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 이였을 때도 나는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돌아보면 사방이 꽉꽉 막힌 벽이었을 때도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벽이 열릴 때까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외치면서 안 효숙의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중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 이였을 때도 나는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나뿐만이 아니여도 이 세상 모든 명예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였든 간에 절벽 같은 상황 속에서 다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보다 <나는 살아서 뭐하나 죽고 싶다>라는 그 심정 스토리가 가득 넘쳐났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우리 가족 구성원 최 미희 이름 중에 있어서 사람을 보면 웃길 좋아하고 이 말 저 말 믹서 상태로 기분이 나쁘든 기분이 좋든도 상관없이 말 많고 탈도 많아 믿음쟁이의 장녀 우리 집의 첫째 딸도 되지 못하는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는 이야기였지만 넌 교통사고라는 흠 혹은 부족함 때문에 모든 게 뒤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마음 되새김질함으로도 내가 작년 28살 때 복합적인 괴로움 연속의 일이 있어 우울증 자살기도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못난 나였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게 조심스러워 지기도 하면서 반대론 나의 못된 이미지를 머리에 변신을 줘 봐야지 하면서 난 그래도 내가 살고는 있다라는 증거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우면서 보면 볼수록 또는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한 일상 꿈꿨는지도 모른다는 맘 요리로 음식을 만들든 언어라는 요모한 매력이 있는 각각지의 단어로 지지든 가슴시린 짝사랑 같은 완성작은 만들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는 그런 삶 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는 미희인데 난 지금 역시도 그런 삶에 자신은 없었던 나였었다. 그래도 변함이 없었던 나를 기억한다면 뭐든지 솔직하면서 기분 상한 상황이 와도 겉으로는 뭐라 하지도 못하는데 뒷감당으로 내 마음만 쿵쿵 내리찧는 (내 발등에 내가 도끼를 찧는다고나 할까나) 그런 후회 같은 마음 가족이라는 신뢰를 해 줘야 하는 구성원에서는 지겹든 내가 그 말을 함으로서 어렵든 난 우리 어머니에게는 꼭 이런 메시지만은 전해주고 싶었었다. 29으로 나 최 미희에게도 찾아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평생직업까지도 약속한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그런 사랑으로 사회복지 실습으로 만났던 마음 좋고 하는 말까지도 살살 놓는 솜사탕 같았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는데 만나는 회수가 거듭날수록 어머니의 나의 어린시절 때부터 너 같이 교통사고 당한 부족한 아이가 뭐 라는 홍기를 알아가면서도 내가 자신이 없어져서 홍기에게도 마음답지 않은 말을 꺼내 언제나 “미안 미안 친구” 라고 했긴 했지만 그 자체가 나의 자유 같은 큰 웃음소리로도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는 여자가 헤프게 웃어서 뭐하냐 스치는 말도 있어 나의 자유를 잘 견뎌내지 못하면서 어머니랑 분명히 이야기 포인트는 좋은 생각을 서로 가지면서 나누자는 마음이였는데 그게 화를 내고 분노를 만드는 상황이 되어 어머니랑도 좋은 대화는 포기해야 할 듯 합니다. 홍기랑 나랑 만나고 좋아하는 감정을 다이어리 달력 수첩에 정리하듯 분명하지 않으면서 애매한 마음뿐이라 동생이 만나는 남친하고 만든 포토 달력 사이에 적힌 첫 만남 사귄 날짜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언제나 억울하고 분이 나는 나의 분홍색 립스틱 같았다. 사실 홍기랑 첫 만남에서 사귀는 마음 시작하는 것도 일주일 좀 넘게 어머니께서 “너 같은 장애 있는 애를 장애 없는 애 누가 사귀자 하냐” 하셔서 그 말 진정한 답을 얻기 위해 기다리면서도 기대까지 되면서 언제부터 사귀게 됐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감정과 마음은 뜨겁다 못해 깊어졌던 게 아쉬움이 됐었다. 어머니께 이 말을 홍기와 내가 사귈 때 어머니께서 하셨다 뒤 늦게 꺼내면 “엄마가 언제 그말 했는데” “넌 나쁜엄마로 만드는 구나” 라는 그 말에 있어 내가 언어에 예민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하는 소유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다고 나도 잘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암튼 이 작정부터 난 새털처럼 훨훨 날려 보내 아픔없었고 아쉬움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작을 하고 싶었는데 (모든 마음은 가지면 가질수록 새로움이 되든 것처럼) 그 맘 포기해야 하면서 홍기와 나와 첫 사귀게 된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그 숫자 아직도 찾지 못한 보물찾기처럼 나와 홍기와의 몫이라는 마음뿐이다. 