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에게 있어서 새해의 첫날은 아주 끔찍 그 자체였다. 그녀의 얼굴빛은 폭식으로 인해 벌겋게 일어나 있었고, 조금의 음식물과 함께 기름 범벅이 되어있는 머리칼은 얼른 씻겨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에 뼈들은 괴로운지 삼분에 한번씩 자세를 고쳐주어야만 했다. 이런 조용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테트리스 게임에만 온 정신을 집중시킬 뿐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그녀가 꿈꾸던 스무살의 새해가 아니었다. 날씬한 몸매로 청치마를 입고 세상속에 불타는 청춘이 되고싶었던 그녀였는데...
한달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뻐져가던 중이었고 거의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수많은 다이어트 중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되었던 적은 없었기에 ‘아~ 드디어 나의 고통을 알고 하늘이 도와주시는구나!’ 하며 기뻐했었던 수아였다. 하지만 폭식으로 인해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게 문제였다. 그래도 한가지 놀라운 발견을 한게 있다면, 인간은 24시간 풀으로 먹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잠자기, 화장실가기, 중간중간 음식 준비하거나 뭐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꼭 옆에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가 있어야만 한다. 만화책일지라도....
인터넷과 티비에선 미남,미녀들이 천지로 활개치고 다니는데, 그럴수록 더우울하기만 한 수아였고, 점점 살쪄가고 움직이기 힘들어진다는 패닉상태를 이지위해선 무언가에 빠져야만 했다. 슬프게도 그건 테트리스게임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새해에 해돋이를 보지도 못하게하고, 언니와 앨범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친구의 연락을 씹게 만든 이유였다. 그리고 몇날 몇일을 시간의 물결을 벗어나 게임속에 빠져지냈다. 하지만 영원히 그 물결을 벗어날 수 있을까?...
2
“ 아 너 계속 컴퓨터오락에만 빠져있을거냐”
그녀의 모습을 보다못한 아빠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말을이었다.
“너 학교복학한후 그만둔지 얼마됐다고 이렇게 못난습만 보이는거냐! 학교를 그만뒀으면 검정고시학원이라도 열심히다녀야하는게 아니냐!!”
수아는 벌겋게 물들어가는 아빠의 얼굴에 묵묵히 컴퓨터를 끈후 고개를 숙이고 있을뿐이었다.
“대체 뭐가문제냐. 학원은 잘다니다가 요새 왜또안나가는게냐? 그 한나인지 뭔지하는애가 혹시 괴롭히는거냐 ?응? 말을해보래도!! 그리고 방은 왜저렇게 엉망이냐? 니가 개돼지 소냐?”
이십분가량 인형과얘기를 한것처럼...독백대사를 읊은것마냥...그렇게 그 대화는 끝이났다.
아빠의 돌아가는발자국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수아의 부동자세는풀렸다. 조금만 더 아빠의말이 길어졌더라면 그녀의 목은 무사하지 못했을지도...
수아는 조용히 컴퓨터방문을 열고는 아빠가화장실에들어간틈으타 잽싸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폐인이 되어가는 중에도 제일 두려워하던 사람은 아빠였기에 한동안 미친 듯이 뛰어대는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언니가 한참 다이어트중이던 그녀에게 ‘이제 곧 아가씨잖아^^ ’ 라는말과 함께 선물해준 바바리자켓과 회색이 탁하게 감도는 정장치마가 바닥에 뒹굴고있는모습이 보였다. 거울속 자신의 익숙한 모습도 보였다. 약 육년간 퉁퉁한 모습이었으니 한달전에 살빠진 모습보단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더 익숙해 보인단 사실이 그녀의 심장을 답답하게 조여오는 듯했다.
“그래 이젠 저치만 들어가지도않겠군. 손수아 잘한는짓이다.”
현실. 그녀는 현실로돌아왔고 그현실은 생각하고 싶지도않았다.
내일아침이 밝으면 그녀는학원으로 가야만 할것이고,이제 날씬해져가던모습 대신 그녀의이중턱살을 학원 학생들한테 보일수밖에없을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다. 무기력증.
그녀는 요새 매일을 무기력속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이젠 절대남자친구를사귈수없을거야 내청춘은끝이라고
그말으끝으로 그녀의 숨죽인 울음이 밤을 장식했다.
3
수아는 눈을 뜨자말자 어제완 사뭇다른 아빠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제껜 미안하다. 하지만 니가 학원 끊어달라고 한거니 학원은 열심히 다녀야 할거 아니냐. 돈 백만원이 옆집애 이름도 아니고 말이다. 안그러냐?”
수아는 학원이란 말에 자동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자 그럼 언제 갈거냐? 오전반가기엔 시간이 좀 늦어버린거 같고, 오후반 갈래?”
아빠는 자신이 먹을 커피에 분유를 타며 수아를 대답을 기다렸다.
“아 아니.. 저녁반 갈거야.”
수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화장실로 대피하듯 들어가버렸다.
‘저녁반엔 자주 안갔으니까 날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제발 그래야할텐데.. 휴..’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난후 손가락이 근질거리는게 느껴졌다. 이것은 테트리스가 그녀를 부르는 주문이었고, 그것은 수아를 아빠몰래 다시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날따라 시간이 어쩜 그렇게도 잘가던지 수아는 컴퓨터 시계가 세시를 가리키자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직 학원갈 준비하려면 두시간이나 남았는걸. 아직 내겐 두시간의 자유가 있어’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좀처럼 쉽지않았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그녀는 컴퓨터를 끄고 그녀의 방으로 갔다.
“어떤옷을 입어야하지...”
그동안 찐살을 어떻게하면 최고로 날씬해 보이게 할수 있을까 생각한 수아였다. 하지만 그녀의 옷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볼살까지 숨길순 없을 듯 했다. 최종적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피오르츠에서 정가보다 훨씬 싸게 주고산 핑크빛 오리털 코트였다. 이 코트를 입고있으면 보름달이 된 그녀의 볼살이 적어도 대두같아 보이지 않을수 있었다.
“몸이 좀 거대해보이긴 하지만 오리털 코트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싶은 유혹이 너무나도 강했지만, 학원에 그런 것을 쓰고 간다면 분명 숨어다니는 사람같아 보이거나 범죄자처럼 보일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꽤 오랜만에 10층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따스한 겨울저녁이었다. 버스정류장까지는 그다지 멀진 않았지만, 그녀는 여러명의 여자를 볼수있었다. 빨간색 떡볶이 코트와 미키마우스가 주인공인 회색 니트. 그리고 청치마를 입은 긴생머리의 나름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 줄무늬 목티가 몸에 딱달라붙었지만 그래도 용감해졌기에 한껏 가슴을 내밀고 웃으며 달려가는 여자. 여성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코트와 회색 스타킹을 입고는 얼른 코트 안의 이쁜 옷을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있는 여자.
