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4일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하는 섬 독도(獨島)를 다케시마[竹島]로 개명하고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명기를 중학교 학습지도 해설서에 명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전 일본 문부과학상 “일본의 국토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의 여부는 기본적인 지식이다. 이런 점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지난 7월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는 점을 결정하면서 최근의 독도 영유권 문제는 시작됐다.
무라미 다카오 마쓰에 시립 코후쿠 중학교 교사 “해설서에 그렇게 가르치라고 쓰여 있는 건 일본 일부 학교에만 가르치라고 씌여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수업으로 다루라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즉각적인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항의 표시로 권철현 일본 주재 대사를 귀국시킨다.
권철현 일본 주재 한국 대사 “그동안 양국 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어처구니 없는 그런 심정이다.”
충격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소식은 연이어 터져 나왔다. 7월 28일 미국의 국립지리지명위원회에서 갑자기 독도를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당황한 정부는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해 원상회복에 나섰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다행히 이틀만에 독도는 한국령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 각국의 포털사이트들은 독도를 한국의 섬이 아닌 ‘분쟁지역’으로 설명하고 있고, 독도라는 이름 대신 ‘다케시마’나 ‘리앙쿠르 암(巖)’으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돌려놓기 위해 미국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집요하고도 치밀한 일본의 독도를 향한 도발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UCC 광고 “다케시마, 시네마현 오키군 오시노마초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시마네현 시민사회단체 “일본의 섬인 다케시마는 반드시 일본에 반환돼야 한다.”
1984년 2월 아베 신타로 외무상 “한국이 일본의 섬인 다케시마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
2000년 9월 모리 요시로 내각총리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
2001년 2월 스미타 노부노치 시마네현 지사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 사회 지도자들의 ‘독도 망언’. 독도의 이름을 위협하는 파도가 독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일본의 야욕과 도전 앞에서 지금 독도의 운명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독도’와 ‘다케시마’, 과연 우리는 우리의 섬인 독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의 신라 군대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한 서기 512년, 동해에 떠 있는 작은 섬 독도는 이렇게 우리 민족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옛 문헌과 지도 속에 우리의 영토로 자리매김하며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그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내릴까? 과연 한국 측이 승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법 전문가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송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부소장 “지금 당장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에 간다면 우리가 불리할 수도 있다. 똑같은 저울에 놓고 볼 때 일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갑용 영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국제사법재판에 가더라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김우준 연세대학교 동서문화연구원 원장 “나는 이 국제사법재판소를 못 믿겠다. 강대국 논리의 파워 게임이기 때문에 공정한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15명의 재판관들이 국제법에 따라 국가간의 분쟁들을 해결하는 곳이다. 최근 독도 문제가 불거지고 일본 측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주장함에 따라 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교수 “A라는 나라가 B라는 나라에 대해서 국제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제소한다고 해서 무조건 재판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피소당한 나라가 서면으로 재판에 응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그 재판이 성립된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원칙대로라면 우리 나라의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예외는 늘 있기 마련이다.
배진수 동북아역사연구재단 연구실장 “터키나 그리스 같은 경우에는 에게 도서에서 우발 위기상황이 조성되었을때 이 문제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회부되면서 유엔안보리에서 양 당사국이 합의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는 그런 결의안이 나온 적은 있다.”
지난달 한국해양영토연구원 독도연구센터에서 43년전 작성된 일본 외무성의 자료를 입수했다. 1965년 한·일회담을 기록한 이 문서에는 무려 255쪽에 달하는 분량이 독도 문제로 채워져 있었다.
독도연구센터 유미림 박사 “이미 1953년에 독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54년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또 그 중간에도 계속 한·일 양국 당국자들이 만날 때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구두로 계속 말을 꺼낸 것이다. 그래서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의 방침은,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고 했던 일본은 지금도 독도 문제에 관한 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담판짓기를 주장하고 있다.
스즈키 쓰네오 일본 자민당 중의원 “역사적인 경위를 그대로 읽어보면 한국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에 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가 회부될 경우 한국의 승소는 가능한 것일까? 국제법 전문가들은 우리의 승리를 낙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김찬규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에 의해서 판결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법정기술에 따라서 실체적 진실과는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김우준 원장 “일본이 그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만 국제관계라는 것은 아주 냉혹하다. 앞에 좌우지간 사법이든 뭐든 ‘국제’라든가 ‘세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일본이 유리하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에 일본인이 포함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일본 황태자비 마사코의 아버지 오히다 마사시). 하지만 정말 우려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국제적인 대응 방식이다.
김영구 여해연구소 소장 “‘조용한 외교’를 하면 괜찮을 줄 알고... 그런데 10년 동안 괜찮았는가? 조용히 해서? ‘조용한 외교’를 해서 독도 문제가 사그라들었는가? 오히려 지금은 더 심각해지지 않았는가? 지금은 더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된다.”
호사카 유우지 세종대학교 일본어문학과 교수 “‘조용한 외교’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조용한 외교’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한다. 일본은 ‘조용한 외교’라고 하면 닌자의 조용한 움직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물밑에서 굉장한 활동을 한다. 일본이야말로 ‘조용한 외교’를 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조용한 외교’에 대해 ‘무대응·무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일일이 대응하다가는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최악의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장희 교수 “독도가 설사 우리 주머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독도에 대해서 계속 그 침탈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에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그대로 묵인을 해버리면 나중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국제 재판의 판례들이다.”
지난 5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에 발생한 ‘페드라 브랑카’ 섬 분쟁 사건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렸다. ‘동남아권 독도 분쟁’으로 불리는 이 국제 재판의 결과는 싱가포르의 승소였다.
배진수 실장 “싱가포르에서 이 페드라 브랑카 섬의 등대 관리를 실질적으로 해오고 있고, 또 실효적인 관리를 수십년동안 쭉 해왔는데, 말레이시아가 근 130년 동안 항의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싱가포르의 실효적 지배와 또 말레이시아의 항의 부재 그걸 근거로 싱가포르가 승소를 한 그런 사례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페드라 브랑카가 말레이시아의 고유 영토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싱가포르의 실효지배를 오랫동안 묵인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입장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장희 교수 “묵인, 방치! 이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지키는데 굉장히 큰 교훈을 준다.”
이러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한일어업협정’이다.
독도 주변은 1998년 신(新)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관리하는 중간수역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일본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언급하면서 이 중간수역이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IMF외환위기로 경제환란을 겪고 있던 지난 98년,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유엔해양법에 따라 두번째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것이 뜨거운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상연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 “동해에 있어서는 역시 아무런 권리도 없는 나라가 독도의 주변수역을 한국과 같이 향유하는... 즉, 1대0의 관계가 1대1의 관계가 된... 당시 우리 나라가 IMF관리체제하에 있을 때 협상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을 때 섣불리 협상에 임해가지고 아주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일종의 불평등조약이라고 생각한다.”
1952년 1월 당시 이승만 한국 대통령은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해 평화선을 선포했다.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에 이르는 이 평화선 안에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완전히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으면서 한국 정부는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김영구 소장 “독도를 일본과 공동관리하는 중간수역에 포함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주장해야 할 35해리 전관수역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장희 교수 “영유권의 특성은 배타성인데 이 협정에서 독도를 그 중간수역에 넣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독도의 주변 수역을 우리가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 그만큼 독도는 공동관리가 되면서 영유권의 고유성이 훼손되는 거 아니냐?”
협정체결이 크게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은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 훼손에 치명적인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영구 소장 “국제법적으로 어업문제와 영토문제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어업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토권에서 발양된 하나의 해양에 관한 권리이다. 그러니까 어업권을 합의하면서 영토권 문제와 원초적으로 분리된다고 하는 것은 국제법의 원리를 왜곡되게 얘기하는 것이다.”
김찬규 교수 “어업협정 15조에는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걸 배제조항이라고 그러는데... 독도 문제를 염두에 두고 들어간 조문이다. 그래서 어업협정의 어떠한 조문도 독도 문제에 대한 피차 지금까지 주장해온 그 문제에 대해서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업협정이라고 하는 것은 독도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는 상관이 없이 어업 문제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한 협정문 제15조. 그러나 오히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됐다는 것이다.
