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c 그리스도적 사상가의 거장이며 모럴리스트, 탁월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수상록 "팡세(Pensées)"에서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죄악 속에 빠져 버렸다는 원리를 기독교가 제시하자마자 곧 그것이 나의 눈을 열어 주어, 곳곳에서 이 진리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는 것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기독교의 진리가 진술하는 참 인간의 두 가지 전형은 너무나 상반된다. 그것중 하나는 "우리가 조물주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B가 A의 형상이라 함은 마치 “양자가 유사하다” 혹은 “B는 A에서 파생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양자의 무한한 연계성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성 그리고 양뱡향성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창1:26v)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변질되어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비참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처참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비참함은 그 정도와 수준에 있어 끝없이 확장된다. 물론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이 와중에 기독교의 진리가 환하게 밝혀주는 비밀이 바로 구속의 은혜이다.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비참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구원하신다는 놀라운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비밀은 세상 가운데 밝히 비추어 졌으나 세상은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그 빛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밝히 알고 참 세상의 처음과 끝을 경험한다. 그들은 자신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보는 눈을 갖게 된다. 그러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둠가운데 있어 한치 앞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 있는지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맛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보지 못하는 진정한 비참함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진리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비참함을 경험한다. 빛 가운데 나아올수록 우리의 절망은 밝히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끝없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은 동시에 소망을 견지한다. 그리고 이 소망은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시공 속에 살아가는 존재에게 방향이라는 함은 그것이 관념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반면, 진리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대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타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의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사상으로 개념화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비참을 인정하지 않든 타자의 잘못으로 돌리든 모두 비참한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에겐 방향이 없다. 또한 그들에겐 자신들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썩어질 육체를 위한 것이거나 그저 이상에 지나지 않는 욕망일 뿐이다. 그들은 진리를 절대적이며 유일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 자체를 불필요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진리는 다분히 명제적이다. 그 진리는 세상의 사상들, 학문들과 타협하지 않으며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화평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리와 비진리는 서로 극단을 향해 치닫을 뿐이다. 진리는 빛을 소유한 자에게는 놀라운 비밀이 되고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지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파스칼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오만하고 나태할 때 우리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비참과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인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빛 가운데 나아올 수 있도록 끝없이 그들에 이 놀라운 비밀을 밝히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비참함을 보는 것, 보지 못해 비참한 것(Pensées)
17c 그리스도적 사상가의 거장이며 모럴리스트, 탁월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수상록 "팡세(Pensées)"에서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죄악 속에 빠져 버렸다는 원리를 기독교가 제시하자마자 곧 그것이 나의 눈을 열어 주어, 곳곳에서 이 진리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는 것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기독교의 진리가 진술하는 참 인간의 두 가지 전형은 너무나 상반된다. 그것중 하나는 "우리가 조물주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B가 A의 형상이라 함은 마치 “양자가 유사하다” 혹은 “B는 A에서 파생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양자의 무한한 연계성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성 그리고 양뱡향성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창1:26v)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변질되어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비참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처참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비참함은 그 정도와 수준에 있어 끝없이 확장된다. 물론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이 와중에 기독교의 진리가 환하게 밝혀주는 비밀이 바로 구속의 은혜이다.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비참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구원하신다는 놀라운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비밀은 세상 가운데 밝히 비추어 졌으나 세상은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그 빛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밝히 알고 참 세상의 처음과 끝을 경험한다. 그들은 자신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보는 눈을 갖게 된다. 그러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둠가운데 있어 한치 앞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 있는지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맛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보지 못하는 진정한 비참함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진리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비참함을 경험한다. 빛 가운데 나아올수록 우리의 절망은 밝히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끝없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은 동시에 소망을 견지한다. 그리고 이 소망은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시공 속에 살아가는 존재에게 방향이라는 함은 그것이 관념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반면, 진리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대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타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의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사상으로 개념화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비참을 인정하지 않든 타자의 잘못으로 돌리든 모두 비참한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에겐 방향이 없다. 또한 그들에겐 자신들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썩어질 육체를 위한 것이거나 그저 이상에 지나지 않는 욕망일 뿐이다. 그들은 진리를 절대적이며 유일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 자체를 불필요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진리는 다분히 명제적이다. 그 진리는 세상의 사상들, 학문들과 타협하지 않으며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화평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리와 비진리는 서로 극단을 향해 치닫을 뿐이다. 진리는 빛을 소유한 자에게는 놀라운 비밀이 되고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지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파스칼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오만하고 나태할 때 우리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비참과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인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빛 가운데 나아올 수 있도록 끝없이 그들에 이 놀라운 비밀을 밝히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2009. 8. 12 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