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나가는 날만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춘천으로 엠티 갔을 때도, 양평으로 훈련 갔을 때도, 강진으로 캠프를 갔을 때도.
마지막으로 가는 여행도 가장 추운 때 걸려서 첫 날 부터 손발이 꽁!꽁! 얼었다.
입대를 8일 앞둔 시점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할겸 여행을 계획 했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도 많이 하고 어떠한 여행을 할 것인지에 대한 조사도 많이 해보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무언가 특별한 여행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냥 미친짓 한번 해보자는 독한 생각을 품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름하야 "Random, Hi ! Seoul 탐방기"
랜덤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 여행의 성격이 복불복인 성격을 조금 띄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숫자대로 지하철 역으로 무조건 찾아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냥 죽치고 그 곳의 문화거리를 찾으면서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간단한 준비물과 규칙을 말하자면,
준비물: 주사위 두개, 지하철 노선
규칙
1. 주사위를 한개 굴려서 짝수면 주사위 한개, 홀 수면 주사위 두개를 쥔다(한개면 1호선이 나올 수 있지만 두개면 절대로 1호선이 안나오거든요).
2. 선택 된 개수의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숫자가 여행할 호선이다.
ex)주사위 숫자 4, 4호선 / 주사위 숫자 8, 8호선
3. 호선의 가운데 지점을 찾고 다시 주사위 한개를 굴려 왼쪽과 오른쪽을 정한다. 짝수면 왼쪽 홀수면 오른쪽.
4. 주사위를 굴려서 이동할 칸 수를 정한다.
그리하여 출발한, 2010년 2월 3일 아침 11시 평택역.
주사위는 던저 졌다.
우리의 첫 번째 출발지는 7호선 장승배기 역으로 정해졌다. 첫날 부터 좀 멀다.
지하철이라는 교통 수단이 생기면서 생각보다 경기도와 서울 그리고 인천간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 졌다. 이제는 왠만한 거리는 다 지하철도 이동이 가능하고 이제 곧 에버라인도 생긴다고 하니 에버랜드도 지하철 타고 갈 판이다. 우리는 농담처럼 서울에서 천안권으로 통학하는 것을 일주일에 3번 여행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 표현대로 우리는 지금 정말 여행을 하고 있으니 평소에 타던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수도권이야 나에게는 익숙치 않아서 잘 모르지만 평택과 같이 전철의 출발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한적한 전철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을 받게 만들어 준다. 오후의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뒤로 펼쳐지는 농가의 모습은 어릴 적 놀던 내 놀이터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한창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닐 때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던 내 모습을 회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오가지만 어느 하나도 나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한대 모여서 한적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하기도 한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동시에 안고 있는 공간이 바로 지하철인 것 같다.
이번에 느낀 것인데, 지하철을 오래 타고 다니면 화장실의 위치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형과 내가 1시간 40여분의 시간을 지하철 내에 있었더니 생체기능이 활발하게작용하여 조금 힘들었다. 다행히 장승배기 역에는 화장실이 바로 보여서 낼름 들어가 살짝 큰것 좀 놔주고 나왔다.
여하튼 이래저래 대략 1시가 가까지 되서야 장승배기 역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1) 장승배기 역
원래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워 잡귀로 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요 경꼐를 표시이기도 했지만 이수를 적어 10리나 15리마다 세워 이정표 역할을 했다. 장승배기의 유래는 조성중기 사도세자가 부왕에 의해 뒤주속에 갇혀 죽은 뒤 그의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화산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참배를 다녔는데 그 당시 이 일대는 인적이 뜸하고 낮에도 맹수가 나타날 것 같은 울창한 숲이라 정조 대왕은 이 곳에 장사 모양을 한 천하대장군과 여상을 한 지하여장군을 세우라 명하였으며 이 때부터 이 곳은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불려지게 된 데서 역명이 유래됨(참고문헌: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교).
장승배기라는 특이한 역명이 조금 궁금했었는데 이러한 역사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그냥 장승이라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잘 보존 되어 있겠거니 하고 가벼이 생각을 했었는데 아버지를 간절히 그리워 하던 정조의 효에서 지명이 유래 된 듯하다.
