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

최종연201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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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넬로페 크루즈가 다리를 벌릴수록 그것이 달콤하기보다는 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인]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면서 그 의미를 즐거운 동화로 다시금 포장하려는 까닭이다.

 

 프레임에 관하여 - 우선 영화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관객의 욕망은 주제의식과는 반대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극중의 귀도 콘티니(다니엘 데이-루이스 분)는 담배를 물고 사는 구순기(口脣期)적인 인물이다. 그의 판타지가 영화로 표출되고자 하는 욕망이 좌절될수록, [나인]을 보는 관객은 거꾸로 영화 밖의 자신들은 귀도와 반대로 자신을 위치시켜 건전한 욕망과 판타지는 이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반사적 인식은 해피엔딩에서 극도로 증폭된다) 하지만 관객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귀도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지위에 대한 불안의 그물코가 매순간 조여옴을 느끼며 살아갈 뿐이다.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가 실은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존재하는, 파생된 실재의 완벽한 모델임을 지적한 바 있다. [나인]이란 화려한 영화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형태로 자본주의적 불안과 소외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러한 불안과 소외를 '은막 위에서' 드러냄으로서 그 비중을 반감시키고 있다. 더구나 현실 - 영화[나인] - 영화제작으로 이어지는 2중의 틀은 그 안에 '또다른' 영화 제작이 있기에 눈앞의 영화조차 현실로 느끼게끔 한다.

 

  현대의 관객은 귀도의 화려한 삶에 일차 감격하고, 귀도의 외롭고 불안하고 꼬인 욕망에 공감하며, 실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증폭된 불안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까지 이른다. 이윽고 2년간의 자기 성찰이라는 '극적'인 기제로 귀도가 체제유지적 인간으로 돌아오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서 영화는 "거 봐. 자본주의 하에서는 화려할 수 있고, 너의 불안도 조금 생각을 바꿔먹으면 해소될 수 있어" 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카드사에서 열심히 쓰느라 고생했다며 보내오는 여행 및 명품 카탈로그와 무엇이 다른가.

 

  영화는 이를 위해 특별히 7명의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각각의 여배우들은 원숙함(덴치), 세련됨(키드먼), 맹목성(크루즈), 조강지처성(코띨라르), 주체성(허드슨), 모성(로렌), 그리고 도발성(퍼거슨)을 대표하며, 각각에 대한 욕망의 증폭을 자극한다. 김밥밖에 모르던 사람에게 도미초밥도 주고 고등어초밥도 주고 참치초밥도 주는 격이다. 이는 다시 사랑의 욕망이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사랑에 관하여 - 귀도가 보이는 욕망의 결핍은 강한 어머니 때문인가? 귀도가 칼라(페넬로페 크루즈 분)를 원하면서도 밀어내는, 그러면서도 결국 버릴 수 없는 까닭은 안정적인 사랑의 욕구로 채워지지 않는 위험하고 도발적인 사랑의 욕구가 별도로 있는 까닭인가?

  마에스트로 콘티니는 결코 자신을 좋다고 하는 여성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고 읽힌다. 그럼에도 그의 성적 판타지가 세분화되고 증폭되는 까닭은 결국 욕망의 대상들이 세분화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자본주의적인 기제임은 홈쇼핑채널을 5분만 보면 알 수 있다. 귀도가 아무리 애정결핍을 겪고 왜곡된 여성성을 키워왔더라도, 지금 그의 욕망을 세분화하는 것은 그의 개인사만의 탓이 아니다.

 

  때때로 욕망은 클라우디아 (니콜 키드먼 분)이 분수대에서 말한 것처럼 "왜 그때 내 방으로 올라오지 않았죠?" 라고 묻고 마치 '한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치는 것처럼' 개인에게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방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키드먼과는 달리, 체제는 개인에게 손내밀 수 없기에 유지될 뿐이다. 분리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 부인을 '선택'하는 (아마도 자연스레 정리된 나머지를 고려하면) 귀도의 결말은, 결국 체제에 대해서 '행위'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또한 체제 대 개인의 관점에서, 키드먼이 가발을 벗고 '이게 나에요' 라는 장면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장면이기에, 결국 내가 욕망하는 대상에 대해 뭘 알고 그리 마음을 삭였던가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짓게 하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인 이유일 게다.

 

남자로서의 욕망과, 지위에의 불안, 더구나 사랑에 대한 불안을 귀도 콘티니로 풀어낸 [나인]은 '알랭 드 보통'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구나 자본주의적 욕망의 세분화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나인]은 아무리 196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여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 자기 전 급하게 쓴 글이다.

** 꼭 별점을 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