나 같은 약으로 내 불편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날씨 흐릴 때나 흐리기 전이면 언제나 교통사고 후유증의 머리 깨질 것 같은 통증과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많이 경험했었던 손 떨림의 완화로 불편한 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면 아프겠구나 하면서 그 맘 그 대로를 복사기처럼 경험하며 나의 일요일마다의 유일한 일상 교회도 잘 못 나가 나의 괴로움은 이만 저만으로 커져가는 게 아니였다. 2010년으로 뽑은 하나님께서 미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빨리 실천하고 경험도 해야 하겠는데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옐 29장 12,13) 하나님을 믿지 않는 홍기지만 난 홍기를 하나님 앞으로 같이 와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고 홍기는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러 가는 어느 공간보다도 같이 만나는 걸 더 원하던 홍기 앞에 (홍기 집은 천주교 신자 천국이라) 자신은 없지만 홍기와 나와의 첫 만남도 어색하다 못해 애매했던 그 상황처럼 홍기한테 한편으론 미안해지는 면도 많았던 내가 이젠 덜 미안해지면서 덜 아파했으면 하는 게 또 다른 소망이 된 샘 같았다. 그래서 지난 1월 26일과 1월 28일로 홍기랑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는지도 직장에서 높은 직위의 사람이 높은 사람은 맞는데 그래도 그 보다 더 낮은 눈높이로 보는 그 높은 직위의 사람에게 “자네만 믿네” 라고 하면 마음이 쿵쿵쿵 내려앉는 것처럼 나의 믿음과 나의 생각 하나의 단 표현이란 직장생활의 경험이 없었던 나는 아닌데 어머니나 아버지의 힘으로 단 기간 들어가 체험하는 직장사람들의 내가 못할 때 “어머니 땜에” “아버지 땜에” 라면서 봐 준다는 그 식이 나를 갑갑하게 가둬두는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고 나의 작다 작은 그 샘터가 나는 가족이 나의 높은 직장상사처럼 말 한마디에 아파한 적도 있었고 말 한 마디로 기분 좋아지는 때도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허락한 공간과 더 불어 가족 구성원에서는 내가 뛰고 놀아도 별 탈 없는 그런 부작용 같은 말샘들이 허락되어졌으면 그래서 난 오늘도 기억했던 거 같았다. 홍기와 첫 만남에서 다정한 사진 한 장 찍은 순간의 시간은 좀 길고 지루했던 여정이여도 좋은 말로 시작되면서 좋은 말을 또 낳기도 하는 그런 깨달음 속의 사이가 되고 싶다고 우리 가족에게도 이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 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보면서 말입니다.
뒤로 물러서면 보이는 행복 이야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 이였을 때도
나는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돌아보면 사방이 꽉꽉 막힌 벽이었을 때도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벽이 열릴 때까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외치면서
안 효숙의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중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 이였을 때도
나는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나뿐만이 아니여도 이 세상 모든 명예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였든 간에 절벽 같은 상황
속에서 다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보다 <나는 살아서 뭐하나
죽고 싶다>라는 그 심정 스토리가 가득 넘쳐났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우리 가족 구성원 최 미희 이름 중에 있어서 사람을 보면 웃길 좋아하고 이 말 저 말
믹서 상태로 기분이 나쁘든 기분이 좋든도 상관없이 말 많고 탈도 많아 믿음쟁이의 장녀
우리 집의 첫째 딸도 되지 못하는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는 이야기였지만
넌 교통사고라는 흠 혹은 부족함 때문에 모든 게 뒤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마음 되새김질함으로도
내가 작년 28살 때 복합적인 괴로움 연속의 일이 있어 우울증 자살기도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못난 나였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게 조심스러워 지기도 하면서 반대론 나의
못된 이미지를 머리에 변신을 줘 봐야지 하면서 난 그래도 내가 살고는 있다라는 증거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우면서 보면 볼수록 또는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한 일상
꿈꿨는지도 모른다는 맘
요리로 음식을 만들든 언어라는 요모한 매력이 있는 각각지의 단어로 지지든
가슴시린 짝사랑 같은 완성작은 만들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는 그런 삶
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는 미희인데 난 지금 역시도 그런 삶에 자신은 없었던 나였었다.
그래도 변함이 없었던 나를 기억한다면 뭐든지 솔직하면서 기분 상한 상황이 와도
겉으로는 뭐라 하지도 못하는데 뒷감당으로 내 마음만 쿵쿵 내리찧는
(내 발등에 내가 도끼를 찧는다고나 할까나) 그런 후회 같은 마음 가족이라는
신뢰를 해 줘야 하는 구성원에서는
지겹든 내가 그 말을 함으로서 어렵든 난 우리 어머니에게는 꼭 이런
메시지만은 전해주고 싶었었다.