김우준 교수 “일본인들은 돌아서서 웃었다는 얘기가 있지 않던가? 그걸 일본은 중간수역이 아니고 ‘공동관리수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독도에 이미 한발은 디뎠다, 이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연 교수 “일본 최고의 국제법 전문가가 우리 나라에 와서 대한국제법학회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 분에게 누가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가 어떤 관계냐고... 그 분 말씀이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이전에는 사실 일본은 독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할 입장은 못됐었는데 그 어업협정을 체결함으로 인해서 비로소 일본은 할 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덧 10년, 하지만 아직도 폐기냐 존속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한일어업협정을 개정해서 중간수역에 들어가 있는 독도를 구출해야한다는 주장과 어업협정은 어업권만 다루었지 영토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존속시켜도 된다는 주장!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긋고 있는 사이 일본의 독도 도발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독도를 차지하지 못해 이토록 안달하는 일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최근에 제기된 한가지 의혹에 주목하게 됐다. 1998년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할때 일본이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넣게 한 데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100여년전 울릉도와 독도에 설치됐던 일본의 망루터. 이를 활용해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을 승리로 종결지었던 일본은 그 때 이미 독도의 중요한 군사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김성만 전 한국 해군 작전사령관 “독도는 동해안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동해 전체를 바다와 공중을 다 통제할 수 있는 이런 아주 군사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최근 일본의 독도 도발로 인해 긴장감이 감도는 독도, 이를 지키기 위해 독도 주변에는 해양경찰 소속의 5천여톤급의 해양경비정 등이 스물네시간 동안 경비근무를 하고 있다. 덕분에 독도를 둘러싼 동해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작은 바위섬으로 보여지는 독도, 하지만 그 가치를 살펴보면 독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군사적인 요충지로도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독도를 차지할 경우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영해와 영공은 한반도 남쪽만큼이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바다속에 있다.
독도 주변의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 놀랄만큼 풍부한 황금어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가장 탐을 내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한다. 바로 이 해저에 묻혀 있는 지하 자원 ‘가스 하이드레이트’라는 것이다.
박찬홍 한국해양영토연구원 원장 “지금까지 탐사활동을 통해서 추정되고 있는 양은 한 6억톤 정도고, 우리 나라가 한 30년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30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양, 그 가치는 무려 150조원으로 웃돈다고 한다. 가스 하이드레이트 시험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연구실에서 우리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손꼽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깊은 바다속 해저 퇴적층에서 만들어진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퇴적층이 쌓이면 그 안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게 되는데 가스가 위로 올라오는 도중 물을 만나 얼어붙으면서 메탄이 얼음 안에 갇혀 생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이 미래의 에너지원은 연소할때 다른 화석연로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적어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장준 박사 “재래식 석유가스 형태로 있는 유기탄소보다 메탄 하이드레이트 형태로 있는... 물론 지금 그게 개발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지하고 지금 추정하고 있는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하이드레이트를 정말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만 확립된다면 굉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독도 주변에 가득 매장돼 있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독도의 가장 확실한 지하자원이다. 바로 그 지하자원에 대해 일본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우현 경상대학교 화학과 교수 “일본 사람들이 집요하고 아주 전략적으로 독도에 접근해오는 이유는 해저에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층, 이 문제가 가장 자기네로서는 관심거리가 아니겠느냐.....”
2년전 일본이 해양조사를 한다며 측량선을 출발시켜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다.
박장준 박사 “동해탐사를 오래전부터 나갔는데.....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 경계수역까지 가거나 경계수역에서 약간 넘어가더라도 일본 쪽에서 그렇게 항의가 없었는데 요즘 와서는 그쪽 근처에 오면 일본 순시선이 와서 경고한다거나 그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적인 하이드레이트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일본, 그들은 러시아의 시추현장에서 80%의 부담금을 지원해가며 시추기술을 터득했고 이걸 통해서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세계 최대의 하이드레이트를 발굴, 그들이 사용하는 가스의 백년분의 양이 일본 주변에 매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마츠모토 료 도쿄대학교 교수 “일본의 장기 프로젝트로 통산성, 현재는 경제산업성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일본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가스 하이드레이트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일본, 그들은 이미 전세계 탐사자료를 손에 넣고 시추작업에까지 뛰어들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백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보유한 일본이 굳이 독도 주변에 묻힌 하이드레이트에까지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장준 박사 “하이드레이트를 대량 생산할때 하이드레이트가 결국 연약지반 안에 석유가스처럼 아주 단단한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지반 안에 있기 때문에 하이드레이트를 해리시켜서 가스를 빼낼 때에 하이드레이트가 물로 해리가 되면서 지반이 약화되면서 지반 붕괴나 침하 이런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큰 선결과제이고...”
백우현 교수 “가장 일본이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실 일본 열도는 완전한 지진대에 있다. 그걸 건져낼 만큼 바다속이 바다 속이 공동화된다. 그러면 그걸 다시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하이드레이트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반 붕괴의 위험이다. 실제로 하이드레이트 발굴지에서 지반 침하로 시추공이 무너지는 사고도 일어났다고 한다. 지진이 많은 일본이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할 당시 독도 주변의 가스 하이드레이트 개발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백우현 교수 “최근의 어업협정은 어업만 이야기 해. 그러면 요즘 밑에 해저자원 문제 논의하자 하고 새로운 이슈가 지금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거기에서 자기네들이 유리한 고지로 가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 그런 수단 아니겠느냐 그렇게 본다.”
독도 주변에 묻혀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의 가치가 무려 150조원. 여기에 풍부한 수산자원과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까지 고려하면 독도의 가치는 거의 무한대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독도가 소중한 까닭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영혼과도 같은 섬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섬 독도를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있다. 역사적인 근거들까지 제시하며 국제사회에 홍보도 하고 있다. 그들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독도를 알고 있었고 독도를 지배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과 사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올해 2월 홍보용 책자를 만들었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와 영어로도 제작된 이 책자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근거들이 나열돼 있었다.
시모조 마사오 타쿠쇼쿠대학교 교수 “다케시마 문제는 역사적인 문제이니까 역사적인 근거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측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은 역사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⑴ 한국인들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독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고구려·백제·신라가 존재하던 삼국시대. 그 흥망과 변천을 기록한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조(智證麻立干條)「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쳤다.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가 되었을 때.....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그 신라에 편입됐다는 우산국의 영토와 관련해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우산국은 독도와 울릉도라고 기록돼 있다.
시모조 교수 “우산도(于山島)가 울릉도의 속도(屬島)라고 기록돼 있는데 그것은 후세에 고쳐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512년에 신라가 다케시마를 편입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케시마 문제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시모조 교수는 우산국의 영토에 관한 기록이 후대에 편찬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우산도와 울릉도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섬이라고 주장한다.
시모조 교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같은 섬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1600년대 조선의 한백겸(韓百謙)이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를 썼는데 우산도를 울릉도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는 분명 두 섬이 존재하고 있다.
고려사「울릉도는 현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때 우산국(于山國)이라 칭하고 우릉(芋陵) 또는 무릉(武陵)이라 하였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陵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조선국도(朝鮮國圖) 등 지도에서도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도렷이 표시돼 있다. 그러나 날씨가 맑으면 두 섬이 보인다는 기록들을 일본 측에선 부인하고 있다. 한국 측의 한문 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모조 교수 “그 ‘보인다’는 것을 읽을 때에는 조선반도에서 울릉도를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런 기본적인 지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문헌을 해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이 문제를 점점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유미림 박사 “일본에서 한문을 해석하는 방식이 우리 나라 하고는 다르다. 우리는 이걸 한문으로 보면 이렇게 이런 맥락으로 본다 생각을 하는데 일본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필요한 부분만 다르게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갖고 한국에서 오역을 했다, 오류를 범했다 이런 식으로 억지 주장을 하니까 그게 서로 계속 공방이 되는 것이다.”
