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관한 짧은 대화

.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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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습니다. 흉악범들이 판을 치고 있고, 지금까지의 솜방망이 처벌은 이런 문제를 더 가중시킬 겁니다. 그런데 폐지라뇨? 

 

B : 물론 사회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형 제도는 그것과는 다소 별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A : 별개라뇨? 말도 안되는 겁니다. 사형도 일종의 형벌입니다. 형벌을 집행하지 못할게 뭔가요? 그것도 끔찍한 죄를 저지르는 흉악범들에게 말입니다.

 

B : 그 끔찍하다는게 살인을 말하는 거라면, 사형이 끔찍하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사형과 살인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살인은 개인의 사적인 이득을 위해 저지르는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반면 사형은 제도입니다. 제도는 약속이자 합의죠. 그건 다수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되는 겁니다.

 

B : 꼭 그렇지만은 않지요. 사형이 제도이긴 하지만,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리고 제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을 보면 생명권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형은 생명권을 명백히 침해하는게 아닌가요?

 

A : 글쎄요. 어떻게 그걸 침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생명권도 사안에 따라 충분히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에는 생명의 박탈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지요.

 

B : 그렇다면 그건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살인이 끔찍한 죄이기 때문에 생명이 박탈되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사형이라는 살인에 동의한 다수의 생명도 박탈되어야 하니까요. 결국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같은 겁니다.

 

A : 비약이 지나친데요. 다수의 생명 박탈이라뇨.

 

B : 제가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하지만 살인을 끔찍한 행위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행하고 있다는 건 분명 모순입니다.

 

A : 그 둘을 같은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형이라는 건 제도잖아요. 제도라면 다수가 동의를 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겁니다.

 

B : 글쎄요. 다수가 동의를 했다고 해서 살인이라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요. 가령 일제 시대에 위안부 제도는 다수가 동의한 행위였습니다. 사실 그 잘난 제도 덕분에 조선인들은 의견을 표명할 수 없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제도가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하신 않겠지요.

 

A : 물론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사형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 지속된 제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되었다는건 그만큼 우리가 사형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처벌은 매번 바뀔 수 있지만, 사형 같은 경우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제도적으로 생명을 박탈할 수 있다는 걸 명문화 함으로써, 강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겁니다.

 

B : 글쎄요. 과연 사형이라는 제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어떤 주는 사형을 굉장히 많이 집행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주의 범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낮은 것도 아니죠. 그렇다고 사형을 폐지했다고 해서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아니구요.

 

A :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되죠. 그건 사회적 제도나 분위기, 문화, 가정 환경 등의 복잡다양한 요소가 범죄율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는 겁니다.

 

B : 맞아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려던 말이 그겁니다. 범죄라는 건 개인의 비도덕성 때문에만 발생하는 건 아니죠. 가령 가난에 못이겨 돈을 훔치고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후진성이 가난에서 결코 그를 못 벗어나게 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것인데, 왜 그 개인의 생명만을 박탈하려고 하냐는 거죠.

 

A : 법을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데요. 그런 딱한 사정이 있다면 분명 판결에 있어 참작이 되었겠지요.

 

B : 그 법이 얼마나 안 만만하신지, 전혀 오판이 없었던 것도 아니죠. 사실 억울하게 사형 집행이 된 경우도 분명 있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 집행을 받는 사람은 지금도 적지 않은 편이죠. 결국 제도는 사람이 만들고 집행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똑같은 결정인 살인이나 사형이나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건가요. 말도 안되는 다수의 동의 얘기는 하지 마세요.

 

A : 좋아요. 사회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만 생명의 박탈을 선고하는 건 다소 부당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논리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다소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B : 어떤 문제인가요?

 

A : 일단 사법권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까 언급하신 것처럼 제도 자체가 다수에 의한 동의기 때문에 정당성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다면, 그러면 사형 제도만이 문제가 아닌거죠. 그것은 공권력 자체에 대한 문제 인식인 겁니다.

 

B: 공권력도 폭력이죠. 법으로 규정된 폭력이죠. 경찰이나 군인은 필요시 판단에 따라 무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시민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리고 사형 제도가 남아 있는한, 판사는 살인도 명할 수 있구요.

 

A : 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하던 얘길 계속하면, 만약 우리가 다수의 동의라는 걸 쉽사리 무시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모든 제도는 그 힘을 잃고 무너지게 됩니다. 제가 볼 때 사형 제도를 폐지하려는 주된 이유가, 다수에 의한 살인도 살인이기 때문이라면 다수에 의한 감금도 감금이 되는 거지요. 

 

B : 글쎄요. 그렇게 볼 수 있나요? 감금과 살인은 다른 거지요.

 

A :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 논리 대로라면 그렇게밖엔 설명이 안되는데요? 우리는 살인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살인을 비난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사형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그것의 존폐에 관해 얘기를 하고 있는 거구요. 그렇다면 우리는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유형이나, 벌금을 내는 재산형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하지 않나요? 그것도 역시 엄밀히 말하면 비도덕적인게 아닌가요?

 

B : 이해가 가는군요. 결국 제 논리에 따르면 비단 사형이라는 형벌 뿐만이 아닌, 근대부터 그 형체가 갖춰진 모든 형벌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군요.

 

A :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 논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근대의 그림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나요?

 

B : 그러면 저항해야 겠지요. 근대화가 꼭 문명화는 아니잖습니까. 근대에는 분명 어두운 이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유산이 있다면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저는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 폐지야 말로 근대 반성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A : 민주주의 사회에선 저항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다수의 합의도 중요합니다.

 

B : 결국 이 모든 변화는 우리 스스로의 자각이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 제도 폐지는 이미 다수의 합의를 얻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A : 그건 좀더 두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어느 선을 넘진 말아야겠죠. 가령 아까 말했듯이 논리를 비약해서 사법권 자체를 부정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B : 그것 역시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