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친구들과 카페 혹은 음식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울 때가 있다. 일상의 소소한 일화들부터 격한 토론까지 그래봤자 젊은 청년들의 개똥철학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지인들과 교감하는 그 순간만큼은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저 그 시간을 편안히 즐기며 서로간의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데 의의를 둔다고 나름 우겨본다.
그 모임 속에서의 나의 모습은 불안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진지하게 보이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본디 말수가 많은데다가 감정이 더해진다고 더 수다스러워지진 않고 평소에도 나름 솔직해지려 노력하며 뱉은 말에는 논리적인 오류건 도의적 착오건 실수가 없길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상대방 말이 논리에 맞지 않거나 거짓이라 하여 일일이 말꼬리를 잡아 상대가 거북하거나 피곤하게 느끼는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또한 나는 심한 과장이나 허풍 또는 농담이나 유머처럼 가벼이 말하는 것에 스스로 익숙하기에 친구들이 장난으로 말을 던져도 즐겁게 맞받아치치면 씨익 한 번 웃어 넘기는 것보단 일일히 맞불 놓은 타입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뭐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착실하게 다 하고 상반된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과의 극적인 대립을 스스로 즐긴다라고나 할까.
그러던 중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서 한 친구가 내게 그런 저의 모습을 대놓고 지적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그 날 따라 갑작스러운 일이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를 꼬집는 그 말에 같은 자리의 친구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했다면 이 글이 그저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 한다라는 하소연 글이 되었겠지만 절묘하게도 그 친구의 지적에 나도 내가 보지 않고 있던 내 모습에 은근히 공감을 해버린 탓에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그 부분을 한 번 꺼내보려한다.
예전부터에 인터넷 여기저기에 내가 올렸던 글들이나 아니면 여기 싸이월드 게시판이나 판에서 읽었던 사람이라면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이 글에서도 그런 부분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글을 쓸 때면 무언가 주제를 풀어놓기 전에 서론에서 그런다거나 아니면 글 말미에서 글쓴이인 내 자신을 방어해줄 구절을 하나씩 던져놓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어떠한 내용을 다루던 그것이 굉장히 민감한 주제일지라도 상당히 자기방어적인 자세와 태도와 어투로 글을 쓰기 때문에 내용이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이거나 틀린 내용을 두세 번 빙빙 꼬아놓는 궤변이 아닌 한 그 글로 인해 타인과 시비가 붙거나 트집을 잡힐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거다. 아이러니다. 말과 글이 불일치하기 떄문이다.
언행불일치.
항상 그 상황에 맞는 관련된 명언을 던지는 등 무척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화술을 구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만 나를 지적한 친구의 요점은 그게 아니였다. 내 친구의 말대로 나를 정의해보자면 나는 결국 자기주장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디서 듣거나 읽은 생각만을 옮겨 말하는 줏대 없는 놈이 된다.
여기서 내가 일상적으로 대화할 때 자주 쓰는 구절을 나열해 보겠다. “이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내가 많이 알고 있는건데.” "항상 들은 얘기라 거의 맞을 수도 있는데.” “100% 장담은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만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많이 안 쓰는 구절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대화 중 거의 모든 의견에 저런 구절을 미리 꺼내놓고 말을 이어간다면 어떨까? 말한 사람은 이미 자신이 방어해야할 높디 높은 견고한 성을을 미리 쌓아 놓고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 뚜렷하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음으로 대화가 그 이상으로 깊게 이어지기 힘들게 된다. 바로 내가 그런 스타일이다.
은석: 이건 내가 잘 아는 사실인데, 구하라랑 니콜이 사이가 진짜 나쁘데. 가상의 Y: 아닌데? 내가 직접 봤는데 둘이 엄청 친하고 사이도 좋고 잘 놀아~ 은석: 아. 그래? 그런가? 가상의 Y: 누가 그래? 그런 소리 때문에 말도 안 돼는 루머가 퍼지는 거잖아. 은석: 이상하네. 분명 그렇다 했는데..
예제가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지만 내가 저기서 저렇게 정색하는 태도로 마무리를 지어버리면 상대방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이게 정말 얼핏 들은 얘기라 저렇게 말한다면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항상 어떤 말을 하든 저러한 구절들을 애용한다. 듣는 상대방 입장에선 엄청나게 짜증스럽다고 하더군.
1. 흐릿흐릿한 주장을 펼친다. 2. 상대가 동의/공감하면 대화는 거기서 맴돈다. 하지만 상대가 반박한다면? 3. 바로 맞불을 놓고, 미리 깔아놓은 성까지 후퇴. 4. 대화 끝. 집요한 상대가 아니라면 더 이상 심도 있는 대화는 불가능.
결국 나는 패거리 속에 있으면서도 특별히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도 않으며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주장이나 의견을 대립하거나 공유하며 깊어지는 대화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관전자에 불과한데 스스로는 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평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너 스스로는 우리들보다 똑똑하다고 혹은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하는 불쾌한 느낌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저 친구의 간단한 지적으로 넘길 문제는 아니게 되었다.