< 장승배기 >
이 곳에 도착해서 무엇이 있나 알아 보기 위해서 지도를 먼저 살펴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게 될 정도로 딱히 볼 만한 것이 드물었다.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장승배기"하나밖에 없고, 벛꽃길이 하나 있지만 지금은 한 겨울이다. 도로의 명이 조금 특이해서 좀 알아 볼까 생각도 조금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이러한 생각은 나만 하는가 보다.
출사를 위한 여행인 우리 형에게는 그저 잘 나온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면 충분 한 듯 싶어서 건너편의 언덕이 높은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 장승배기를 지나 시립 동작 도서관에서, 저 길 뒤로 우리가 돌아 다닌 곳이다 >
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의 이름은 노송길이다. 최고의 목재로 뽑힌다는 노송의 이름을 딴 이 길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빌어먹을 형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좁은 비탈 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보았다. 어릴 때 써보고 본적없는 연탄이 눈에 보이고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시꺼먼 떼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비 곱은 단칸 방에 낮은 천장사이로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생활 침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곳은 이러한 눈 흘김이 어쩔 수 없이 허용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전깃줄과 같이 얼키고 섥힌 이 동네 길 사이사이로 우리는 그림을 찾아 발걸음을 계속 옮긴다. 내가 보는 것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비단 잘 나온 사진 한장만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서울의 이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그리고 첫날 나는 그 이면의 모습을 조금 흘겨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담장을 넘어 보았듯이.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교회라는 곳에 들어 갔을 때 우리를 의심하던 사람들과 마주하였는데 괜한 아쉬움이 많던 곳이다.. 교회라는 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경계하는 듯한 태도는 조금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물론 이방인이 말도 없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앉아 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누구세요? 뭐하시는 분들이죠?"라고 묻는 말 투에서 도둑놈 취급 받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경계를 할 수 밖에 없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무튼 그래서 나는 이 곳에서 사진을 안찍었는데 단 한장 이 사진만 내가 남겨두고 있다. 내가 베트남에 있을 당시 사이공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 건너편 사이로 심각한 빈부격차를 눈에 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강 건너는 외국인들의 기숙사를 짓는 다며 땅을 갈아 엎고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줄지어 생겨나고 있는데 내가 있던 이 곳은 제대로 된 건물하나 없이 허름한 집에서 살아가는사람들을 보고 이건 무슨 경우인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교회가 있는 이 언덕은 그렇게 잘사는 집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높은 비탈길에 제대로 된 보일러 시설이 없는 듯이 연탄이 자주 목격된다. 낮은 담장은 사생활 침해와 더불어 화재가 날 경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 전깃줄이 내 마음도 복잡하게 만들던 곳이다. 그런데 길 하나를 놔두고 반대편에는 깔끔하게 닦인 도로 뒤로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따뜻한 보일러가 작동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베란다에서 쉬식을 취할 때면 가끔 이곳을 쳐다 보겠지.
물론 내가 이곳이 잘사는 곳인지 못 사는 곳인지 알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에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로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이없는 일이지만 못내 이 양쪽을 번갈아 가며 볼 때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금 발길을 돌려 본다. 좀 더 깊이 자리를 옮기면서 또 다른 곳을 내 눈에 담기 시작한다. 다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는 있지만 살아가는 지역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곳은 분명 내가 많이 보아 온 방식이랑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베트남 이후에 골목이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 인것 같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 내가 성장하던 곳은 방축리라는 시골 마을인데 그 곳은 이렇게 비좁은 골목이라는 것이 없었다. 뒤로는 지금은 깍여서 없어진 산이 있어서 틈만 나면 올라가서 방아깨비며 반딧불이며 같이 어울리고 놀다가 가을이면 논으로 나와 메뚜기를 잡아 놀았다. 시골에서 시내로 나와도 평택은 평택이다.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비곱은 골목길이 구비구비 또여 있고 그 사이로 세월의 흔적들이 곳곳이 눈에 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여기에 사는 아이들은 뭘 하고 놀까? 밖으로 나와서 역 근처에서 노나? 근처에 놀이터는 없어 보이던데 골목에서 놀까? 옛날이면 마을 아이들과 술래잡기며 말뚝박기며 하고 놀았는데 이 곳의 아이들도 그렇게 놀려나?
