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8살에 처음 가본 나이트 클럽은...

. 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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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밤.

영등포에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죠.

 

신나게 왁자지껄 담소도 나누고 오랜만에 개인기도 좀 펼치고..

노래방에가서 신나게 목청을 달구기도 하였지요.

 

노래방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일행중 형 하나가

내 뒤로와서 속삭입니다.

"(몹시 조심스레) 야.. 나이트 갈래?"

"네?"

나는 마치 혼자 방에서 거사를 치르다 엄마에게 걸린

사춘기 소년의 동공을 하고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혀..형.. 왜 그래요~'

 

결의 찬 그 형의 얼굴..

 

사실 저는 83년생 올해 28살의 건장한 남성으로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인간관계 또한 매우 원만하며

루져(Loser)가 아님을 다행스레 생각코 있는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정열의 사나이 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열등의식.

난 왜 이 나이 먹도록까지 '나이트'를 한번도 못가봤지?

 

일전에 후배에게,

"나 나이트좀 데려가 주라. 한번도 안가봤어..."라며

힘찬 용기를 입에 담아 비밀아닌 비밀을 풀어놓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 진짜요? 알았어요~ 나중에 한번 같이 가요~"

 

언제 올 지 모르는 집나간 며느리보다

       "나중에"를 기다림이 더 무모하다던가..

 

어쨌든 그토록 기다렸던 그 날이 오늘 내게 찾아온 것이다.

 

 

노래방앞에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나서 5분후 한 블럭 옆에서

나와 그형은 다시 은밀한 재회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고 갔을, 이른바 나이트 삐끼들의 호객소리가

그토록 간절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후..

나이트 입구에 들어서자 젊은 남여들이 오고 가고 있다.

둥둥 거리는 베이스 음이 점차 귀에 초점을 맞춰 들어온다.

 

'아.. 떨린다.'

 

나이트 안에 들어서자 TV에서만 보던 그 나이트의 전형적인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완전 신기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과감히 폰을 꺼내

사진도 찍었다.

 

 

 

'아.. 나도 이제 나이트 와본 남자야. ㅠㅠ'

 

 

테이블에 앉자마자 형에겐 솔직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아서

슬쩍 이야기 했다.

 

"형.. 저 사실 나이트 처음이에요!"

"무..뭐..뭐?! 아 진짜?"

"네!! 형~ 저 지금 너무 떨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형. 슬쩍 당황하더니 다시 내 귀에 대고 말을 잇는다.

 

"야 그냥 넌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면 웨이터들이 여자들 계속 데리고 올꺼야~"

 

그 형은 능수능란한 손동작으로 웨이터를 불러 술을 시키더니

슬쩍 웨이터에게 만원짜리 한장을 건네주며

"잘 부탁해요~ 알져?"

 

이것은 산교육.

저 형이 어떻게 하는 지 잘 배워두어야 혹여나 나중에 또 나이트 왔을때

당황치 않겠지..

그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으리라.

 

서로의 잔에 맥주를 한 컵씩 따라서 한 모금 입에 맥주를 갖다댈 무렵..

웨이터가 아가씨 두명을 데리고 왔다.

쿠궁-

 

'드...드디어 시작됐다. 이..이런게 바로 말로만 듣던 부킹!!

심장이 슬쩍 부끄럼을 타는 가 싶더니 쿵쾅 쿵쾅 요란을 떨기시작했다.

간혹 주위 사람들 보면 나이트에서 만나서 잘도 사귀고 하던데..

개그맨 유세윤은 부킹으로 만나 결혼까지 하던데..

그렇담 나도 드디어 이 기나긴 솔로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인가?

 

온몸이 흥분감에 도취되어 달콤한 상상에 잠시 빠졌다가

정신을 놓지않기위해 어금니를 꽉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웨이터가 우리의 양옆에 아가씨들을 앉히더니 말없이 떠났다.

내 옆자리 그녀의 옆 프로필이 스테이지의 조명에 의해 실루엣으로

내 두 눈에 빈틈없이 들어왔다.