나름 충격이었다. 거기다 동석한 다른 친구들마저 그 의견에는 전원 동의하고 있었으니 나로써는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개선할 점이 있다면.. 아니 반드시 개선해야 될 문제겠지. 그러던 중 나는 내 자신의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의 대화습관은 그저 일상적인 습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항상 그랬다. 모든 행동과 내 가치관,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두.
일단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는 퇴로를 한 개 이상 확보해둔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망치면? 그저 내가 파놓은 구멍으로 도망가면 된다. 이것이 치밀한 준비성의 결과(=일이 틀어진다면 차선책으로 이것!)라면 좋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러한 준비성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도망가려고 쌓아놓은 성의 모습에 일치하는 것 같다. 운 좋아서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난 원래부터 도망치려고 했으니깐!
애초부터 성공할리 없는 길, 건너오지 못 하는 레테의 강을 건넜다는게 맞는 것이겠지. 난 이미 퇴로를 확보했다는 안도감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성공 못 해도 돼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것이 모든 행동에 반영되고 있었고 내 친구가 지적한 내 방식대로의 대화법은 그저 일부분일 뿐이란 것.
저 어두운 곳의 누군가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배수진까지 치고 모든 인생과 에너지를 올인하며 성공을 꿈꾸는데 나는 일단 도망갈 길부터 궁리해 놓고 진영을 짜고 있었으니 내가 월등히 좋은 스펙과 기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반드시 도망쳐야만 할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다고 한다. 위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혹은 나 혼자만의 고민일 수도 있겠지. 이것들이 요즘 내 생각들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군. 여기까지 와보니 무슨 생각으로 뜬금없이 나를 지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글을 마무리 짓기가 힘드네. 그저 별 다른 뜻없이 한 젊은이의 자기성찰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얼마전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김제동씨가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추천해주시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아, 그렇구나! 했던 부분은
"공항에 갔을 때 도시 이름이 타라라락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 때 사실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이미 느끼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가기 전에는 ‘아, 파리 가면 뭐하지’라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가보면 고생입니다. 그렇죠? 상상할 때 이미 여행의 모든 즐거움을 거의 경험한다는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인생을 논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먼 어린 아이지만 인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면서 자기성찰을 하고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고 난 후의 더 나아진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순간 자체가 인생의 즐거운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대화법, 그리고.
내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친구들과 카페 혹은 음식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울 때가 있다. 일상의 소소한 일화들부터 격한 토론까지 그래봤자 젊은 청년들의 개똥철학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지인들과 교감하는 그 순간만큼은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저 그 시간을 편안히 즐기며 서로간의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데 의의를 둔다고 나름 우겨본다.
그 모임 속에서의 나의 모습은 불안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진지하게 보이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본디 말수가 많은데다가 감정이 더해진다고 더 수다스러워지진 않고 평소에도 나름 솔직해지려 노력하며 뱉은 말에는 논리적인 오류건 도의적 착오건 실수가 없길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상대방 말이 논리에 맞지 않거나 거짓이라 하여 일일이 말꼬리를 잡아 상대가 거북하거나 피곤하게 느끼는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또한 나는 심한 과장이나 허풍 또는 농담이나 유머처럼 가벼이 말하는 것에 스스로 익숙하기에 친구들이 장난으로 말을 던져도 즐겁게 맞받아치치면 씨익 한 번 웃어 넘기는 것보단 일일히 맞불 놓은 타입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뭐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착실하게 다 하고 상반된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과의 극적인 대립을 스스로 즐긴다라고나 할까.
그러던 중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서 한 친구가 내게 그런 저의 모습을 대놓고 지적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그 날 따라 갑작스러운 일이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를 꼬집는 그 말에 같은 자리의 친구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했다면 이 글이 그저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 한다라는 하소연 글이 되었겠지만 절묘하게도 그 친구의 지적에 나도 내가 보지 않고 있던 내 모습에 은근히 공감을 해버린 탓에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그 부분을 한 번 꺼내보려한다.
예전부터에 인터넷 여기저기에 내가 올렸던 글들이나 아니면 여기 싸이월드 게시판이나 판에서 읽었던 사람이라면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이 글에서도 그런 부분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글을 쓸 때면 무언가 주제를 풀어놓기 전에 서론에서 그런다거나 아니면 글 말미에서 글쓴이인 내 자신을 방어해줄 구절을 하나씩 던져놓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어떠한 내용을 다루던 그것이 굉장히 민감한 주제일지라도 상당히 자기방어적인 자세와 태도와 어투로 글을 쓰기 때문에 내용이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이거나 틀린 내용을 두세 번 빙빙 꼬아놓는 궤변이 아닌 한 그 글로 인해 타인과 시비가 붙거나 트집을 잡힐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거다. 아이러니다. 말과 글이 불일치하기 떄문이다.
