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 혹은 정보의 결여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반응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하에 놓이면 불안감을 느끼고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통제하려 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바로 이런 상태가 소문 특히 악성소문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종종 이런 통제불능의 공황상태에서 그럴듯한 가짜소문이 유포되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믿어지고 거침없이 퍼져나간다. 더더욱 그 소문이 잇슈거리가 되면 그 불길은 걷잡을 수도 없으며, 그 누구도 그 소문의 진위에 대해 따지려 들지 않는다. 소문의 진위에 대해 따져보려해도 이미 불길은 전체를 삼켜버릴 기새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런 소문들은 소문의 당사자에게 종종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 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후에도 오랜 기간 사람들의 인식속에 잔존한다. 그 가장 좋은 최근의 예는 바로 '최진실 자살사건'이 아닌가?
그 당시 사람들은 '안재환'의 죽음에 둘러쌓인 알 수 없는 소문의 소용돌이 속을 헤메고 있었다.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증명되거나 그럴듯하게 나타난 사례가 없었고 사람들의 호기심과 그 '자살의 진짜 원인'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해갔다. 그에 상응하고자 언론들은 그것을 미친듯이 파헤치고 다녔고 그 때쯤 누군가 그럴듯한, 그리고 아주 귀에 솔깃한 소문 하나를 퍼트렸다. 바로 '최진실 사채'소문이다. 소문은 진위를 떠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얼마 후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면서 소문유포자가 직접 최진실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지만, 이미 소문의 불길은 집을 삼켜버린 후였다.
사람들은 밝혀진 진위를 믿기를 거부했다. 다시금 그 알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결국 이 사건은 소문의 당사자 였던 최진실의 자살로서 어느 정도 기세가 꺽였지만, 그녀가 죽은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 소문이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안재환의 죽음의 진짜 원인이 아직 어느정도는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소문의 실체이다. 우리는 소문의 유포자인 동시에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그것을 믿는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소문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된 것은 다름아닌 공인들(연애인, 정치인 등)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소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알게된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만약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 대해서의 소문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고 그 소문의 범주도 넓지 않기 때문에 진위를 해명하기도, 그 불길을 잡기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혹은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공인일 경우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공인들을 아는 사람 범주에 넣지만 실제로 정말 아는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쌍방향의 관계가 아니므로. 즉 내쪽에서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공인에 대한 소문 유포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즉 내가 잘못 유포시킨 소문으로 인해 내가 타격을 받을 확률이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소문 유포가 너무 쉽다는 이야기다. 공인에 대한 소문유포는 종종 재미,편견 혹은 악감정등에서도 시작하기 때문에 나아가서는 그 당사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아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오해와 여파는 심심치 않게 당사자를 강타한다.
"우리가 우리 지식을 믿는 것은 그것이 참으로 입증되었거나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정반대이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가 그것을 믿기 때문에 참인 것이다. 소문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필연적이라 여겨지고 그 모든 확실성이 사회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속한 집단이 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참이다. 사회적인 지식은 믿음에 근거하지 증명에 근거하지 않는다. 놀랄 일이 아니다. 종교가 소문의 가장 멋진 예 아닌가? 종교란 원초적인 위대한 증인이 고지한 말이 아닌가? 신의 현존 입증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신의 현존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국민이 걸어야 할 길을 규정하는 가장 깊은 확신은 종종 말로부터 출발한다." -소문연구가 카퍼러-
<나를 파괴하는 정체 불명의 괴물 소문> -미하엘 셸레- 열대림 본문 참조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단 한줄의 댓글도 소문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남을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당신의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가짜소문을 퍼트렸고 그 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만큼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어떻겠는가? 부디 이 점을 꼭 심사숙고 한다면 앞으로 최진실 자살사건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문, 당신이 유포자?
소문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 혹은 정보의 결여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반응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하에 놓이면 불안감을 느끼고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통제하려 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바로 이런 상태가 소문 특히 악성소문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종종 이런 통제불능의 공황상태에서 그럴듯한 가짜소문이 유포되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믿어지고 거침없이 퍼져나간다. 더더욱 그 소문이 잇슈거리가 되면 그 불길은 걷잡을 수도 없으며, 그 누구도 그 소문의 진위에 대해 따지려 들지 않는다. 소문의 진위에 대해 따져보려해도 이미 불길은 전체를 삼켜버릴 기새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런 소문들은 소문의 당사자에게 종종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 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후에도 오랜 기간 사람들의 인식속에 잔존한다. 그 가장 좋은 최근의 예는 바로 '최진실 자살사건'이 아닌가?
그 당시 사람들은 '안재환'의 죽음에 둘러쌓인 알 수 없는 소문의 소용돌이 속을 헤메고 있었다.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증명되거나 그럴듯하게 나타난 사례가 없었고 사람들의 호기심과 그 '자살의 진짜 원인'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해갔다. 그에 상응하고자 언론들은 그것을 미친듯이 파헤치고 다녔고 그 때쯤 누군가 그럴듯한, 그리고 아주 귀에 솔깃한 소문 하나를 퍼트렸다. 바로 '최진실 사채'소문이다. 소문은 진위를 떠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얼마 후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면서 소문유포자가 직접 최진실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지만, 이미 소문의 불길은 집을 삼켜버린 후였다.
사람들은 밝혀진 진위를 믿기를 거부했다. 다시금 그 알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결국 이 사건은 소문의 당사자 였던 최진실의 자살로서 어느 정도 기세가 꺽였지만, 그녀가 죽은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 소문이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안재환의 죽음의 진짜 원인이 아직 어느정도는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소문의 실체이다. 우리는 소문의 유포자인 동시에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그것을 믿는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소문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된 것은 다름아닌 공인들(연애인, 정치인 등)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소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알게된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만약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 대해서의 소문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고 그 소문의 범주도 넓지 않기 때문에 진위를 해명하기도, 그 불길을 잡기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혹은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공인일 경우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공인들을 아는 사람 범주에 넣지만 실제로 정말 아는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쌍방향의 관계가 아니므로. 즉 내쪽에서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공인에 대한 소문 유포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즉 내가 잘못 유포시킨 소문으로 인해 내가 타격을 받을 확률이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소문 유포가 너무 쉽다는 이야기다. 공인에 대한 소문유포는 종종 재미,편견 혹은 악감정등에서도 시작하기 때문에 나아가서는 그 당사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아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오해와 여파는 심심치 않게 당사자를 강타한다.
"우리가 우리 지식을 믿는 것은 그것이 참으로 입증되었거나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정반대이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가 그것을 믿기 때문에 참인 것이다. 소문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필연적이라 여겨지고 그 모든 확실성이 사회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속한 집단이 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참이다. 사회적인 지식은 믿음에 근거하지 증명에 근거하지 않는다. 놀랄 일이 아니다. 종교가 소문의 가장 멋진 예 아닌가? 종교란 원초적인 위대한 증인이 고지한 말이 아닌가? 신의 현존 입증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신의 현존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국민이 걸어야 할 길을 규정하는 가장 깊은 확신은 종종 말로부터 출발한다." -소문연구가 카퍼러-
<나를 파괴하는 정체 불명의 괴물 소문> -미하엘 셸레- 열대림 본문 참조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단 한줄의 댓글도 소문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남을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당신의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가짜소문을 퍼트렸고 그 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만큼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어떻겠는가? 부디 이 점을 꼭 심사숙고 한다면 앞으로 최진실 자살사건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