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허다한 놀이가 널려 있지만, 함께 모여서 하기에는 야구보다 재밌는 운동이 없다. 즐길거리로 TV나 실제로 경기장에 가서 보는 스포츠는 사실 야구보다도 재밌는 게 훨씬 더 많이 있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구성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수많은 작전으로 조직적으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미국식 풋볼인 NFL를 보고 있으면 가슴은 뜨겁게 요동친다. 반면에 TV로 중계되는 미국 메이져리그 야구나 국내 프로야구 중계는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에 무리가 있고, 중간 중간 끼어드는 광고로 인해 지루하다. 전후반으로 나뉘어진 축구가 시청자로 하여금 더 큰 몰입감을 안겨준다. 차라리 보는 야구는 TV보다 경기장에 가서 봐야지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는 스포츠로 야구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야구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을 하지만, 복잡한 룰로 이루어진 스포츠를 인생에 지친 사람들이 TV 앞에 앉거나 비싼 돈을 주고 경기장에 가서 또 다시 인생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스포츠에 비해 꽤나 긴 시간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이 공놀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많이 소모한다. 또한 일주일에 월요일을 빼놓고는 매일같이 진행되는 고된 일정을 감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지친 한 주를 보내고 주말 저녁 TV 앞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녹색화면에서 야생마처럼 날뛰는 선수들의 발에 공이 붙어다니는 걸 보는 것이 훨씬 더 속편하고 즐거울 것이다.
그렇지만 TV에서 지나치도록 사치스럽게 매일 계속 방송되는 야구라는 공놀이가 가진 의미는 정작 스스로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수동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소통을 하며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특질이며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놀이하는 동물)만이 지닌 특권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황폐화된 사회에서 인간이 누군가와 어울린다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고 있다. 그저 가족이 중심이 된 개체화된 세계에 머무르는 것은 태초부터 교류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부딪히며 살아야하는 본디 인간이 가진 성질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스포츠는 이 척박한 땅에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탈출구가 된다. 매일 같이 만나지만 정례화된 인사, 습관적으로 기어들어가는 잠자리와 같은 틀에 박힌 일상의 구조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능동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왜 꼭 야구이어야 하는가. 다른 공놀이도 한 두 사람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각자 포지션에 맡게 역할을 분담하여 능동적으로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축구와 농구와 같은 운동은 공 하나만 있어도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놓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꼭 야구여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기에 또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인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간혹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가끔씩은 나온다. 그런 변태들이. 그런 엄친아들이. 그렇지만 대다수의 경우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은 몇 가지의 분야에서만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야구는 이런 인간의 한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한계에 맞게 고안된 놀라운 스포츠다. 대부분의 프로페셔널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노력 끝에 야구의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분들은 직업을 야구로 선택한 전문직 종사자들일 뿐이고, 일반인들은 야구의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잘 하지 않아도 된다. 야구는 그 놀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것도 정확하게. 다른 여타 스포츠에 비해 너무 전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야구를 한 번도 업(業)으로 삼지 않았던 일반인의 경우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하기란 힘들다.
가령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매번 안타를 치는 타자나 공을 받는 포수를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포지션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포수라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엄청난 근력이 요구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분야에 열중해야 하며, 자신의 재능을 그 곳에 극대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타자의 경우에도 자신이 빠른 발을 가졌지만, 힘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면 굳이 멀리 칠 필요는 없다. 그 역할은 힘이 좋은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타격에는 전혀 소질이 없지만 공을 보는 눈이 좋은 사람은 상대편의 투수가 던지는 공을 보다가 볼을 네 개 얻어서 그냥 나가면 된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다 잘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에게 쳐지지 않는 정도만 하되, 자신이 정말 잘하는 것 하나만 해도 그는 팀에서 충분히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야구는 인간이 가진 한계 안에서 서로 분업하여 하나의 팀이 되는 운동이다. 아무리 혼자서 잘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으며, 나 홀로 발버둥 쳐봤자 한계가 있는 스포츠다.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하나 하나 모아서 9명 혹은 10명의 팀원들이 하나의 팀을 만드는 공놀이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각자가 가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옆에 있는 동료에게 힘을 불러 일으켜야만 이길 수 있다. 야구는 절대로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로 혼자서 자신의 잘난 맛에 취해 독불장군처럼 무모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즐거움을 맛 볼 수도 이길 수도 없다.
그렇기에 야구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가정에서조차 아버지의 역할을 아들이 할 수 없고, 아들의 역할을 어머니가 할 수 없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친구에게는 친구의 역할이 있으며, 그 친구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어려울 때나 힘이 들 때마다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친구요, 인생이다. 야구에서는 자신이 넘어지더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달려와 자기 대신 공을 잡아주고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준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설령 힘을 다하지 못한 경기일지라도 그 경기에서만은 힘든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뛰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참된 행복은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온다. 야구가 가진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한계 이상을 하려고 노력해서 남들보다 잘되고 잘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포기하고 팀을 위해서 내가 죽는 것.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 다른 운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생의 뜨거운 향기을 야구에서는 매 경기마다 맡을 수 있다.
