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비롯해 스킨쉽이 전혀 없고, 끝내 사랑한다는 말조차 등장하지 않는 멜로영화가 있다. '때 묻지 않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남자의 죽음으로써 그네들의 순수한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보는 이는 그 아련하고 먹먹한 느낌에 넋을 놓게 된다. 내가 한국의 멜로영화 중 최고로 꼽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창문 너머로 천진난만하게 걸어가는 심은하를 따라가는 한석규의 그 손 끝 떨림이란.
아직 어린지 난 사랑이 순수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유독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희안하게도 난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을 선호한다.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꼴을 못 보는 못된 성격인 셈이다. 오히려 그 실패를 즐긴다고나 할까. 순수한 사랑이 실패했을 때 오는 그 아련함이란,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만큼 매력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솔로인걸까...?)
한동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요즘의 멜로는 세련되었을지언정, 아련한 맛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분히 직관적이고 차가운 사랑 이야기가 '현실적'이라는 치장을 달고 나오는 상황에서, 너무 '구식'을 선호하다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에, 가슴을 먹먹하게 적셔주는 단비같은 작품을 만났다. 차승원,조이진 주연의 <국경의 남쪽>. 실로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가 아닌가!
영화 속 사랑이 시작되는 곳은, '국경의 북쪽' 북한이다. 폐쇄적인 사회의 영향인지 영화가 잡는 북한의 정서는 마치 예전 우리의 60~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잡는 두 남녀(차승원, 조이진)의 모습은 마치 '소나기'의 장면장면과 닮았다. 경직되고 공포스런 북의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강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흐뭇함으로 보는 나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질 무렵, 남자의 집에 분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남쪽과 연락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가족에게는 위기가 찾아오고, 남쪽에서 보자는 이별의 눈물을 뒤로 하고 남자는 남한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어쩌랴. 순진한 남자에게 남한의 사회가 호락호락할리 없고, 자신의 힘으로 여자를 데려올 수 없는 절망감에 절규한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북의 여자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앞에 한 여자가 다가온다.
남한에서 결혼해 자리를 잡은 남자. 북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남자의 눈앞에 북의 여자가 나타난다. 아뿔싸! 강제 결혼을 피해 도망쳤고, 자신을 위해 가족도 버리고 내려왔단다. 안타까운 추억으로 묻어두려던 사랑이, 급작스런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재회 속에 두 남녀를 지배하는 난처함. 영화는 이 '난처함'을 무기로, 끝까지 두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분단이라는 소재야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내용이고, 이러한 구조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남자(차승원)의 표정과 천지난만한 얼굴에 드리우는 여자(조이진)의 슬픈 표정 사이를 오가며, 영화가 끝날때까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묘하게 마음을 적시는 두 배우의 열연을 보면서, 밀려오는 애잔함의 감동에 '진부함'이라는 딱지를 감히 붙일 수 없었다고나 할까.
이 영화를 계기로 난 유머러스한 캐릭터만 될 줄 알았던 배우 차승원을 다시 보게 되었고, 조이진이라는 나만의 블루칩을 새로이 발견하였다. 애잔함과 슬픔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영화의 끝에서도, 그 발견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면 우스운 일이지만. 어쨌든 내 가슴속에 자리잡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림자 너머로, 이 영화가 한동안 아로새겨져 있을 것 같다. <국경의 남쪽>.'숨겨진 보석' 같은, 참 좋은 영화다.
p.s.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더군다나 멜로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영화 속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온다면.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국경의 남쪽] - 숨겨진 보석 같은 영화
키스를 비롯해 스킨쉽이 전혀 없고, 끝내 사랑한다는 말조차 등장하지 않는 멜로영화가 있다. '때 묻지 않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남자의 죽음으로써 그네들의 순수한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보는 이는 그 아련하고 먹먹한 느낌에 넋을 놓게 된다. 내가 한국의 멜로영화 중 최고로 꼽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창문 너머로 천진난만하게 걸어가는 심은하를 따라가는 한석규의 그 손 끝 떨림이란.
아직 어린지 난 사랑이 순수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유독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희안하게도 난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을 선호한다.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꼴을 못 보는 못된 성격인 셈이다. 오히려 그 실패를 즐긴다고나 할까. 순수한 사랑이 실패했을 때 오는 그 아련함이란,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만큼 매력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솔로인걸까...?)
한동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요즘의 멜로는 세련되었을지언정, 아련한 맛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분히 직관적이고 차가운 사랑 이야기가 '현실적'이라는 치장을 달고 나오는 상황에서, 너무 '구식'을 선호하다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에, 가슴을 먹먹하게 적셔주는 단비같은 작품을 만났다. 차승원,조이진 주연의 <국경의 남쪽>. 실로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가 아닌가!
영화 속 사랑이 시작되는 곳은, '국경의 북쪽' 북한이다. 폐쇄적인 사회의 영향인지 영화가 잡는 북한의 정서는 마치 예전 우리의 60~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잡는 두 남녀(차승원, 조이진)의 모습은 마치 '소나기'의 장면장면과 닮았다. 경직되고 공포스런 북의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강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흐뭇함으로 보는 나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질 무렵, 남자의 집에 분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남쪽과 연락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가족에게는 위기가 찾아오고, 남쪽에서 보자는 이별의 눈물을 뒤로 하고 남자는 남한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어쩌랴. 순진한 남자에게 남한의 사회가 호락호락할리 없고, 자신의 힘으로 여자를 데려올 수 없는 절망감에 절규한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북의 여자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앞에 한 여자가 다가온다.
남한에서 결혼해 자리를 잡은 남자. 북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남자의 눈앞에 북의 여자가 나타난다. 아뿔싸! 강제 결혼을 피해 도망쳤고, 자신을 위해 가족도 버리고 내려왔단다. 안타까운 추억으로 묻어두려던 사랑이, 급작스런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재회 속에 두 남녀를 지배하는 난처함. 영화는 이 '난처함'을 무기로, 끝까지 두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분단이라는 소재야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내용이고, 이러한 구조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남자(차승원)의 표정과 천지난만한 얼굴에 드리우는 여자(조이진)의 슬픈 표정 사이를 오가며, 영화가 끝날때까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묘하게 마음을 적시는 두 배우의 열연을 보면서, 밀려오는 애잔함의 감동에 '진부함'이라는 딱지를 감히 붙일 수 없었다고나 할까.
이 영화를 계기로 난 유머러스한 캐릭터만 될 줄 알았던 배우 차승원을 다시 보게 되었고, 조이진이라는 나만의 블루칩을 새로이 발견하였다. 애잔함과 슬픔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영화의 끝에서도, 그 발견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면 우스운 일이지만. 어쨌든 내 가슴속에 자리잡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림자 너머로, 이 영화가 한동안 아로새겨져 있을 것 같다. <국경의 남쪽>.'숨겨진 보석' 같은, 참 좋은 영화다.
p.s.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더군다나 멜로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영화 속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온다면.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