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곱지않은 눈길로 보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내 인생을 소설이라 느끼시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재미있네요.(나, 소설주인공??ㅋㅋ)
그리고 펜션 홍보에 대해서는요. 음...제 글만 가지고 찾아오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있으시면 1박 무료이용권 쏩니당^^ㅋㅋ 이미 다음달까지 거의 예약 풀이라 저 청소하기 넘 힘들다구요.... 낮에는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기도 해서 다크써클 이미 무릎까지 내려와 있다구욧!!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 감히 홍보따윈 원치 않습니다.
별것 아닌 제 이야기를 기다려주시겠다는 분들의 위로와 격려덕에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더더더 많이 열심히 살께요. 그리고 거제도 다음 시리즈도 어서 완성하겄습니당.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니 소위 된장녀(여성비하 아닙니다. 자기반성입니다)짓거리 많이 하면서 참 철부지처럼 살았다는 생각 드네요.
학부시절에는 부모님께 온갖 아양+협박+구라+자해와 공갈 등등을 부려서 돈을 타내
음주 가무 쇼핑으로 날렸드랬죠. 엄마가 2년간 부어오신 적금을 어학연수 가라며 내밀으셨던 날, 저는 한 순간의 갈등도 없이 중고SM520을 질러버렸습니다. 그 애마를 끌고 한달 동안 전국 일주를 감행했죠. 양양에서 구룡포까지 넘나드는 해안도로, 한려수도에 펼쳐진 남해의 해안도로들을 가로지르며 온갖 개폼은 다 잡고 말이죠... 집으로 날라온 고속도로 과속 딱지만 아니었어도...ㅠㅠ
참...한숨만 나오네요. 중산층도 될까말까한 집안에서 그런 난봉꾼(??)짓을 했다는게 말입니다....하지만 하늘은 반드시 그런 망나니에게 응징과 반성의 기회를 내려주시더군요...당시엔 너무 가혹했으나 이제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그것이 참으로 '복된 형벌'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인간으로 만드시려고 내려주신 마지막 기회랄까요?
철부지 인생의 방점을 찍던 마지막 날. 전 강남의 리베* 나이트에 있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웨이터 동생과 '신중하고 도도하게'부킹에 대해 의논하던 참이었죠....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꺼냈는데..20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엄마에게서요.
여느때 같으면 무시하고 말았을 전화. 그러나 왠지 이상한 기분에 버튼을 눌렀고, 고대병원 중환자실로 오라는 엄마의 침착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긴박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를 내시는 분이지요. 상황에 장악당하지 않겠다는 무서운 차분함...여러분의 어머니들도 그러시겠지요.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씨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셨답니다. 담당 의사샘은 장례절차를 알아보아야 할것 같다고 애둘러 말하더군요. 수술 스케줄을 잡을 수는 없으나 아빠의 뇌 속에서 한 번의 출혈이 더 일어나게 되면 그 때는 손을 쓸 수 없대요. 저는 오빠를 붙잡고 미친년처럼 울었지만, 엄마는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넘기시데요. 장례비는 2000만원쯤 든다. 지금 돈이 없으니 너희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은 모두 깨야 할것 같다. 내집마련 적금이니 장학 적금이니 하는 것들도 이제 없어진다. 내일 당장 아빠를 볼 수 없다해도 의젓하게 받아들이자.....
다행히 아빠는 무사히 수술을 받으셨고 중환자실에 두 달 넘게 계셨습니다. 중환자실의 하루 처치료는 100만원이 넘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날아드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각종 비상금, 친척들에게 돈 꾸기...그러나 그마저도 더이상 불가능해지자 아는 사람을 통해 사채에까지 손을 대야 했드랬죠.
그렇게 6년의 세월...아빠는 아직 살아계시답니다...엄마의 처절한 희생으로 많이 회복되셨구요. 당시 의사샘은 저희 아빠를 '기적의 샘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이번엔 엄마...6년의 세월 끝자락에 놓인 건, 3억에 가까운 빚과 멀어진 친척, 친지들, 그리고 엄마의 병고였습니다.