29으로 나 최 미희에게도 찾아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평생직업까지도
약속한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그런 사랑으로 사회복지 실습으로 만났던 마음 좋고
하는 말까지도 살살 놓는 솜사탕 같았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는데 만나는 회수가
거듭날수록 어머니의 나의 어린시절 때부터 너 같이 교통사고 당한 부족한 아이가 뭐
라는 홍기를 알아가면서도 내가 자신이 없어져서 홍기에게도 마음답지 않은 말을 꺼내
언제나 “미안 미안 친구” 라고 했긴 했지만 그 자체가 나의 자유 같은 큰 웃음소리로도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는 여자가 헤프게 웃어서 뭐하냐 스치는 말도 있어 나의 자유를
잘 견뎌내지 못하면서 어머니랑 분명히 이야기 포인트는 좋은 생각을
서로 가지면서 나누자는 마음이였는데 그게 화를 내고 분노를 만드는 상황이 되어
어머니랑도 좋은 대화는 포기해야 할 듯 합니다.
홍기랑 나랑 만나고 좋아하는 감정을 다이어리 달력 수첩에 정리하듯
분명하지 않으면서 애매한 마음뿐이라 동생이 만나는 남친하고 만든 포토 달력
사이에 적힌 첫 만남 사귄 날짜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언제나 억울하고 분이 나는 나의 분홍색 립스틱 같았다.
사실 홍기랑 첫 만남에서 사귀는 마음 시작하는 것도 일주일 좀 넘게 어머니께서
“너 같은 장애 있는 애를 장애 없는 애 누가 사귀자 하냐” 하셔서 그 말 진정한 답을 얻기 위해
기다리면서도 기대까지 되면서 언제부터 사귀게 됐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감정과 마음은
뜨겁다 못해 깊어졌던 게 아쉬움이 됐었다.
어머니께 이 말을 홍기와 내가 사귈 때 어머니께서 하셨다 뒤 늦게 꺼내면
“엄마가 언제 그말 했는데” “넌 나쁜엄마로 만드는 구나” 라는 그 말에 있어
내가 언어에 예민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하는 소유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다고 나도 잘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암튼 이 작정부터 난 새털처럼 훨훨 날려 보내 아픔없었고 아쉬움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작을 하고 싶었는데 (모든 마음은 가지면 가질수록 새로움이 되든 것처럼) 그 맘
포기해야 하면서 홍기와 나와 첫 사귀게 된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그 숫자 아직도 찾지 못한
보물찾기처럼 나와 홍기와의 몫이라는 마음뿐이다.
나 같은 약으로 내 불편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날씨 흐릴 때나 흐리기 전이면
언제나 교통사고 후유증의 머리 깨질 것 같은 통증과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많이 경험했었던 손 떨림의 완화로 불편한 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면 아프겠구나 하면서 그 맘 그 대로를 복사기처럼 경험하며 나의 일요일마다의
유일한 일상 교회도 잘 못 나가 나의 괴로움은 이만 저만으로 커져가는 게 아니였다.
2010년으로 뽑은 하나님께서 미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빨리 실천하고 경험도
해야 하겠는데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옐 29장 12,13)
하나님을 믿지 않는 홍기지만 난 홍기를 하나님 앞으로 같이 와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고
홍기는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러 가는 어느 공간보다도 같이 만나는 걸 더 원하던
홍기 앞에 (홍기 집은 천주교 신자 천국이라) 자신은 없지만 홍기와 나와의 첫 만남도
어색하다 못해 애매했던 그 상황처럼 홍기한테 한편으론 미안해지는 면도 많았던 내가
이젠 덜 미안해지면서 덜 아파했으면 하는 게 또 다른 소망이 된 샘 같았다.
그래서 지난 1월 26일과 1월 28일로 홍기랑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는지도
직장에서 높은 직위의 사람이 높은 사람은 맞는데 그래도 그 보다 더 낮은 눈높이로
보는 그 높은 직위의 사람에게 “자네만 믿네” 라고 하면
마음이 쿵쿵쿵 내려앉는 것처럼 나의 믿음과 나의 생각 하나의 단 표현이란
직장생활의 경험이 없었던 나는 아닌데 어머니나 아버지의 힘으로 단 기간 들어가 체험하는
직장사람들의 내가 못할 때 “어머니 땜에” “아버지 땜에” 라면서 봐 준다는 그 식이 나를
갑갑하게 가둬두는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고 나의 작다 작은 그 샘터가 나는 가족이 나의
높은 직장상사처럼 말 한마디에 아파한 적도 있었고 말 한 마디로 기분 좋아지는 때도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허락한 공간과 더 불어 가족 구성원에서는
내가 뛰고 놀아도 별 탈 없는 그런 부작용 같은 말샘들이 허락되어졌으면
그래서 난 오늘도 기억했던 거 같았다.
홍기와 첫 만남에서 다정한 사진 한 장 찍은 순간의 시간은 좀 길고 지루했던 여정이여도
좋은 말로 시작되면서 좋은 말을 또 낳기도 하는 그런 깨달음 속의 사이가 되고 싶다고
우리 가족에게도 이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 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보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