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렇게 며칠 동안 앓았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혹은 여행 후 몰려온 지독한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진실로... 독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수없이 마딱뜨린 그 어이없고 황당한 불운들에 지긋지긋해 하며 감당할 수 없이 초과된 예산에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한국땅에 도착하자마자 허무감이 깊게 밀려왔다. 독일에서 보낸 37일이 마치 한 편의 꿈처럼 느껴졌다. 두 번 다시 반복해서 꿀 수 없는 달콤한 꿈... 나는 다시 돌아온 내 방 침대 위에서 많이 울었다. 그것은 독일에서 외로움과 속상함으로 울던 것과는 다른 울음이었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과 나, 그 둘뿐이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무사히, 혹은 즐겁게 보낼까 오로지 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너무나도 순식간에 나는 일상에 묶인 예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학교 개강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논문의 압박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죄어오고, 가족들의 불행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짧지만 짜릿한 순간들, 그 자유로운 일탈의 시간이 이제는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만난 그가, 그의 따스한 사랑이... 미치도록 그리웠다...여행이 내게 안겨준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돌아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일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예상은 빗나가고 나는 내 남은 인생이 계속 여행의 연장선에 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 일상이 싫어졌다. 내 평범한 삶이 진저리났다. 나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책임과 의무로 꾹꾹 채워진 현실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 여독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허무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정말 무엇인가 마취제 같은 것이 필요했고,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다. 이 냉엄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환상의 세계, 달콤한 문학의 세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서점 문을 힘차게 박차고 들어간지 단 3분 만에 무엇에 이끌리듯 집어든 이 책... 곧장 커피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MP3를 귀에 꽂고 책에 집중했다. 독일의 쾰른, 감기로 지친 몸을 이끌고 쾰른 시내의 어느 '스타벅스'에 들어가 따스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이상은의 책을 읽던 때처럼 말이다. 오로지 내 감성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벌써부터 벅차 올랐다...
미사여구로 문학적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문체도 아니었고, 깊은 철학적 사유가 깃든 글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리꽂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내 아픈 곳에 굵은 바늘을 내리꽂아 고름을 짜내어 치유하는 것 같았다. 살짝 튕기는 맛의 신세대식 표현들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나랑 동갑내기인 그녀가 여행에서 느낀 그 모든 소소한 감정들이 바로 내가 독일에서 느낀 것들임에 사뭇 놀랐다. 뭐랄까,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까...? 나만이 여독에 시달리는 게 아니구나, 나만이 여행이 주는 달콤함과 허무함의 괴리에 당황하는 게 아니구나... 모든 여행자들이 나처럼 여행지에서 외로움과 서러움에 지쳐 잠들다가도 순간순간 축제와도 같은 설렘과 환희를 느끼고, 또 여행 일정이 끝나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거구나...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여행이 안겨준 소중한 추억들을 곱씹으며 내가 여러 모로 성숙했음을 체감하고, 또 어느날 또 다른 기대감으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훌쩍 떠나면 되는구나... 그래, 이게 끝이 아니구나...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내게서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구나... 나는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구나... 그제야 나는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현실에 적응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하... 그래, 이제 내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엔가 다시 그곳에 가자꾸나...! 오로지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학기 중에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학업에만 열중하는 학생의 심정으로? 아니다!!!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 일상을 전보다 풍요롭게 살찌우며 가는 것이다. 삶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막막함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던 여행지에서 고군분투하며 배짱과 자신감 하나로 5주를 버티며 배운 것들... 동화 속 같은 길거리 풍경과 매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던 순간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그 따뜻한 친절과 배려에 가슴 훈훈해지던 기억... 그 모든 것을 보따리에서 진귀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꺼내듯 내 일상에 풀어 놓으며 좀 더 의연하고 능숙하게 삶에 대처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지칠 때쯤 또 다시 여행을 떠나 축제를 만끽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과 여행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여행이 가장 보통의 날들이 되며, 일상 역시 축제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 아름답다...
나는 지금 여독에서 많이 회복된 상태이며, 이 책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준 따스한 죽과도 같았다. 여행에서의 추억을 아름답게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마냥 지겨운 것만은 아님을 일깨워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설렘과 희망으로 그날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여행도...!!!