어! 그리고 저긴 마음속으로 ‘난 크리스마스의 여자~ 크리스마스 여자 될거야~’ 라고 외치고 있는게 분명한 여자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가볍게 걸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어깨가 푹파였지만 그녀는 아무 상관 없어보였다. 수아는 그녀가 정말 날씬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빨간 떡볶이 코트에 가려서 안보이긴 하지만 저 티의 뒤에는 귀엽게 흰색 방울이 어깨뒤로 매달려 있으리라... 체크무늬 치마안에 입은 스타킹이 검은색이라서 날씬해 보이는게 아닐것이라며 수아는 생각했다. 하얀얼굴이 제법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수아는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이자 달려갔다. 곧 학원에 가는 버스가 도착할 것이다. 그녀도 버스를 기다리는지 내옆에 서서는 연신 버스가 오는 쪽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러더니 휴대폰으로 자기촬영을 누르고는 앞머리가 헝클어졌는지 확인을 한다.
‘어이. 앞머리가 헝클어져도 넌 이쁘다고. 이젠 그런거 걱정하지 않아도돼. 조금만 더 빼면 되니까. .. ’ 수아는 머릿속에서 그 말을 삼켜본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수아는 맨뒷자석에 앉았다. 수아는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그 크리스마스 여자도 같은 버스를 탔으며 맨뒷자석에 앉으려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무릎위에 앉으려고 하자 더욱 놀랐다.
“저 저기.. 저기 뭐하시는 거에요! 저기요 ! ”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그 크리스마스 여자는 결국 수아의 무릎위에 앉아버렸다. 그 순간 크리스마스 여자는 가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버스안엔 다행히도 사람이 두어명 뿐이었다.
‘내가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뚱뚱한 모습 때문에 당당하지 못하게 고개만 숙이고 다니고, 앞머리가 까질까봐 매순간 걱정하고,..창피해서 이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어. 근데 아까 본 여자들은 더 이상 대인기피증이나 숨어사는 그런것과는 멀어져있었지.. 그리고 그것은 나였고말이야!!. ’
4
수아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기만 할뿐 도저히 집중이 안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얼른 출석체크를 돌리길 기다렸다. 이제 내이름을 쓰고 집중안되는 이교실을 벗어날 수 있을터였다. 그럼 선생님이 아빠의 폰으로 ‘오늘은 꼭 학원 보내주세요’와 같은 문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잠시후 하얀 종이가 모자를 쓰고 흰색 마스크를 한 여학생의 손에서 그녀에게 넘겨 졌다.
‘내가 오늘 하고싶었던 패션이군. 쟤도 저렇게 하고 다니니까 내일부터 나도 저렇게 하고 다니면 되겠다.’
수아는 아까 잠시 뒤로 돌아보았을때 남학생이 있는 것을 목격했기에 종이를 뒤로 넘겼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그녀의 손이 무안해짐을 느꼈다. 살이찌면 이런 작은행동에도 창피감을 느낀다는 체험이 오랜만에 그녀를 엄습했고, 이 느낌은 불쾌한 손님이었다.
한참을 그려놓은 그림캐릭터를 이볼펜 저볼펜으로 색칠하던 수아는 실수로 볼펜을 떨어뜨리고 말았고, 망연자실했다. 그저 조용히 수업을 듣고 소리없이 학원을 나가길 바랬는데, 이젠 이 좁은 책상사이에서 어떻게 저 볼펜을 꺼낼것인가.
‘머피의 법칙이 따로없군. 정말.!’
그녀는 앞으로도 팔을 뻗어보았고 옆으로 살짝 누워서도 팔을 뻗어보았지만 볼펜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정말 일어나고 싶지않았다. 그녀의 옆하고도 뒤에 남학생들이 앉아있었는데, 수아는 앞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어쩌면 뒷모습만 보고 머리가 기니까 이쁘다고 생각했을지도몰라. 줍지말까 그냥?..’
하지만 수아는 주워야만 했다. 벌써 그 볼펜을 줍기위해 팔을 이리저리 뻗은 것을 뒤에 남학생들이 보았을테고, 줍지않는다는게 왠지 더 이상해 보이는것만 같았다. 수아는 오리털코트와 함께 일어났고, 끔찍하게도 의자소리는 너무 크게 났다. 수아는 오리털코트 때문에 더 둔해진 자신의 팔을 저주하며 끙끙거리며 볼펜을 잡았다. 의자에 도로 앉으며 그 볼펜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는 수아였다. 뒤에서 왠지 키득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만같은 느낌이 든 수아는 애써 그림에만 집중해야했다.
수업이 끝나자말자 그녀는 집을 처음 나왔을때와는 달리 날쌘 토끼가 되어야만 했다. 얼른 그녀 자신의 모습을 집안에 고이 들여보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까진 달려서 갔고, 버스정류장까진 날아서 갔으며, 버스안까진 점프해서 갔고, 집까진 순간이동해서 간 그녀는 자신의 방에 도착해서의 숨을 몰아쉴수 있었다. 이불속에 누워 그녀는 비통하게 중얼거렸다.
‘이래서 싫었는데... 이래서 날씬해지고 싶었던건데...버스안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사소한 일도 창피해서 못하는 내가 싫었어. 그런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않았으니까.. 매순간 앞머리가 날려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까봐 벌벌 떠는 내자신도 싫었고.. 사람들앞에서 아무말도 못하는 내가 싫었고... 고개만 숙이고 다녀야하는 내자신이 싫고. 당당해지고 싶었어. 근데 난또 이렇게 되어버렸어... 난또...’
5
다섯식구임에도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수아네는 그리 시끄럽진 않은 가정이었다. 때때로 수아와 그녀의 언니인 수진이가 일명 ‘crazy 장난’을 치거나 또는 수아가 일방적으로 동생인 희아에게 장난을 치는 날을 제외하곤 말이다.
겨울의 묘미 중 하나인 방학이 한창 진행중이던 어느날. 수진이는 그녀의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희아 역시 마루에서 컴퓨터를 하고있었으며, 수아는 책상에 앉아 고독을 씹고 있던 중이었다. 장난같은 것은 없었기에 자판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곤 아주 조용한 시간이었다.
“엄마 오늘 주희 주환이 와? 정아도 와? ”
처음으로 정적을깬 것은 수아의 동생인 희아였다. 마루에서 이것 저것 정리를 하고 있던 엄마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너 주희 주환이 오면 수학 가르쳐 준다고 했지?”
방음이 튼튼하지 않은 방문을 통해 수아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젠장!. 오늘 주희 주환이가 오는 날이라고!? 벌써? ’
주희와 주환이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쌍둥이 남매였고, 그녀의 사촌 동생 들이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맞벌이 부부 셨기 때문에, 쌍둥이 남매의 중학교 수업을 걱정하셨다. 고민끝에 외삼촌은 누나에게 쌍둥이들의 교육을 부탁했고, 수아의 엄마는 흔쾌히 그 부탁을 수락하였다. 수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요새들어 그녀는 먹을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사촌동생들 앞에서 돼지같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결단코 싫었다.
