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적 군국주의에 대한 고찰

강정구20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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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케로로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케로로에 대해 내 기억 용량을 할애하게 된 계기는 조카들 때문인데, 아이들이 열광하게된 그 캐릭터에 자연 관심이 갔었지만 곧, 케로로일당의 볼품없는 간지에 그만 흥미를 거둬들였다.

 

그냥 보기만 할 땐 그저 흐느적거리는 양서류일 뿐


하지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건 외모가 아닌 작품에 쏟아 넣은 작가정신이다.

(시대를 넘나들며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 캐릭터는 디자인이 아니라 반드시 작품에 투영된 인격이 사랑을 받는 것이다. 90년대들어 황금알 낳는 거위 운운하며 캐릭터 사업에 투자했던 우리나라는 둘리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망했다. 이는 문화를 돈버는 사업정도로만 파악한 정책당국의 지적 저열함의 소치이다. 캐릭터강국 일본의 저력은 다름 아닌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의 강한 인프라속에서 꽃피웠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투니버스에서 방영중인 케로로를 접한 이후 나는 케로로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흐물거리는 양서류일당들은 이내 나의 벗이 되었다.


하지만 남조선 소년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린 이 죄없는 양서류들에 대해 우려안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남조선이남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짙은 왜색문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갉아 먹는다에서부터 태평양 전쟁시의 일본군국주의를 미화했다는 것이다. 


 케로로가 일본적 군국주의와 연결되는 부분은 케로로의 군모모양과 그 개구리들이 남발해대는 모토가 침략이라는 단어뿐이다.

그런데 마이데일리의 정경화라는 찌라시 기자는 나름 케로로에 대해 논평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점은 우리 문화를 침범한 일본 문화의 밑바탕에는 군국주의적 시각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에 잘못된 일본 문화를 주입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부족과 안이함이 계속될 경우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위협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라며

제법 그럴듯한 구라로 공포분위기마저 조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친일의 치욕스런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38선이남 조선반도의 정신적 수준이다. 이 나라의 못돼먹은 컴플렉스는 틈만 나면 힘없는 문화예술분야만 두들기며 변태적 카타르시스를 즐긴다. 일본우익들의 그것보다도 더 악랄한 한국적 극우의 소산이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지 못하는 조건들이 어디 한두가지 있겠냐만 이런 저급한 멘탈리티가 가장 큰 일본극복의 장애가 된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관계된 것은 무조건 악‘이라는 저질스런 흑백논리로 우기려는 성향이 너무 강하다. 그러다 우기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무조건 군국주의를 걸고 넘어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방되기전(물론 그 이전부터 어둠의 경로로 충분히 들어왔지만) 문화개방에 대한 반대의 근거로 든 것들이 일본군국주의를 찬양했다는 논리인데, 그 논란이 된 작품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기신병단, 우주전함 야마토, 침묵의 함대.


나는 상기 작품들을 조심스런 관점으로 모두 접해보고 분석해 본 인간이다. 최소한 정경화같은 찌라시 생산자 보다는 양심적으로 말할 수 있다.

 우선 기신병단에는 비판이 됐던 그대로 만주주둔 관동군이 등장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그들이 전혀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으며, 주인공은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정부군에 대항하는 반체제 인사이다. 게다가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게 만든 일등공신인 아인슈타인 박사가 오히려 호의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주인공에 대한 후원자로 등장한다. 대체 뭐가 군국주의란 말인가? 관동군이 소재가 되어서? 모자가 닮아서?

 


확실히 닮긴 했다만,


 그들의 첨단 기술과 복고풍의 복장을 대비시키는 표현은 풍자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개구리들이 침략자라는 설정자체부터가 패러디이다)

도대체 케로로를 한편이라도 제대로 본 인간들이 그런 비판의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진실을 말하자면 케로로는 일단 군국주의적 침략의지를 실천할 의지가 전혀 없으며 그 ‘침략자’들은 지구환경에 있어서 최소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 더 봉사하며 살고 있다.

 또 이 작품의 원작자인 '요시자키 미네'가 오히려 반(反)극우 성향이고, 망언을 일삼았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를 향해 케로로가 반말로 힐난하는 장면은 유명하다.

 

However,....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케로로가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내가 본 케로로는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과이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요시자키 미네'는 나름의 방식으로 과거 일본의 과오를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외계에서 온 그 침략자들이 일본의 평범한 아니 홀어머니 슬하의 결손가정에 생포 & 포로가 된 뒤,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강제 노역"(나츠미네 집안 가사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틈틈이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을 스토리의 골자로 하고 있다.

 틈만나면 침략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계획하는 그들. 하지만 결국에는 지구와 포로수용소(나츠미네 가정)에 봉사를 하며 지구문화에 애정을 쏟는다.(케로로는 건프라 매니아)


매회 '케로로식 패러디'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케로로'의 인기 비결 중의 하나인데 침략자가 피침략자에게 봉사하며 우정을 쌓는다는 것은 수준 높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이다.

 과거 제국 일본의 계급체계와 복장을 차용한 케로로 소대원의 어설픈 행동들은 결코 이 땅의 풀한포기도 정복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케로로 소대의 모티프가 된 일본제국군 역시 아시아 정복의 불가능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실질적으로 '일본 군국주의 미화'가 아닌 풍자이자 전후 일본의 대아시아외교 지향점을 위한 알레고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