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학생은 본 학원의 학생임을 증명합니다. - 검정고시 전문 고려학원 (신설동 로터리 사거리 옆) 전화 02-2233-3311」
학원에서 등록을 마치고, 명함 사이즈만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서 너무나 낯선 느낌, 하지만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을 것을 갈망한 나머지 이곳을 찾아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등록할 때 가르쳐 준 강의실을 찾아 3층으로 올라갔다. 좁은 통로에서는 쾨쾨한 냄새가 났다. 바닥엔 껌과 침으로 도배한 듯 지저분한 환경에 불쾌감이 엄습해 왔다. 강의실 문을 열자 미리 와 있던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 친구인 듯 보이는 네 명의 남자 아이들과 중년의 아주머니 두 명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고 뒤쪽에는 따로 떨어져 앉은 몇몇 여자 아이들이 있었다.
맨 뒷자리, 그것도 왼쪽 구석에 앉아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건지 대상없는 원망도 치밀어 올랐다. 십 여분 동안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더 들어오고 난 뒤, 검은 피부에 갈색 양복을 입은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전형적인 고등학교 선생님 같은, 조금은 엄해 보이는 모습이다.
“허음, 흠, 자 이제 출석을 부를 테니 대답들 해요. 박경철!”
목에서는 가래가 끓는 듯한, 너무나 탁하고 둔탁한 음성이다. 아무런 소개도 없이 출석을 부르는 상황에 조금은 당황한 듯, 앞쪽에 있던 한 남자가 대답을 했다.
“네!”
“권안영”
“네”
“김범수!
“여기요~”
“정명정, 명정이?”
“아, 네~ 저예요.”
약 스무 명이 안 되는 이름이 더 불리고 나서야 내 이름도 호명되었고, 나는 “네”라고 짧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조만간 이곳에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로, 아무도 기억될 수 없도록 말이다.
“허음, 흠, 그래, 이름 안 부른 사람 있어요?”
“저요, 이은희입니다.”
“이은희? 아, 여기 있군. 다른 사람은? 그래. 아무튼 이곳에 온 걸 환영합니다. 다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년에 있을 시험 때까지 꾸준히 참고 공부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간단히 실력 테스트를 하고...”
“에이, 뭐에요~”
“뭐야, 벌써부터 시험이야!”
테스트라는 말에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아랑곳 않고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아, 어려운 거 아니야. 중학교 수준의 영어와 수학만 실력 테스트를 하는 거니까, 금방 보고 끝날 거야. 시험 다 보고 정상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이니 그때 보도록 합시다.”
한 장씩 따로 나온 시험지는 정말 중학교 수준의 것이었다. 영어 과목은 동사 변화, 간단한 영작과 문법 문제가 나왔고 수학은 집합과 일차 방정식, 함수 문제가 전부였다. ‘뭐, 어차피 상관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먼저 풀고 답안지를 제출한 후 서둘러 강의실을 나섰다.
서울 도심 한 복판의 공기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우중충한 하늘빛, 그리고 그 공기에는 먼지와 매연이 얹혀 있는 무언가가 공중을 붕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그것은 마치 태양의 직사광선을 막아 그림자를 지워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하나의 일꾼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기요, 잠깐만요.”
약간은 들떠있는, 그러나 조금은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다. 하지만 역시나 낯이 익은 모습이다. 나보다 많아야 두세 살 위일 것 같은 여자였지만 짙은 화장과 강렬한 향수냄새,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어서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그런 모습이다.
“저, 아까... 그...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난 사람인데요.”
머뭇거리면서 말을 건넨 여자는 손에 시험지를 들고 있었다.
“저 혹시 이 문제 다 풀었나 해서요. 제일 먼저 나가길래...”
“아, 그냥 대충 풀었는걸요. 왜 그러시는데요?”
“답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 거 잘 기억 못하는데... 아무튼 정답은 아니겠지만, 제가 적은 걸 써 드릴게요.”
나는 애써 기억하면서, 아니 거의 처음부터 문제를 풀고 답을 다시 적어서 여자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제가 집에 가서 답을 맞춰보려고요. 다음 주에 학원에서 만날 수 있겠죠? 나중에 뵐게요.”
