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상서

inane201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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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설날, 큰집에서 아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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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간혹 엄마와 아빠가 싸우실때 마다 엄마에게 듣던 말은, 아름이는 당신 딸이니까 당신이 데려가고, 보람이는 내 딸이니까 내가 데려갈게 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아빠 딸입니다.

비록 생김새는 엄마를 꼬옥 빼다 박았지만, 성격은 한윤택씨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우유부단해서 남에게 싫은소리를 잘 하지도 못하고, 밖에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이기적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누구보다 잘 웃고, 남들에게 뭔가 사먹이는걸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당신의 큰딸은,

어쩔 수 없는 당신의 분신입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끊임없는 저의 질문을 어릴 때 부터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고, 찾아서까지 대답해주셨던 아버지의 인내심과 사랑덕분에 제가 지금까지도 호기심을 많이 가진, 꿈을 하나도 꺾지 않는 영혼으로 자랐나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 질문들을, 적어두었다가, 퇴근하면 대답해주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중에 저에게 생길 아이에게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어떤 질문이든, 스스로 해결할 때 까지 기다려주고, 그 질문을 해결 할 수 있는 힌트를 주고, 마지막에 답을 찾아주던 아버지와의 대화.

저의 어린시절의 8할은 아버지와의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생각하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신문을 구독해서 다양한 기사를 읽고 토론하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평생 잊혀지지 않습니다.

"네가 살아갈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 질 세상이다. 아빠는 지금 회사생활을 하면서 차별받는 여성을 많이 보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경제, 정치, 사회, 기술 전반의 분야에서 남성들과 대화할 때 뒤쳐지지 않는 지식을 항상 최전방에 갖춘 지식인이 되어라."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저는 시간 날 때 마다 읽고, 쓰는것을 좋아하는 활자중독자가 될 수 있었으며, 아버지와 토론하던 습관 덕에 똑 부러지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연구실에 자주 데려가서 반도체 회로를 설명해주시던것도 생생합니다.

집에 수도없이 굴러다니던 회로들, 그 회로를 가지고 놀던 저에게 상세하게 전기 전자 부품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아버지는 은연중에 제가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갖기를 바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잡지를 수년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던 어린시절도, 모두 아버님 덕분이었고,

과학이라는 분야를 즐기고 좋아하게 된것도 모두 아버님 덕분입니다.

 

비록 저는 이공계로 가지도, 수학에 재능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와 행복한 대화와 토론을 나누던 어린시절 덕에,

과학으로의 흥미를 이끌어준 그 어린시절 덕에,

영어로 과학수업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에게 이론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열정과 지식을 갖춘 강사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글을 지우고, 취재를 하고, 또 글을 쓰는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IMF때 회사를 그만두고, 더이상 아버지에게 연구원과 이사, 상무라는 직책이 허락되지 않을 때는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아버지가 못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사랑을 받을 줄 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기때문에 이만큼 성숙해지고 남을 배려할 수 있게 된거라고 감사함을 느끼지만, 만약 그런일이 없었다면 언제까지나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이기만 했겠지요.

 

몇년간 아버지의 축쳐진 어깨, 이빨빠진 호랑이같은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딱 제가 대학갈 무렵, 저에게 가장 잘해주고 싶을 그 무렵에 아빠의 모습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섰고, 우리 두 딸이 빨리 철든 모습을 보여주며 빨리 힘을 되찾아 다시 넓고 늠름한 어깨를 가진, 호탕한 웃음을 가진, 여유로운 무뚝뚝함을 가진 호랑이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와주셔서.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전 어떻게 두다리로 세상에 설 수 있었을 까요.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던 수많은 운동들, 지식들, 행간을 읽는 능력, 그리고 세상을 안고 품는 따스함까지.