‘윽 이제 내자유는 몇시간 후면 끝이겠군.’
다이어트 중일때부터 수아의 엄마는 사촌들이 겨울방학에 올것이라며 광고를 했었다. 그때의 수아는 그 광고를 기뻐했다. 사촌들에게 날씬해진 모습을 보여줄수 있을 뿐더러, 집안이 적적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녀는 남은 자유시간이라도 마음껏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새로 사다놓은 분유통과 숟가락, 다이제스티브와 귤몇개를 가지고 허겁지겁 컴퓨터방으로 들어간 수아는 요새 한창 빠져있는 ‘위기의 주부들’ 이라는 미국드라마를 컴퓨터에서 키기 시작했다.
‘좋았어!’
수아는 팔걸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음식들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곤 눈과 입의 유희 속에 빠져들어갔다.
위기의 주부들과 함께 다이제스티브가 바닥을 보일즈음, 방문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벌써 왔나보군.”
그녀는 얼른 아빠가 들이닥치기전에 음식의 잔해들을 안보이게끔 치우고는, 손거울을 통해 앞머리를 정리했다. 외숙모와 외삼촌께서 그녀를 보고 보일 반응을 상상하자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수아는 긴머리로 최대한 볼살을 가리고는 방문자들을 맞이하기위해 방을 나갔다. 다행인지 수진이와 희아. 그리고 엄마 아빠가 현관문 앞에 붙어서 있었기에, 외숙모와 외삼촌, 그리고 그녀의 사촌동생들의 모습이 하나의 파편 조각들로 보였다.
“고모~ 저희 와떠요~ 고모 정아 보고싶었어요?”
쌍둥이 남매의 막내되는 재롱둥이 정아가 혀짧은 목소리로 고모에게 반갑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외숙모. 외삼촌!”
수아는 시끄러움 속에서 얼른 인사를 하고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인사 들었겠지 뭐.’
외숙모와 외삼촌이 사촌들을 맡기는 동안 시간은 꽤 걸릴것이었다. 커피도 마셔야 할테고 여자들끼리의 수다와 남자들끼리의 ‘땅값’ 얘기라던가 ‘바둑’에 관한 대화도 빠질수 없을 것이다. 그때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구석에 놓여진 이불은 그 지루함을 없애줄 수 있는 탈출구와도 같았다. 수아는 이불속에 웅크리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랬다.
수아가 일어났을때는 한밤중이었고, 아빠는 학원에 가라는 소리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아마도 갑자기 늘어난 식구에 정신이 없었으리라.
‘윽.. 이래서 먹고 바로 자면 안돼..왜 이렇게 거북한거야..’
수아는 물을 마시기 위해 마루로 나갔고, 그녀의 아빠가 코를 골며 마루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볼수있었다.
‘아마 사촌들은 큰방에서 자고 있겠군.’
수아는 물통을 입에 대지 않고 노련하게 입속으로 넣어 삼킨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몇 번을 이불속에서 뒤척거렸을까...
‘이런. 낮에 잠을 자는게 아니었어. 지금 잠이 안들면 뭘하란 말이야!’
그녀는 불을 키고는 다시 마루로 나와서 조용히 냉장고문을 열었다. 속이 거북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입속에 털어넣고 싶었다.
‘어디보자.. 맛있는게...’
냉장고 윗칸부터 훏어보기 시작하던 수아는 맨 아랫칸에 치토스와 꽃게랑 두봉지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사촌동생들이 오기 전까진 없던 것들이었다. 머릿속엔 적색 경보등이 깜빡여댔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녀는 과자 두봉지를 소리나지 않게끔 조심히 꺼냈다.
‘어? 저거 해리포터 책아니야?’
수아의 방에서 흘러나온 불빛을 통해 식탁위에 보인 것은 책이었고, 과자와 함께 들고가면 좋은 것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군침이 돌다니.. 컴퓨터로 치자면 난 렉에 걸린것일지도 몰라.’
그녀는 사촌동생것임에 분명한 책을 펼치고 과자 봉지를 뜯었다. 그날밤. 수아의 방은 새벽 세시가 되도록 잠들지 않았다.
6
“언니!! 언니!!”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앙칼진 목소리에 수아는 힘겹게 눈을 떴다.
“뭐야. 나 아직 잠이 더 필요하다구...”
희아는 언니의 책상위에 놓인 과자 봉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언니가 이거 먹었어? ”
수아는 사과를 했지만, 그 사과엔 전혀 진심이 들어가 있지않았다.
“미안 하다면 다야? 이거 주희랑 주환이랑 같이 먹으려고 산거란 말이야!!”
“히히.. 미안... 미안해~ 돈주면 되잖아~”
수아의 머릿속엔 다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건성적인 말투에 기분이 나빠져버린 희아는 몇 번더 투벌거린후에 방에서 빠져나갔다. 방금전과 같은 상황은 오년동안 자주 있어왔던 일이었고, 수학공식과도 같이 변함없었다. 중간중간 다이어트를 할때엔 그 도둑질이 중단된다는 공식은 중3 인수분해 공식을 찾아보면 있으려나...
“누나 과자 누가 먹었어?”
주환이가 희아에게 물었지만, 벌써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눈치이다.
“아 ~ 귀신이 먹었어 하하 하하...”
희아는 그녀의 언니가 다른사람에게 먹는 모습 같은걸 알리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기에, 과자 도둑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녀는 꽤 착한 동생이었으니까.
“어? 근데 내 책이 어디갔지?”
주환이는 책을 찾는다는 핑계로 수아의 방문을 열었다. 이순간 수아와 주환이의 감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다만 수아의 표정엔 놀라움이 들어났고, 주환이는 애써 그 감정을 숨키려 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었다. 작년 12월 13일 막내 삼촌의 결혼식에서 보았던 모습관 사뭇 다른 사촌누나였다.
“하하.. 주 주환아 안녕 ”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수아였다.
“으응 누나.. 어? 근데 내책이네”
“응 누나 좀 읽을께 괜찮지?”
“응”
주환이는 과자 봉지를 흘끔 쳐다본후 수아의 방문을 닫아주었다.
