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ToT 그냥 하소연일 수도 있지만 응원과 질타를 해준 여러분들꼐 정말 감사감사 드립니다. 설마해서 집에와서보니까 톡이 되어있네요. 뭐 응원해주는 글들 , 질타하시는분들 , 밥을 사주겠다는 분들, 저보다 더 힘들게사셨던글들 모든 댓글 일일히 하나씩 다 봤습니다. 저보다 힘들게 사시는분들도 있는데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힘내라는 글들이 대부분이여서 다행이였습니다. 물론 처음에 썻던글 부모님에게 해서는 안될말인거 제가 더 잘압니다.근데 그럴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에서 술도 들어가서 제가 잠시 말이 헛나왔는데 솔직하게 그냥 쓰고싶었습니다. 그후로는 저도 솔직히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는 말했고 저희 가족들한테도 이글 보여주니까 더 힘내자고 하더군요!! 앞으로 이 계기로 전환점이 되어서 제가 조금더 성숙한 후에 돌아보는그런계기가 되길 저 개인적으로도 소망해봅니다. ^^ 정말 멋진형님,누님들의 응원으로 더 더욱 힘내서 살겠습니다감사합니다!!! 알러뷰!!! P.S 한 가지 빠트렸네요.. .정말 일일히 다 고맙다고 인사드리고싶은데너무 많아서 정말로 못하겠네요 ㅠㅠ 제마음 정말로 한분씩 만나서까지인사드리고싶을 정도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힘이되는글들 저도 읽으면서눈물도 훔치고 있는데 댓글하나하나 새겨듣겠습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대한민국사람들 역시 정은 살아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 2010년 새해저 남자21살 눈내리는 겨울 어느날. 저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삼겹살집에서 술을 주고받으면서 한마디했습니다. "아... 죄송해여 아버지 제가 안태어났으면 사는데 조금은 지장이 덜 했을텐데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 라고그러자 아버지는 제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에 저도 모르게눈물을 흘렸습니다. 제목 그대로 "가난" 얼마나 느껴보셧는지요? 저는 어렸을때 기억은 행복 혹은 불행이였습니다.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는 정말 남 부러울것없이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4명중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의 동생인 작은삼촌이 큰빚을 지는바람에 저희 아버지가 보증을 서시다가 저희가족은 가난이라는 첫 시작이였습니다.정말 모아둔 돈 한푼도 없어서 저희가족은 추운겨울날 길바닥에 내몰아졌습니다.그 어린나이에 제가 뭘 알겠습니다만 그것만큼은 알겠더군요... 가난함이... 따뜻하고 즐거웠던 가족의 화목함은 그냥 꿈인것 같았습니다. 당장 살곳이없어서 친적집에 가서 신세를 지려고했습니다. 근데 그때 처음으로아버지의 무력함을 제눈으로 직접보게 됬습니다. 친적정도면 같이 얹혀 살 수도 있지않겟냐많은 30분도 채지나지 않아서 경찰에 신고해서 저희가족을 쫓아내더군요.사람이라는게 정말 그 어린나이에도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때 많이 울었구요.아버지는 울지는 않으셨지만 마음속으론 울고 계셧던듯 합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저희가 살던 아파트 1층밑에 지하에서 텐트를 치고 그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이불2개로 추위를 간간이 막았습니다. 겨울이나 그런지 지하에 생쥐도 많고 벌레도 정말 많았습니다. 근데 하나도 무섭진않더군요 가난에 비해선.. 그 텐트에서 자던 첫날밤에 제가 그런말을 했습니다.가족 네명이서 나란히 누워서 잠도자지않고 눈만 깜빡일때. "아.....이게 절망이라는거구나" 라고 제가 말을 했습니다. 형은 조용히 절 꼬집었지만아버지는 밖에를 나가시고 어머니는 돌아누으셔서 눈물만 흘리고 계시더군요.제가 그어린나이에 그런말을하니 부모님이 미안하신듯 보이셨습니다. 저희 초등학교 입학도 걱정이 되시고하시니 앞일이 정말 캄캄하더군요. 아버지는 당장돈이라도 벌기위해서 막노동에 뛰셨고 어머니는 길거리에서만보던 폐지,박스를 팔아서 돈을버셨습니다. 정말 보기만했지 내 부모님이 이런걸할 줄이라곤 상상도 못한게 현실이였습니다 제나이 7살때 속으로 꿈이길 바랬습니다.마음속으로 딱 2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절대커서 가난하진말자 그리고 나같은 처지에놓인사람은 지나치지말자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 어머님을 따라서 폐지,폐품들을 모으는걸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추운겨울에 그것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돈이 모여서 월세방을 얻어서 사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집이라는게 있다는게 이렇게 행복한건줄 몰랐습니다. 비록 어릴때지만요.하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진 않더군요. 옛날처럼 돈없어서 전기,가스가 끈기는게저희가족은 흔한일이였습니다. 전기,가스 끊기는건 다반사여서 여름,겨울에 고생을 엄청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학교다니는게 너무좋았고 급식도 집에서 먹는반찬보단 정말 맛있었죠. 저에겐 그리고 초등학교때 만난 소중한 친구 3명이 있습니다.그 친구는 제가 평생죽는날까지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였죠. 제가 물론 가난하다는 티를 내진않았지만 정말 저를 그런거 상관없이따뜻하게 대해준 친구들이 기억납니다. 비록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항상 제 기억속엔 좋은친구로 자리남아 있습니다. ( 재훈, 성훈, 남충이 ㅋ) 그러고 난후에 중학생시절 월세방도 조금씩 부담이 되어서 자주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값이 싼 월세방으로 구할 수 밖에없었죠. 