야구,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세상에는 허다한 놀이가 널려 있지만, 함께 모여서 하기에는 야구보다 재밌는 운동이 없다. 즐길거리로 TV나 실제로 경기장에 가서 보는 스포츠는 사실 야구보다도 재밌는 게 훨씬 더 많이 있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구성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수많은 작전으로 조직적으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미국식 풋볼인 NFL를 보고 있으면 가슴은 뜨겁게 요동친다. 반면에 TV로 중계되는 미국 메이져리그 야구나 국내 프로야구 중계는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에 무리가 있고, 중간 중간 끼어드는 광고로 인해 지루하다. 전후반으로 나뉘어진 축구가 시청자로 하여금 더 큰 몰입감을 안겨준다. 차라리 보는 야구는 TV보다 경기장에 가서 봐야지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는 스포츠로 야구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야구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을 하지만, 복잡한 룰로 이루어진 스포츠를 인생에 지친 사람들이 TV 앞에 앉거나 비싼 돈을 주고 경기장에 가서 또 다시 인생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스포츠에 비해 꽤나 긴 시간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이 공놀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많이 소모한다. 또한 일주일에 월요일을 빼놓고는 매일같이 진행되는 고된 일정을 감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지친 한 주를 보내고 주말 저녁 TV 앞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녹색화면에서 야생마처럼 날뛰는 선수들의 발에 공이 붙어다니는 걸 보는 것이 훨씬 더 속편하고 즐거울 것이다.
그렇지만 TV에서 지나치도록 사치스럽게 매일 계속 방송되는 야구라는 공놀이가 가진 의미는 정작 스스로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수동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소통을 하며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특질이며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놀이하는 동물)만이 지닌 특권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황폐화된 사회에서 인간이 누군가와 어울린다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고 있다. 그저 가족이 중심이 된 개체화된 세계에 머무르는 것은 태초부터 교류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부딪히며 살아야하는 본디 인간이 가진 성질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스포츠는 이 척박한 땅에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탈출구가 된다. 매일 같이 만나지만 정례화된 인사, 습관적으로 기어들어가는 잠자리와 같은 틀에 박힌 일상의 구조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능동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왜 꼭 야구이어야 하는가. 다른 공놀이도 한 두 사람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각자 포지션에 맡게 역할을 분담하여 능동적으로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축구와 농구와 같은 운동은 공 하나만 있어도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놓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꼭 야구여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기에 또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인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간혹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가끔씩은 나온다. 그런 변태들이. 그런 엄친아들이. 그렇지만 대다수의 경우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은 몇 가지의 분야에서만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야구는 이런 인간의 한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한계에 맞게 고안된 놀라운 스포츠다. 대부분의 프로페셔널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노력 끝에 야구의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분들은 직업을 야구로 선택한 전문직 종사자들일 뿐이고, 일반인들은 야구의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잘 하지 않아도 된다. 야구는 그 놀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것도 정확하게. 다른 여타 스포츠에 비해 너무 전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야구를 한 번도 업(業)으로 삼지 않았던 일반인의 경우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하기란 힘들다.
가령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매번 안타를 치는 타자나 공을 받는 포수를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포지션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포수라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엄청난 근력이 요구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분야에 열중해야 하며, 자신의 재능을 그 곳에 극대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타자의 경우에도 자신이 빠른 발을 가졌지만, 힘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면 굳이 멀리 칠 필요는 없다. 그 역할은 힘이 좋은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타격에는 전혀 소질이 없지만 공을 보는 눈이 좋은 사람은 상대편의 투수가 던지는 공을 보다가 볼을 네 개 얻어서 그냥 나가면 된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다 잘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에게 쳐지지 않는 정도만 하되, 자신이 정말 잘하는 것 하나만 해도 그는 팀에서 충분히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야구는 인간이 가진 한계 안에서 서로 분업하여 하나의 팀이 되는 운동이다. 아무리 혼자서 잘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으며, 나 홀로 발버둥 쳐봤자 한계가 있는 스포츠다.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하나 하나 모아서 9명 혹은 10명의 팀원들이 하나의 팀을 만드는 공놀이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각자가 가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옆에 있는 동료에게 힘을 불러 일으켜야만 이길 수 있다. 야구는 절대로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로 혼자서 자신의 잘난 맛에 취해 독불장군처럼 무모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즐거움을 맛 볼 수도 이길 수도 없다.
그렇기에 야구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가정에서조차 아버지의 역할을 아들이 할 수 없고, 아들의 역할을 어머니가 할 수 없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친구에게는 친구의 역할이 있으며, 그 친구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어려울 때나 힘이 들 때마다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친구요, 인생이다. 야구에서는 자신이 넘어지더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달려와 자기 대신 공을 잡아주고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준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설령 힘을 다하지 못한 경기일지라도 그 경기에서만은 힘든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뛰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참된 행복은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온다. 야구가 가진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한계 이상을 하려고 노력해서 남들보다 잘되고 잘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포기하고 팀을 위해서 내가 죽는 것.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 다른 운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생의 뜨거운 향기을 야구에서는 매 경기마다 맡을 수 있다.
야구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스포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