거울은 말해주었다. 당신의 앞머리가 올라가있노라고. 당신의 두눈이 짝째기로 부어있노라고. 당신의 볼살이 터질 것 같다고. 당신의 바지가 할머니 바지 같다고. 당신의 입은 윗옷이 하필이면 반팔 살색 내의 였노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지금 내모습은 최악이야 그만 해!! 젠장! ”
수아는 거울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사촌동생들이 머문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수진이는 정아가 자신의 딸인마냥 귀여워했고, 희아는 그녀보다 한살작은 쌍둥이 남매들과 아주 잘 어울려 놀았다. 마루에 놓인 컴퓨터는 사촌들과 희아의 차지였기 때문에, 수아가 몰래 하곤했던 컴퓨터방의 컴퓨터는 이제 아빠의 바둑게임장으로 변해있었다. 수아는 학원가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방안에 틀혀 박혀있었는데, 방에서 하는 것이라곤 책읽으면서 먹는 것뿐이었다. 물론 방문을 잠그는 것은 필수였다. 그녀의 창문을 열면 바로 아파트 복도 였으므로 과자를 사온날이면, 몰래 그녀의 방창문으로 집어 넣었 후, 사촌동생들 몰래 방에서 먹었다. 그러다 과자가 남을때면 조용히 희아를 불러서 사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처음 삼일정도 동안 주희와 주환이가 자주 수아의 방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져 버렸다. 그들이 방을 찾아올때마다 수아는 살찐모습에 대한 쪽팔림을 애써 숨기면서, 어색하게 말들을 건네었는데, 그들까지도 어색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다. 어느새 수아의 방은 혼자만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수진이는 한껏 꾸민 모습을 한 채 수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노크소리에 놀란 수아는 급히 밥그릇들을 책상밑으로 옮긴후, 방 창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노크의 주인공은 말대신 손을 더욱 빠르게 해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분명 언니겠군. ’
수아는 문을 열면서 얼른 언니를 안으로 끌어 당겼다.
“언니 얼른 문닫아! 왜 ?”
“아 나 괜찮은지 좀 봐줘”
수진이의 몸에 갈색 바바리 자켓이 입혀져 있었다.
“어?.. 언니 그거 내 옷아니야? 언제 가져갔데?”
“헤헤 미안. 나 오늘 좀 빌려줘~”
수아는 언니가 선물해준 옷을 제일 처음 입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은.. 아주 약간은 서글퍼 져버렸다.
‘뭐. 어차피 몇 년간 썩혀지는 것보단 낳으니까.. ’
“알았어. 근데 어디가?”
수진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왜? 또 김원서 만나러 가는거야? ”
김원서. 그는 언니와 열 살차이가 나는 남자친구였으나, 현재 헤어진 상태였다. 입속에서 들리지도 않는 말을 오물거리는 수진이를 향해 수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 이제 다신 안만난다며! 지금 장난해?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봤을때 김원서가 한 짓을 지금 잊었어? 생각해보라구!”
수아는 분노의 눈빛으로 언니를 쏘아보며 그날의 수치스러움을 회상했다.
수아와 수진이는 오랜만에 교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있었고, 그교회는 수진이의 나자친구도 다니는 곳이었다. 그는 나름 충실한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처음 수진이를 전도한 것도 그였다. 교회에 전도되었을 당시 원서의 사랑의 불은 엄청났고, 수아는 그의 언니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최근 수진이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들은 수아였지만, 전혀 믿을수가 없었다. 수아는 언니에게 교회 갈 시간이 다되었음을 알리기위해 방문을 노크하려다가 멈추었다. 그리곤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왜에.. 같이 앉으면 되잖아.. 다른 사람들이 보면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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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앉자아... 나 그럼 교회 안갈래.. 나 오빠야 옆에 앉고싶단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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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돼? 같이 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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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들려오는 수진이의 목소리 수아는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그렇게 도도하던 우리언니가!? 말도안돼!"
잠시후 전화통화는 끊겼고, 수아는 얼른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전화를 몰래 엳들었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었다.
“수아야. 나 교회에서 오빠야랑 같이 앉기로 했으니까 넌 학생부 자리에 앉아 알겠지?”
수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고, 그렇게 차량을 통해 교회에 도착했다.
“언니 오빠야 올때까지만 나랑 같이 앉으면 안돼? 나혼자 뻘쭘하단 말이야”
잠시 고민을 하던 수진이는 수아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 한참을 수다를 떨고 있는데, 수진이의 폰에 문자가 왔다. 그것은 막 교회에 도착한 수진이의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였다.
‘그냥 동생옆에 앉아있어.’
수진이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수아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남자친구를 불러 밖으로 나갔다.
‘싸우는거 아니야? 휴.. 김원서 뭐야? 정말? 우리언니 좋다고 할땐 언제고!’
잠시후 수진이가 수아의 옆에 앉았고, 남자친구는 수진이완 반대쪽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예배는 시작되었지만, 언니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수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수아야! 나 나가있을테니까 니가 오빠야한테 잠시 나오라고 해봐. 내가 나오라고 하면 안나올거 같아서.. 알겠지?”
수아가 고개를 끄떡임과 동시에 수진이는 빠르게 예배당 문을 빠져나갔다. 솔직히 수아는 하나님 성전에서 싸운다는 것이 좀 창피하였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수아는 총총 걸음으로 언니의 남자친구에게 갔고, 하필 그때 목사님께서는 일어나서 찬송가를 부르길 요청했다. 수아는 찬송가를 열심히 부르는 언니의 남자친구의 팔을 잡고는 중얼거렸다.
“오빠.. 언니가 잠시 나와보래..”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고는 찬송가 부르는것에 전념했다. 수아는 무시당했다는 것과 동시에 남자줄에 혼자 바보같이 서있게된 것만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짧은 시간 멍해있던 그녀는 예배당을 빠져나가려고 뒤돌아섰다. 그런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는 성도 한분이 있었다.
‘저 똥씹은듯한 표정은 분명... 윽.. 분명 속으로 예배시간에 뭐하는거냐고 욕하고 있을게 분명해..’데 속으로 ‘예배시간에 뭐하는거야?’
수아는 손발이 다 오그라듬을 느끼며 목사님의 설교에서 멀어져갔다. 그녀의 언니는 화장실 앞에 서있었고, 혹시나 해서 몇분을 더 기다렸지만, 수진이의 남자친구는 오지않았다. 두자매는 그렇게 교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하루종일 수진이의 남자친구는 사과의 문자 한통.. 심지어 어떠한 내용의 문자라도 보내지 않았다. 그것에 더 화가난 수진이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겠노라고 선포했고, 철저히 원서의 문자를 씹기로 다짐 또 다짐을 했고, 수아는 헤어지고 만난 전적이 열 번도 더 넘는 언니의 말을 믿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 수진이는 그 다짐을 깨려고 하는 것이다!
“절대 안돼! 언니! 절대 안된다고!!”
“하지만 오빠야가 다 사과했어! 앞으로 교회에서도 같이 앉기로 했는걸!”
평소때 같으면 언니와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것을 그냥 가볍게 넘겼을 수아였다. 그러나 언니의 남자친구가 수아 자신에게 창피 준 것을 생각만 하면, 괘씸함을 느꼈다. 몇분을 반대하던 수아의 말을 수진이 못참겠다는 듯이 막아버렸다.
“그만해! 조금있음 오빠야 도착한단 말이야. 미안 하지만 이건 내연애라구! ”
수진이는 방을 나가버렸고, 수아는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휴,. 그래 어쩌면 내가 김원서한테 화가났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지,. 언니의 연애니까.’
평가좀 해주세요~
그냥 끄적이다가 언니가 재밌다길래.. 어느정도 짓다가..
왠지 언니가 가족이라서 재밌다고 했을까봐 -ㅅ-;;
재밌으면 계속 지어볼려고 하는데 냉정하게 평가좀..
