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운동자금을 댔던 우리 집안 이야기_

김태희201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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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에 떴던 용연님께서 쓰신 

우리집안 이야기+ 제가 쓰는 우리집안이야기 입니다.

 

제가 아는 집안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경술국치(한일합방) 이전  수안보 일대에 거대 지주가문이 있었습니다.

수안보 일대의 땅은 거의 다 그 가문의 것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일본이 한양으로 진격할려면 꼭 거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경술국치(한일합방) 이전 일본군이 서울로 진격할 당시

일본군이 그 집안에 들어가 물을 달라고 청했고

가장 어른이시던  5대조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일본인이 조선에 발을 들이냐며...

당장 나가라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화를 내셨다 합니다.

그 모습을 당시 일본군들의 통역하던 분이 '노망난 노인네'라 설명하여...

멸문지화의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후손들에게 불의에 굴복하지 말라.고 지속적인 가르침을 주었던 집안이지요) 

 

의병운동의 자금을 대주던 집안이었습니다.

 

경술국치(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합니다.

그 때 많은 조선인들은 내 국가는 '조선'이지 '일본'이 아니다.

'토지조사사업' 에 '참여' 하는 것은 나라를 등돌리는 일이다.

일본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토지 조사사업 당시 주인 없는 토지가 그렇게 많이 나왔던 이유입니다.)

 

당연히 그 집안 또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 집안이 보유한 토지는 일본에 협조한 분께 넘어가게 됩니다.

(일본에 협조했던 분이 신고하지 않은 토지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의병운동과 광복운동의 자금을 대주던 그 집안은

토지조사사업 이후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이 당시 그 집안사람들은 그 지역에 신망을 얻고 있던 거대지주였고

또, '최고 인테리 계층'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협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집안은 몰락하고 집안사람들은 강제징용을 피해.

광복운동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광복이 됩니다. 다들 희망에 찬 얼굴로 기대했습니다.

친일인사(민족배반자)들은 잡혀갔고

사람들은 이제 원상태로 돌아오겠다. 민족을 배반한 이들은 처벌 받고

정의가 살아움직일 거라 생각하며 하면서 마음껏 기뻐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잡혀갔던 민족배반자들은 풀려나오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직책을 앞세우며...

독립운동가들과 자금을 대주던 이들을 잡아 갔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빨치산' '빨갱이'란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타 지방으로 유랑을 떠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은 월북을 하기도 했고요...

 

하여간 이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하고 맙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힘을 살은 죄로 말입니다.

배우지 못한 상태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후손들만 남긴상태로.....

 

이게 보통 독립운동가와 그와 연계된 가문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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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영화같은 일은... 광복이 되고 그 후손들이 큰 후에 일어나지만  길어지니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후손 중 한명이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잘나가던 중견기업을 버리고 일제가 왜곡시킨 한국사를 바로잡기 위해

사비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충당해가며

사회생활, 가족, 사회적 직위, 건강을 비롯한 모든 것을 투자해 연구를 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군조선의 입증과, 그 선대국가인 신시의 발굴로 한국사를 1만년 가까이 끌어올림

(이 단군조선과 신시의 역사가 바로 세계 최초의 문명인 요하문명입니다)

기자조선의 허구성 입증, 연나라 장수 진개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 입증

연나라의 조선동호 침략설 또한 허구...

위만조선은 하북성 북쪽에 있던 국가였다는 사실,

단군조선의 후계국가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 황제만 붕어시 입을 수 있는 수의 옥갑을 부여왕 등극시 한사군의 하나에 두고 부여왕 붕어시 바쳤을 만큼 강대국이었던 천년제국 부여라는 사실

고구려 백제의 가르쳐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초기 역사 재고찰

중국 고대국가들의 위치 재정립, 한국 고대국가들 위치 재정립등입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류'를 위서라 부정한다는 이유로

강단사학이라 배척당하고

 

강단사학계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사서와 유물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나.....

소수파라고 무시당하고 있는 분입니다.

(또 이분이 워낙 소수파이고 힘이 없기 때문에

 이분의 연구결과 중 일부는 타 학자의 학설인 것처럼 언론에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연구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조상의 후손 중...