⑵ 일본은 17세기 중엽부터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했다?
일본 돗토리현에 자리하고 있는 한 박물관에는 일본이 독도를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도해(渡海) 면허’가 있다.
박물관 학예사 “다케시마 도해, 여기서 말하는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말하는데 그곳에 막부의 허가를 얻어 요나고의 상인이 조업을 하러 갔다.”
1618년 에도 막부가 돗토리현의 어민들에게 발급한 이 도해 면허는 지금의 울릉도 바다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아도 좋다고 허락하는 문서이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17세기 중엽까지 독도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사카 교수 “일본 사람들이 17세기에 70년 정도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했고, 그러니까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편입시켰다고 말하지만 그때 일본내에서 오간 공문서를 보면 독도는 우리 것이 아니다고 적힌 공문서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 것을 그대로 숨기고 표면적인 부분만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깊이 들어가면 모든 거짓말이 드러난다.”
1877년 태정관 지령문「죽도(竹島)와 다른 한 섬은 일본과 관계가 없는 것임을 명심할 것...」
일본 메이지시대 최고의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의 명령서였다.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현립대학교 명예교수 “시마네현이 오키국 서쪽에 죽도(竹島)와 송도(松島)가 있다... 이것을 시마네현에 포함시켜도 좋을지 어떨지 정부 내무성에 문의한 것이다. 정부는 이것에 대해서 과거의 여러가지 기록을 조사한 후에 본국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냈다.”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인식은 1667년에 작성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에서도 나타난다.
은주시청합기「(오키 섬에서) 서북쪽으로 1박 2일 동안 가면 송도(독도)가 있고, 또 1일을 가면 죽도(울릉도)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쪽 땅은 오키 섬을 한계로 삼는다.」
일본의 옛 지도에서도 독도가 우리의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785년에 제작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는 독도를 조선과 같이 황색으로 칠하고 아예 ‘조선의 것’이라는 기록까지 적혀 있다. 일본 해군성이 1857년에 공식적으로 편찬한 조선동해안도(朝鮮東海岸圖) 역시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양보경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일본이) 측량지도를 러시아판, 또는 영국판으로 번역해서 출간하는데, 그 지도들에 독도가 들어가 있다. 조선동해안도에 독도 섬 모양도 그려 넣었다.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을 일본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⑶ 안용복의 진술 내용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독도와 함께 동해에 솟아있는 울릉도, 그 도립공원 안에는 충혼비(忠魂碑)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숙종(肅宗) 때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다짐받고 돌아온 안용복(安龍福)을 기리는 비석이다.
권오석 충남대학교 일본어문학과 교수 “독도 문제에는 안용복이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용복이 한번은 일본에 납치당해서 갔고 한번은 일본에 가서 납치당한 상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을 해서 일본의 에도에 있는 막부에서 그걸 인정하는 증서를 써줬다고 안용복이 얘기했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땅을 밟는다. 울릉도에서 조업을 하다 물개잡이를 하던 일본 어민들에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안용복은 3년후 또 다시 일본행을 감행한다.
숙종실록(肅宗實錄)「도주(島主)가 묻기를 “어찌 또 왔는가?” 하므로 답하기를 “전일 두 섬의 일로 서계(書啓)를 받아낸 것이 명백한데 대마도주가 서계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두세번 법을 어겨 사신을 보내 침범하였으니 내가 관백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두루 밝히고자 한다”」
두번째 일본행에서 안용복은 일본 막부의 최고 책임자인 관백을 만나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각서를 받았다고 진술한다.
숙종실록「(호키 주의 태수가 말하기를) 두 섬이 이미 당신네 나라에 속한 이상 만일 다시 국경을 넘는 자가 있거나 도주가 혹시 침범하는 일이 있으면 국서를 작성하고 역관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무겁게 처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안용복에 관한 기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찾아볼 수 있다. 안용복의 신상명세를 비롯하여 배에 꽂은 깃발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일본의 문서에는 안용복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다.
박물관 학예사 “왜 일본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측 기록에서는 자세히 남아있지 않다. 돗토리번의 기록에는 (안용복이) 무엇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의 문헌에는 안용복이 왜 일본에 왔는지, 일본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세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박병섭 재일한국인문화연구원 원장 “안용복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평가가 정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평가의 차이가 크다. 한국에서는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애국자라고 보지만, 일본에서는 안용복을 모든 악의 근원이며 사기꾼으로 보는 것이다.”
시모조 교수 “한국에서는 숙종실록의 기사만 가지고 안용복의 증언을 역사적인 사실인 것처럼 거론하고 있는데, 안용복이 하는 말은 결국 죄인이 하는 말이고 그래서 그는 조선에서도 신뢰받지 못했다.”
안용복의 증언과 그 기록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일본, 그런데 2005년 5월 시마네현의 오키 섬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문서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것은 1696년 일본 해안에 도착한 조선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무라카미 스케쿠로 “배의 구조와 크기... 어떤 목적으로 돗토리에 가는지, 오나고에 가는 것인지도 적혀 있다.”
일본의 지방 관리가 안용복과 그 수행원들을 취조하여 상부에 보고한 이 문서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온 목적이 나타나 있다.
1696년에 조선 배가 일본 해안에 도착한 일에 대한 한 권의 각서「안용복이 말하기를 자신의 배에 타고 온 11인은 호키를 거쳐 돗토리번의 태수에게 담판을 지으려고 순풍을 타고 이곳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호키로 항해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권오석 교수 “앞으로 어떻게 가겠다는 거, 왜 돗토리현에 가는가, 그 이유에 대해 다 얘기하고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받아 적은 것이다. 그러니까 안용복의 진실을 일본 사람들이 기록한 문서니까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안용복의 진실과 그에 관한 기록을 모두 위증으로 몰아붙였던 일본의 주장은 이 문서를 통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조선국의 강원도 동래부 안에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것을 ‘대나무 섬’이라고 한다 합니다. 송도는 같은 강원도 안에 자산(독도)이라는 섬이 있는데 이것을 송도라고 한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는 죽도·송도라고 부르던 섬,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섬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질 수 있었다.
「5월 15일 죽도(울릉도)를 출항, 같은 날 송도(독도)에 도착했고 죽도와 조선 사이는 30리이며, 죽도와 송도 사이는 50리이다.」
권오석 교수 “안용복을 기록해 놓은 조선왕조실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일본 사람들이 안용복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독도에 대한 인식, 조선 사람들의 인식을 부정했던 일본 사람들의 주장이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 학계에서 한동안 사기꾼, 범법자로 취급받았던 안용복. 그러나 오키 섬에서 발견된 이 문서를 통해 안용복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일본 측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이미 안용복이 살았던 17세기에 독도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관리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년후 우리의 땅 독도는 또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대한제국이 혼란을 겪고 있던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은 갑자기 고시를 발표한다.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니 이를 편입한다는 것이다.
⑸ 일본 정부는 1905년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여 다케시마 영유 의사를 재확인했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북위 37도 동경 31도 오키섬과의 거리가 서북 81도에 달하는 섬을 죽도라 칭하고 지금부터 본현 소속 오키 섬의 부속 섬으로 전향한다」
독도를 시마네현의 관할에 둔다는 이 고시는 그로부터 1백년 동안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시모조 교수 “일본 측은 일단 1905년에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했고 그 이후에 실효지배를 했기 때문에 다케시마를 한국 영토라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그러나 시마네현 고시가 발표되기 5년전, 대한제국은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공표한 상태였다. 일본 측은 또 다시 독도의 명칭을 문제삼아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모조 교수 “여기에 나오는 석도(石島)를 독도라고 말하고 있는데 독도의 명칭이 나오는 것은 1903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리앙쿠르 섬이라 불렸기 때문에 석도가 독도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유미림 박사 “우리는 이 칙령에 나오는 석도를 독도라고 보고 있지만 일본은 이 석도가 독도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방언에 ‘돌 섬’은 ‘독 섬’이라고도 불려서 그걸 한자로 표기하면 석도(石島)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독도(獨島)! 그러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한국의 언어학을 전혀 모르는) 일본 사람들은 석도면 석도이지 독도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를 강제 편입하기 이전에 발간된 1903년의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에는 강원도 속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
나이토 세이츄우 시마네현립대학교 명예교수 “한해통어지침의 저자인 구즈 슈스케[葛生修亮]는 한국의 영토를 설명하면서 강원도 속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기록했다.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볼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리앙쿠르 섬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그런데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기 때문에 일본이 먼저 점거하면 된다. 이른바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호사카 교수 “그러니까 고유 영토이면 일본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 것이 아니라고 말을 바꿔서 무주지(無主地)라고 해서 선점 논리를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 논리 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는 것이다.”