그건 그렇고 이 곳이 어디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굉장히 높은 담장에 가려 있던 곳인데 그리고 어린이집 맞은편이었고 교회였나? 잘 기억이 안나네. 여름이면 굉장히 멋있는 광경을 그릴 수 있을 만한 곳인 것 같다. 겨울에는 겨울의 멋을 담고 있는데 여름이면 또 다른 싱그러운 녹색의 향이 퍼질 것만 같은 이곳. 왠지 기대되는 담장이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았다. 너무 오래 돌아 다녔는지 발이 점점 얼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려가서 좀 쉬기로 했다. 이제는 마을을 둘러 보는 것은 관두고 다른 곳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근처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원래 다른 마을은 갈 때면 시장 한번을 들려줘야 그 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는 그 마을의 정취와 향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예전에 한창 시장의 안전을 위해서 개 보수를 하겠다며 시장의 옛 모습마져 다 앗아 가서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기를 기대하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본다.
어두워서 그런지 사진들이 다 흔들렸다. 시장의 입구가 특이해서 조금 기대를 했는데 좀 망해가는 분위기였다. 문 닫은 상점들과 너무 어두운 분위기가 지금의 시장을 말해주는 듯 싶었다. 이러한 아쉬움에 더 하여 카메라까지 얼어서 작동을 안하자 그만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귀가를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내가 베트남을 가서야 시장의 귀함을 알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내다 팔고 그것을 사면서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한다. 지역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고 단골을 통해서 이런 저런 정보도 교환하면서 서로서로가 상부상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규정된 가격에 거래 따위는 장사꾼들의 몫으로만 돌아가지 우리들의 몫은 아닌게 되었다. 더이상 사람들과 대화는 오가지도 않고 "덤"이라는 것도 없어졌다. 대형할인 마트에 푸드코드는 있지만 얼큰한 국물의 맛있는 순대국 집은 없다. 시장에서 사다 먹던 떡볶기나 군것질 거리도 더이상 사라지고 안보인다. 그래서 아쉽다. 도대체 우리의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돌아 가는 길 역사 넘어서 비치는 태양과 마주하였다. 내가 태어나면서 언제나 나를 비추던 저 햇빛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들을 비추는데 우리는 너무 인내심이 없는지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스스로 달라지고 있다. 점점 과거의 소중함들은 새로운 신비함에 매료되어 사라지고 없어지는 데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Random, Hi ! Seoul
2010년 2월 3일,
왜 항상 나가는 날만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춘천으로 엠티 갔을 때도, 양평으로 훈련 갔을 때도, 강진으로 캠프를 갔을 때도.
마지막으로 가는 여행도 가장 추운 때 걸려서 첫 날 부터 손발이 꽁!꽁! 얼었다.
입대를 8일 앞둔 시점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할겸 여행을 계획 했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도 많이 하고 어떠한 여행을 할 것인지에 대한 조사도 많이 해보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무언가 특별한 여행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냥 미친짓 한번 해보자는 독한 생각을 품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름하야 "Random, Hi ! Seoul 탐방기"
랜덤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 여행의 성격이 복불복인 성격을 조금 띄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숫자대로 지하철 역으로 무조건 찾아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냥 죽치고 그 곳의 문화거리를 찾으면서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간단한 준비물과 규칙을 말하자면,
준비물: 주사위 두개, 지하철 노선
규칙
1. 주사위를 한개 굴려서 짝수면 주사위 한개, 홀 수면 주사위 두개를 쥔다(한개면 1호선이 나올 수 있지만 두개면 절대로 1호선이 안나오거든요).
2. 선택 된 개수의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숫자가 여행할 호선이다.
ex)주사위 숫자 4, 4호선 / 주사위 숫자 8, 8호선
3. 호선의 가운데 지점을 찾고 다시 주사위 한개를 굴려 왼쪽과 오른쪽을 정한다. 짝수면 왼쪽 홀수면 오른쪽.
4. 주사위를 굴려서 이동할 칸 수를 정한다.
그리하여 출발한, 2010년 2월 3일 아침 11시 평택역.
주사위는 던저 졌다.우리의 첫 번째 출발지는 7호선 장승배기 역으로 정해졌다. 첫날 부터 좀 멀다.