너무 아프게 하지말구요 -ㅅㅠ.
1
수아에게 있어서 새해의 첫날은 아주 끔찍 그 자체였다. 그녀의 얼굴빛은 폭식으로 인해 벌겋게 일어나 있었고, 조금의 음식물과 함께 기름 범벅이 되어있는 머리칼은 얼른 씻겨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에 뼈들은 괴로운지 삼분에 한번씩 자세를 고쳐주어야만 했다. 이런 조용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테트리스 게임에만 온 정신을 집중시킬 뿐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그녀가 꿈꾸던 스무살의 새해가 아니었다. 날씬한 몸매로 청치마를 입고 세상속에 불타는 청춘이 되고싶었던 그녀였는데...
한달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뻐져가던 중이었고 거의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수많은 다이어트 중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되었던 적은 없었기에 ‘아~ 드디어 나의 고통을 알고 하늘이 도와주시는구나!’ 하며 기뻐했었던 수아였다. 하지만 폭식으로 인해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게 문제였다. 그래도 한가지 놀라운 발견을 한게 있다면, 인간은 24시간 풀으로 먹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잠자기, 화장실가기, 중간중간 음식 준비하거나 뭐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꼭 옆에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가 있어야만 한다. 만화책일지라도....
인터넷과 티비에선 미남,미녀들이 천지로 활개치고 다니는데, 그럴수록 더우울하기만 한 수아였고, 점점 살쪄가고 움직이기 힘들어진다는 패닉상태를 이지위해선 무언가에 빠져야만 했다. 슬프게도 그건 테트리스게임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새해에 해돋이를 보지도 못하게하고, 언니와 앨범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친구의 연락을 씹게 만든 이유였다. 그리고 몇날 몇일을 시간의 물결을 벗어나 게임속에 빠져지냈다. 하지만 영원히 그 물결을 벗어날 수 있을까?...
2
“ 아 너 계속 컴퓨터오락에만 빠져있을거냐”
그녀의 모습을 보다못한 아빠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말을이었다.
“너 학교복학한후 그만둔지 얼마됐다고 이렇게 못난습만 보이는거냐! 학교를 그만뒀으면 검정고시학원이라도 열심히다녀야하는게 아니냐!!”
수아는 벌겋게 물들어가는 아빠의 얼굴에 묵묵히 컴퓨터를 끈후 고개를 숙이고 있을뿐이었다.
“대체 뭐가문제냐. 학원은 잘다니다가 요새 왜또안나가는게냐? 그 한나인지 뭔지하는애가 혹시 괴롭히는거냐 ?응? 말을해보래도!! 그리고 방은 왜저렇게 엉망이냐? 니가 개돼지 소냐?”
이십분가량 인형과얘기를 한것처럼...독백대사를 읊은것마냥...그렇게 그 대화는 끝이났다.
아빠의 돌아가는발자국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수아의 부동자세는풀렸다. 조금만 더 아빠의말이 길어졌더라면 그녀의 목은 무사하지 못했을지도...
수아는 조용히 컴퓨터방문을 열고는 아빠가화장실에들어간틈으타 잽싸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폐인이 되어가는 중에도 제일 두려워하던 사람은 아빠였기에 한동안 미친 듯이 뛰어대는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언니가 한참 다이어트중이던 그녀에게 ‘이제 곧 아가씨잖아^^ ’ 라는말과 함께 선물해준 바바리자켓과 회색이 탁하게 감도는 정장치마가 바닥에 뒹굴고있는모습이 보였다. 거울속 자신의 익숙한 모습도 보였다. 약 육년간 퉁퉁한 모습이었으니 한달전에 살빠진 모습보단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더 익숙해 보인단 사실이 그녀의 심장을 답답하게 조여오는 듯했다.
“그래 이젠 저치만 들어가지도않겠군. 손수아 잘한는짓이다.”
현실. 그녀는 현실로돌아왔고 그현실은 생각하고 싶지도않았다.
내일아침이 밝으면 그녀는학원으로 가야만 할것이고,이제 날씬해져가던모습 대신 그녀의이중턱살을 학원 학생들한테 보일수밖에없을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다. 무기력증.
그녀는 요새 매일을 무기력속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이젠 절대남자친구를사귈수없을거야 내청춘은끝이라고
그말으끝으로 그녀의 숨죽인 울음이 밤을 장식했다.
3
수아는 눈을 뜨자말자 어제완 사뭇다른 아빠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제껜 미안하다. 하지만 니가 학원 끊어달라고 한거니 학원은 열심히 다녀야 할거 아니냐. 돈 백만원이 옆집애 이름도 아니고 말이다. 안그러냐?”
수아는 학원이란 말에 자동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자 그럼 언제 갈거냐? 오전반가기엔 시간이 좀 늦어버린거 같고, 오후반 갈래?”
아빠는 자신이 먹을 커피에 분유를 타며 수아를 대답을 기다렸다.
“아 아니.. 저녁반 갈거야.”
수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화장실로 대피하듯 들어가버렸다.
‘저녁반엔 자주 안갔으니까 날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제발 그래야할텐데.. 휴..’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난후 손가락이 근질거리는게 느껴졌다. 이것은 테트리스가 그녀를 부르는 주문이었고, 그것은 수아를 아빠몰래 다시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날따라 시간이 어쩜 그렇게도 잘가던지 수아는 컴퓨터 시계가 세시를 가리키자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직 학원갈 준비하려면 두시간이나 남았는걸. 아직 내겐 두시간의 자유가 있어’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좀처럼 쉽지않았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그녀는 컴퓨터를 끄고 그녀의 방으로 갔다.
“어떤옷을 입어야하지...”
그동안 찐살을 어떻게하면 최고로 날씬해 보이게 할수 있을까 생각한 수아였다. 하지만 그녀의 옷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볼살까지 숨길순 없을 듯 했다. 최종적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피오르츠에서 정가보다 훨씬 싸게 주고산 핑크빛 오리털 코트였다. 이 코트를 입고있으면 보름달이 된 그녀의 볼살이 적어도 대두같아 보이지 않을수 있었다.
“몸이 좀 거대해보이긴 하지만 오리털 코트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싶은 유혹이 너무나도 강했지만, 학원에 그런 것을 쓰고 간다면 분명 숨어다니는 사람같아 보이거나 범죄자처럼 보일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꽤 오랜만에 10층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따스한 겨울저녁이었다. 버스정류장까지는 그다지 멀진 않았지만, 그녀는 여러명의 여자를 볼수있었다. 빨간색 떡볶이 코트와 미키마우스가 주인공인 회색 니트. 그리고 청치마를 입은 긴생머리의 나름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 줄무늬 목티가 몸에 딱달라붙었지만 그래도 용감해졌기에 한껏 가슴을 내밀고 웃으며 달려가는 여자. 여성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코트와 회색 스타킹을 입고는 얼른 코트 안의 이쁜 옷을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있는 여자.