“아, 네. 그래요...”
“그럼 이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를 건넨 여자에게 눈을 마주쳐 응대하고 나는 바로 뒤를 돌아 길을 건넜다. 어딘가 무언가 이상해 보이는 여자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 초년생으로서 책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이 그 자리에 정말로 있는 것인지, 그러한 일들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앞으로 십년간은 이런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잘 기록하고, 반성하며 단상을 적어두는 것만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앞선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목적에 부합한 것이며 내게 남은 유일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나는 학교를 그만둔 것은 아닐까?
학원이 위치한 신설동은 오늘 처음 와 보았지만 다음 길을 지나면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거의 들어맞았다. 나는 이곳에서 30여분을 걸어가면 속칭 사람들이 588청량리라고 부르는, 사창가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그곳에서 무료배식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한 목사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통해 배운 건 사랑이나 실천의 삶보다 사창가의 여자들과 펨푸라 불리는 아줌마들의 삶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네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만 더욱 키워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것이 모두를 향한 복수의 길이며, 나 스스로를 방황과 방탕으로 몰아가는, 첫 번째 선택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가을의 날씨 탓인지 바람은 더욱 심하게 불었고 날은 벌써 저물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의 도심은 더욱 붐볐다.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고, 백화점을 지나고, 약재들을 파는 큰 시장을 지나자 청량리역이 나왔다.
동해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때의 그 청량리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큼 낯설었지만, 청량리역 앞의 광장과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우울해 보였다. 아마도 삶의 터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내뱉는 이산화탄소와 그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먼지들, 의미 없는 말들이 공중에 섞여 이러한 분위기, 한 도시와 한 지역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너무나 많은 말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말들이 들릴 때면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어쨌거나, 청량리역 앞에는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과 노점상 몇 개만 보일 뿐 어디서도 몸을 파는 여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량리와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백화점 하나가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우울해 보이는 이곳의 미관을 해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십 여분동안 역 주변을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백화점 주차장 옆을 지나 걸어가는데, 순간 나는 주변의 공기와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2부 9장. 검정고시
9. 검정고시
「클래스 에이치 원(Class H1). 등록번호 96-10-13. 이름 이 준.
위 학생은 본 학원의 학생임을 증명합니다. - 검정고시 전문 고려학원 (신설동 로터리 사거리 옆) 전화 02-2233-3311」
학원에서 등록을 마치고, 명함 사이즈만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서 너무나 낯선 느낌, 하지만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을 것을 갈망한 나머지 이곳을 찾아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등록할 때 가르쳐 준 강의실을 찾아 3층으로 올라갔다. 좁은 통로에서는 쾨쾨한 냄새가 났다. 바닥엔 껌과 침으로 도배한 듯 지저분한 환경에 불쾌감이 엄습해 왔다. 강의실 문을 열자 미리 와 있던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 친구인 듯 보이는 네 명의 남자 아이들과 중년의 아주머니 두 명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고 뒤쪽에는 따로 떨어져 앉은 몇몇 여자 아이들이 있었다.
맨 뒷자리, 그것도 왼쪽 구석에 앉아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건지 대상없는 원망도 치밀어 올랐다. 십 여분 동안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더 들어오고 난 뒤, 검은 피부에 갈색 양복을 입은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전형적인 고등학교 선생님 같은, 조금은 엄해 보이는 모습이다.
“허음, 흠, 자 이제 출석을 부를 테니 대답들 해요. 박경철!”
목에서는 가래가 끓는 듯한, 너무나 탁하고 둔탁한 음성이다. 아무런 소개도 없이 출석을 부르는 상황에 조금은 당황한 듯, 앞쪽에 있던 한 남자가 대답을 했다.
“네!”
“권안영”
“네”
“김범수!
“여기요~”
“정명정, 명정이?”
“아, 네~ 저예요.”
약 스무 명이 안 되는 이름이 더 불리고 나서야 내 이름도 호명되었고, 나는 “네”라고 짧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조만간 이곳에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로, 아무도 기억될 수 없도록 말이다.
“허음, 흠, 그래, 이름 안 부른 사람 있어요?”
“저요, 이은희입니다.”