지하철이라는 교통 수단이 생기면서 생각보다 경기도와 서울 그리고 인천간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 졌다. 이제는 왠만한 거리는 다 지하철도 이동이 가능하고 이제 곧 에버라인도 생긴다고 하니 에버랜드도 지하철 타고 갈 판이다. 우리는 농담처럼 서울에서 천안권으로 통학하는 것을 일주일에 3번 여행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 표현대로 우리는 지금 정말 여행을 하고 있으니 평소에 타던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수도권이야 나에게는 익숙치 않아서 잘 모르지만 평택과 같이 전철의 출발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한적한 전철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을 받게 만들어 준다. 오후의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뒤로 펼쳐지는 농가의 모습은 어릴 적 놀던 내 놀이터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한창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닐 때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던 내 모습을 회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오가지만 어느 하나도 나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한대 모여서 한적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하기도 한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동시에 안고 있는 공간이 바로 지하철인 것 같다.
이번에 느낀 것인데, 지하철을 오래 타고 다니면 화장실의 위치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형과 내가 1시간 40여분의 시간을 지하철 내에 있었더니 생체기능이 활발하게작용하여 조금 힘들었다. 다행히 장승배기 역에는 화장실이 바로 보여서 낼름 들어가 살짝 큰것 좀 놔주고 나왔다.
여하튼 이래저래 대략 1시가 가까지 되서야 장승배기 역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1) 장승배기 역
원래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워 잡귀로 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요 경꼐를 표시이기도 했지만 이수를 적어 10리나 15리마다 세워 이정표 역할을 했다. 장승배기의 유래는 조성중기 사도세자가 부왕에 의해 뒤주속에 갇혀 죽은 뒤 그의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화산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참배를 다녔는데 그 당시 이 일대는 인적이 뜸하고 낮에도 맹수가 나타날 것 같은 울창한 숲이라 정조 대왕은 이 곳에 장사 모양을 한 천하대장군과 여상을 한 지하여장군을 세우라 명하였으며 이 때부터 이 곳은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불려지게 된 데서 역명이 유래됨(참고문헌: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교).
장승배기라는 특이한 역명이 조금 궁금했었는데 이러한 역사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그냥 장승이라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잘 보존 되어 있겠거니 하고 가벼이 생각을 했었는데 아버지를 간절히 그리워 하던 정조의 효에서 지명이 유래 된 듯하다.
< 장승배기 >
이 곳에 도착해서 무엇이 있나 알아 보기 위해서 지도를 먼저 살펴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게 될 정도로 딱히 볼 만한 것이 드물었다.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장승배기"하나밖에 없고, 벛꽃길이 하나 있지만 지금은 한 겨울이다. 도로의 명이 조금 특이해서 좀 알아 볼까 생각도 조금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이러한 생각은 나만 하는가 보다.
출사를 위한 여행인 우리 형에게는 그저 잘 나온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면 충분 한 듯 싶어서 건너편의 언덕이 높은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 장승배기를 지나 시립 동작 도서관에서, 저 길 뒤로 우리가 돌아 다닌 곳이다 >
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의 이름은 노송길이다. 최고의 목재로 뽑힌다는 노송의 이름을 딴 이 길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빌어먹을 형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좁은 비탈 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보았다. 어릴 때 써보고 본적없는 연탄이 눈에 보이고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시꺼먼 떼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비 곱은 단칸 방에 낮은 천장사이로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생활 침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곳은 이러한 눈 흘김이 어쩔 수 없이 허용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전깃줄과 같이 얼키고 섥힌 이 동네 길 사이사이로 우리는 그림을 찾아 발걸음을 계속 옮긴다. 내가 보는 것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비단 잘 나온 사진 한장만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서울의 이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그리고 첫날 나는 그 이면의 모습을 조금 흘겨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담장을 넘어 보았듯이.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교회라는 곳에 들어 갔을 때 우리를 의심하던 사람들과 마주하였는데 괜한 아쉬움이 많던 곳이다.. 교회라는 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경계하는 듯한 태도는 조금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물론 이방인이 말도 없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앉아 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누구세요? 뭐하시는 분들이죠?"라고 묻는 말 투에서 도둑놈 취급 받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경계를 할 수 밖에 없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무튼 그래서 나는 이 곳에서 사진을 안찍었는데 단 한장 이 사진만 내가 남겨두고 있다. 내가 베트남에 있을 당시 사이공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 건너편 사이로 심각한 빈부격차를 눈에 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강 건너는 외국인들의 기숙사를 짓는 다며 땅을 갈아 엎고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줄지어 생겨나고 있는데 내가 있던 이 곳은 제대로 된 건물하나 없이 허름한 집에서 살아가는사람들을 보고 이건 무슨 경우인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교회가 있는 이 언덕은 그렇게 잘사는 집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높은 비탈길에 제대로 된 보일러 시설이 없는 듯이 연탄이 자주 목격된다. 낮은 담장은 사생활 침해와 더불어 화재가 날 경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 전깃줄이 내 마음도 복잡하게 만들던 곳이다. 그런데 길 하나를 놔두고 반대편에는 깔끔하게 닦인 도로 뒤로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따뜻한 보일러가 작동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베란다에서 쉬식을 취할 때면 가끔 이곳을 쳐다 보겠지.