매해 여름마다 가족을 위해 캠핑도구를 챙겨 텐트를 치고,

하루에 4-6시간씩 매일 출퇴근하시면서도, 주말마다 항상 가족을 위해 시간을 비우고 긴거리, 짧은거리 여행과 견학을 자진해서 계획하셨던 당신의 사랑과 희생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된 출퇴근과 일과로 주말이면 그저 TV를 껴안고 쉬고만 싶었을텐데,

어떻게 주말에도 아침일찍일어나 식물원이고, 공원이고, 박물관이고, 어디든 나들이를 갈 생각을 하셨는지,

저와 보람이와 엄마의 주말을 풍성하게 채워주셨는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돌이켜보면 저의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는 아버지없이는 성장할 수 없었던 반짝이는 시기였습니다.

누구보다 믿었던, 기대가 컸던 큰딸의 우울증과,

그 우울증으로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저를 보면서 수없이 몰래 우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앞으로 무조건 잘해야 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차라리 어릴 때 총명하지 않았더라면, 기대를 하지 않게 했더라면 무너져내리는 마음이 덜했을 것을,

부모가 아니고서야 제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저는 가장 유명하다는 청소년 상담가를 찾기위해 며칠밤을 지새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읽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왜 제가 그렇게 아파했는지, 왜 제가 그렇게 몇달간 울 수 밖에 없었는지, 결국 당신은 그 원인을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사랑이 차고 넘쳐서,

너무 받은게 많고 모자란게 없어서,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나밖에 몰라서 내가 아닌 부모님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던 저의 청소년기를 부모님께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요. 제가 10대 중반이었던 그때, 부모님은 찬란한 30대였습니다.

찬란한 30대에 큰딸 때문에 수없는 밤 마음을 앓아야 했던 그 마음을,

다 크고나서야, 이제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만, 차마 죄송하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독하게 살았나봅니다.

또래보다 더 노력한다고, 더 돈을 벌어야 한다고, 더 궤도에서 엇나가지 말아야한다고, 그렇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했나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사랑과 희생으로 다시 정상궤도안에 섰습니다. 결국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자리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평생동안 올곧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 궤도에서 이탈을 감행할 수 있겠습니까.

 

새벽 두시가 훨씬 넘은 이시간,

가만히 당신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간혹 멋쩍게 전화하셔서 잘 지내냐고, 아픈데는 없냐고 물어보시면, 저는 항상 활짝웃으며 대답합니다.

아빠 딸 잘지내고 있어요.

 

어제는 아빠가 가르쳐주셨던 그 볼링을 수년만에 치면서 그 어느때보다 아빠생각이 많이 났던 하루였습니다.

결혼 전에는 떨어져 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 일찍 독립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매일을 함께 할 수 없음이, 아버지의 까슬까슬한 수염에 부비적거리는 아침을 맞을 수 없을만큼 너무 커버린 소녀의 감성이 아쉬운 하루입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최종 6위에 들어 애버리지가 높게 나왔다고 문자를 보내자 아빠는

"잘하고있어 우리딸. 멀리보고 볼을 던져. 멀리봐야해." 라고 답장을 보내셨습니다.

그 답장덕분에 너무 신나서 더 열심히 공을 던졌지만, 혼자 실실 웃으며 아빠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고,

알고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것을 아이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며,

딸이든, 아들이든 구분하지 않고 기계와 장비와 친해질 수 있게 도와주고,

운동과 친해지도록 끊임없이 도와주고,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도와주는, 생각을 절대로 가로막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자를 말입니다.

 

이제 당신의 딸은 스물 여덟입니다.

혼기가 꽉찬 나이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일이 좋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이 일에서 더 큰 성공을 이루고 싶고, 더 많이 공부해서 높이 올라가보고도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아버지의 사랑과 혜안이 저를 이루었다는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항상 건강하세요. 제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해로할 수 있는 사윗감을 데려오는것도 보셔야 하고,

예쁜 손녀든, 손자든 낳아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키우는것도 보셔야 합니다.

 

앞으로는 아버지께 더 많이 사랑한다고, 보고싶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겠습니다.

이제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날이 더 많아져버린당신께,

당신의 28해를 저를 키우기 위해 수 많은 희생을 감내했던 그 나날들에

흐뭇함과 미소가 감도는 삶을 살아갈 수있는 딸이 되도록 더 노력할게요.

 

사랑합니다. 한윤택씨,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