하고 정화한다는 뜻.
'과거사 청산이란 사실 조어조차 되지 않는 말을 쓰는 거죠.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합니까?
역사 바로 세우기도 마찬가지로, 역사가 무너진 집도 아닌데 어떻게 바로 세웁니까?'
- 과거사 청산 : 과거의 사실 가운데 은폐되고 왜곡된 부분의 진실을 밝히고,아무리 대중이 알고있다고 해도 아무런 힘이 안되기 때문에, 과거 잘못을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이러한 점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하는 일.
* 프리실라 헤이너는 에서 " 아는 것(knowledge)과 인정하는 것(acknowledgement)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인정은 국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이 옳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
"인정되지 않는 사실은 진실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취급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가장 깊이있는 논쟁을 하는 나라이다.
2. 사회전환기의 사회 정의
-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사회 전환기라고 하는데 과거 청산은 사회전환기의 사회 정의에 관한 문제.
'전 근대사회의 혁명은 프랑스 혁명에서 시민사회가 왕(루이16세)을 단두대에 처형하는등 물리적수단으로 응징을 하였지만, 현대사회처럼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과거 청산을 통한 사회 전환의 방식이 더욱 유용한 거죠.만델라의 남아공이 대표적 케이스인데, 수백년 차별받던 흑인들을 더이상 착취할 수 없는 세상,흑인에게 권력을 내주어야 하는 세상이 왔는데,만약 흑인이 과거의 방법대로 응징을 하려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내년 남아공은 없을 겁니다'
-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호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는 자칫 그 과정에서 파괴적 혼란과 더불어 큰 희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희생이 없는 가운데 사회 전환이 이루어져야 함.
-21세기 과거사정리 과제는 세계사적인 흐름.
3. 과거사 위원회( 문명사회의 사회적 전환의 방법으로 선택 )
# 헤이너가 제시한 '과거사 위원회'의 다섯 가지 기본 목표
a.과거의 폐해를 밝히고 명백히 하며,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b. 피해자들의 특별한 요구에 응한다.
c. 정의를 세우고 책임을 묻는다.
d. 제도의 신뢰성과 개혁을 위한 윤곽을 제시한다.
e. 화해를 촉진하며 과거에 대한 갈등을 해소한다.
# 1996년 유엔 인권소위원회 '중대 인권침해범 불처벌에 관한 보고서' 제출(루이 주아네 기초)
- 보고서는 불처벌의 역사가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됨.
불처벌은 억압자와 피억압자간, 국가와 시민사회간,야만성과 양심 사이의 충돌을 야기하며
영원한 갈등과 이상한 패러독스가 되었다고 함.
사슬에서 해방된 피억압자들이 국가적 화해라는 구조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불처벌에 반대하는 초기의 투재의지를 희석시키고 마는 잘못도 지적함.
' 진실이라는 것과 증거가 있다는 것, 이 두가지가 꼭 양립하는 건 아닙니다.'
4. 한국의 과거사
1) 일제 식민 유산의 청산
- 해방 당시 일제식민지배라는 오욕의 청산은 논란의 여지없는 국가과제였슴.
*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을 제정
* 이승만 정부는 일제식민지배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재등용
* 친일파들은 역대 정권을 통해 반공독재체제의 중심축으로 기능
* 이승만 정권 하의 각료 34%, 대법원장 및 대법관 중 68% 일제관리
* 1960년 당시 총경 70%, 경감 40%, 경위 15% 일제경찰 출신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육해공 참모총장, 검찰총장, 경찰총장, 시도지사등
한국사회의 역대 최고위층 가운데 121명이 일제시대 관리출신)
* 1960년 4.19 봉기는 유보된 역사적 과제인 민주적 사회전환의 요구임
* 5.16 쿠테타는 이런 요구에 대한 재반전.