가장 보통의 날들
그랬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렇게 며칠 동안 앓았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혹은 여행 후 몰려온 지독한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진실로... 독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수없이 마딱뜨린 그 어이없고 황당한 불운들에 지긋지긋해 하며 감당할 수 없이 초과된 예산에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한국땅에 도착하자마자 허무감이 깊게 밀려왔다. 독일에서 보낸 37일이 마치 한 편의 꿈처럼 느껴졌다. 두 번 다시 반복해서 꿀 수 없는 달콤한 꿈... 나는 다시 돌아온 내 방 침대 위에서 많이 울었다. 그것은 독일에서 외로움과 속상함으로 울던 것과는 다른 울음이었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과 나, 그 둘뿐이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무사히, 혹은 즐겁게 보낼까 오로지 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너무나도 순식간에 나는 일상에 묶인 예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학교 개강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논문의 압박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죄어오고, 가족들의 불행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짧지만 짜릿한 순간들, 그 자유로운 일탈의 시간이 이제는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만난 그가, 그의 따스한 사랑이... 미치도록 그리웠다...여행이 내게 안겨준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돌아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일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예상은 빗나가고 나는 내 남은 인생이 계속 여행의 연장선에 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 일상이 싫어졌다. 내 평범한 삶이 진저리났다. 나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책임과 의무로 꾹꾹 채워진 현실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 여독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허무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정말 무엇인가 마취제 같은 것이 필요했고,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다. 이 냉엄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환상의 세계, 달콤한 문학의 세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서점 문을 힘차게 박차고 들어간지 단 3분 만에 무엇에 이끌리듯 집어든 이 책... 곧장 커피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MP3를 귀에 꽂고 책에 집중했다. 독일의 쾰른, 감기로 지친 몸을 이끌고 쾰른 시내의 어느 '스타벅스'에 들어가 따스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이상은의 책을 읽던 때처럼 말이다. 오로지 내 감성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벌써부터 벅차 올랐다...
미사여구로 문학적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문체도 아니었고, 깊은 철학적 사유가 깃든 글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리꽂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내 아픈 곳에 굵은 바늘을 내리꽂아 고름을 짜내어 치유하는 것 같았다. 살짝 튕기는 맛의 신세대식 표현들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나랑 동갑내기인 그녀가 여행에서 느낀 그 모든 소소한 감정들이 바로 내가 독일에서 느낀 것들임에 사뭇 놀랐다. 뭐랄까,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까...? 나만이 여독에 시달리는 게 아니구나, 나만이 여행이 주는 달콤함과 허무함의 괴리에 당황하는 게 아니구나... 모든 여행자들이 나처럼 여행지에서 외로움과 서러움에 지쳐 잠들다가도 순간순간 축제와도 같은 설렘과 환희를 느끼고, 또 여행 일정이 끝나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거구나...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여행이 안겨준 소중한 추억들을 곱씹으며 내가 여러 모로 성숙했음을 체감하고, 또 어느날 또 다른 기대감으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훌쩍 떠나면 되는구나... 그래, 이게 끝이 아니구나...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내게서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구나... 나는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구나... 그제야 나는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현실에 적응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하... 그래, 이제 내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엔가 다시 그곳에 가자꾸나...! 오로지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학기 중에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학업에만 열중하는 학생의 심정으로? 아니다!!!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 일상을 전보다 풍요롭게 살찌우며 가는 것이다. 삶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막막함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던 여행지에서 고군분투하며 배짱과 자신감 하나로 5주를 버티며 배운 것들... 동화 속 같은 길거리 풍경과 매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던 순간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그 따뜻한 친절과 배려에 가슴 훈훈해지던 기억... 그 모든 것을 보따리에서 진귀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꺼내듯 내 일상에 풀어 놓으며 좀 더 의연하고 능숙하게 삶에 대처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지칠 때쯤 또 다시 여행을 떠나 축제를 만끽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과 여행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여행이 가장 보통의 날들이 되며, 일상 역시 축제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 아름답다...
나는 지금 여독에서 많이 회복된 상태이며, 이 책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준 따스한 죽과도 같았다. 여행에서의 추억을 아름답게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마냥 지겨운 것만은 아님을 일깨워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설렘과 희망으로 그날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여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