이런 표현 안쓰지만 딱 맞는 표현이다.

 

 

'졸라 떨렸다.'

 

 

TV에서 부킹장면에 남자들이 처음온 여자에게 뭐라고 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슨 말부터 하지?  내 소개부터 해야 매너있는건가? 

 아, 일단 형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배우고 나도 따라해야지..'

 

이상하다.

형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멍하니 나만 바라보고 있다.

 

잔을 잡고 있는 형의 오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했다.

'아냐.. 저 형이 뭔가 작전이 있는 걸꺼야..  아냐.. 저 형은 떨지 않아..'

 

아까 노래방 화장실에서 보았던 형의 결의에 찬 두 눈동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심지어 그 형이 내 눈길을 피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려 여전히 떨려하는 오른손으로 맥주를 마셨다.

나는 당황했다.

 

아가씨들이 옆에 앉은지 20초가량이 지나도록 무언(無言)의 우리 테이블은

이상한 기운으로 가득차올랐다.

 

'아 저형 왜이래. 나보고 어쩌라고 아..'

 

슬쩍 옆에 아가씨들을 보니 그녀들 역시 말없이 서로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내 옆 자리 실루엣 그녀의 표정이 안좋아보인다.

 

 

    첫 눈, 첫 사랑, 첫 만남, 첫 부킹-

             처음이란 단어는 언제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거늘..

 

 

내 생애 첫 부킹인데...

이러면 안되겠다 싶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대박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자! 내 생애 첫 부킹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거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옆 자리 실루엣 그녀에게 최대한 멋짐을 선사해주자!!

 나의 매력을 발산해보자!! 아자아자아자!!! '

 

각오의 각오를 거듭하고 몸을 슬쩍 비틀어 그녀의 귀에 손을 가져가

용기의 귓속말을 전했다.

 

"맥주가 맛있어요!" 

 

그것은 그녀들이 우리 테이블에 오고난 후

터졌던 처음 말이기도 했다.

 

"네?"

"네. 아유~ 맥주가 맛있는데요?!"

 

난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지난 무더운 여름, 밤에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온 왕나방에게 내가 자주

표하곤 하던 그 표정.

 

이윽고 반대편 여자가 일어났고 내 옆의 실루엣 그녀도 일어나더니

말없이 자신들의 테이블로 가버렸다.

 

아...

 

나의 가슴은 비오는 날 돌더미에 무너진 개 집과 다를바가 없었다..

 

뒤늦게서야 가뜩이나 불편해하던 여성들에게 맥주가 참 맛있다는

얼간이 같은 소리나 해댄 나의 입을 원망했지만 이미 깨져버린 노른자였다.

 

'이 멍청이 개 발싸개 호구 얼간이....'

 

그 와중에도 여전히 멍하게 앉아있는 저 형도 밉고 나도 밉고

우릴 조롱하는 듯한 저 DJ도 밉고 실루엣그녀도 밉고 다 미웠다.

 

나의 영광의 첫 나이트 방문인데.. 이런 식으로 산산조각나게 될 줄이야..

 

잠시후 그 형도 사실은 자기도 나이트 두번째라며...

친구따라 할랬는데 잘 되지 않더라며...

내게 참회의 고해성사를 했다.

 

'아오.. 어쩐지 이형.. 아오..' 

 

그 형은 도저히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던지 내게 그만 가자며,,,ㅠㅠ

술이 많이 취해서 어서 집에 가야겠다며,,, ㅠㅠ

 

그렇게 우리는 나이트 방문 10여분 만에 나와야 했습니다.

완전 찌질하게... ㅠㅠ

 

제길...

 

다음에 한번 더 나이트클럽에 도전하겠습니다.

나의 지난 과오를 두번다지 범치 않을 것입니다.

 

다음부턴 내 옆자리에 앉을 미래의 그녀에게 당당히 말할겁니다.

 

 

"저요! 나이트 두번째라서 하나도 안떨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