박정희 집권 - 계엄령 4회, 위수령 2회, 비상조치 1회, 긴급조치 9회
- 수많은 민주시민을 고문 투옥 학살
-이에 한국사회 파행의 근본 원인이 친일파 미청산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사회쟁점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적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임종국 선생은 " 제 2의 매국, 반민법을 폐기한 것도 친일파였다. 한말 가렴주구로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제1의 매국을 했고, 총독부에 영합하면서 친일을 했다. 해방후에도 개과천선은 커녕 반민법을 폐기하면서, 독재와 부패 끝에 5.16과 유신을 불러들였다"라고 하였다.(임종국,<실록 친일파> 돌베개,1991,6쪽 )
2)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
- 1945년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을 배후에 업은 채 한국사회 내부의 첨예한 사상투쟁
- 일반 국민들은 이념에 대해 충분히 이해도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무수히 희생
- 남북한 두 개 정부 수립 -> 한국 전쟁 = 2차 대전후 5년 만에 발생한 또 다른 세계전쟁
- 한국 전쟁중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 사망.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함.
* 예비검속 =인민군에게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 미리 잡아 죽임.
* 보도연맹원( 45~48년 까지 남북이 갈라지는 과정 속에서 서로 각기 논쟁과 갈등을 하다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사람과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정부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게하자는
목적으로 설립) => 성과가 미미 => 강제 가입 => 어설픈 민간인들 가입,진짜 좌파는 거부
=>전쟁이 터지고 퇴각하면서 학살/4950명 정도 밝혀졌는데 5%로 추정,실제는 10만명 이상.
* 수감자 처형
# 좌익및 인민군의 보복 학살, 후퇴기에 우익인사 처형
#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
* 수복 후 부역자 색출 처형
'이런 과정 속에서 내 이웃들을 파리잡듯이 죽였어요.아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이 뭐했는지 모르겠습니까?... 다른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신명이 난다는데, 왜 내가 보는 역사는 눈물나고 피흘리는 것을 보게 되는지. 제 팔자가 이상한 건지... 내가 만일 1950년에 20살 전후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반드시 줄을 서야 했겟죠,좌든 우든. 왜 우리집은 그때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6.25전쟁 처음 1년 여에 걸쳐서 좌,우가 번갈아가며 톱질학살이 벌어진 나라. 이게 우리의 1950년 전후의 역사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도 못하는 세상,후세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세계사의 과거사와 다른 우리 과거사의 특징입니다. 피해를 받았음에도 스스로 숨겨야 했던 세상...50년대 우리사회의 야만성이나 지금의 야만성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리 모질 수 가 있는지...'
- 그동안 학살문제를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조차 정부의 탄압으로 불가능. 4.19 봉기 이후 학살문제를 제기하였다가 5.16 군사정부에 의해 처벌( 피학살자유족회 )
- 한국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에 대한 과거청산 문제가 지금 비로소 시작. 진실을 밝힘으로써 학살자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왜곡되었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
-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
3) 반독재운동과 민주화
- 30여 년간의 혹독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매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룸
[ 과거청산에 반대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 반민특위를 반대하던 때부터 오늘날 까지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되어 국론 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
*그 어떤 명제보다도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화합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여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며*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그르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자*
'7.80년대 그 많은 간첩사건의 대부분이 엉터리였습니다. 원래 간첩(스파이)는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간첩이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못쓰고,납북되었던어부가 돌아와 10년이 지나면 고정간첩이 되고,일본에 유학, 여행을 갔다오면 또 간첩이 되고 그랬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잘못한 것들을 스스로 고백하라고 만든 위원회가 있습니다.'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서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모의하다 미수에 그친 사건들입니다. 경찰이 그걸 과대포장해서 만들어 낸 거죠. 그럼 포상받고 승진하고 그랬어요.데모든 뭐든 실행에 옮겨버리면 오히려 아무 일 없었어요.'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서
- '삼청교육대 사건은 그 옜날 보도연맹원 사건과 같은 맥락으로 이른바 예비검속을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 사회 분위기를 통제하려고 자행한 일입니다.'
<국정원진실위원회>에 대해서
- 'KAL858기 폭발사건은 국정원 스스로 다른 사건들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진짜 억울하다,국정원이 한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제가 최고의 비밀을 알려 드릴께요. 우리나라 국정원 실력으로 꾸며낼 수 없어요.사람 잡아서 때리고 허위자백 받는 건 잘하지만, 칼폭파사건처럼 정교하게,암튼 실력이 안돼요.'
시간 때문에 마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노대통령의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이제는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일들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과거사 정리가 되겠느냐?... 그건 아니다. 마치겠습니다.'
[질의 응답]- 기억나는 것만 올립니다.