언행불일치.
항상 그 상황에 맞는 관련된 명언을 던지는 등 무척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화술을 구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만 나를 지적한 친구의 요점은 그게 아니였다. 내 친구의 말대로 나를 정의해보자면 나는 결국 자기주장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디서 듣거나 읽은 생각만을 옮겨 말하는 줏대 없는 놈이 된다.
여기서 내가 일상적으로 대화할 때 자주 쓰는 구절을 나열해 보겠다.
“이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내가 많이 알고 있는건데.”
"항상 들은 얘기라 거의 맞을 수도 있는데.”
“100% 장담은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만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많이 안 쓰는 구절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대화 중 거의 모든 의견에 저런 구절을 미리 꺼내놓고 말을 이어간다면 어떨까? 말한 사람은 이미 자신이 방어해야할 높디 높은 견고한 성을을 미리 쌓아 놓고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 뚜렷하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음으로 대화가 그 이상으로 깊게 이어지기 힘들게 된다. 바로 내가 그런 스타일이다.
은석: 이건 내가 잘 아는 사실인데, 구하라랑 니콜이 사이가 진짜 나쁘데.
가상의 Y: 아닌데? 내가 직접 봤는데 둘이 엄청 친하고 사이도 좋고 잘 놀아~
은석: 아. 그래? 그런가?
가상의 Y: 누가 그래? 그런 소리 때문에 말도 안 돼는 루머가 퍼지는 거잖아.
은석: 이상하네. 분명 그렇다 했는데..
예제가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지만 내가 저기서 저렇게 정색하는 태도로 마무리를 지어버리면 상대방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이게 정말 얼핏 들은 얘기라 저렇게 말한다면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항상 어떤 말을 하든 저러한 구절들을 애용한다. 듣는 상대방 입장에선 엄청나게 짜증스럽다고 하더군.
1. 흐릿흐릿한 주장을 펼친다.
2. 상대가 동의/공감하면 대화는 거기서 맴돈다. 하지만 상대가 반박한다면?
3. 바로 맞불을 놓고, 미리 깔아놓은 성까지 후퇴.
4. 대화 끝. 집요한 상대가 아니라면 더 이상 심도 있는 대화는 불가능.
결국 나는 패거리 속에 있으면서도 특별히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도 않으며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주장이나 의견을 대립하거나 공유하며 깊어지는 대화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관전자에 불과한데 스스로는 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평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너 스스로는 우리들보다 똑똑하다고 혹은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하는 불쾌한 느낌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저 친구의 간단한 지적으로 넘길 문제는 아니게 되었다.
나름 충격이었다. 거기다 동석한 다른 친구들마저 그 의견에는 전원 동의하고 있었으니 나로써는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개선할 점이 있다면.. 아니 반드시 개선해야 될 문제겠지. 그러던 중 나는 내 자신의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의 대화습관은 그저 일상적인 습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항상 그랬다. 모든 행동과 내 가치관,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두.
일단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는 퇴로를 한 개 이상 확보해둔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망치면? 그저 내가 파놓은 구멍으로 도망가면 된다. 이것이 치밀한 준비성의 결과(=일이 틀어진다면 차선책으로 이것!)라면 좋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러한 준비성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도망가려고 쌓아놓은 성의 모습에 일치하는 것 같다. 운 좋아서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난 원래부터 도망치려고 했으니깐!
애초부터 성공할리 없는 길, 건너오지 못 하는 레테의 강을 건넜다는게 맞는 것이겠지. 난 이미 퇴로를 확보했다는 안도감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성공 못 해도 돼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것이 모든 행동에 반영되고 있었고 내 친구가 지적한 내 방식대로의 대화법은 그저 일부분일 뿐이란 것.
저 어두운 곳의 누군가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배수진까지 치고 모든 인생과 에너지를 올인하며 성공을 꿈꾸는데 나는 일단 도망갈 길부터 궁리해 놓고 진영을 짜고 있었으니 내가 월등히 좋은 스펙과 기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반드시 도망쳐야만 할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다고 한다. 위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혹은 나 혼자만의 고민일 수도 있겠지. 이것들이 요즘 내 생각들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군. 여기까지 와보니 무슨 생각으로 뜬금없이 나를 지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글을 마무리 짓기가 힘드네. 그저 별 다른 뜻없이 한 젊은이의 자기성찰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얼마전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김제동씨가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추천해주시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아, 그렇구나! 했던 부분은
"공항에 갔을 때 도시 이름이 타라라락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 때 사실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이미 느끼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가기 전에는 ‘아, 파리 가면 뭐하지’라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가보면 고생입니다. 그렇죠? 상상할 때 이미 여행의 모든 즐거움을 거의 경험한다는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인생을 논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먼 어린 아이지만 인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면서 자기성찰을 하고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고 난 후의 더 나아진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순간 자체가 인생의 즐거운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생각이 많은 하루다. 내일은 추위가 좀 덜했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