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8년.. 시댁과 연끊고 지내는 저희 부모님~~!

찰보리2010.01.01
조회6,892

저희 어머니를 대신하여 타자치며 씁니다.

판의 매력에 빠지신 어머니께서

지금 옆에서 불러주시는 대로 타자치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 아버지 환갑이신데, 조촐하게 지내야 할 것 같군요.

아래와 같은 이야기떄문에요~

 

이야기가 두서없을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풀고자 함이니 많이 읽어주시고

답변도 달아주세요~ !

 

..................................

 

 

2남 3녀, 5남매의 장남집으로 28년전 시집간 며느리(50세)입니다.

시누이가 3명이 있는데

저희 남편이 둘째이며 위로 누나 한명 아래로 남동생 한명 여동생 2명이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환경속에서 저희 남편은 공무원이었고, 처음부터 결혼생활이 순탄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시동생이 20년전에 보증을 서달라고 해서 보증을 서줬는데

그때 당시 한 500만원정도를 피해를 보았습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저희 부부는 시댁에 생활비를 다 대주고

그 이후에는 시어머니는 중풍과 내경색이로 두번이나 크게 병원 신세를 지고

이에대한 병원비가 만만치 않게 나오더군요. 근데 시누이들이 하는 말이

"딸들은 출가외인이므로 큰아들이 병원비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시누이는 경기도에서 아주 제일가는 부자이고 둘째 시누이는 직장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큰시누이는 병원비로 한 40만원정도로 내어주고 다른 시누이는 십원도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병원비는 20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는 다 저희가 부담해야 했습니다.

저희 빠듯한 공무원 월급으로, 아이들 셋에, 이 모든 병원비 및 500만원의 재산피해를

모두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20년전의 위의 금액이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돈입니다. 저희 남편 공무원생활 막 시작하면서 한달 월급이 달랑 몇십만원 가량 되었으니깐요. 그때 시어머니가 종합병원에 계셨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청구서가 나오는데 모든 시댁 식구들이 저희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저희보고 병원비를 부담하라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렇게 두달을 시어머니가 입원을 했는데, 이 싸가지 없는 것들은 단 한번도 병원비를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당시 너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하도 분해서 빨래널다가 옷걸이로 남편을 막 떄리며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우리만 자식이냐." 그랬더니 착한 남편은 분이 풀릴만큼 때리라며 제가 때리는 대로 다 맞았습니다. 그리고 민망하지만 남편이 입고있던 메리야스도 찢어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나한테 당하면서도 자기 형제들한테는 돈을 일절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사실 내 남편도 말은 안했지 본인이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1년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원자력 병원에서 장례를 치뤘는데 큰 시누이의 친구들이 방문했었는데 상주인 저희 남편한테 화투 자금으로 150만원을 빌려갔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장례식에는 상주에게 돈을 빌려 화투를 치면 장례식 전에 갚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50만원을 갚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것을 줄떄까지 기다렸는데 도통 소식이 없었습니다. 삼우제가 지났는데도 주지를 않아서 그냥 포기를 한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49제를 이제 시어머니 살던 집에서 할려고 영정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영정앞에 식사를 떠 놓았습니다. 그런데 큰 시누이가 49제가 임박해오니깐 49제를 자신이 다니던 절에서 하자, 그래서 저희 남편과 시동생 왈, 그것은 절차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시골에서 해야한다고 딱 말하니, 큰시누이가 말하길, 자신이 다니는 절에서 하지 않으면 자기네들 딸 셋은 49제 지내러 시골에 내려가지 않겠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떄 저희 남편은, 맘대로 해라! 라고 하니깐, 큰 시누이가 그럽니다. "그럼 그때 빌렸던 화투자금 150만원을 안주겠다, 그 돈으로 우리 딸 셋은 절에서 49제를 따로 지내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49제에는 아들 둘, 며느리 둘, 이렇게 49제를 시골에서 끝냈습니다.

시골 동네 사람들사이에서 이 사실을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미친xx, 남자 거시기를 짤라버려라!, "라며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뒀던 시누이 남편들을 싸잡아 욕했습니다.

 

그 이후, 3년동안 시누이들과 아들들과 완전히 얼굴한 번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평생 끊을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누이들이 시골에 자기 어머니 산소에 왔다가 시동생 집에 들렀답니다.  동서가 얘기해 주기를 나와 남편의 흉을 보고 그랬답니다. 세명의 시누이들이 그래도 자기네들이 잘했다고 우리 남편과 저를 말도 안되는 욕을 퍼붓고 그랬답니다.

 

사실 시댁 식구들로 인해 스트레스로 상계 백병원에서 우울증 불면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너무 이른 나이에 이런병에 걸렸다면서 무슨일이 있는지 전부 다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년동안 지금까지 우울증 불면증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고 생활도 힘듭니다.