그렇게 기세당당한 엄마는 초라한 중년을 지나면서 당뇨와 고혈압, 골다공증, 갑상선, 등 이름표 붙은 병명만 여러개인 환자로 남았습니다.
긴병에 효자없다......환자 돌보다 중환자 된다......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 장본인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마다 많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 후로 대학 졸업하고 빵빵한 중소기업에서 3000가까운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오빠, 제가 아무리 벌어도 이자, 생활비, 병원비를 쓰고 나면 남는건 거의 없더라구요. 저는, 이번에도 사건을 만들고야 맙니다...
3년전...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월급쟁이해서 언제 이 빚을 갚나? 평생 빚더미에 허덕일껄.차라리 장사를 하자.'
퇴직금을 받고,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쪽에 특별한 탈렌트는 없었기에, 일단 누구든지 도전가능한 바로 그것, '먹는 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옷장사나 악세서리 장사도 잠깐 고민했으나, 그쪽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는 건 좋아했지만 솔직히 보는 눈이 별로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ㅠㅠ
나름 수많은 시간 시장조사를 하고, 맛집이란 맛집은 다 다녀보고...두 달 정도는 음식점 알바도 해 봤습니다. 아마 이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혹독한 눈물을 쏟았던 시절인 듯 합니다. 별별 손님들한테 욕도 많이 얻어먹고, 주방에서도 제대로 일 못배운다고 구박받고......양파 겉껍질 여러겹 까서 버린다고 등짝도 무시로 맞았드랬죠..지금생각해도 눈물이.....ㅠㅠ
그 때 결심한게 하나 있다면...'내가 사장되면 알바한테 제일 잘해줘야지. 밥도 제때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일 잘하면 보너스도 줘야지...'였습니다. 전국의 480만 알바여러분 꿋꿋하게 사십시다!!
아무튼, 인고의 세월을 된장녀의 깡(?)하나로 견뎌내고 드디어 저는 음식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메뉴는 바로 감자탕이었어요. 수많은 공부와 고민을 한 끝에 한국사람이 남녀노소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감자탕이라는 결론을 내린거죠. 감자탕은 식사로도, 술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좋으니까요. 뼈해장국은 점심메뉴로 노리고 말이죠.
간지는 좀 안나지만 그래도 저는 오직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살아야 한다!!! 빚 갚고!!'
음식솜씨가 좋으신 할머니를 닮아 그래도 요리는 제법 했거든요...제가...흠흠.^^::
하지만 장사라는건 단지 음식솜씨로 되는 건 아니랍니다. 스피드와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죠. 저보다 나이많은 주방이모의 기선제압도 나름 어려운 숙제^^::
일단, 뼈 삶기-국산 돼지 등뼈는 고소한 맛은 있으나 살점이 별로 없죠. 살점이 많기로는 칠레산이 최곱디다. 국산과 칠레산을 반씩 섞어 양파, 마늘, 생각과 통후추, 정종과 몇 가지 비법재료를 넣고 약간만 무를정도로 삶습니다. 단, 너무 흐물하게 삶으면 손님상에 낼 때 모양이 흐트러지니 주의.
다음으로 국물 내기-국물은 돼지뼈만으로는 안됩니다.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려면 소고기와 사골 등을 섞어 국물을 내야하죠.
너무 쓸데없는 얘기가 길었네요...그 외에도 감자탕집의 비법이 궁금하시면 메일주세요. 친절하게 알려드릴께요.^^
아무튼 먹자골목에서 꽤 큰돈의 월세를 주고 감자탕집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된장녀이의 주특기인 카드빚도 긁어다 쓰고, 친구들한테 돈도 빌리고(나를 믿어준 녀석들!!진짜 고마워!!)차도 팔고...해서 겨우 개업은 했는데...진짜 피말리게 노력을 해도 6개월까지는 헉헉대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 24시간중에 15시간 넘게 뼈를 삶고 국물을 끓이고, 홀서빙을 하고, 쇼케이스에 소주맥주를 채우고 해도 적자였죠. 알바와 주방이모 월급주는 날에는 정말 손이 덜덜 떨리대요. 악몽도 꾸고...