나이토 교수 “일본이 과거 두 번에 걸쳐서 그러니까 겐로쿠시대와 메이지시대 초기 두 번에 걸쳐서 영유권이 없다고 확인했었다. 있다는 것은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확인을 했다고 팸플릿의 표제에 크게 써놓았다. 분명하게 잘못되었다.”
독도에 대한 고유 영토론(固有領土論)과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을 함께 주장하게 된 모순을 깨닫게 된 일본은 다급히 ‘무주지선점’이란 말을 빼고 독도의 영유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
시모조 교수 “1905년 그 시점에 다케시마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고, 일본은 고유 영토로 삼은 것이다. 고유 영토라는 것은 일본 측에서 볼 때 1905년 이후의 개념이다.”
권오석 교수 “1905년을 일본 사람들은 하나의 숫자로만 얘기하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1905년은 하나의 숫자가 아니다. 1905년에 본격적으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해이고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침탈한 해이다. 일본이 전쟁이 끝난 뒤에 1945년에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잘못된 침략이었다고 인정하고 반성을 했다면 그 침략행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편입, 그것이 원인 무효가 된다는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한국 침략 과정에서 강제로 빼앗겼던 독도, 그것을 근거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⑹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다케시마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와 거문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 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으로 반환해야 하는 영토 가운데 독도가 빠져 있다. 연합국총사령부(GHQ)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가 아닌 일본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장희 교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조 A항에는 독도가 한국 것도 아니고 일본 것도 아닌..... 아무 언급이 없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일본인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왜 1946년에는 독도에서 일본의 통치권이 종결됐다고 명백히 했는데 여기 와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일본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 이렇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연합국총사령부는 1946년 1월 일본이 점령한 모든 영토는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원칙 아래 SCAPIN 제677호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고 일본 선박이 독도 12해리 안에 접근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런데 샌스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을 앞두고 당시 일본 주재 정치고문이었던 시볼트가 개입하면서 독도의 운명은 달라진다.
이장희 교수 “9번 초안이 있는데 5번까지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고, 6번에 딱 한차례 일본 땅이라고 돼 있고, 7·8·9번은 현재와 같이 아무 언급이 없더라 이거다. 이것은 보니까 당시 일본 주재 정치고문인 시볼트가 일본을 위해 로비를 자기 본국(미국) 국무부에다 서한을 보낸 게 나온다. 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조 A항에 독도와 관련된 문제 처리에서는 일본의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초안에는 분명히 일본의 영토 포기 조항에 포함되어 있던 독도였지만 1951년 48개국이 서명한 조약 문서에는 결국 독도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김영구 소장 “아시아에서는 그때 당시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패전국으로 취급한게 아니고 동맹국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라는 것은 세계 현대사의 종전조약 중에서 가장 기괴한 종전조약, 패전국에게 하나도 전쟁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한 강화조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일본은 1951년 딘 러스크 미국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가 한국 대사에게 보낸 서한을 인용하며 마치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주권을 인정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김채형 부경대학교 국제법학과 교수 “일본은 이 편지를 가지고 마치 미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라고 인증을 했다고 하는 말하자면 조약의 준비 문서에서 그렇게 인증을 했다는...”
그런데 지난해 4월 미국 국무부에서 1954년에 작성한 내부보고서가 공개되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것이었다.
김채형 교수 “딘 러스크의 편지에 의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리앙쿠르 섬(독도)을 일본에 넘긴다는 법적인 결론을 수반하느냐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독도에 관련된 미국이 취한 조치가 마치 독도 영유권이 일본에게 있다고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채형 교수 “독도가 시마네현 관할에 놓여지게 된 1905년 이전에 독도가 한국의 일부분으로 속했다는 사실을 한국이 증명하게 된다면 이것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독도가 우리 나라의 영토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증명하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고 독도는 늘 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이 등장하면서 보물섬이 되어버린 바다의 중요한 섬들을 놓고 국가들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영토를 확장시키려는 섬나라 일본의 야심과 노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치밀하고 집요하다.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지금 독도뿐만이 아니다.
2004년 7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내각총리는 북방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며 시찰에 나섰다.
남상기 독도본부 이사장 “자신들의 팽창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이상 못할 것이 없다. 그건 이미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일본은 현재 쿠릴 열도 남단에 있는 4개 섬과 야오위다오라고 불리우는 센카쿠 열도를 두고 러시아 및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스즈키 의원 “일본은 북방 4개 섬과 다케시마가 영토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곳도 현재 러시아에 의해 불법점거되고 있다. 센카쿠 열도는 원래 일본 영토이므로 영토 분쟁 문제는 없다. 중국이 괜히 시비를 거는 것이고 중국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이유는 없다.”
이장희 교수 “대개 영토에 관한 한 두가지 전략인데, 다른 나라가 갖고 있는 영토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계속 그와 같은 식으로 흠집을 내고, 자국이 갖고 있는데 다른 나라가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또 그 반대로 아주 좀 조용하게 있고 이런 어떤 이중전략을 펴고 있다.”
해양영토에 대한 일본의 야심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바로 오키노 도리시마라고 불리는 섬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이곳을 방문해 자국 영토라 주장하며 주변국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착실히 사실을 쌓아가면 된다. 중국이 뭐라하든 사실이 있으니까 이걸 보여주면 된다. 중국도 아마 이곳에 상륙해서 이걸 봤을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 1700킬로미터 떨어진 이 섬은 20년전만 해도 가라앉은 듯한 작은 바위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이 이곳에 무려 3천억엔을 투자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 작은 바위섬은 사람이 설 수 있는 원형 인공섬으로 탈바꿈했고 일본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반도 면적의 두 배나 되는 해역을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연 교수 “더블침대만한 오키노 도리시마, 그것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섬이라고 우기고 그 주변에 200마일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즉 남한 면적에 육박하는 그런 해양 면적을 독차지하고 거기에 접근하는 외국 선박을 다 나포하고 아주 강력하게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독도는 어떤가? 일본이 오키노 도리시마에 투자와 관심을 쏟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독도를 천연기념물로만 지정해 놓은 채 관리도 소흘했다.
호시노 교수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고 개발을 한다면 굉장히 잘 개발할 것이다. 먼저 울릉도를 개발하고 KTX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서는 말이다. 이런 쾌속선 같은 거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진짜 같은 생활권 안에 독도를 우리가 안아줘야 되고...”
김남일 독도수호대책본부 본부장 “최소한 일부 구역은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해서 독도를 지속가능한 이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도에 대한 자연을 잘 보존한다는 것도 우리 영토 상황하에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리 잘 지켜도 뺏긴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외침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세계를 무대로 독도의 이름과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것이다.
김영구 소장 “그냥 조용히 봐주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대응을 하면 자꾸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게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건 전략에 말려드는 거하곤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문제 자체를, 우리가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자기 영토에 대한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호사카 교수 “일본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고 그리고 한국이 좋은 말을 건넸다, 덕담으로 건넸다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그쪽이 잘못된 주장을 하면 혼내야 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1696년 안용복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의 각서를 받고 돌아왔다. 1953년 한국의 전쟁 혼란기를 틈타 일본이 독도를 침범하려고 할 때 울릉도의 평범한 청년들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일본의 야욕을 분쇄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독도는 없었을 것이다.
독도와 다케시마, 그 두 이름 앞에 놓인 운명의 섬은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묻고 있다.
