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동안 내 청춘과 꽃다운 젊음과 맞바꾸며 일궈왔던내 분신과 같았던 사업장을 접기로 최종 결정하고 지난 주말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결혼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결혼식의 모든 준비는 와이프에게 맡기고 나는 사업장 오픈을 준비를 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난 다음, 예정 된 오픈 일정에 맞추려면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며 신혼여행 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자며 일방적으로 신혼 여행을 취소해 버리고 여행 경비를 인테리어 하는데 써버렸다. 그런탓에 우리 부부에게는 신혼여행에 대한 설레임이나 달콤한 추억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지금도 그일은 아내에게 커다란 약점이 되어조금만 서운하게 대할라치면 그때 일을 잊어 버리지도 않고 입버릇처럼 들먹인다. 그일은 아내 입장에서는 결코 지울 수 없었던 커다란 아쉬움이며 서글픔이였을게다.아내에게 쏟았던 사랑보다는 서너 배 쯤 더 많은 애정을 일에 쏟아 왔고어쩌다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데라도 바람 쐬러 가자며 간청하던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아이들 데리고 혼자 다녀오라며 잡힌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일터로 달려가던 세월이 자그만치 25년이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죽도록 고생을 하다가 허리 좀 펴고 살만하니까벽을 뚫고 들어온 전문털이 범들에게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다 털리고 망연해 하던 일... 그때 받은 지독한 중압감과 스트레스로 인해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에서 병마와 싸우던 시간들... 알거지나 마찬가지였던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외상으로 텅 빈 진열장을 채워주며 따뜻한 격려의 말로 토닥이며절망의 나락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거래처 사장들을 비롯한 고마웠던 지인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을만 할 무렵갑자기 찾아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던 악귀와도 같았던 IMF 환란... 그리고 굽이마다, 고비마다 조금만 더 덜 쓰고 조금만 더 허리띠 졸라매고 조금만 더 견디자며...죄없는 아내와 아이들을 닥달해 가며 그렇게 일궈 온 사업장이다. 어젯 밤 퇴근한 후에 아내를 불러 앉혀 놓고 지난 주말에 계약금으로 받은 봉투를 내 밀었다. 탁자에 올려 놓은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은 가슴 속으로 찬바람이 휑하니 들어온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추진해 온 일이라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 보다. 알량한 저 봉투 하나가 내 청춘과 맞바꾼 결과물처럼 느껴져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저놈이 있었으니까 도둑맞은 빚 다 갚고 손 바닥만한 집이라도 한칸 마련했고우리 아이들도 저만큼 키워 주지않느냐' 며 "그동안 처 자식 먹여 살리느라 고생 했으니이제부터는 당신하고 싶었던 일 해가며 당분간 아무생각도 말고 쉬라" 며 애써 나를 위로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내가 언제 놀아 봤어야 말이지... 그래도 앞으로 한달 동안..그동안 벌여놓은 일들을 대강 마무리하고쓰던 장비와 집기들을 정리를 하고 난 후 그리고 3월이 오면....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새로운 미래와새로운 도약을 위한청사진을 그리기 위하여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역간의 두려움은 앞서지만 말이다.그동안 촉탁받아 놓고 먹고 사는 일에 밀려 활동이 미진했던 년사(年史) 편찬위원회 일과집필주간으로서의 직무와 집필에 전념하면서나도 언젠가는 한번 쯤 해보고 싶었던 백수모드로 전환할 예정이다. 14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독백)
지난 25년동안 내 청춘과 꽃다운 젊음과 맞바꾸며 일궈왔던
내 분신과 같았던 사업장을 접기로 최종 결정하고
지난 주말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결혼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결혼식의 모든 준비는 와이프에게 맡기고
나는 사업장 오픈을 준비를 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난 다음,
예정 된 오픈 일정에 맞추려면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며
신혼여행 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자며
일방적으로 신혼 여행을 취소해 버리고
여행 경비를 인테리어 하는데 써버렸다.
그런탓에 우리 부부에게는 신혼여행에 대한 설레임이나
달콤한 추억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일은 아내에게 커다란 약점이 되어
조금만 서운하게 대할라치면
그때 일을 잊어 버리지도 않고 입버릇처럼 들먹인다.
그일은 아내 입장에서는 결코 지울 수 없었던
커다란 아쉬움이며 서글픔이였을게다.
아내에게 쏟았던 사랑보다는
서너 배 쯤 더 많은 애정을 일에 쏟아 왔고
어쩌다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데라도
바람 쐬러 가자며 간청하던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아이들 데리고 혼자 다녀오라며
잡힌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일터로 달려가던 세월이 자그만치 25년이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죽도록 고생을 하다가 허리 좀 펴고 살만하니까
벽을 뚫고 들어온 전문털이 범들에게
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다 털리고 망연해 하던 일...
그때 받은 지독한 중압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에서 병마와 싸우던 시간들...
알거지나 마찬가지였던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외상으로 텅 빈 진열장을 채워주며
따뜻한 격려의 말로 토닥이며
절망의 나락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거래처 사장들을 비롯한 고마웠던 지인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을만 할 무렵
갑자기 찾아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던
악귀와도 같았던 IMF 환란...
그리고 굽이마다,
고비마다
조금만 더 덜 쓰고 조금만 더 허리띠 졸라매고
조금만 더 견디자며...
죄없는 아내와 아이들을 닥달해 가며
그렇게 일궈 온 사업장이다.
어젯 밤 퇴근한 후에
아내를 불러 앉혀 놓고
지난 주말에 계약금으로 받은 봉투를 내 밀었다.
탁자에 올려 놓은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은 가슴 속으로
찬바람이 휑하니 들어온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추진해 온 일이라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 보다.
알량한 저 봉투 하나가
내 청춘과 맞바꾼 결과물처럼 느껴져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저놈이 있었으니까 도둑맞은 빚 다 갚고
손 바닥만한 집이라도 한칸 마련했고
우리 아이들도 저만큼 키워 주지않느냐' 며
"그동안 처 자식 먹여 살리느라 고생 했으니
이제부터는 당신하고 싶었던 일 해가며
당분간 아무생각도 말고 쉬라" 며 애써 나를 위로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내가 언제 놀아 봤어야 말이지...
그래도 앞으로 한달 동안..
그동안 벌여놓은 일들을 대강 마무리하고
쓰던 장비와 집기들을 정리를 하고 난 후
그리고 3월이 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위하여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역간의 두려움은 앞서지만 말이다.
그동안 촉탁받아 놓고
먹고 사는 일에 밀려 활동이 미진했던
년사(年史) 편찬위원회 일과
집필주간으로서의 직무와 집필에 전념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한번 쯤 해보고 싶었던
백수모드로 전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