그런데 하늘이 조금씩 제 노력에 응답을 해 주시는지, 차츰 손님이 많아졌습니다. 1년이 넘어서면서 월매출이 1500을 찍은적도 있었습니다. 꺄오~~~
그러나 이 행운도 오래가지는 못했죠. 사채업자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 가게로 찾아오고...당장 보증금을 빼내라는 통에 장사는 올스톱!! 하지만 장사는 장사대로 못하고, 가게세는 밀리고......정말 힘들었습니다.
자살...이길뿐인가?...저도 이 때 정말 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진짜 이렇게 살아야 하나...내가 그동안 그렇게 많이 잘못한건가...뭐 그런...
그런데 정신 버뜩 차리게 한 엄마의 한마디...우리 같이 껴안고 죽을까......
저 혼자 이리저리 사고치는 동안 엄마는 끔찍할만큼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셨던 겁니다.
한번 마음이 무너지니까 그 다음 단계는 너무 쉽게 성큼성큼 전진했습니다.
대충 살다 가자......쓸데없이 열심히 살았어 XX....다 잘돌아가는데 왜 나만 이래..
그 때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진짜 무서운 적은 내 심장으로 쳐들어온다는 걸.
그러나 만일 내가 죽으면, 엄마도 따라 죽을꺼고, 엄마가 죽으면 타지에서 고생하는 오빠도 죽을지 모르고, 아직 아픈 우리아빠는 식음을 전폐하다 굶어죽을꺼고....
무슨 가족 도미도도 아니고,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죠. 그건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렇게 죽으면 우리 엄마가 열달동안 나를 가지고 있던 고생, 20년 넘게 애쓰며 키운 고생, 이렇게 끈질기게 살고 있는 고생...모두 물거품인걸요.
문득, 스무살 된장녀 시절, 양양에서 구룡포를 거쳐, 통영과 한려수도 해안도로를 달리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소형 렌트카를 하나 빌렸죠. 엄마를 싣고 무작정 달렸습니다. 엄마가 거제도의 친척에게 가보고 싶다는 말을 농담삼아 했거든요.
참 오랜만에 엄마와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잠시 사채에서도, 지독하고 매운 현실에서도 벗어나 후련하고 시원했습니다.
거제도는 엄마가 어릴적 살던 고향입니다. 엄마는 거제도의 바다내음도, 초봄에 피어나는 동백도, 섬 전체를 알싸하게 흔들어대는 유자향도 많이 그리웠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 뜻밖의 행운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거제도에서 살아오신 친척분이 펜션의 운영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바닷가에 작은 펜션을 하나 사 두었는데, 하고 있는 사업때문에 펜션 관리가 많이 힘들다는 것이었죠.
그 분 말씀은 이랬습니다.
'말이 펜션이지 시설좋은 콘도식 민박 정도로 작은 규모다. 방도 5개 뿐이지만 바로 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요양 겸 해서 머물러봐라. 돈은 벌면 좋고 못벌어도 그만이다. 계약서 같은 것 안 디밀테니 빚 갚고 나면 그 때부터 월세나 내라.'
눈물이 납디다...'뭐 저런 천사들이 다 있나'싶은게...진작좀 나타나시지...
그리하여 엄마와 저, 아직 거동이 불편하신 아빠는 거제도를 향해 떠나게 되지요...
우리를 맞이한 곳은 거제의 푸른 바다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흥미진진한 거제도 라이프가 펼쳐집니다.....
2탄을 기대해 주세요.^^
(참고로, 펜션홍보따위 절대 안합니다. 우리 가족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해준 고마운 거제도를 홍보한다면 모를까요...저 이래뵈도 된장녀 출신이거든요. 걱정말고 즐겨주세요. 거제도 실속정보&파란만장 라이프는 계속됩니당...^^)
강남된장녀!! 자살유혹 이기고, 거제도 섬처녀로 8단 변신!!-1탄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이렇게 많은 격려가 있을줄 몰랐어요...황홀...