‘독도(獨島)’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이름인가?
2008년 7월 14일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하는 섬 독도(獨島)를 다케시마[竹島]로 개명하고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명기를 중학교 학습지도 해설서에 명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전 일본 문부과학상 “일본의 국토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의 여부는 기본적인 지식이다. 이런 점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지난 7월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는 점을 결정하면서 최근의 독도 영유권 문제는 시작됐다.
무라미 다카오 마쓰에 시립 코후쿠 중학교 교사 “해설서에 그렇게 가르치라고 쓰여 있는 건 일본 일부 학교에만 가르치라고 씌여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수업으로 다루라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즉각적인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항의 표시로 권철현 일본 주재 대사를 귀국시킨다.
권철현 일본 주재 한국 대사 “그동안 양국 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어처구니 없는 그런 심정이다.”
충격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소식은 연이어 터져 나왔다. 7월 28일 미국의 국립지리지명위원회에서 갑자기 독도를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당황한 정부는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해 원상회복에 나섰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다행히 이틀만에 독도는 한국령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 각국의 포털사이트들은 독도를 한국의 섬이 아닌 ‘분쟁지역’으로 설명하고 있고, 독도라는 이름 대신 ‘다케시마’나 ‘리앙쿠르 암(巖)’으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돌려놓기 위해 미국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집요하고도 치밀한 일본의 독도를 향한 도발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UCC 광고 “다케시마, 시네마현 오키군 오시노마초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시마네현 시민사회단체 “일본의 섬인 다케시마는 반드시 일본에 반환돼야 한다.”
1984년 2월 아베 신타로 외무상 “한국이 일본의 섬인 다케시마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
2000년 9월 모리 요시로 내각총리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
2001년 2월 스미타 노부노치 시마네현 지사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 사회 지도자들의 ‘독도 망언’. 독도의 이름을 위협하는 파도가 독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일본의 야욕과 도전 앞에서 지금 독도의 운명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독도’와 ‘다케시마’, 과연 우리는 우리의 섬인 독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의 신라 군대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한 서기 512년, 동해에 떠 있는 작은 섬 독도는 이렇게 우리 민족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옛 문헌과 지도 속에 우리의 영토로 자리매김하며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그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내릴까? 과연 한국 측이 승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법 전문가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송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부소장 “지금 당장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에 간다면 우리가 불리할 수도 있다. 똑같은 저울에 놓고 볼 때 일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갑용 영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국제사법재판에 가더라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김우준 연세대학교 동서문화연구원 원장 “나는 이 국제사법재판소를 못 믿겠다. 강대국 논리의 파워 게임이기 때문에 공정한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15명의 재판관들이 국제법에 따라 국가간의 분쟁들을 해결하는 곳이다. 최근 독도 문제가 불거지고 일본 측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주장함에 따라 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교수 “A라는 나라가 B라는 나라에 대해서 국제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제소한다고 해서 무조건 재판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피소당한 나라가 서면으로 재판에 응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그 재판이 성립된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원칙대로라면 우리 나라의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예외는 늘 있기 마련이다.
배진수 동북아역사연구재단 연구실장 “터키나 그리스 같은 경우에는 에게 도서에서 우발 위기상황이 조성되었을때 이 문제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회부되면서 유엔안보리에서 양 당사국이 합의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는 그런 결의안이 나온 적은 있다.”
지난달 한국해양영토연구원 독도연구센터에서 43년전 작성된 일본 외무성의 자료를 입수했다. 1965년 한·일회담을 기록한 이 문서에는 무려 255쪽에 달하는 분량이 독도 문제로 채워져 있었다.
독도연구센터 유미림 박사 “이미 1953년에 독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54년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또 그 중간에도 계속 한·일 양국 당국자들이 만날 때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구두로 계속 말을 꺼낸 것이다. 그래서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의 방침은,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고 했던 일본은 지금도 독도 문제에 관한 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담판짓기를 주장하고 있다.
스즈키 쓰네오 일본 자민당 중의원 “역사적인 경위를 그대로 읽어보면 한국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에 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가 회부될 경우 한국의 승소는 가능한 것일까? 국제법 전문가들은 우리의 승리를 낙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김찬규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에 의해서 판결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법정기술에 따라서 실체적 진실과는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김우준 원장 “일본이 그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만 국제관계라는 것은 아주 냉혹하다. 앞에 좌우지간 사법이든 뭐든 ‘국제’라든가 ‘세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일본이 유리하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에 일본인이 포함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일본 황태자비 마사코의 아버지 오히다 마사시). 하지만 정말 우려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국제적인 대응 방식이다.
김영구 여해연구소 소장 “‘조용한 외교’를 하면 괜찮을 줄 알고... 그런데 10년 동안 괜찮았는가? 조용히 해서? ‘조용한 외교’를 해서 독도 문제가 사그라들었는가? 오히려 지금은 더 심각해지지 않았는가? 지금은 더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된다.”
호사카 유우지 세종대학교 일본어문학과 교수 “‘조용한 외교’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조용한 외교’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한다. 일본은 ‘조용한 외교’라고 하면 닌자의 조용한 움직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물밑에서 굉장한 활동을 한다. 일본이야말로 ‘조용한 외교’를 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조용한 외교’에 대해 ‘무대응·무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일일이 대응하다가는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최악의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장희 교수 “독도가 설사 우리 주머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독도에 대해서 계속 그 침탈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에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그대로 묵인을 해버리면 나중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국제 재판의 판례들이다.”
지난 5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에 발생한 ‘페드라 브랑카’ 섬 분쟁 사건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렸다. ‘동남아권 독도 분쟁’으로 불리는 이 국제 재판의 결과는 싱가포르의 승소였다.
배진수 실장 “싱가포르에서 이 페드라 브랑카 섬의 등대 관리를 실질적으로 해오고 있고, 또 실효적인 관리를 수십년동안 쭉 해왔는데, 말레이시아가 근 130년 동안 항의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싱가포르의 실효적 지배와 또 말레이시아의 항의 부재 그걸 근거로 싱가포르가 승소를 한 그런 사례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페드라 브랑카가 말레이시아의 고유 영토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싱가포르의 실효지배를 오랫동안 묵인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입장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장희 교수 “묵인, 방치! 이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지키는데 굉장히 큰 교훈을 준다.”
이러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한일어업협정’이다.
독도 주변은 1998년 신(新)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관리하는 중간수역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일본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언급하면서 이 중간수역이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IMF외환위기로 경제환란을 겪고 있던 지난 98년,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유엔해양법에 따라 두번째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것이 뜨거운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상연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 “동해에 있어서는 역시 아무런 권리도 없는 나라가 독도의 주변수역을 한국과 같이 향유하는... 즉, 1대0의 관계가 1대1의 관계가 된... 당시 우리 나라가 IMF관리체제하에 있을 때 협상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을 때 섣불리 협상에 임해가지고 아주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일종의 불평등조약이라고 생각한다.”
1952년 1월 당시 이승만 한국 대통령은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해 평화선을 선포했다.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에 이르는 이 평화선 안에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완전히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으면서 한국 정부는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김영구 소장 “독도를 일본과 공동관리하는 중간수역에 포함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주장해야 할 35해리 전관수역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장희 교수 “영유권의 특성은 배타성인데 이 협정에서 독도를 그 중간수역에 넣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독도의 주변 수역을 우리가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 그만큼 독도는 공동관리가 되면서 영유권의 고유성이 훼손되는 거 아니냐?”
협정체결이 크게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은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 훼손에 치명적인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영구 소장 “국제법적으로 어업문제와 영토문제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어업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토권에서 발양된 하나의 해양에 관한 권리이다. 그러니까 어업권을 합의하면서 영토권 문제와 원초적으로 분리된다고 하는 것은 국제법의 원리를 왜곡되게 얘기하는 것이다.”
김찬규 교수 “어업협정 15조에는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걸 배제조항이라고 그러는데... 독도 문제를 염두에 두고 들어간 조문이다. 그래서 어업협정의 어떠한 조문도 독도 문제에 대한 피차 지금까지 주장해온 그 문제에 대해서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업협정이라고 하는 것은 독도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는 상관이 없이 어업 문제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한 협정문 제15조. 그러나 오히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됐다는 것이다.