어! 그리고 저긴 마음속으로 ‘난 크리스마스의 여자~ 크리스마스 여자 될거야~’ 라고 외치고 있는게 분명한 여자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가볍게 걸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어깨가 푹파였지만 그녀는 아무 상관 없어보였다. 수아는 그녀가 정말 날씬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빨간 떡볶이 코트에 가려서 안보이긴 하지만 저 티의 뒤에는 귀엽게 흰색 방울이 어깨뒤로 매달려 있으리라... 체크무늬 치마안에 입은 스타킹이 검은색이라서 날씬해 보이는게 아닐것이라며 수아는 생각했다. 하얀얼굴이 제법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수아는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이자 달려갔다. 곧 학원에 가는 버스가 도착할 것이다. 그녀도 버스를 기다리는지 내옆에 서서는 연신 버스가 오는 쪽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러더니 휴대폰으로 자기촬영을 누르고는 앞머리가 헝클어졌는지 확인을 한다.
‘어이. 앞머리가 헝클어져도 넌 이쁘다고. 이젠 그런거 걱정하지 않아도돼. 조금만 더 빼면 되니까. .. ’ 수아는 머릿속에서 그 말을 삼켜본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수아는 맨뒷자석에 앉았다. 수아는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그 크리스마스 여자도 같은 버스를 탔으며 맨뒷자석에 앉으려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무릎위에 앉으려고 하자 더욱 놀랐다.
“저 저기.. 저기 뭐하시는 거에요! 저기요 ! ”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그 크리스마스 여자는 결국 수아의 무릎위에 앉아버렸다. 그 순간 크리스마스 여자는 가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버스안엔 다행히도 사람이 두어명 뿐이었다.
‘내가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뚱뚱한 모습 때문에 당당하지 못하게 고개만 숙이고 다니고, 앞머리가 까질까봐 매순간 걱정하고,..창피해서 이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어. 근데 아까 본 여자들은 더 이상 대인기피증이나 숨어사는 그런것과는 멀어져있었지.. 그리고 그것은 나였고말이야!!. ’
4
수아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기만 할뿐 도저히 집중이 안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얼른 출석체크를 돌리길 기다렸다. 이제 내이름을 쓰고 집중안되는 이교실을 벗어날 수 있을터였다. 그럼 선생님이 아빠의 폰으로 ‘오늘은 꼭 학원 보내주세요’와 같은 문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잠시후 하얀 종이가 모자를 쓰고 흰색 마스크를 한 여학생의 손에서 그녀에게 넘겨 졌다.
‘내가 오늘 하고싶었던 패션이군. 쟤도 저렇게 하고 다니니까 내일부터 나도 저렇게 하고 다니면 되겠다.’
수아는 아까 잠시 뒤로 돌아보았을때 남학생이 있는 것을 목격했기에 종이를 뒤로 넘겼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그녀의 손이 무안해짐을 느꼈다. 살이찌면 이런 작은행동에도 창피감을 느낀다는 체험이 오랜만에 그녀를 엄습했고, 이 느낌은 불쾌한 손님이었다.
한참을 그려놓은 그림캐릭터를 이볼펜 저볼펜으로 색칠하던 수아는 실수로 볼펜을 떨어뜨리고 말았고, 망연자실했다. 그저 조용히 수업을 듣고 소리없이 학원을 나가길 바랬는데, 이젠 이 좁은 책상사이에서 어떻게 저 볼펜을 꺼낼것인가.
‘머피의 법칙이 따로없군. 정말.!’
그녀는 앞으로도 팔을 뻗어보았고 옆으로 살짝 누워서도 팔을 뻗어보았지만 볼펜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정말 일어나고 싶지않았다. 그녀의 옆하고도 뒤에 남학생들이 앉아있었는데, 수아는 앞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어쩌면 뒷모습만 보고 머리가 기니까 이쁘다고 생각했을지도몰라. 줍지말까 그냥?..’
하지만 수아는 주워야만 했다. 벌써 그 볼펜을 줍기위해 팔을 이리저리 뻗은 것을 뒤에 남학생들이 보았을테고, 줍지않는다는게 왠지 더 이상해 보이는것만 같았다. 수아는 오리털코트와 함께 일어났고, 끔찍하게도 의자소리는 너무 크게 났다. 수아는 오리털코트 때문에 더 둔해진 자신의 팔을 저주하며 끙끙거리며 볼펜을 잡았다. 의자에 도로 앉으며 그 볼펜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는 수아였다. 뒤에서 왠지 키득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만같은 느낌이 든 수아는 애써 그림에만 집중해야했다.
수업이 끝나자말자 그녀는 집을 처음 나왔을때와는 달리 날쌘 토끼가 되어야만 했다. 얼른 그녀 자신의 모습을 집안에 고이 들여보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까진 달려서 갔고, 버스정류장까진 날아서 갔으며, 버스안까진 점프해서 갔고, 집까진 순간이동해서 간 그녀는 자신의 방에 도착해서의 숨을 몰아쉴수 있었다. 이불속에 누워 그녀는 비통하게 중얼거렸다.
‘이래서 싫었는데... 이래서 날씬해지고 싶었던건데...버스안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사소한 일도 창피해서 못하는 내가 싫었어. 그런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않았으니까.. 매순간 앞머리가 날려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까봐 벌벌 떠는 내자신도 싫었고.. 사람들앞에서 아무말도 못하는 내가 싫었고... 고개만 숙이고 다녀야하는 내자신이 싫고. 당당해지고 싶었어. 근데 난또 이렇게 되어버렸어... 난또...’
5
다섯식구임에도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수아네는 그리 시끄럽진 않은 가정이었다. 때때로 수아와 그녀의 언니인 수진이가 일명 ‘crazy 장난’을 치거나 또는 수아가 일방적으로 동생인 희아에게 장난을 치는 날을 제외하곤 말이다.
겨울의 묘미 중 하나인 방학이 한창 진행중이던 어느날. 수진이는 그녀의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희아 역시 마루에서 컴퓨터를 하고있었으며, 수아는 책상에 앉아 고독을 씹고 있던 중이었다. 장난같은 것은 없었기에 자판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곤 아주 조용한 시간이었다.
“엄마 오늘 주희 주환이 와? 정아도 와? ”
처음으로 정적을깬 것은 수아의 동생인 희아였다. 마루에서 이것 저것 정리를 하고 있던 엄마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너 주희 주환이 오면 수학 가르쳐 준다고 했지?”
방음이 튼튼하지 않은 방문을 통해 수아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젠장!. 오늘 주희 주환이가 오는 날이라고!? 벌써? ’
주희와 주환이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쌍둥이 남매였고, 그녀의 사촌 동생 들이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맞벌이 부부 셨기 때문에, 쌍둥이 남매의 중학교 수업을 걱정하셨다. 고민끝에 외삼촌은 누나에게 쌍둥이들의 교육을 부탁했고, 수아의 엄마는 흔쾌히 그 부탁을 수락하였다. 수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요새들어 그녀는 먹을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사촌동생들 앞에서 돼지같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결단코 싫었다.