돈이 없으니깐요...그러면서도 공부도 열심히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열심히 했습니다.중학생때부터 햄버거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주말이면 이벤트행사 알바정말 안해본 알바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부모님에게 거짓말해서 용돈으로쓰는 문제집값 다른학생들과 달리 저에겐 정말로 필요한 문제지값이였으니깐요.그거라도 제손으로 구입하고싶어서 제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었지만 거절했습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무리 절 좋아했던 여자에게도 가난하면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봐 저 스스로 밀어냈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오글오글 ㅋ)가난하면 해줄게 없다는 제 생각에 지금으로 말하면 능력이 없다랄까요.. 그 생각때문에 쉽게 거절했었죠.... 고등학교를 다닐땐 그나마 형편이 조금씩 좋아져서 남부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조금 발은 뻗고 잘 수 있는 생활까지 왔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적이 별로 없습니다. 원망... 물론 한적 많이있습니다. 차라리 죽을껄 태어나지말껄 왜 이런부모를 만났나 라는 원망 수도없이 해봤습니다. 근데 가족을 위해서말없이 힘내시는 부모님보고 내가 불효자식이라는 생각 많이했습니다. 힘도 보태주지 못할 망정 못하는소리없이 대들고 그런적 많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거짓말하면서 몰래 돈훔쳐서 쓴적도 있고 나쁜짓한적도 많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다 아셨을겁니다. 그래도 저에게잔소리 한번안하시고 믿어주신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오히려 가난이라는게 저에게 많은 배움을 줬지만 그 역시 잃은것도 상당했습니다. 정말 가족이 웃음이 별로 없더군요. 저는 그래도 많이 웃고다니는 편이라서몰랐지만 어느날 보니 가족들이 웃음이 별로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올해소망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고싶은말은 정말 많은데많이써도 길이만 늘어날것 같네요....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 앞으로 행복해지자고 한 방에서 다같이 껴안고 울었던 작년 겨울이 생각나네요. 아버지 어머님 우리 꼭 행복해지자구요!! 화이팅 ^^ 사랑합니다. 63
'가난' 얼마까지 느껴보셨나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ToT 그냥 하소연일 수도 있지만
응원과 질타를 해준 여러분들꼐 정말 감사감사 드립니다.
설마해서 집에와서보니까 톡이 되어있네요.
뭐 응원해주는 글들 , 질타하시는분들 , 밥을 사주겠다는 분들, 저보다 더 힘들게
사셨던글들 모든 댓글 일일히 하나씩 다 봤습니다.
저보다 힘들게 사시는분들도 있는데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힘내라는 글들이 대부분이여서 다행이였습니다.
물론 처음에 썻던글 부모님에게 해서는 안될말인거 제가 더 잘압니다.
근데 그럴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에서 술도 들어가서 제가 잠시
말이 헛나왔는데 솔직하게 그냥 쓰고싶었습니다. 그후로는 저도 솔직히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는 말했고 저희 가족들한테도 이글 보여주니까
더 힘내자고 하더군요!!
앞으로 이 계기로 전환점이 되어서 제가 조금더 성숙한 후에 돌아보는
그런계기가 되길 저 개인적으로도 소망해봅니다. ^^
정말 멋진형님,누님들의 응원으로 더 더욱 힘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러뷰!!!
P.S 한 가지 빠트렸네요.. .정말 일일히 다 고맙다고 인사드리고싶은데
너무 많아서 정말로 못하겠네요 ㅠㅠ 제마음 정말로 한분씩 만나서까지
인사드리고싶을 정도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힘이되는글들 저도 읽으면서
눈물도 훔치고 있는데 댓글하나하나 새겨듣겠습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사람들 역시 정은 살아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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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새해
저 남자21살 눈내리는 겨울 어느날.
저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삼겹살집에서 술을 주고받으면서
한마디했습니다. "아... 죄송해여 아버지 제가 안태어났으면 사는데 조금은
지장이 덜 했을텐데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 라고
그러자 아버지는 제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목 그대로 "가난" 얼마나 느껴보셧는지요?
저는 어렸을때 기억은 행복 혹은 불행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는 정말 남 부러울것없이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4명중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의 동생인 작은삼촌이 큰빚을 지는바람에
저희 아버지가 보증을 서시다가 저희가족은 가난이라는 첫 시작이였습니다.
정말 모아둔 돈 한푼도 없어서 저희가족은 추운겨울날 길바닥에 내몰아졌습니다.
그 어린나이에 제가 뭘 알겠습니다만 그것만큼은 알겠더군요... 가난함이...
