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이외의 누군가. 말 그대로 내가 아닌 타인들과 나는 분명 다르다. 겉모습이 똑닮은 일란성 쌍둥이라도 그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완전히 다른 둘로 구분된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 절대 명제는 이따금씩 가변적 형태로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개체로 겹쳐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당신은 당신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느낌이 들고 어떻게 그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가?
우리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대소문제들의 공통을 찾아 파고들면, 그 기저에 취향이라는 반석에 닿게 된다. 결국 이는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달콤함으로 침을 흘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 쓰디씀으로 침을 흘리게 하는 그런 차이. 바로 나와 내가 아닌 타인을 구분하는 가장 단순한 지표가 이 취향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더 선호하고 무엇을 덜 선호하는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그 새로움을 즐기는 편이다. 어쩌면 뉴페이스에 대한 면역체계가 생겼다고 하는 편이 현실적이겠다. 어쩔 수 없이 맺어지는 결과적 인간관계(선택권이 없는)가 최소한의 덕이라면 내게 과정적 인간관계(선택권이 있는)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절대선과 같다. 모든 일의 최우선 순위에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일을 행하는 주체가 사람이니 무엇이 그보다 더 중요하겠는가? 사욕을 위해 그 관계를 깨버릴만큼 어리석지도, 무모하지도 않다. 이는 단순한 의식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값진 결과지만 앞서 말했듯 취향의 차이는 있을테다. 앞으로 언급할 관계라는 것은 모두 이 과정적 관계를 지칭한다.
나라는 사람이 고유단일개체임은 분명한 일이다. 허나 가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나역시 나의 성격과 특성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재밌는 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 수만큼의 나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뢰도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모습으로 각기 다른 형태의 신뢰도가 쌓여간다고 할까? 그 모든 존재가 한뿌리에 솟아나고, 돋아난 가지와 이파리 같은 것이라, 계절이 바뀌듯 관계가 변하면 낙엽으로 져 스스로를 위한 양분이 되는 순환의 고리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 사람의 키나 외모, 표정, 체형, 손짓, 몸짓, 목소리, 화법, 분위기, 옷차림, 경력, 매너, 믿음, 문화기반 등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부터 시간을 두고 찾아 내어야 하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가 취향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객관화 될 수 있고, 동시에 서정성이 묻어나는 소통의 요소는 바로 이야기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일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만 믿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로 하여금 나의 말을 믿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당신에게 나를 보여주고, 당신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쌓게 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있어 그 공식은 '역설' 그 자체에 있다. 당신에게 당신과 닮은 '진실'된 나의 모습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는 것.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 자기 앞에 앉아있더라도 공통된 관심사, 즉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면 그 매력은 이미 반토막 난 것이나 다름 없다.
언제나 가장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믿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나쁜 관계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호감을 갖게 한다. 단지 더 좋은 관계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뿐. 대인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소통. 누군가가 나의 머리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나의 머리 속을 완전히 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런 영향의 반경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진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만나는 경우, 나의 영향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는 경우,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내가 변하는 경우. 그 어떤 영향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다만 그 변화의 RPM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 번 쯤 자신의 영향력과 변화의 RPM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백지와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느낌. 거기에 주변의 조각을 하나씩 뜯어 만들어진 콜라주 같은 인간. 때와 장소에 맞춰 공통의 조각들을 보여주고, 찾아내 배꼽을 맞추듯 정신의 조각을 맞춰가는 조심스런 과정. 그것이 내게 있어 관계이자 삶이란 것이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나의 RPM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가능한 상대방에 대한 객관화 된 정보를 모으고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 백지에 그 사람과 공통된 취향을 붙여 데칼코마니를 만들듯 스스로를 물들여 가는 것이다. 사진을 찍듯 이미지 청크를 엮어 가슴에 새겨둔다고 하면 되겠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소통요소들이 모두 포함되는데, 그 시발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있다. 건드려도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할 때 서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비밀의 방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그 선을 지키지 못해 관계를 깨어버리는 자들. 그 순간 나도 그들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게 되질 않나?
내 앞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만 그것을 이끄는 나의 본질적인 성향은 결코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당신에게 보여준 나의 취향은 언제나 거짓 아닌 진실이었으니까. 나에 대한 당신과 누군가의 견해가 다르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나라는 사람의 서로 다른 부분에 주목했고 서로 믿고 싶은 걸 믿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당신이 본 그 어떤 것도,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나 자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언제나 나로서 존재할 뿐이니 그 진실 안에서 당황하지 않길 소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한 개인이 - 더 솔직히 나라는 사람이 -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근원적으로 그것이 나의 취향이 그러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넛지'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나와 당신, 세상 그 누구도 그 자체로 고귀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지만, 함께이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수단적 관계가 아닌 목적적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서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개인의 취향을 공통된 취향으로 발돋움 시켜 신뢰도를 쌓아나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관계이다.