김우준 교수 “일본인들은 돌아서서 웃었다는 얘기가 있지 않던가? 그걸 일본은 중간수역이 아니고 ‘공동관리수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독도에 이미 한발은 디뎠다, 이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연 교수 “일본 최고의 국제법 전문가가 우리 나라에 와서 대한국제법학회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 분에게 누가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가 어떤 관계냐고... 그 분 말씀이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이전에는 사실 일본은 독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할 입장은 못됐었는데 그 어업협정을 체결함으로 인해서 비로소 일본은 할 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덧 10년, 하지만 아직도 폐기냐 존속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한일어업협정을 개정해서 중간수역에 들어가 있는 독도를 구출해야한다는 주장과 어업협정은 어업권만 다루었지 영토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존속시켜도 된다는 주장!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긋고 있는 사이 일본의 독도 도발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독도를 차지하지 못해 이토록 안달하는 일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최근에 제기된 한가지 의혹에 주목하게 됐다. 1998년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할때 일본이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넣게 한 데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100여년전 울릉도와 독도에 설치됐던 일본의 망루터. 이를 활용해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을 승리로 종결지었던 일본은 그 때 이미 독도의 중요한 군사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김성만 전 한국 해군 작전사령관 “독도는 동해안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동해 전체를 바다와 공중을 다 통제할 수 있는 이런 아주 군사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최근 일본의 독도 도발로 인해 긴장감이 감도는 독도, 이를 지키기 위해 독도 주변에는 해양경찰 소속의 5천여톤급의 해양경비정 등이 스물네시간 동안 경비근무를 하고 있다. 덕분에 독도를 둘러싼 동해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작은 바위섬으로 보여지는 독도, 하지만 그 가치를 살펴보면 독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군사적인 요충지로도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독도를 차지할 경우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영해와 영공은 한반도 남쪽만큼이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바다속에 있다.
독도 주변의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 놀랄만큼 풍부한 황금어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가장 탐을 내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한다. 바로 이 해저에 묻혀 있는 지하 자원 ‘가스 하이드레이트’라는 것이다.
박찬홍 한국해양영토연구원 원장 “지금까지 탐사활동을 통해서 추정되고 있는 양은 한 6억톤 정도고, 우리 나라가 한 30년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30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양, 그 가치는 무려 150조원으로 웃돈다고 한다. 가스 하이드레이트 시험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연구실에서 우리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손꼽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깊은 바다속 해저 퇴적층에서 만들어진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퇴적층이 쌓이면 그 안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게 되는데 가스가 위로 올라오는 도중 물을 만나 얼어붙으면서 메탄이 얼음 안에 갇혀 생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이 미래의 에너지원은 연소할때 다른 화석연로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적어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장준 박사 “재래식 석유가스 형태로 있는 유기탄소보다 메탄 하이드레이트 형태로 있는... 물론 지금 그게 개발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지하고 지금 추정하고 있는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하이드레이트를 정말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만 확립된다면 굉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독도 주변에 가득 매장돼 있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독도의 가장 확실한 지하자원이다. 바로 그 지하자원에 대해 일본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우현 경상대학교 화학과 교수 “일본 사람들이 집요하고 아주 전략적으로 독도에 접근해오는 이유는 해저에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층, 이 문제가 가장 자기네로서는 관심거리가 아니겠느냐.....”
2년전 일본이 해양조사를 한다며 측량선을 출발시켜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다.
박장준 박사 “동해탐사를 오래전부터 나갔는데.....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 경계수역까지 가거나 경계수역에서 약간 넘어가더라도 일본 쪽에서 그렇게 항의가 없었는데 요즘 와서는 그쪽 근처에 오면 일본 순시선이 와서 경고한다거나 그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적인 하이드레이트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일본, 그들은 러시아의 시추현장에서 80%의 부담금을 지원해가며 시추기술을 터득했고 이걸 통해서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세계 최대의 하이드레이트를 발굴, 그들이 사용하는 가스의 백년분의 양이 일본 주변에 매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마츠모토 료 도쿄대학교 교수 “일본의 장기 프로젝트로 통산성, 현재는 경제산업성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일본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가스 하이드레이트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일본, 그들은 이미 전세계 탐사자료를 손에 넣고 시추작업에까지 뛰어들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백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보유한 일본이 굳이 독도 주변에 묻힌 하이드레이트에까지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장준 박사 “하이드레이트를 대량 생산할때 하이드레이트가 결국 연약지반 안에 석유가스처럼 아주 단단한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지반 안에 있기 때문에 하이드레이트를 해리시켜서 가스를 빼낼 때에 하이드레이트가 물로 해리가 되면서 지반이 약화되면서 지반 붕괴나 침하 이런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큰 선결과제이고...”
백우현 교수 “가장 일본이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실 일본 열도는 완전한 지진대에 있다. 그걸 건져낼 만큼 바다속이 바다 속이 공동화된다. 그러면 그걸 다시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하이드레이트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반 붕괴의 위험이다. 실제로 하이드레이트 발굴지에서 지반 침하로 시추공이 무너지는 사고도 일어났다고 한다. 지진이 많은 일본이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할 당시 독도 주변의 가스 하이드레이트 개발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백우현 교수 “최근의 어업협정은 어업만 이야기 해. 그러면 요즘 밑에 해저자원 문제 논의하자 하고 새로운 이슈가 지금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거기에서 자기네들이 유리한 고지로 가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 그런 수단 아니겠느냐 그렇게 본다.”
독도 주변에 묻혀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의 가치가 무려 150조원. 여기에 풍부한 수산자원과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까지 고려하면 독도의 가치는 거의 무한대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독도가 소중한 까닭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영혼과도 같은 섬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섬 독도를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있다. 역사적인 근거들까지 제시하며 국제사회에 홍보도 하고 있다. 그들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독도를 알고 있었고 독도를 지배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과 사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올해 2월 홍보용 책자를 만들었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와 영어로도 제작된 이 책자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근거들이 나열돼 있었다.
시모조 마사오 타쿠쇼쿠대학교 교수 “다케시마 문제는 역사적인 문제이니까 역사적인 근거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측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은 역사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⑴ 한국인들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독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고구려·백제·신라가 존재하던 삼국시대. 그 흥망과 변천을 기록한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조(智證麻立干條)「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쳤다.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가 되었을 때.....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그 신라에 편입됐다는 우산국의 영토와 관련해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우산국은 독도와 울릉도라고 기록돼 있다.
시모조 교수 “우산도(于山島)가 울릉도의 속도(屬島)라고 기록돼 있는데 그것은 후세에 고쳐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512년에 신라가 다케시마를 편입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케시마 문제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시모조 교수는 우산국의 영토에 관한 기록이 후대에 편찬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우산도와 울릉도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섬이라고 주장한다.
시모조 교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같은 섬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1600년대 조선의 한백겸(韓百謙)이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를 썼는데 우산도를 울릉도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는 분명 두 섬이 존재하고 있다.
고려사「울릉도는 현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때 우산국(于山國)이라 칭하고 우릉(芋陵) 또는 무릉(武陵)이라 하였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陵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조선국도(朝鮮國圖) 등 지도에서도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도렷이 표시돼 있다. 그러나 날씨가 맑으면 두 섬이 보인다는 기록들을 일본 측에선 부인하고 있다. 한국 측의 한문 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모조 교수 “그 ‘보인다’는 것을 읽을 때에는 조선반도에서 울릉도를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런 기본적인 지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문헌을 해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이 문제를 점점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유미림 박사 “일본에서 한문을 해석하는 방식이 우리 나라 하고는 다르다. 우리는 이걸 한문으로 보면 이렇게 이런 맥락으로 본다 생각을 하는데 일본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필요한 부분만 다르게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갖고 한국에서 오역을 했다, 오류를 범했다 이런 식으로 억지 주장을 하니까 그게 서로 계속 공방이 되는 것이다.”