“이은희? 아, 여기 있군. 다른 사람은? 그래. 아무튼 이곳에 온 걸 환영합니다. 다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년에 있을 시험 때까지 꾸준히 참고 공부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간단히 실력 테스트를 하고...”
“에이, 뭐에요~”
“뭐야, 벌써부터 시험이야!”
테스트라는 말에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아랑곳 않고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아, 어려운 거 아니야. 중학교 수준의 영어와 수학만 실력 테스트를 하는 거니까, 금방 보고 끝날 거야. 시험 다 보고 정상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이니 그때 보도록 합시다.”
한 장씩 따로 나온 시험지는 정말 중학교 수준의 것이었다. 영어 과목은 동사 변화, 간단한 영작과 문법 문제가 나왔고 수학은 집합과 일차 방정식, 함수 문제가 전부였다. ‘뭐, 어차피 상관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먼저 풀고 답안지를 제출한 후 서둘러 강의실을 나섰다.
서울 도심 한 복판의 공기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우중충한 하늘빛, 그리고 그 공기에는 먼지와 매연이 얹혀 있는 무언가가 공중을 붕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그것은 마치 태양의 직사광선을 막아 그림자를 지워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하나의 일꾼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기요, 잠깐만요.”
약간은 들떠있는, 그러나 조금은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다. 하지만 역시나 낯이 익은 모습이다. 나보다 많아야 두세 살 위일 것 같은 여자였지만 짙은 화장과 강렬한 향수냄새,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어서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그런 모습이다.
“저, 아까... 그...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난 사람인데요.”
머뭇거리면서 말을 건넨 여자는 손에 시험지를 들고 있었다.
“저 혹시 이 문제 다 풀었나 해서요. 제일 먼저 나가길래...”
“아, 그냥 대충 풀었는걸요. 왜 그러시는데요?”
“답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 거 잘 기억 못하는데... 아무튼 정답은 아니겠지만, 제가 적은 걸 써 드릴게요.”
나는 애써 기억하면서, 아니 거의 처음부터 문제를 풀고 답을 다시 적어서 여자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제가 집에 가서 답을 맞춰보려고요. 다음 주에 학원에서 만날 수 있겠죠? 나중에 뵐게요.”
“아, 네. 그래요...”
“그럼 이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를 건넨 여자에게 눈을 마주쳐 응대하고 나는 바로 뒤를 돌아 길을 건넜다. 어딘가 무언가 이상해 보이는 여자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 초년생으로서 책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이 그 자리에 정말로 있는 것인지, 그러한 일들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앞으로 십년간은 이런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잘 기록하고, 반성하며 단상을 적어두는 것만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앞선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목적에 부합한 것이며 내게 남은 유일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나는 학교를 그만둔 것은 아닐까?
학원이 위치한 신설동은 오늘 처음 와 보았지만 다음 길을 지나면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거의 들어맞았다. 나는 이곳에서 30여분을 걸어가면 속칭 사람들이 588청량리라고 부르는, 사창가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그곳에서 무료배식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한 목사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통해 배운 건 사랑이나 실천의 삶보다 사창가의 여자들과 펨푸라 불리는 아줌마들의 삶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네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만 더욱 키워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것이 모두를 향한 복수의 길이며, 나 스스로를 방황과 방탕으로 몰아가는, 첫 번째 선택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가을의 날씨 탓인지 바람은 더욱 심하게 불었고 날은 벌써 저물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의 도심은 더욱 붐볐다.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고, 백화점을 지나고, 약재들을 파는 큰 시장을 지나자 청량리역이 나왔다.
동해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때의 그 청량리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큼 낯설었지만, 청량리역 앞의 광장과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우울해 보였다. 아마도 삶의 터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내뱉는 이산화탄소와 그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먼지들, 의미 없는 말들이 공중에 섞여 이러한 분위기, 한 도시와 한 지역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너무나 많은 말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말들이 들릴 때면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어쨌거나, 청량리역 앞에는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과 노점상 몇 개만 보일 뿐 어디서도 몸을 파는 여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량리와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백화점 하나가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우울해 보이는 이곳의 미관을 해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십 여분동안 역 주변을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백화점 주차장 옆을 지나 걸어가는데, 순간 나는 주변의 공기와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