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어느 날 나보고 갑자기 “최태민이를 아는가”하고 물으셨다. 김재규한테 들었다는 소리는 안 하고 “예, 압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놈이 말이야 근혜를 홀려 가지고 내가 혼을 좀 내줬지”하셨다」
대통령은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가려고 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재혼할 수 있겠나”하였다.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대통령의 딸이 관계된 스캔들이라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총재로 있는 새마음봉사단과 관계된 비리가 적지 않아 치안본부와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 등이 직접 조사에 나서 비리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다.
박대통령은 유부남인 최 목사와 20대 중반이던 박을 나란히 세우고 직접 최 목사 비리에 대해 증거자료들까지 내밀면서 친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극구 최태민을 변호하고 나서자 박대통령이 관계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몸소 친국을 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김계원에 의하면 김재규가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거사를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햇다고 한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그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육 여사가 죽은 뒤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 돌았다고 한다.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는 당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되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김재규는 “내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이 됐다”고 하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고 하며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김계원에게 말했다.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특히 이런 사건들 때문에 박근혜의 미움을 받았다. 박근혜는 당시 김재규의 경질을 바라고 박대통령에게 이를 조르고 있었다고 한다. 김재규는 항소심 공판에서 최태민 사건이 박정희 시해의 동기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펌] 김재규의 박통 시해는 박근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총살한 것은 박근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것을 밝힌다.
<인용글 - 1998. 11. 1 월간중앙 부록에서>
김계원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어느 날 나보고 갑자기 “최태민이를 아는가”하고 물으셨다. 김재규한테 들었다는 소리는 안 하고 “예, 압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놈이 말이야 근혜를 홀려 가지고 내가 혼을 좀 내줬지”하셨다」
대통령은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가려고 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재혼할 수 있겠나”하였다.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대통령의 딸이 관계된 스캔들이라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총재로 있는 새마음봉사단과 관계된 비리가 적지 않아 치안본부와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 등이 직접 조사에 나서 비리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다.
박대통령은 유부남인 최 목사와 20대 중반이던 박을 나란히 세우고 직접 최 목사 비리에 대해 증거자료들까지 내밀면서 친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극구 최태민을 변호하고 나서자 박대통령이 관계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몸소 친국을 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김계원에 의하면 김재규가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거사를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햇다고 한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그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육 여사가 죽은 뒤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 돌았다고 한다.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는 당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되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김재규는 “내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이 됐다”고 하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고 하며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김계원에게 말했다.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특히 이런 사건들 때문에 박근혜의 미움을 받았다. 박근혜는 당시 김재규의 경질을 바라고 박대통령에게 이를 조르고 있었다고 한다. 김재규는 항소심 공판에서 최태민 사건이 박정희 시해의 동기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