그리고 곱지않은 눈길로 보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내 인생을 소설이라 느끼시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재미있네요.(나, 소설주인공??ㅋㅋ)
그리고 펜션 홍보에 대해서는요. 음...제 글만 가지고 찾아오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있으시면 1박 무료이용권 쏩니당^^ㅋㅋ 이미 다음달까지 거의 예약 풀이라 저 청소하기 넘 힘들다구요.... 낮에는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기도 해서 다크써클 이미 무릎까지 내려와 있다구욧!!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 감히 홍보따윈 원치 않습니다.
별것 아닌 제 이야기를 기다려주시겠다는 분들의 위로와 격려덕에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더더더 많이 열심히 살께요. 그리고 거제도 다음 시리즈도 어서 완성하겄습니당.
저의 엄마의 우울증을 말끔히 낫게 해준 고마운 거제도이야기 많이 기대해주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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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대 막차에 올라탄 女입니다.
저는 서울 토박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에서 대학나오고 직장생활을 했죠.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니 소위 된장녀(여성비하 아닙니다. 자기반성입니다)짓거리 많이 하면서 참 철부지처럼 살았다는 생각 드네요.
학부시절에는 부모님께 온갖 아양+협박+구라+자해와 공갈 등등을 부려서 돈을 타내
음주 가무 쇼핑으로 날렸드랬죠. 엄마가 2년간 부어오신 적금을 어학연수 가라며 내밀으셨던 날, 저는 한 순간의 갈등도 없이 중고SM520을 질러버렸습니다. 그 애마를 끌고 한달 동안 전국 일주를 감행했죠. 양양에서 구룡포까지 넘나드는 해안도로, 한려수도에 펼쳐진 남해의 해안도로들을 가로지르며 온갖 개폼은 다 잡고 말이죠... 집으로 날라온 고속도로 과속 딱지만 아니었어도...ㅠㅠ
참...한숨만 나오네요. 중산층도 될까말까한 집안에서 그런 난봉꾼(??)짓을 했다는게 말입니다....하지만 하늘은 반드시 그런 망나니에게 응징과 반성의 기회를 내려주시더군요...당시엔 너무 가혹했으나 이제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그것이 참으로 '복된 형벌'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인간으로 만드시려고 내려주신 마지막 기회랄까요?
철부지 인생의 방점을 찍던 마지막 날. 전 강남의 리베* 나이트에 있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웨이터 동생과 '신중하고 도도하게'부킹에 대해 의논하던 참이었죠....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꺼냈는데..20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엄마에게서요.
여느때 같으면 무시하고 말았을 전화. 그러나 왠지 이상한 기분에 버튼을 눌렀고, 고대병원 중환자실로 오라는 엄마의 침착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긴박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를 내시는 분이지요. 상황에 장악당하지 않겠다는 무서운 차분함...여러분의 어머니들도 그러시겠지요.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씨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셨답니다. 담당 의사샘은 장례절차를 알아보아야 할것 같다고 애둘러 말하더군요. 수술 스케줄을 잡을 수는 없으나 아빠의 뇌 속에서 한 번의 출혈이 더 일어나게 되면 그 때는 손을 쓸 수 없대요. 저는 오빠를 붙잡고 미친년처럼 울었지만, 엄마는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넘기시데요. 장례비는 2000만원쯤 든다. 지금 돈이 없으니 너희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은 모두 깨야 할것 같다. 내집마련 적금이니 장학 적금이니 하는 것들도 이제 없어진다. 내일 당장 아빠를 볼 수 없다해도 의젓하게 받아들이자.....
다행히 아빠는 무사히 수술을 받으셨고 중환자실에 두 달 넘게 계셨습니다. 중환자실의 하루 처치료는 100만원이 넘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날아드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각종 비상금, 친척들에게 돈 꾸기...그러나 그마저도 더이상 불가능해지자 아는 사람을 통해 사채에까지 손을 대야 했드랬죠.