물론 내가 이곳이 잘사는 곳인지 못 사는 곳인지 알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에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로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이없는 일이지만 못내 이 양쪽을 번갈아 가며 볼 때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금 발길을 돌려 본다. 좀 더 깊이 자리를 옮기면서 또 다른 곳을 내 눈에 담기 시작한다. 다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는 있지만 살아가는 지역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곳은 분명 내가 많이 보아 온 방식이랑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베트남 이후에 골목이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 인것 같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 내가 성장하던 곳은 방축리라는 시골 마을인데 그 곳은 이렇게 비좁은 골목이라는 것이 없었다. 뒤로는 지금은 깍여서 없어진 산이 있어서 틈만 나면 올라가서 방아깨비며 반딧불이며 같이 어울리고 놀다가 가을이면 논으로 나와 메뚜기를 잡아 놀았다. 시골에서 시내로 나와도 평택은 평택이다.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비곱은 골목길이 구비구비 또여 있고 그 사이로 세월의 흔적들이 곳곳이 눈에 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여기에 사는 아이들은 뭘 하고 놀까? 밖으로 나와서 역 근처에서 노나? 근처에 놀이터는 없어 보이던데 골목에서 놀까? 옛날이면 마을 아이들과 술래잡기며 말뚝박기며 하고 놀았는데 이 곳의 아이들도 그렇게 놀려나?
그건 그렇고 이 곳이 어디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굉장히 높은 담장에 가려 있던 곳인데 그리고 어린이집 맞은편이었고 교회였나? 잘 기억이 안나네. 여름이면 굉장히 멋있는 광경을 그릴 수 있을 만한 곳인 것 같다. 겨울에는 겨울의 멋을 담고 있는데 여름이면 또 다른 싱그러운 녹색의 향이 퍼질 것만 같은 이곳. 왠지 기대되는 담장이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았다. 너무 오래 돌아 다녔는지 발이 점점 얼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려가서 좀 쉬기로 했다. 이제는 마을을 둘러 보는 것은 관두고 다른 곳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근처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원래 다른 마을은 갈 때면 시장 한번을 들려줘야 그 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는 그 마을의 정취와 향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예전에 한창 시장의 안전을 위해서 개 보수를 하겠다며 시장의 옛 모습마져 다 앗아 가서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기를 기대하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본다.
어두워서 그런지 사진들이 다 흔들렸다. 시장의 입구가 특이해서 조금 기대를 했는데 좀 망해가는 분위기였다. 문 닫은 상점들과 너무 어두운 분위기가 지금의 시장을 말해주는 듯 싶었다. 이러한 아쉬움에 더 하여 카메라까지 얼어서 작동을 안하자 그만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귀가를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내가 베트남을 가서야 시장의 귀함을 알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내다 팔고 그것을 사면서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한다. 지역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고 단골을 통해서 이런 저런 정보도 교환하면서 서로서로가 상부상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규정된 가격에 거래 따위는 장사꾼들의 몫으로만 돌아가지 우리들의 몫은 아닌게 되었다. 더이상 사람들과 대화는 오가지도 않고 "덤"이라는 것도 없어졌다. 대형할인 마트에 푸드코드는 있지만 얼큰한 국물의 맛있는 순대국 집은 없다. 시장에서 사다 먹던 떡볶기나 군것질 거리도 더이상 사라지고 안보인다. 그래서 아쉽다. 도대체 우리의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돌아 가는 길 역사 넘어서 비치는 태양과 마주하였다. 내가 태어나면서 언제나 나를 비추던 저 햇빛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들을 비추는데 우리는 너무 인내심이 없는지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스스로 달라지고 있다. 점점 과거의 소중함들은 새로운 신비함에 매료되어 사라지고 없어지는 데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20100203 여행의 마지막을 영등포에서 찍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