 

그런데 동서로부터 위와같은 이야기를 듣고, 이대로 참아선 안되겠다 싶어서

가까이 사는 둘째 시누이를 다방으로 불러냈습니다. 삼년만입니다. 그래서 둘이 다방에서

서로 잘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방아주머니가 말리고 말려, 결국엔 다방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찻길로 나와서 새벽 1시까지 네 다섯시간동안 할말 못할말 다 토해냈습니다. 그래도

제 분이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어떠케 자기 부모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십원한장을 병원비로

안낼수 있냐고,,, 자기 부모한테 할 도리도 못하면서 어디서 큰 소리를 치느냐, 너희가 지금 이게 잘한짓이라고 생각하냐? 너희도 시부모가 있지 않느냐, 고 따졌더니 그때부터 시누이가 고개를 숙이더라구요. 잘못했다구요.. 그러자 시누이 남편이 마누라를 찾으러 나와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고나니깐, 그래도 마음이 너무 시원했지만,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도 그 얘기를 듣고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뒤로부터 사이가 더 좋지 않았지만, 장남집안으로 시댁 제사를 20년동안 저희가 지내고 있는데 딸 셋은 아버지 제삿날을 거의 잊다 시피 했습니다. 어머니 제삿날만 오는 날인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 남편은 그걸 가슴속에 담고 어느날 큰 시누이가 환갑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초청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나는 안간다, 이제 누나하고 끝이다. 형제 부모도 모르는 사람하고는  인연을 끊는다 하고 가지를 않았어요. 그런이유로 시누환갑날에 저만 갔습니다. 그러니 큰 시누이는 우리남편 왜 안왔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남편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평생 이십분거리에 살면서 아버지 제사에 한번도 참석을 안했다고... 그래서 서운해서 이제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했더니 시누이가 하는말이 "쪼잔한 놈"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시어머니 제사에도 아예 발걸음 하지도 않네요. 지금까지요.

그래서 저는 오라고, 전화를 했건만, 자기도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결국엔 저희들 남남으로 살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시누이 이야기였고

이제 시동생과 동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시동생은 속을 못차려서 맨 위에 언급했던대로 보증문제도 심했고

저희 집까지 압류당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시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동서 역시, 시누이들하고 똑같습니다.

지금은 교회 다니고 있는데

저희 시어머니가 시동생 아들 둘을 다 키워주시고 이들 부부는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아프니깐, 시어머니를 시골에서 서울 저희집으로 어머니를 보내서

병원비를 죄다 저한테 떠넘겼습니다. 그치만 전 그런 시어머니가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제 세명의 자식들을 제대로 안아주지도 예뻐해주지도 않았으니깐요(첫쨰 둘째가 딸이라는 이유로요..) 그래서 나중에 시어머니에게 복수를 한다는 심정으로 결국 막내아들을 출산했습니다. 그 서러움은 말도 못했거든요. 딸을 낳았더니 아기도 보지도 않은채 바로 시골로 내려가셨거든요..막내아들을 낳자마자 시어머니는 돌아가셨구요.

 

돌아가시고 문제는, 제사를 큰아들이라는 이유로 내가 지내고 있는데

제사가 일년에 명절까지 다섯번 있습니다. 한번을 제사를 도와준적이 없습니다.

특히 동서는, 명절날에만 얼굴을 잠깐 비춥니다.

제사때나 명절떄도 음식만드는것도 저희 어린 딸들이 도와주지 동서는 한번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제사떄는 아예 안오는 것은 물론, 명절때에도 밤늦게 손님인냥 찾아오곤 합니다.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왜냐면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깐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어느날, 제사가 토요일이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시동생한테 이번에는 토요일이니깐

동서랑 데리고 다 같이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이가 없더라구요 동서는, 바쁘다고 못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사하고 바쁜거하고 무슨상관이냐, 토요일인데'.. 라고 말했더니

동서왈, '죽은 사람이 중요해요? 산사람이 중요해요?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더니 이어서 하는말이, '이제 명절날에도 안가야 겠구만요~' 라고 저를 약올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막말을 못하고, 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돌아오는 명절에 동서가 마지 못해 왔는데, 그떄에도 저희들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명절 후에 제사가 또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 날이 또 다시 토요일이었습니다.

이때에는 올 줄 알았는데.. 또 오지 않았습니다..

시동생만 왔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나서 동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왜 안왔냐고요..

그랬더니 동서가 아프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다시 하는 말이 "죽은 사람이 중요하냐? 산사람이 중요하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끝까지 난 저는 "명절에도 아예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동서는 다시는 저희 집에 오지 않습니다. 얼굴 안본지가 4년이 넘었네요.

그래서 그 이후로, 시댁식구들이랑은 담 쌓고 지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겠나요? 노력해야하나요?

이대로 지내는 것이 맘 편한가요?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