ㅁ 질문 : 과거에 그런 일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ㅁ 답변 : 과거사위의 하는 일은 피해자의 피해 사실 확인하는 것이고, 누가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가해자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괄적인 국가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은 밝히기 힘들다. 우리의 가해자들은 지금도 '과거 불온세력, 좌익집단,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인데, 지금 나보고 죄인이라니 말도 안된다'라고 말하는 현실입니다. 어찌보면 그들도 피해자이고 우리 시대,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죠. 진짜 가해자는 그 시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인데 밝혀지지 않습니다.
ㅁ 질문 : 3년 후 다시 과거사위가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ㅁ 답변 : 없습니다. 비사법기구인데 사법기구처럼 일을 하고 있는 게.. 증거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결국 지금 이런 식으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국회에서 누더기 법이 되어버린 게 '진상 규명법'입니다. 제가 국정원위원회로 가겠다고 해서 갔는데, 음 참 터무니 없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국정원의 비밀 문서고를 다 볼 수 있을 거라는...근데 하나도 못봤어요. 그리고 한홍구 교수도 내가 끌고 들어 갔는데. 한홍구 교수는 모르겠고 저는 못봤어요. 껍데기 밖에 없습니다.
ㅁ 질문 : 앞으로 해야 할 일은?
ㅁ 답변 : 활동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건의안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첫번째로 전국 도처에 집단 학살된 유해들이 방치되어 있는데 이것을 발굴하고 안장하고 제사를 지내줘야 한다는 것과,
두번째로 진실 규명했으니까 피해자나 후세 역사를 위해 조치를 해야합니다. 과거사 재단을 만들어서 위령사업, 역사정리, 장학금, 생계보전, 이런 일을 해야죠.
세번째로 국가 배상의 분제인데 6.25때 부모가 다 죽은 사람들, 흔적도 없는 억울한 사람에 대한 배상을 해야죠. 국가 잘못의 시효가 얼마인지 아세요? 5년입니다. 5년 지나면 국가의 잘못이 없어지는 거죠. 올 2월 처음 국가 배상 판결이 나왔습니다. 당시는국가가 잘못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알게 된 시점으로 부터 3년이라는 시효를 판사가 적용한 겁니다. 저도 개인 배상은 힘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 판결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서대필사건은 지금도 살아있는 검찰이 자기 스스로 만든 사건인데 고등법원 판사가 재심을 수용해서 검찰이 발칵 뒤집혀 졌죠. 과거사위가 조사한 사건들 중 재심이 청구된 사건들이 모두 다 지금 100% 무죄로 판결이 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리고 피해 배상특별법을 만들도록 건의 했습니다.
ㅁ 질문 : 과거사위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으려면 ?
ㅁ 답변 : 우리 사회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ㅁ 질문 : 촛불집회가 역사적 동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나?
ㅁ 답변 : 지금 까지 조직화가 되지 않고 역사적 동력을 가졌던 일들은 없었다. 지도력이 있어야 했고, 조직화가 됐어야 합니다.
ㅁ 질문 : 김현희를 국정원이 보호하는 이유?
ㅁ 답변 : 그냥 신변보호다. 어느날 김현희가 조갑제, 이동복과 함께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자신에게 KAL기 폭파가 북한의 지시가 아니라 남한 정부의 강요라고 말하도록 했는데 자신이 거부해서 과거사위가 행패를 부렸다고 하는 소란이 있었는데, 조사기간 동안 김현희를 만나게 해주지도 않았는데 참...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백명을 죽인 테러범이 어느날 갑자기 가냘픈 여인으로 변신해서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고. 그랬는데 그 기사에 ' 야 임마, 너도 김현희처럼 반성하고 회개하면 우리사회가 보호해 준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참...
ㅁ 질문 : 아직도 빨갱이를 말하는 어르신들에 대해..?
ㅁ 답변 : 통일이 되기 전에 힘듭니다. 현재 세대가 기억을 하는 한 힘들고, 아직도 우리사회는 10만 이상을 학살할 잠재적 요소가 있는 불안한 사회 그런 정신병에 전염된 사회 입니다.
* 질의 응답 중에 우리 국민들은 과거사에 굉장히 이중적이다. 간도는 고구려 발해 시기 외에는 우리땅인 적이 없었고, 일본도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게 옳은데, 그런 문제에 대해 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가장 중요한 우리 내부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이중성을 보인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_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