따뜻하고 즐거웠던 가족의 화목함은 그냥 꿈인것 같았습니다.
당장 살곳이없어서 친적집에 가서 신세를 지려고했습니다. 근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무력함을 제눈으로 직접보게 됬습니다. 친적정도면 같이 얹혀 살 수도 있지
않겟냐많은 30분도 채지나지 않아서 경찰에 신고해서 저희가족을 쫓아내더군요.
사람이라는게 정말 그 어린나이에도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때 많이 울었구요.
아버지는 울지는 않으셨지만 마음속으론 울고 계셧던듯 합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저희가 살던 아파트 1층밑에 지하에서 텐트를 치고
그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이불2개로 추위를 간간이 막았습니다.
겨울이나 그런지 지하에 생쥐도 많고 벌레도 정말 많았습니다. 근데 하나도 무섭진
않더군요 가난에 비해선.. 그 텐트에서 자던 첫날밤에 제가 그런말을 했습니다.
가족 네명이서 나란히 누워서 잠도자지않고 눈만 깜빡일때.
"아.....이게 절망이라는거구나" 라고 제가 말을 했습니다. 형은 조용히 절 꼬집었지만
아버지는 밖에를 나가시고 어머니는 돌아누으셔서 눈물만 흘리고 계시더군요.
제가 그어린나이에 그런말을하니 부모님이 미안하신듯 보이셨습니다.
저희 초등학교 입학도 걱정이 되시고하시니 앞일이 정말 캄캄하더군요.
아버지는 당장돈이라도 벌기위해서 막노동에 뛰셨고 어머니는 길거리에서만
보던 폐지,박스를 팔아서 돈을버셨습니다. 정말 보기만했지 내 부모님이 이런걸
할 줄이라곤 상상도 못한게 현실이였습니다 제나이 7살때 속으로 꿈이길 바랬습니다.
마음속으로 딱 2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절대커서 가난하진말자
그리고 나같은 처지에놓인사람은 지나치지말자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 어머님을 따라서 폐지,폐품들을 모으는걸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추운겨울에 그것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돈이 모여서 월세방을 얻어서 사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집이라는게 있다는게 이렇게 행복한건줄 몰랐습니다. 비록 어릴때지만요.
하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진 않더군요. 옛날처럼 돈없어서 전기,가스가 끈기는게
저희가족은 흔한일이였습니다. 전기,가스 끊기는건 다반사여서
여름,겨울에 고생을 엄청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학교다니는게
너무좋았고 급식도 집에서 먹는반찬보단 정말 맛있었죠.
저에겐 그리고 초등학교때 만난 소중한 친구 3명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평생죽는날까지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였죠.
제가 물론 가난하다는 티를 내진않았지만 정말 저를 그런거 상관없이
따뜻하게 대해준 친구들이 기억납니다. 비록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
항상 제 기억속엔 좋은친구로 자리남아 있습니다. ( 재훈, 성훈, 남충이 ㅋ)
그러고 난후에 중학생시절 월세방도 조금씩 부담이 되어서 자주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값이 싼 월세방으로 구할 수 밖에없었죠. 돈이 없으니깐요...
그러면서도 공부도 열심히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열심히 했습니다.
중학생때부터 햄버거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주말이면 이벤트행사 알바
정말 안해본 알바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부모님에게 거짓말해서 용돈으로
쓰는 문제집값 다른학생들과 달리 저에겐 정말로 필요한 문제지값이였으니깐요.
그거라도 제손으로 구입하고싶어서 제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었지만 거절했습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무리 절 좋아했던 여자에게도 가난하면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봐
저 스스로 밀어냈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오글오글 ㅋ)
가난하면 해줄게 없다는 제 생각에 지금으로 말하면 능력이 없다랄까요..
그 생각때문에 쉽게 거절했었죠....
고등학교를 다닐땐 그나마 형편이 조금씩 좋아져서
남부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조금 발은 뻗고 잘 수 있는 생활까지
왔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적이 별로 없습니다.
원망... 물론 한적 많이있습니다. 차라리 죽을껄 태어나지말껄
왜 이런부모를 만났나 라는 원망 수도없이 해봤습니다. 근데 가족을 위해서
말없이 힘내시는 부모님보고 내가 불효자식이라는 생각 많이했습니다.
힘도 보태주지 못할 망정 못하는소리없이 대들고 그런적 많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거짓말하면서 몰래 돈훔쳐서 쓴적도 있고
나쁜짓한적도 많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다 아셨을겁니다. 그래도 저에게
잔소리 한번안하시고 믿어주신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오히려 가난이라는게 저에게 많은 배움을 줬지만 그 역시 잃은것도 상당했습니다.
정말 가족이 웃음이 별로 없더군요. 저는 그래도 많이 웃고다니는 편이라서
몰랐지만 어느날 보니 가족들이 웃음이 별로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올해소망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고싶은말은 정말 많은데
많이써도 길이만 늘어날것 같네요....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
앞으로 행복해지자고 한 방에서 다같이 껴안고 울었던 작년 겨울이 생각나네요.
아버지 어머님 우리 꼭 행복해지자구요!!
화이팅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