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다음 날

김후회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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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에게 지쳤어.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이 니 빈자리를 채우고 있어. 그저 미안한 마음밖에는 없네. 안녕'

 

  3년 8개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만나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12월 31일까지. 항상 그녀만 사랑했고, 그녀만을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된 그녀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먹먹하고 슬픔이 올라오네요.

 

  잘 수도 먹을 수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슬프고, 어떤 노래의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나네요. 그녀는 서서히 마음의 정리를 하며 저를 지워갔다고 하지만 저는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어떠한 낌새도 채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맞은 이별이었기에 아직도 비현실적이고 아직도 혹시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오매불망 기다리고만 있네요.

 

  크게 싸운 적도 다툰 적도 없었습니다. 둘다 철이 없을 때 만나서, 서로를 닮아가면서 철이들어 갔고, 오랜기간 같이 살아온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렸습니다. 저는 이제는 연인이라는 것보다 더 가족같은, 그리고 감성을 떠나서 이성의 영역에서도 사랑한 그녀를 정말 자연스럽게 사랑했습니다. 부부가 서로 표현하지 않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처럼요. 그녀도 알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 많이 기대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족과 같은 사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부여한 것은 순전히 저만의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녀는 제가 그녀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마치 가족과 같이 생각하며 행동했던 것 하나하나에 지쳐 갔나봅니다. 더 이상 너를 그렇게 챙겨줄 자신도 없고, 이제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그리고 만났다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카페에서 이별통보를 듣고, 마치 담담한 냥 그녀에게 논리적으로 설득도 해보고 애교도 부려봤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를 사랑하고 있을 때의 그 목소리와 표정이 아닌 그녀는 어떠한 저의 붙잡음도 마다하더군요. 그래서 그래 깨끗하게 끝내자 하는 식으로 그래 내가 바래다 줄께 추우니까 얼른가자하면서 그녀를 지하철 역에 바래다 줬습니다.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넘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을 때 까지만 해도 현실감각도 없고 멍했습니다. 지금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실감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같으면 뒤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했을 그녀가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사라졌을 때, 그 때부터 무언가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터져나오더군요. 그 사람 많은 지하철 역에서, 그 사람은 버스안에서도 계속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떠나는 그녀에게 좋은 말은 못해주고 내 생각만하며 잡으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항상 하는 일이 잘되고 행복하길 바랄께. 하는 일 다 잘되고 준비하는 시험 꼭 붙길 바랄게. 답장금지'

 

  담담한 내용을 담은 문자를 보내는 제 손은 떨렸습니다. 이 문자를 보내면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집에 돌아와 그 길로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그래 씁쓸하지만 오래사겼고, 좋은 사람이었으니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하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친구들이 힘내라 짜식아 하면서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돌아가고 홀로 남은 그때. 술을 마시며 담담하게 아 그래 이제 끝났구나. 마음을 접고 나도 나를 위해 살자라고 생각했던 그 생각은 어디로가고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좁아터진 원룸 어디를 둘러봐도 남아있는 그녀가 준 책, 선물, 편지 등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좋았던 그 때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너무 슬프더군요. 술을 그렇게 진탕으로 먹었음에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보내면서 먹은 것도 없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월 2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녀가 준 것들을 정리하자. 그러면 한결 나아질거야 하는 생각에 그녀가 준 것들을 하나하나 박스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리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보고싶은 생각이 또 다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준 편지들. 그 편지에서 그녀는 나는 너 밖에 없다, 사랑한다라는 말들을 조그맣고 귀여운 글씨로 길게 써놓았습니다. 마치 그녀가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아직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십번을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습니다. 진상부리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낯 같은 희망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한테 정말 이제 기회는 없는걸까? 내가 앞으로 많이 노력하면 안될까?'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로 들릴 정도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전화기를 부여잡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만약 그녀가 잠들었다면 아침까지 그 핸드폰을 부여잡고 답장을 기다렸을 지도 몰랐습니다. 십분 정도 지난 후 문자가 왔습니다.

 

 '안돼'

 

  짧막한 두 글자. 그 두 글자를 보니 또 다시 참았던 눈물이 나왔습니다. 문자 한번만 보내고 포기해야지 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또 다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정말 너만 사랑하고, 아직도 너무 사랑해. 너 아니면 안될 것 같아. 제발 한번만 기회를 주면 안되겠니?'

 

  신을 믿지도 않지만 기도를 하면서 소리내어 제발 돌아와라 제발돌아와라라고 빌었습니다. 잠시 후의 문자.

 

  '내가 더 모질게 하기 전에 그만해'

 

  그녀는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를 잡으려고 해봤자 그건 좋았년 3년 8개월의 끝을 더럽고 추접스럽게 끝내는 것이라는 걸 깨닳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답장 버튼을 눌렀습니다.

 

  '미안했어. 하지만 널 정말 잡고 싶었어. 미안해. 내가 여태까지 너에게 잘못했던 것 모두 미안해. 나 때문에 힘들었던 3년 8개월 나보다 훨씬 좋은 남자를 만나서 부디 행복하길 바랄께. 잘가 나의 첫사랑아. 너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

 

  1월 2일 10시인 지금. 아직도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었습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저를 가득 채우고 있는건 오직 그녀 뿐이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