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의

이수정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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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자연파괴 및 자원고갈로 인한 문명몰락의 상징인 "모아이".

 

칠레령의 이스터섬의 면적은 120세제곱킬로미터 위치는서쪽 남미

대륙과 3.000킬로미터, 동쪽으로 폴리네시아섬과도 약 2.000킬로미

터 떨어져 있는 망망대해에 위치한  지구상에서 가장 외진 섬이다.

 

지질학,생물학,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섬의 역사와 원주민들

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이들 원주민의 기원은 DNA 연구결과  폴리네시아인 50여명의 후손으로 이들이 이스터섬에 서기 500-600년

경 처음 도착하여 정착할때의 섬의 환경은 수십만그루의 나무들과

수없이 많은 새들이 서식하는 지상낙원이었다. 

 

정착 초기에는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해산물로 인구가 2만명에 육

박할 정도로 늘었났으며, 폴리네시아 다른 문명에 뒤쳐지지 않는 문명을 이룩해가기 시작 하였다. 풍요로운 문명덕에 그들은 각종 제례활동을 벌이기 시작 하였으며, 그 중심에 거대 석상 "모아이" 가 있었다. 그러나 대형석상인 모아이의 제작은 섬의 큰나무가 필요한 행사로 "모아이"를 하나 세울때 마다 극심한 산림파괴로 이어졌다.

자연적인 인구증가로 인한 경작지 확보와 함께 이로인한 이스터섬 환경파괴의 악순환이 시작이 되었다. 15세기경부터 부터 "모아이"제작이 중단되는데 이때에 벌써 섬에는 큰나무가 사라졌다. 바닷바람의 소금기를 막아주던 큰나무(야자수)들이 사라지자 작은나무들이 말라죽었고, 뒤를 이어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작물까지 죽어가는 극악한 환경에 직면하게되었다.또한 나무들이 사라지자 화산암위에 수십만년간 퇴적된 비옥한 토양도 비만 오면 바다로 쓸려가는 재앙이 시작 되었다.  

 

자원의 고갈은 부족간의 다툼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인육"

까지 먹어야하는 문명의 처절한 한 몰락을  가져 왔다.

 

18세기 초 네덜란드의 로헤번선장이 처음 발견 했을때 원시부족 약

3,000명 정도가 섬에 살고 있었으며, 이들이 전쟁시에는 상대편 포로를 잡아먹는것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이스터섬의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 19세기 중반에는 페루의 노예상인들이 섬의 원주민 천여명을 노예로 잡아가는 비극이 시작 되었으며 이들 백인이 남긴 질병인 "홍역"과 "매독"으로 인하여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원주민수가 100여 명까지 줄어드는 참혹한 재앙이 계속 되었다. 한때는 섬 이름이 "죽은자들의 섬"이라 불릴 정도로  섬전체에 유골이 즐비 하였다.

 

 

덧" 80년대에는 "모아이"가 외계인의 기념물이라는 카더라설이 주류

     였는데.자연과의 조화는 인간 생존의  필수요건이라는 걸 새삼

     다시확인 시켜주는 슬픈 이야기..

    

     백인들이 들여온 질병에 100여년만에 인구의 90%가  사망한

     불쌍한 중남미 인디오들 그리고 몰락해간 그들의 문명과 오버랩

     이 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영혼을(역사와 정체성) 잃어버린 멍한 눈빛의 인디오들.....

    

     우리도 마찬가지..... 지난 36년간의 일제의 정신말살정책으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국사회..... 자기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아직은 멍청한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