개인의 취향
나와 나 이외의 누군가. 말 그대로 내가 아닌 타인들과 나는 분명 다르다. 겉모습이 똑닮은 일란성 쌍둥이라도 그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완전히 다른 둘로 구분된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 절대 명제는 이따금씩 가변적 형태로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개체로 겹쳐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당신은 당신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느낌이 들고 어떻게 그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가?
우리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대소문제들의 공통을 찾아 파고들면, 그 기저에 취향이라는 반석에 닿게 된다. 결국 이는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달콤함으로 침을 흘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 쓰디씀으로 침을 흘리게 하는 그런 차이. 바로 나와 내가 아닌 타인을 구분하는 가장 단순한 지표가 이 취향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더 선호하고 무엇을 덜 선호하는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그 새로움을 즐기는 편이다. 어쩌면 뉴페이스에 대한 면역체계가 생겼다고 하는 편이 현실적이겠다. 어쩔 수 없이 맺어지는 결과적 인간관계(선택권이 없는)가 최소한의 덕이라면 내게 과정적 인간관계(선택권이 있는)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절대선과 같다. 모든 일의 최우선 순위에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일을 행하는 주체가 사람이니 무엇이 그보다 더 중요하겠는가? 사욕을 위해 그 관계를 깨버릴만큼 어리석지도, 무모하지도 않다. 이는 단순한 의식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값진 결과지만 앞서 말했듯 취향의 차이는 있을테다. 앞으로 언급할 관계라는 것은 모두 이 과정적 관계를 지칭한다.
나라는 사람이 고유단일개체임은 분명한 일이다. 허나 가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나역시 나의 성격과 특성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재밌는 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 수만큼의 나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뢰도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모습으로 각기 다른 형태의 신뢰도가 쌓여간다고 할까? 그 모든 존재가 한뿌리에 솟아나고, 돋아난 가지와 이파리 같은 것이라, 계절이 바뀌듯 관계가 변하면 낙엽으로 져 스스로를 위한 양분이 되는 순환의 고리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 사람의 키나 외모, 표정, 체형, 손짓, 몸짓, 목소리, 화법, 분위기, 옷차림, 경력, 매너, 믿음, 문화기반 등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부터 시간을 두고 찾아 내어야 하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가 취향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객관화 될 수 있고, 동시에 서정성이 묻어나는 소통의 요소는 바로 이야기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일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만 믿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로 하여금 나의 말을 믿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당신에게 나를 보여주고, 당신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쌓게 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있어 그 공식은 '역설' 그 자체에 있다. 당신에게 당신과 닮은 '진실'된 나의 모습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는 것.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 자기 앞에 앉아있더라도 공통된 관심사, 즉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면 그 매력은 이미 반토막 난 것이나 다름 없다.
언제나 가장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믿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나쁜 관계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호감을 갖게 한다. 단지 더 좋은 관계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뿐. 대인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소통. 누군가가 나의 머리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나의 머리 속을 완전히 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런 영향의 반경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진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만나는 경우, 나의 영향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는 경우,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내가 변하는 경우. 그 어떤 영향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다만 그 변화의 RPM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 번 쯤 자신의 영향력과 변화의 RPM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백지와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느낌. 거기에 주변의 조각을 하나씩 뜯어 만들어진 콜라주 같은 인간. 때와 장소에 맞춰 공통의 조각들을 보여주고, 찾아내 배꼽을 맞추듯 정신의 조각을 맞춰가는 조심스런 과정. 그것이 내게 있어 관계이자 삶이란 것이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나의 RPM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가능한 상대방에 대한 객관화 된 정보를 모으고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 백지에 그 사람과 공통된 취향을 붙여 데칼코마니를 만들듯 스스로를 물들여 가는 것이다. 사진을 찍듯 이미지 청크를 엮어 가슴에 새겨둔다고 하면 되겠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소통요소들이 모두 포함되는데, 그 시발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있다. 건드려도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할 때 서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비밀의 방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그 선을 지키지 못해 관계를 깨어버리는 자들. 그 순간 나도 그들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게 되질 않나?
내 앞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만 그것을 이끄는 나의 본질적인 성향은 결코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당신에게 보여준 나의 취향은 언제나 거짓 아닌 진실이었으니까. 나에 대한 당신과 누군가의 견해가 다르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나라는 사람의 서로 다른 부분에 주목했고 서로 믿고 싶은 걸 믿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당신이 본 그 어떤 것도,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나 자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언제나 나로서 존재할 뿐이니 그 진실 안에서 당황하지 않길 소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한 개인이 - 더 솔직히 나라는 사람이 -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근원적으로 그것이 나의 취향이 그러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넛지'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나와 당신, 세상 그 누구도 그 자체로 고귀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지만, 함께이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수단적 관계가 아닌 목적적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서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개인의 취향을 공통된 취향으로 발돋움 시켜 신뢰도를 쌓아나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관계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함께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