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분 동안의 판도라 행성 체험 - 영화의 기술적 발전과 '아바타'

박일섭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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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바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1895년 12월의 어느 날, 파리의 한 카페에서는 인류의 20세기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대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 도착'의 상영 사건이었다.

인류 문화사 전체의 충격이라는 거시적 의미를 떠나서, 미시적으로도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그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영화라는 움직이는 영상에 너무나 익숙한 지금의 우리들이야 스토리는 커녕, 흑백에 불과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는 것을 찍은 것에 불과한 3분짜리 그 장면이 무슨 충격이었겠냐만, 그 당시의 관객들은 열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가는 소동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 도착'> 

 

이후에도 뤼미에르 형제는 지속적인 영화 제작을 했다고 하니, 다행히 관객들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정도의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이후 영화는 꾸준히 유성영화, 컬러영화 등의 형태로 발전을 해 나간다.

 

친구들끼리 영화에 대한 평을 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꼭 봐야 해." 아니면, "이 영화는 나중에 비디오 나오면 집에서 보면 돼." 

물론 저렇게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말인즉슨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TV(에서 보는 영화)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어찌 보면 영화나 TV는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영화는 TV와는 차별화된 사실적인 생생함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화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대중들에게 충격적인 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후 영화의 발전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사실적인 생생함으로 충격을 줄 수 있었던 소리의 삽입이나 컬러영상의 등장 등과 같은 여러 요소들도 기술의 발전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12월 26일 관람한 '아바타' 또한 기술의 힘을 빌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사실적인 생생함을 관객들에게(적어도 나에게는) 효과적으로 전달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하 모든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

 

 

 

사실 영화의 내러티브만을 기준으로 아바타를 평가한다면 많은 평론가와 네티즌들이 이야기하듯이 주인공이 나비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그들의 삶의 방식에 차츰 동화되어 간다는 설정은 '늑대와 춤을'의 기본적인 스토리와도 유사하며 자연과의 교감이나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 의식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같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문제 의식과도 큰 차이가 없다. 즉 기본적인 내러티브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하다는 것이 아바타라는 작품에 대해서 실망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주변 사람 중에서는 그냥 뻔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중간에 나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완성도 높고 참신하고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관객들을 극에 몰입하게 하는 요소인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며, 관객들이 얼마나 극에 몰입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영화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들은 단순히 내러티브만을 가지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만약 내러티브만을 영화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면 굳이 비싼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영화관까지 영화 보러 갈 필요는 없다. 조금 참았다가 DVD로 보거나 좀 더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주말의 영화로 보면 되니까. 또한 일반 대중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대중문화로서의 영화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선과 악이 명확한 대결구도와 다소 진부하다고 여겨질 지라도 (짜증이 날 정도만 아니라면) 대중들이 익숙하고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얼마나 화려한 볼거리들로 치장했고, 이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대중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취향에 더 가까울 것이다. (대중들의 이러한 영화 선택 기준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낯 익은 패턴을 바탕으로 이를 적절하게 변주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속성이기도 하고...) 곧 내러티브의 뛰어난 완성도와 상상을 초월하는 참신함 뿐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라는 장르가 영화관에서 구사할 수 있는 차별성인 사실적인 생생함을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 볼거리가 많냐 하는 것도 영화를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라는 말이다.  

 

다시 아바타로 돌아가보자. 아바타는 판도라라는 미지의 행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특히 3D효과와 결합한 판도라 행성의 풍경은, 비록 스크린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이었지만, 스크린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마치 내가 판도라 행성에서 주인공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판도라 행성을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특히 기존의 3D 영화들은 '이 영화는 3D 영화다'라고 계속적으로 주입하듯이 뭐가 불쑥불쑥 튀어 나와서 관객들을 놀래키는 것에 중점을 두는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면, 아바타는 그런 장면의 삽입은 최소화했다. 대신 그 해파린지, 민들레 씨앗인지(이름을 모르겠다) 비슷한 것이 나오는 장면이나 등장인물들이 풀숲을 뛰는 장면 등과 같이 판도라 행성의 풍경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입체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3D의 효과를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인 판도라 행성을 관객들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활용했다. 물론 입체 안경을 160분 가까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지럽거나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영상이 어색하다거나 어둡다거나 침침하다거나 하는 장면도 없는 등, 3D영상을 완벽하게 구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 디지털 3D가 이 정도였는데, I MAX로 보면 과연 어땠을까? 돈은 좀 더 들겠지만, I MAX 상영관을 찾아 한 번 더 관람할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3D 효과도 효과지만, 머리 속 상상의 세계를 완벽하게 실제처럼 구현한 CG 기술, 그러한 CG와 실사를 아무런 이질감 없이 완벽하게 조화시켜 준 기술과 나비족의 완벽한 표정 연기를 창조해 낸 '이모션 캡쳐'라는 기술도 160분의 실감나는 판도라 행성 체험을 가능케 한 기술적인 요소들일 것이다. -아마 실제 연기자들도 힘들지 않았을까?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데, 상대 배우는 없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특정 감정을 연기해야 했으니 말이다.- 뭐 아바타의 제작에 들어간 기술적 노력이 이뿐이겠냐만, 공학이 전공이 아닌 까닭에 복잡한 기술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을 않겠다.  

 

 

 

 

어쨌든 아바타는 첨단 기술과의 결합이라는 (일단은 '적어도 현재까지는'이라고 해두자. 앞으로 TV가 어떤 형태로 발전할 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니까...)영화만의 차별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판도라 행성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을 제공하고자 했다. 앞으로 더욱 기술이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해서가 아니라, 달나라에 발을 디뎠던 그 날의 충격이 실제 판도라와 같은 미지의 행성에서 재현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날의 충격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하겠지만 영화 '아바타'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언제가 될 지 모를 그 미래를 살짝 앞당겨 판도라 행성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나에게 충격을 준 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처럼 최초의 영화가 상영되었던 당시의 카페에서 도착하는 기차를 보며 혼비백산했던 관객들만큼의 충격은 아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아바타를 보면서 꽤나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이러한 충격이야말로 기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영화라는 장르가 이끌어낼 수 있는 감동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건, '아바타'와 같은 영화를 탄생케 하여 인간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 준 동력은 바로 기술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 인간의 판도라 행성에 대한 약탈(?)과 파괴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 또한 기술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으로 진보된 기술이란 무절제한 욕망과 결합하기만 하는 기술이 아니라, 타자를 인정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그레이스 박사의 노력과 같은 기술이어야 할 것이다.

- 총에 맞아 실려 가면서까지 '샘플'에 집착하는 정도의 욕망은 직업 정신이라고 해 두자.- 

 

 

 

 

 

기술은 충격이다. 하지만 그 충격을 인간에게 놀라움을 주는 감동으로 만들지, 인간의 삶 전체를 공포로 몰아 넣는 충격으로 만들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몫이다.  

 

아, 여담이지만 나비족 여전사로 등장하는 네이티리가 만약 영화제에서 상을 탄다면, 네이티리를 연기한 조 샐다나에게 상을 줘야 하나? 기술담당자에게 상을 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