⑵ 일본은 17세기 중엽부터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했다?
일본 돗토리현에 자리하고 있는 한 박물관에는 일본이 독도를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도해(渡海) 면허’가 있다.
박물관 학예사 “다케시마 도해, 여기서 말하는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말하는데 그곳에 막부의 허가를 얻어 요나고의 상인이 조업을 하러 갔다.”
1618년 에도 막부가 돗토리현의 어민들에게 발급한 이 도해 면허는 지금의 울릉도 바다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아도 좋다고 허락하는 문서이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17세기 중엽까지 독도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사카 교수 “일본 사람들이 17세기에 70년 정도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했고, 그러니까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편입시켰다고 말하지만 그때 일본내에서 오간 공문서를 보면 독도는 우리 것이 아니다고 적힌 공문서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 것을 그대로 숨기고 표면적인 부분만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깊이 들어가면 모든 거짓말이 드러난다.”
1877년 태정관 지령문「죽도(竹島)와 다른 한 섬은 일본과 관계가 없는 것임을 명심할 것...」
일본 메이지시대 최고의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의 명령서였다.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현립대학교 명예교수 “시마네현이 오키국 서쪽에 죽도(竹島)와 송도(松島)가 있다... 이것을 시마네현에 포함시켜도 좋을지 어떨지 정부 내무성에 문의한 것이다. 정부는 이것에 대해서 과거의 여러가지 기록을 조사한 후에 본국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냈다.”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인식은 1667년에 작성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에서도 나타난다.
은주시청합기「(오키 섬에서) 서북쪽으로 1박 2일 동안 가면 송도(독도)가 있고, 또 1일을 가면 죽도(울릉도)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쪽 땅은 오키 섬을 한계로 삼는다.」
일본의 옛 지도에서도 독도가 우리의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785년에 제작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는 독도를 조선과 같이 황색으로 칠하고 아예 ‘조선의 것’이라는 기록까지 적혀 있다. 일본 해군성이 1857년에 공식적으로 편찬한 조선동해안도(朝鮮東海岸圖) 역시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양보경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일본이) 측량지도를 러시아판, 또는 영국판으로 번역해서 출간하는데, 그 지도들에 독도가 들어가 있다. 조선동해안도에 독도 섬 모양도 그려 넣었다.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을 일본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⑶ 안용복의 진술 내용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독도와 함께 동해에 솟아있는 울릉도, 그 도립공원 안에는 충혼비(忠魂碑)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숙종(肅宗) 때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다짐받고 돌아온 안용복(安龍福)을 기리는 비석이다.
권오석 충남대학교 일본어문학과 교수 “독도 문제에는 안용복이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용복이 한번은 일본에 납치당해서 갔고 한번은 일본에 가서 납치당한 상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을 해서 일본의 에도에 있는 막부에서 그걸 인정하는 증서를 써줬다고 안용복이 얘기했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땅을 밟는다. 울릉도에서 조업을 하다 물개잡이를 하던 일본 어민들에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안용복은 3년후 또 다시 일본행을 감행한다.
숙종실록(肅宗實錄)「도주(島主)가 묻기를 “어찌 또 왔는가?” 하므로 답하기를 “전일 두 섬의 일로 서계(書啓)를 받아낸 것이 명백한데 대마도주가 서계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두세번 법을 어겨 사신을 보내 침범하였으니 내가 관백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두루 밝히고자 한다”」
두번째 일본행에서 안용복은 일본 막부의 최고 책임자인 관백을 만나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각서를 받았다고 진술한다.
숙종실록「(호키 주의 태수가 말하기를) 두 섬이 이미 당신네 나라에 속한 이상 만일 다시 국경을 넘는 자가 있거나 도주가 혹시 침범하는 일이 있으면 국서를 작성하고 역관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무겁게 처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안용복에 관한 기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찾아볼 수 있다. 안용복의 신상명세를 비롯하여 배에 꽂은 깃발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일본의 문서에는 안용복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다.
박물관 학예사 “왜 일본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측 기록에서는 자세히 남아있지 않다. 돗토리번의 기록에는 (안용복이) 무엇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의 문헌에는 안용복이 왜 일본에 왔는지, 일본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세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박병섭 재일한국인문화연구원 원장 “안용복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평가가 정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평가의 차이가 크다. 한국에서는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애국자라고 보지만, 일본에서는 안용복을 모든 악의 근원이며 사기꾼으로 보는 것이다.”
시모조 교수 “한국에서는 숙종실록의 기사만 가지고 안용복의 증언을 역사적인 사실인 것처럼 거론하고 있는데, 안용복이 하는 말은 결국 죄인이 하는 말이고 그래서 그는 조선에서도 신뢰받지 못했다.”
안용복의 증언과 그 기록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일본, 그런데 2005년 5월 시마네현의 오키 섬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문서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것은 1696년 일본 해안에 도착한 조선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무라카미 스케쿠로 “배의 구조와 크기... 어떤 목적으로 돗토리에 가는지, 오나고에 가는 것인지도 적혀 있다.”
일본의 지방 관리가 안용복과 그 수행원들을 취조하여 상부에 보고한 이 문서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온 목적이 나타나 있다.
1696년에 조선 배가 일본 해안에 도착한 일에 대한 한 권의 각서「안용복이 말하기를 자신의 배에 타고 온 11인은 호키를 거쳐 돗토리번의 태수에게 담판을 지으려고 순풍을 타고 이곳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호키로 항해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권오석 교수 “앞으로 어떻게 가겠다는 거, 왜 돗토리현에 가는가, 그 이유에 대해 다 얘기하고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받아 적은 것이다. 그러니까 안용복의 진실을 일본 사람들이 기록한 문서니까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안용복의 진실과 그에 관한 기록을 모두 위증으로 몰아붙였던 일본의 주장은 이 문서를 통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조선국의 강원도 동래부 안에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것을 ‘대나무 섬’이라고 한다 합니다. 송도는 같은 강원도 안에 자산(독도)이라는 섬이 있는데 이것을 송도라고 한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는 죽도·송도라고 부르던 섬,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섬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질 수 있었다.
「5월 15일 죽도(울릉도)를 출항, 같은 날 송도(독도)에 도착했고 죽도와 조선 사이는 30리이며, 죽도와 송도 사이는 50리이다.」
권오석 교수 “안용복을 기록해 놓은 조선왕조실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일본 사람들이 안용복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독도에 대한 인식, 조선 사람들의 인식을 부정했던 일본 사람들의 주장이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 학계에서 한동안 사기꾼, 범법자로 취급받았던 안용복. 그러나 오키 섬에서 발견된 이 문서를 통해 안용복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일본 측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이미 안용복이 살았던 17세기에 독도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관리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년후 우리의 땅 독도는 또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대한제국이 혼란을 겪고 있던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은 갑자기 고시를 발표한다.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니 이를 편입한다는 것이다.
⑸ 일본 정부는 1905년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여 다케시마 영유 의사를 재확인했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북위 37도 동경 31도 오키섬과의 거리가 서북 81도에 달하는 섬을 죽도라 칭하고 지금부터 본현 소속 오키 섬의 부속 섬으로 전향한다」
독도를 시마네현의 관할에 둔다는 이 고시는 그로부터 1백년 동안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시모조 교수 “일본 측은 일단 1905년에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했고 그 이후에 실효지배를 했기 때문에 다케시마를 한국 영토라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그러나 시마네현 고시가 발표되기 5년전, 대한제국은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공표한 상태였다. 일본 측은 또 다시 독도의 명칭을 문제삼아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모조 교수 “여기에 나오는 석도(石島)를 독도라고 말하고 있는데 독도의 명칭이 나오는 것은 1903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리앙쿠르 섬이라 불렸기 때문에 석도가 독도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유미림 박사 “우리는 이 칙령에 나오는 석도를 독도라고 보고 있지만 일본은 이 석도가 독도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방언에 ‘돌 섬’은 ‘독 섬’이라고도 불려서 그걸 한자로 표기하면 석도(石島)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독도(獨島)! 그러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한국의 언어학을 전혀 모르는) 일본 사람들은 석도면 석도이지 독도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를 강제 편입하기 이전에 발간된 1903년의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에는 강원도 속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
나이토 세이츄우 시마네현립대학교 명예교수 “한해통어지침의 저자인 구즈 슈스케[葛生修亮]는 한국의 영토를 설명하면서 강원도 속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기록했다.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볼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리앙쿠르 섬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그런데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기 때문에 일본이 먼저 점거하면 된다. 이른바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호사카 교수 “그러니까 고유 영토이면 일본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 것이 아니라고 말을 바꿔서 무주지(無主地)라고 해서 선점 논리를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 논리 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는 것이다.”