‘윽 이제 내자유는 몇시간 후면 끝이겠군.’
다이어트 중일때부터 수아의 엄마는 사촌들이 겨울방학에 올것이라며 광고를 했었다. 그때의 수아는 그 광고를 기뻐했다. 사촌들에게 날씬해진 모습을 보여줄수 있을 뿐더러, 집안이 적적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녀는 남은 자유시간이라도 마음껏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새로 사다놓은 분유통과 숟가락, 다이제스티브와 귤몇개를 가지고 허겁지겁 컴퓨터방으로 들어간 수아는 요새 한창 빠져있는 ‘위기의 주부들’ 이라는 미국드라마를 컴퓨터에서 키기 시작했다.
‘좋았어!’
수아는 팔걸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음식들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곤 눈과 입의 유희 속에 빠져들어갔다.
위기의 주부들과 함께 다이제스티브가 바닥을 보일즈음, 방문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벌써 왔나보군.”
그녀는 얼른 아빠가 들이닥치기전에 음식의 잔해들을 안보이게끔 치우고는, 손거울을 통해 앞머리를 정리했다. 외숙모와 외삼촌께서 그녀를 보고 보일 반응을 상상하자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수아는 긴머리로 최대한 볼살을 가리고는 방문자들을 맞이하기위해 방을 나갔다. 다행인지 수진이와 희아. 그리고 엄마 아빠가 현관문 앞에 붙어서 있었기에, 외숙모와 외삼촌, 그리고 그녀의 사촌동생들의 모습이 하나의 파편 조각들로 보였다.
“고모~ 저희 와떠요~ 고모 정아 보고싶었어요?”
쌍둥이 남매의 막내되는 재롱둥이 정아가 혀짧은 목소리로 고모에게 반갑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외숙모. 외삼촌!”
수아는 시끄러움 속에서 얼른 인사를 하고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인사 들었겠지 뭐.’
외숙모와 외삼촌이 사촌들을 맡기는 동안 시간은 꽤 걸릴것이었다. 커피도 마셔야 할테고 여자들끼리의 수다와 남자들끼리의 ‘땅값’ 얘기라던가 ‘바둑’에 관한 대화도 빠질수 없을 것이다. 그때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구석에 놓여진 이불은 그 지루함을 없애줄 수 있는 탈출구와도 같았다. 수아는 이불속에 웅크리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랬다.
수아가 일어났을때는 한밤중이었고, 아빠는 학원에 가라는 소리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아마도 갑자기 늘어난 식구에 정신이 없었으리라.
‘윽.. 이래서 먹고 바로 자면 안돼..왜 이렇게 거북한거야..’
수아는 물을 마시기 위해 마루로 나갔고, 그녀의 아빠가 코를 골며 마루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볼수있었다.
‘아마 사촌들은 큰방에서 자고 있겠군.’
수아는 물통을 입에 대지 않고 노련하게 입속으로 넣어 삼킨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몇 번을 이불속에서 뒤척거렸을까...
‘이런. 낮에 잠을 자는게 아니었어. 지금 잠이 안들면 뭘하란 말이야!’
그녀는 불을 키고는 다시 마루로 나와서 조용히 냉장고문을 열었다. 속이 거북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입속에 털어넣고 싶었다.
‘어디보자.. 맛있는게...’
냉장고 윗칸부터 훏어보기 시작하던 수아는 맨 아랫칸에 치토스와 꽃게랑 두봉지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사촌동생들이 오기 전까진 없던 것들이었다. 머릿속엔 적색 경보등이 깜빡여댔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녀는 과자 두봉지를 소리나지 않게끔 조심히 꺼냈다.
‘어? 저거 해리포터 책아니야?’
수아의 방에서 흘러나온 불빛을 통해 식탁위에 보인 것은 책이었고, 과자와 함께 들고가면 좋은 것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군침이 돌다니.. 컴퓨터로 치자면 난 렉에 걸린것일지도 몰라.’
그녀는 사촌동생것임에 분명한 책을 펼치고 과자 봉지를 뜯었다. 그날밤. 수아의 방은 새벽 세시가 되도록 잠들지 않았다.
6
“언니!! 언니!!”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앙칼진 목소리에 수아는 힘겹게 눈을 떴다.
“뭐야. 나 아직 잠이 더 필요하다구...”
희아는 언니의 책상위에 놓인 과자 봉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언니가 이거 먹었어? ”
수아는 사과를 했지만, 그 사과엔 전혀 진심이 들어가 있지않았다.
“미안 하다면 다야? 이거 주희랑 주환이랑 같이 먹으려고 산거란 말이야!!”
“히히.. 미안... 미안해~ 돈주면 되잖아~”
수아의 머릿속엔 다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건성적인 말투에 기분이 나빠져버린 희아는 몇 번더 투벌거린후에 방에서 빠져나갔다. 방금전과 같은 상황은 오년동안 자주 있어왔던 일이었고, 수학공식과도 같이 변함없었다. 중간중간 다이어트를 할때엔 그 도둑질이 중단된다는 공식은 중3 인수분해 공식을 찾아보면 있으려나...
“누나 과자 누가 먹었어?”
주환이가 희아에게 물었지만, 벌써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눈치이다.
“아 ~ 귀신이 먹었어 하하 하하...”
희아는 그녀의 언니가 다른사람에게 먹는 모습 같은걸 알리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기에, 과자 도둑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녀는 꽤 착한 동생이었으니까.
“어? 근데 내 책이 어디갔지?”
주환이는 책을 찾는다는 핑계로 수아의 방문을 열었다. 이순간 수아와 주환이의 감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다만 수아의 표정엔 놀라움이 들어났고, 주환이는 애써 그 감정을 숨키려 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었다. 작년 12월 13일 막내 삼촌의 결혼식에서 보았던 모습관 사뭇 다른 사촌누나였다.
“하하.. 주 주환아 안녕 ”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수아였다.
“으응 누나.. 어? 근데 내책이네”
“응 누나 좀 읽을께 괜찮지?”
“응”
주환이는 과자 봉지를 흘끔 쳐다본후 수아의 방문을 닫아주었다.
