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김은모20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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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및 코스>

계산역4번출구?인가?나와서 경인여대가는방향 직진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건너편 올라가다보면 등산로 초입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지나 정상도착 징매이고개 방향 조금내려가다보면 넓은 휴식공간나옴 거기서 오른편 방공호사이로 내려가서 피고개쪽인가???멀리 철탑보이는 방향으로 고개능선쭉 타면서 종주식 하산..하산하면 매일경제신문선정 우수아파트나옴

거기서 검단역으로 해서 집으로 ㄱㄱ씽~

산행시간은 먹을것 먹고 산행인연과 담소하다보니 3시간정도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으로 불려왔으며 남단으로는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 조성중에 있는 인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원으로서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계양구 방축동, 목상동, 다남동, 계산동과 서구 공촌동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주변녹지를 포함하여 약 3,836천㎡에 이르고 있다.
또한 계양산은 계양산성, 봉월사터, 봉화대의 유적지와 고려시대의 대학자 이규보가 거쳐하던 자오당터와 초정지가 위치한 곳으로 역사성과 유서가 깊은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서는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진산이란 각 고을을 품는 가장 큰산으로 그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 , 현 계양구의 행정관할지였던 부평도호부에서는 계양산을 주산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정초가 되면 많은 구민들이 자녀들과 함께 새해 첫날 신년맞이 산행을 계양산으로 하고있다. 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은 고도를 헤아리며 포부와 희망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 정신이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듯하다.

계양산은 한강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국방의 요새로 중요한 산이었다. 또 백제 초기부터는 현재의 공촌동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을 이 계양산 징매이고개를 넘어 서울 신정동 토성을 거쳐 지나던 소금통로 구실도 했다고 한다.

산으로 접어들면 회양목 등 수목이 매우 울창하다. 어느 봄날 사는데 바쁘다가 언뜻 산을 쳐다보면 어느새 짙푸른 물감으로 온통 녹색의 푸르른 변신을 하고 있어 계절을 제일 먼저 알린다.

전해지는 애기로는 계양산 건너편 강화도에 마리산과 마주했는데 마리산을 형산, 계양산을 아우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곳 마리산 반쪽이 떠내려가서 계양산이 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계양산에 구름이 뜨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해풍이 몰아치면 비가 개인 다고도 전해 온다.

지금도 산의 모습을 잘 관찰해보면 장마철이나 큰비가 예상될 때는 산중턱이 온통 먹구름으로 휘감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계양산은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저력을 느끼게 한다. 계양산은 계양산성, 중심산성, 봉월사터, 봉화대 등의 유적지를 통해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 대학자 이규보가 거처했던 자오당터와 초정지는 유서가 깊은 곳으로 학생들의 훌륭한 교육장소가 되고 있다. 그의 저서 '망해지'에는 "길이 사면으로 계양지경에 났는데 오직 한면만이 육지를 통하고 삼면은 물이다."라고 계양산을 예찬한 구절이 나온다.

1988년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출발한 계양산을 중심으로한 계양공원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도시민들의 휴식과 생태체험의 장소로 널리 이용된지 오래다. 마땅히 산처럼 푸르게 푸르른 계양이 되어 오늘날 수도권 근교지의 가볼만한 산행지로 부상하리 만큼 대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