그 조상의 뜻을 이어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후손' 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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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한일합방) 이전 일본군이 서울로 진격할 당시

일본군이 그 집안에 들어가 물을 달라고 청했고"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가지고 소설이니 머니 하면서 말씀하시는 분들 있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비가 일어나는 이유는  제가 들은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해서 입니다.

그러다보니 명확하게 적지 못하는 것이고요.

sub님께서 "청일전쟁과 동학혁명 당시 일본군 상당수가 조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청나라 군대와 동학군과 싸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는거 같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 때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이되었던  이 집안은 수안보 일대와 충청도 여러면에 걸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지주'였습니다.

(거대지주란 표현을 쓴 이유는 여러면에 걸쳐 토지를 보유한 만큼 땅이 많아서입니다. )

영향력이 상당하였던 향반, 일명 '지방호족'

그러다 보니, 경술국치 이전  충청도 일대에 지속적으로 일어난 의병항쟁의 자금을 대주었고

그와 연관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집안의 가르침과 맞물려서...

제가 근현대사 쪽에 지식이 짧다보니 글을 쓰면서 혼선을 불러 일으킨 면이 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위에 쓰여진 가문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잘 안알려진 이야기 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항 및 안알려진 의병항쟁과 관련된 부분과 안알려진 실패 요인.

이 집안의 본격적인 몰락과정과 고난사를 비롯한 부분은 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 해를 입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위 집안과 연관된 학자가 정치와 관계가 없는 '순수한' 학자이기 때문에....

괜히 정치적으로 이용당할까 염려되어 해당'학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위에 '좌빨' '빨치산'이란 명칭으로 사냥당한 광복운동가에 대한 부분이 있다고

'좌익' 옹호라고 비난하시는 분도 있습니만....

전 그냥,  그 시대가 그랬다라는 사실을 썼습니다.

흘러간 상황 그대로...

 

이 글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수 없어서' 친일했다는 논조의 글이 있기에...

이런 집안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가문의 후손이

조상들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아직도 조국과 민족을 우해 '희생'을 되풀이하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 부유층, 권력자, 지식인들이

모두 친일파(민족배반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이 가문 뿐만이 아니라. 일정시대에 몰락한 가문중에

이와 유사한 일을 겪은 가문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 가문들의 후손분들이나, 관련된 분들도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이글은 아고라에 용연님께서 09.11.09 01:22에 쓰신 글입니다.


그 동안 모르고 지냈다가


우리 친가에 관한 글이 아고라에 쓰였고, 그 글이 베스트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크랩해서 올립니다...


 그 이후의 우리 친가의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우리 집안은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할아버지 대에는 이르면 땅 한 평도 없이 오직 빌린 쌀을 갚기 위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노력했고


24세가 되는 나이에 검정고시를 시작!


아주 짧은 시간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


대학교에 들어가 박사학위까지 마치게 됩니다.


 그 동안 결혼도 하게 되었고,


작은 슈퍼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시작한 골목슈퍼를 기반으로


특유의 성실함과, 샤프한 머리로 사업을 키워 나갔고


뉴스에 나오고 TV에 광고가 나올 정도에 인지도 높은 기업으로 키워나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가장 원천적인 왜곡된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일생을 다 바치며 키워 왔던 기업을 버리고 연구를 시작합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붇고,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시간과 휴가조차 모두 버리고 말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3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연구하는 데 쏟아 부었고


지금까지 왜곡되었고, 잘못 알려져 있던 역사의 진실을 밝혀 갑니다.


그러나 단지, 왜곡된 역사를 연구하는 일만이 역사를 바로잡는 모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슬프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껴가면서 했던 연구가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배척당하고


밝혀낸 연구 결과조차 다른 사람들에 의해 도용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우리도... 그리고 아버지의 연구결과를 아시는 분들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곧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글을 올리며 하고 싶은 말은...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매국노들을 물리치자."

 

"일본놈들은 정말 나쁜놈이다."가 아닙니다.


제 조상님, 아버지를 떠나,


이런 분들은 존경받고, 기억되고,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분들이 외면되고 무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