그렇게 6년의 세월...아빠는 아직 살아계시답니다...엄마의 처절한 희생으로 많이 회복되셨구요. 당시 의사샘은 저희 아빠를 '기적의 샘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이번엔 엄마...6년의 세월 끝자락에 놓인 건, 3억에 가까운 빚과 멀어진 친척, 친지들, 그리고 엄마의 병고였습니다.
그렇게 기세당당한 엄마는 초라한 중년을 지나면서 당뇨와 고혈압, 골다공증, 갑상선, 등 이름표 붙은 병명만 여러개인 환자로 남았습니다.
긴병에 효자없다......환자 돌보다 중환자 된다......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 장본인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마다 많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 후로 대학 졸업하고 빵빵한 중소기업에서 3000가까운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오빠, 제가 아무리 벌어도 이자, 생활비, 병원비를 쓰고 나면 남는건 거의 없더라구요. 저는, 이번에도 사건을 만들고야 맙니다...
3년전...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월급쟁이해서 언제 이 빚을 갚나? 평생 빚더미에 허덕일껄.차라리 장사를 하자.'
퇴직금을 받고,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쪽에 특별한 탈렌트는 없었기에, 일단 누구든지 도전가능한 바로 그것, '먹는 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옷장사나 악세서리 장사도 잠깐 고민했으나, 그쪽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는 건 좋아했지만 솔직히 보는 눈이 별로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ㅠㅠ
나름 수많은 시간 시장조사를 하고, 맛집이란 맛집은 다 다녀보고...두 달 정도는 음식점 알바도 해 봤습니다. 아마 이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혹독한 눈물을 쏟았던 시절인 듯 합니다. 별별 손님들한테 욕도 많이 얻어먹고, 주방에서도 제대로 일 못배운다고 구박받고......양파 겉껍질 여러겹 까서 버린다고 등짝도 무시로 맞았드랬죠..지금생각해도 눈물이.....ㅠㅠ
그 때 결심한게 하나 있다면...'내가 사장되면 알바한테 제일 잘해줘야지. 밥도 제때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일 잘하면 보너스도 줘야지...'였습니다. 전국의 480만 알바여러분 꿋꿋하게 사십시다!!
아무튼, 인고의 세월을 된장녀의 깡(?)하나로 견뎌내고 드디어 저는 음식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메뉴는 바로 감자탕이었어요. 수많은 공부와 고민을 한 끝에 한국사람이 남녀노소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감자탕이라는 결론을 내린거죠. 감자탕은 식사로도, 술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좋으니까요. 뼈해장국은 점심메뉴로 노리고 말이죠.
간지는 좀 안나지만 그래도 저는 오직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살아야 한다!!! 빚 갚고!!'
음식솜씨가 좋으신 할머니를 닮아 그래도 요리는 제법 했거든요...제가...흠흠.^^::
하지만 장사라는건 단지 음식솜씨로 되는 건 아니랍니다. 스피드와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죠. 저보다 나이많은 주방이모의 기선제압도 나름 어려운 숙제^^::
일단, 뼈 삶기-국산 돼지 등뼈는 고소한 맛은 있으나 살점이 별로 없죠. 살점이 많기로는 칠레산이 최곱디다. 국산과 칠레산을 반씩 섞어 양파, 마늘, 생각과 통후추, 정종과 몇 가지 비법재료를 넣고 약간만 무를정도로 삶습니다. 단, 너무 흐물하게 삶으면 손님상에 낼 때 모양이 흐트러지니 주의.
다음으로 국물 내기-국물은 돼지뼈만으로는 안됩니다.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려면 소고기와 사골 등을 섞어 국물을 내야하죠.
너무 쓸데없는 얘기가 길었네요...그 외에도 감자탕집의 비법이 궁금하시면 메일주세요. 친절하게 알려드릴께요.^^
아무튼 먹자골목에서 꽤 큰돈의 월세를 주고 감자탕집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된장녀이의 주특기인 카드빚도 긁어다 쓰고, 친구들한테 돈도 빌리고(나를 믿어준 녀석들!!진짜 고마워!!)차도 팔고...해서 겨우 개업은 했는데...진짜 피말리게 노력을 해도 6개월까지는 헉헉대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 24시간중에 15시간 넘게 뼈를 삶고 국물을 끓이고, 홀서빙을 하고, 쇼케이스에 소주맥주를 채우고 해도 적자였죠. 알바와 주방이모 월급주는 날에는 정말 손이 덜덜 떨리대요. 악몽도 꾸고...