나이토 교수 “일본이 과거 두 번에 걸쳐서 그러니까 겐로쿠시대와 메이지시대 초기 두 번에 걸쳐서 영유권이 없다고 확인했었다. 있다는 것은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확인을 했다고 팸플릿의 표제에 크게 써놓았다. 분명하게 잘못되었다.”
독도에 대한 고유 영토론(固有領土論)과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을 함께 주장하게 된 모순을 깨닫게 된 일본은 다급히 ‘무주지선점’이란 말을 빼고 독도의 영유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
시모조 교수 “1905년 그 시점에 다케시마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고, 일본은 고유 영토로 삼은 것이다. 고유 영토라는 것은 일본 측에서 볼 때 1905년 이후의 개념이다.”
권오석 교수 “1905년을 일본 사람들은 하나의 숫자로만 얘기하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1905년은 하나의 숫자가 아니다. 1905년에 본격적으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해이고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침탈한 해이다. 일본이 전쟁이 끝난 뒤에 1945년에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잘못된 침략이었다고 인정하고 반성을 했다면 그 침략행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편입, 그것이 원인 무효가 된다는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한국 침략 과정에서 강제로 빼앗겼던 독도, 그것을 근거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⑹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다케시마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와 거문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 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으로 반환해야 하는 영토 가운데 독도가 빠져 있다. 연합국총사령부(GHQ)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가 아닌 일본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장희 교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조 A항에는 독도가 한국 것도 아니고 일본 것도 아닌..... 아무 언급이 없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일본인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왜 1946년에는 독도에서 일본의 통치권이 종결됐다고 명백히 했는데 여기 와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일본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 이렇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연합국총사령부는 1946년 1월 일본이 점령한 모든 영토는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원칙 아래 SCAPIN 제677호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고 일본 선박이 독도 12해리 안에 접근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런데 샌스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을 앞두고 당시 일본 주재 정치고문이었던 시볼트가 개입하면서 독도의 운명은 달라진다.
이장희 교수 “9번 초안이 있는데 5번까지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고, 6번에 딱 한차례 일본 땅이라고 돼 있고, 7·8·9번은 현재와 같이 아무 언급이 없더라 이거다. 이것은 보니까 당시 일본 주재 정치고문인 시볼트가 일본을 위해 로비를 자기 본국(미국) 국무부에다 서한을 보낸 게 나온다. 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조 A항에 독도와 관련된 문제 처리에서는 일본의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초안에는 분명히 일본의 영토 포기 조항에 포함되어 있던 독도였지만 1951년 48개국이 서명한 조약 문서에는 결국 독도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김영구 소장 “아시아에서는 그때 당시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패전국으로 취급한게 아니고 동맹국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라는 것은 세계 현대사의 종전조약 중에서 가장 기괴한 종전조약, 패전국에게 하나도 전쟁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한 강화조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일본은 1951년 딘 러스크 미국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가 한국 대사에게 보낸 서한을 인용하며 마치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주권을 인정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김채형 부경대학교 국제법학과 교수 “일본은 이 편지를 가지고 마치 미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라고 인증을 했다고 하는 말하자면 조약의 준비 문서에서 그렇게 인증을 했다는...”
그런데 지난해 4월 미국 국무부에서 1954년에 작성한 내부보고서가 공개되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것이었다.
김채형 교수 “딘 러스크의 편지에 의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리앙쿠르 섬(독도)을 일본에 넘긴다는 법적인 결론을 수반하느냐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독도에 관련된 미국이 취한 조치가 마치 독도 영유권이 일본에게 있다고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채형 교수 “독도가 시마네현 관할에 놓여지게 된 1905년 이전에 독도가 한국의 일부분으로 속했다는 사실을 한국이 증명하게 된다면 이것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독도가 우리 나라의 영토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증명하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고 독도는 늘 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이 등장하면서 보물섬이 되어버린 바다의 중요한 섬들을 놓고 국가들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영토를 확장시키려는 섬나라 일본의 야심과 노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치밀하고 집요하다.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지금 독도뿐만이 아니다.
2004년 7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내각총리는 북방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며 시찰에 나섰다.
남상기 독도본부 이사장 “자신들의 팽창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이상 못할 것이 없다. 그건 이미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일본은 현재 쿠릴 열도 남단에 있는 4개 섬과 야오위다오라고 불리우는 센카쿠 열도를 두고 러시아 및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스즈키 의원 “일본은 북방 4개 섬과 다케시마가 영토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곳도 현재 러시아에 의해 불법점거되고 있다. 센카쿠 열도는 원래 일본 영토이므로 영토 분쟁 문제는 없다. 중국이 괜히 시비를 거는 것이고 중국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이유는 없다.”
이장희 교수 “대개 영토에 관한 한 두가지 전략인데, 다른 나라가 갖고 있는 영토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계속 그와 같은 식으로 흠집을 내고, 자국이 갖고 있는데 다른 나라가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또 그 반대로 아주 좀 조용하게 있고 이런 어떤 이중전략을 펴고 있다.”
해양영토에 대한 일본의 야심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바로 오키노 도리시마라고 불리는 섬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이곳을 방문해 자국 영토라 주장하며 주변국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착실히 사실을 쌓아가면 된다. 중국이 뭐라하든 사실이 있으니까 이걸 보여주면 된다. 중국도 아마 이곳에 상륙해서 이걸 봤을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 1700킬로미터 떨어진 이 섬은 20년전만 해도 가라앉은 듯한 작은 바위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이 이곳에 무려 3천억엔을 투자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 작은 바위섬은 사람이 설 수 있는 원형 인공섬으로 탈바꿈했고 일본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반도 면적의 두 배나 되는 해역을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연 교수 “더블침대만한 오키노 도리시마, 그것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섬이라고 우기고 그 주변에 200마일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즉 남한 면적에 육박하는 그런 해양 면적을 독차지하고 거기에 접근하는 외국 선박을 다 나포하고 아주 강력하게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독도는 어떤가? 일본이 오키노 도리시마에 투자와 관심을 쏟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독도를 천연기념물로만 지정해 놓은 채 관리도 소흘했다.
호시노 교수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고 개발을 한다면 굉장히 잘 개발할 것이다. 먼저 울릉도를 개발하고 KTX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서는 말이다. 이런 쾌속선 같은 거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진짜 같은 생활권 안에 독도를 우리가 안아줘야 되고...”
김남일 독도수호대책본부 본부장 “최소한 일부 구역은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해서 독도를 지속가능한 이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도에 대한 자연을 잘 보존한다는 것도 우리 영토 상황하에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리 잘 지켜도 뺏긴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외침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세계를 무대로 독도의 이름과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것이다.
김영구 소장 “그냥 조용히 봐주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대응을 하면 자꾸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게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건 전략에 말려드는 거하곤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문제 자체를, 우리가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자기 영토에 대한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호사카 교수 “일본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고 그리고 한국이 좋은 말을 건넸다, 덕담으로 건넸다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그쪽이 잘못된 주장을 하면 혼내야 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1696년 안용복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의 각서를 받고 돌아왔다. 1953년 한국의 전쟁 혼란기를 틈타 일본이 독도를 침범하려고 할 때 울릉도의 평범한 청년들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일본의 야욕을 분쇄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독도는 없었을 것이다.
독도와 다케시마, 그 두 이름 앞에 놓인 운명의 섬은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