거울은 말해주었다. 당신의 앞머리가 올라가있노라고. 당신의 두눈이 짝째기로 부어있노라고. 당신의 볼살이 터질 것 같다고. 당신의 바지가 할머니 바지 같다고. 당신의 입은 윗옷이 하필이면 반팔 살색 내의 였노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지금 내모습은 최악이야 그만 해!! 젠장! ”
수아는 거울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사촌동생들이 머문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수진이는 정아가 자신의 딸인마냥 귀여워했고, 희아는 그녀보다 한살작은 쌍둥이 남매들과 아주 잘 어울려 놀았다. 마루에 놓인 컴퓨터는 사촌들과 희아의 차지였기 때문에, 수아가 몰래 하곤했던 컴퓨터방의 컴퓨터는 이제 아빠의 바둑게임장으로 변해있었다. 수아는 학원가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방안에 틀혀 박혀있었는데, 방에서 하는 것이라곤 책읽으면서 먹는 것뿐이었다. 물론 방문을 잠그는 것은 필수였다. 그녀의 창문을 열면 바로 아파트 복도 였으므로 과자를 사온날이면, 몰래 그녀의 방창문으로 집어 넣었 후, 사촌동생들 몰래 방에서 먹었다. 그러다 과자가 남을때면 조용히 희아를 불러서 사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처음 삼일정도 동안 주희와 주환이가 자주 수아의 방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져 버렸다. 그들이 방을 찾아올때마다 수아는 살찐모습에 대한 쪽팔림을 애써 숨기면서, 어색하게 말들을 건네었는데, 그들까지도 어색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다. 어느새 수아의 방은 혼자만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수진이는 한껏 꾸민 모습을 한 채 수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노크소리에 놀란 수아는 급히 밥그릇들을 책상밑으로 옮긴후, 방 창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노크의 주인공은 말대신 손을 더욱 빠르게 해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분명 언니겠군. ’
수아는 문을 열면서 얼른 언니를 안으로 끌어 당겼다.
“언니 얼른 문닫아! 왜 ?”
“아 나 괜찮은지 좀 봐줘”
수진이의 몸에 갈색 바바리 자켓이 입혀져 있었다.
“어?.. 언니 그거 내 옷아니야? 언제 가져갔데?”
“헤헤 미안. 나 오늘 좀 빌려줘~”
수아는 언니가 선물해준 옷을 제일 처음 입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은.. 아주 약간은 서글퍼 져버렸다.
‘뭐. 어차피 몇 년간 썩혀지는 것보단 낳으니까.. ’
“알았어. 근데 어디가?”
수진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왜? 또 김원서 만나러 가는거야? ”
김원서. 그는 언니와 열 살차이가 나는 남자친구였으나, 현재 헤어진 상태였다. 입속에서 들리지도 않는 말을 오물거리는 수진이를 향해 수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 이제 다신 안만난다며! 지금 장난해?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봤을때 김원서가 한 짓을 지금 잊었어? 생각해보라구!”
수아는 분노의 눈빛으로 언니를 쏘아보며 그날의 수치스러움을 회상했다.
수아와 수진이는 오랜만에 교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있었고, 그교회는 수진이의 나자친구도 다니는 곳이었다. 그는 나름 충실한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처음 수진이를 전도한 것도 그였다. 교회에 전도되었을 당시 원서의 사랑의 불은 엄청났고, 수아는 그의 언니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최근 수진이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들은 수아였지만, 전혀 믿을수가 없었다. 수아는 언니에게 교회 갈 시간이 다되었음을 알리기위해 방문을 노크하려다가 멈추었다. 그리곤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왜에.. 같이 앉으면 되잖아.. 다른 사람들이 보면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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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앉자아... 나 그럼 교회 안갈래.. 나 오빠야 옆에 앉고싶단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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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돼? 같이 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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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들려오는 수진이의 목소리 수아는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그렇게 도도하던 우리언니가!? 말도안돼!"
잠시후 전화통화는 끊겼고, 수아는 얼른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전화를 몰래 엳들었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었다.
“수아야. 나 교회에서 오빠야랑 같이 앉기로 했으니까 넌 학생부 자리에 앉아 알겠지?”
수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고, 그렇게 차량을 통해 교회에 도착했다.
“언니 오빠야 올때까지만 나랑 같이 앉으면 안돼? 나혼자 뻘쭘하단 말이야”
잠시 고민을 하던 수진이는 수아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 한참을 수다를 떨고 있는데, 수진이의 폰에 문자가 왔다. 그것은 막 교회에 도착한 수진이의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였다.
‘그냥 동생옆에 앉아있어.’
수진이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수아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남자친구를 불러 밖으로 나갔다.
‘싸우는거 아니야? 휴.. 김원서 뭐야? 정말? 우리언니 좋다고 할땐 언제고!’
잠시후 수진이가 수아의 옆에 앉았고, 남자친구는 수진이완 반대쪽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예배는 시작되었지만, 언니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수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수아야! 나 나가있을테니까 니가 오빠야한테 잠시 나오라고 해봐. 내가 나오라고 하면 안나올거 같아서.. 알겠지?”
수아가 고개를 끄떡임과 동시에 수진이는 빠르게 예배당 문을 빠져나갔다. 솔직히 수아는 하나님 성전에서 싸운다는 것이 좀 창피하였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수아는 총총 걸음으로 언니의 남자친구에게 갔고, 하필 그때 목사님께서는 일어나서 찬송가를 부르길 요청했다. 수아는 찬송가를 열심히 부르는 언니의 남자친구의 팔을 잡고는 중얼거렸다.
“오빠.. 언니가 잠시 나와보래..”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고는 찬송가 부르는것에 전념했다. 수아는 무시당했다는 것과 동시에 남자줄에 혼자 바보같이 서있게된 것만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짧은 시간 멍해있던 그녀는 예배당을 빠져나가려고 뒤돌아섰다. 그런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는 성도 한분이 있었다.
‘저 똥씹은듯한 표정은 분명... 윽.. 분명 속으로 예배시간에 뭐하는거냐고 욕하고 있을게 분명해..’데 속으로 ‘예배시간에 뭐하는거야?’
수아는 손발이 다 오그라듬을 느끼며 목사님의 설교에서 멀어져갔다. 그녀의 언니는 화장실 앞에 서있었고, 혹시나 해서 몇분을 더 기다렸지만, 수진이의 남자친구는 오지않았다. 두자매는 그렇게 교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하루종일 수진이의 남자친구는 사과의 문자 한통.. 심지어 어떠한 내용의 문자라도 보내지 않았다. 그것에 더 화가난 수진이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겠노라고 선포했고, 철저히 원서의 문자를 씹기로 다짐 또 다짐을 했고, 수아는 헤어지고 만난 전적이 열 번도 더 넘는 언니의 말을 믿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 수진이는 그 다짐을 깨려고 하는 것이다!
“절대 안돼! 언니! 절대 안된다고!!”
“하지만 오빠야가 다 사과했어! 앞으로 교회에서도 같이 앉기로 했는걸!”
평소때 같으면 언니와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것을 그냥 가볍게 넘겼을 수아였다. 그러나 언니의 남자친구가 수아 자신에게 창피 준 것을 생각만 하면, 괘씸함을 느꼈다. 몇분을 반대하던 수아의 말을 수진이 못참겠다는 듯이 막아버렸다.
“그만해! 조금있음 오빠야 도착한단 말이야. 미안 하지만 이건 내연애라구! ”
수진이는 방을 나가버렸고, 수아는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휴,. 그래 어쩌면 내가 김원서한테 화가났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지,. 언니의 연애니까.’
수아는 홀로 남은 방에서 마저 남은 밥그릇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