그런데 하늘이 조금씩 제 노력에 응답을 해 주시는지, 차츰 손님이 많아졌습니다. 1년이 넘어서면서 월매출이 1500을 찍은적도 있었습니다. 꺄오~~~
그러나 이 행운도 오래가지는 못했죠. 사채업자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 가게로 찾아오고...당장 보증금을 빼내라는 통에 장사는 올스톱!! 하지만 장사는 장사대로 못하고, 가게세는 밀리고......정말 힘들었습니다.
자살...이길뿐인가?...저도 이 때 정말 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진짜 이렇게 살아야 하나...내가 그동안 그렇게 많이 잘못한건가...뭐 그런...
그런데 정신 버뜩 차리게 한 엄마의 한마디...우리 같이 껴안고 죽을까......
저 혼자 이리저리 사고치는 동안 엄마는 끔찍할만큼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셨던 겁니다.
한번 마음이 무너지니까 그 다음 단계는 너무 쉽게 성큼성큼 전진했습니다.
대충 살다 가자......쓸데없이 열심히 살았어 XX....다 잘돌아가는데 왜 나만 이래..
그 때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진짜 무서운 적은 내 심장으로 쳐들어온다는 걸.
그러나 만일 내가 죽으면, 엄마도 따라 죽을꺼고, 엄마가 죽으면 타지에서 고생하는 오빠도 죽을지 모르고, 아직 아픈 우리아빠는 식음을 전폐하다 굶어죽을꺼고....
무슨 가족 도미도도 아니고,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죠. 그건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렇게 죽으면 우리 엄마가 열달동안 나를 가지고 있던 고생, 20년 넘게 애쓰며 키운 고생, 이렇게 끈질기게 살고 있는 고생...모두 물거품인걸요.
문득, 스무살 된장녀 시절, 양양에서 구룡포를 거쳐, 통영과 한려수도 해안도로를 달리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소형 렌트카를 하나 빌렸죠. 엄마를 싣고 무작정 달렸습니다. 엄마가 거제도의 친척에게 가보고 싶다는 말을 농담삼아 했거든요.
참 오랜만에 엄마와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잠시 사채에서도, 지독하고 매운 현실에서도 벗어나 후련하고 시원했습니다.
거제도는 엄마가 어릴적 살던 고향입니다. 엄마는 거제도의 바다내음도, 초봄에 피어나는 동백도, 섬 전체를 알싸하게 흔들어대는 유자향도 많이 그리웠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 뜻밖의 행운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거제도에서 살아오신 친척분이 펜션의 운영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바닷가에 작은 펜션을 하나 사 두었는데, 하고 있는 사업때문에 펜션 관리가 많이 힘들다는 것이었죠.
그 분 말씀은 이랬습니다.
'말이 펜션이지 시설좋은 콘도식 민박 정도로 작은 규모다. 방도 5개 뿐이지만 바로 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요양 겸 해서 머물러봐라. 돈은 벌면 좋고 못벌어도 그만이다. 계약서 같은 것 안 디밀테니 빚 갚고 나면 그 때부터 월세나 내라.'
눈물이 납디다...'뭐 저런 천사들이 다 있나'싶은게...진작좀 나타나시지...
그리하여 엄마와 저, 아직 거동이 불편하신 아빠는 거제도를 향해 떠나게 되지요...
우리를 맞이한 곳은 거제의 푸른 바다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흥미진진한 거제도 라이프가 펼쳐집니다.....
2탄을 기대해 주세요.^^
(참고로, 펜션홍보따위 절대 안합니다. 우리 가족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해준 고마운 거제도를 홍보한다면 모를까요...저 이래뵈도 된장녀 출신이거든요. 걱정말고 즐겨주세요. 거제도 실속정보&파란만장 라이프는 계속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