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우리 20대

박현준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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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끝났다.

역대 최고의 성적 뿐 아니라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컸던 적도 처음일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지도 몰랐던 나도, 김연아의 경기는 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녀가 보여준 침착함과 실력, 그리고 음악이 멈추자 마자 흘린 눈물에 깊은 인상을 느꼈다.

 

'챌린조이(Challenge & Enjoy)', 그리고 '강심장'

언론에서 요즘 세대를 두고 떠들어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아울러 김연아는 이에 대한 상징적인 존재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올림픽이라 떨릴 줄 알았는데
놀랄 정도로 그런게 없었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런 연기를 보여줬다.

 

모든 패러다임에는 중간이라는게 존재하고 대개 이를 과도기라고 부른다.

 

빈손으로 시작해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놓은 새마을운동, 헝그리정신, 프런티어정신 등으로 대표되는 패러다임의 상징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이라면

 

독재와 독점, 인권의 회복과 평화와 진리탐구 영역으로의 회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또 다른 패러다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가끔 버스를 타면 할머니들이 노벨평화상을 타신 이분을 빨갱이라고 욕하시는걸 들을 수 있다)

 

변화와 순응, 정보개방과 글로벌-정보화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명박 대통령은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낙인이 찍힌 상태로 재계에 입문해 샐러리맨 신화를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상징이 되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반복된다. 우리 04학번 시대의 패러다임은 뭘까
누구나 자기가 과도기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우리 20대야 말로 그 과도기에 있다.

 

'청년실업이 40만인데, 놀 틈이 있나요?'

한 때 유행하던 시트콤의 유행어

88만원 세대, 싸구려커피, 루저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작금의 청년실업자 수는 100만명이라고 한다.

 

배고픈 프런티어인 베이비붐 세대,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우리 아버지 세대가

 

자신들의 밥그릇 유지를 위해 거대한 바리게이트을 쌓아 놓고 희망이라는 속임수로 젊은이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우석훈 교수나

 

'별 걱정없이 산다'라는 한마디는 절대 우리 20대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닐거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음악가 장기하씨는 놀랄 정도로 이 패러다임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선후배 간의 질서와 우정.

선배가 밀고 나가면 뒷받쳐 주고 선배가 되면 후배를 끌어주는 것.
대학교 1학년생이 도서관에서 발견되?
선배가 술을 따라주는데 안받아?
틀리든 맞든 군대 선임이 하는 말인데 토를 달아?
시험성적보다는 인성이 먼저다.

 

이게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게 아닐까.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패러다임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쳤다.

 

그리고 너무 뒤늦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길을 향해 달린다.

영어점수와 학점, 학벌, 인턴쉽 이 많은 것들을 급하게, 많은 사람들 틈에 하려니 '불안'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대학가에 떠도는 말 중에 가장 정확하게 우리 세대를 표현해 주는 말이 이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MARX를 공부하지 않으면 바보다. 그렇지만 4학년 때도 MARX를 본 다면 그것은 더 바보다'

 

"아니 대리님 제가 왜 고기를 뒤집어요?"
당돌한 신입사원을 어떻게 다뤄야 되나요,, 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본 지 1주일 만에 내가 아부다비에서 실제로 본 광경이다.

 

회식자리에서 대리님이 계속 고기를 굽다가 막내사원에게 은근히 이야기 했다. "이런건 원래 막내가 하는거야, XX씨가 좀 굽고 그래" 라고 하자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나온 신입 여사원의 한마디에 옆 테이블에 있던 나도 놀랐다.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내무실에서도 이런 변화는 눈에 띌 정도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무실 전체가 선임의 입장을 두둔하던 불문율을 깨졌고

그리고 지금 학교에선 군대 갔다온 복학생이라고 우리가 신입생일 때의 복학생들 처럼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요하다간 개념없고 냄새나는 복학생 아저씨가 될 뿐이다.

 

군대나 기업이나.
이제는 빠릿빠릿하고 성실한 사람들보다, 다재다능하고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것들은 다 쓸모 없는 게 되어버렸다.

 

'챌린조이(Challenge & Enjoy)'와 '강심장'
그리고 김연아로 상징되는 우리 후배들은 우리보다 더 민활하고 자신감에 넘친다.

 

선배들은 컨트롤과 충성심을 요구하고
후배들은 합리적인 환경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

 

아부다비에 있을 때,
나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 후배들이었다.

 

술자리에서, 그리고 사적인 자리에서 오래 전부터 사회생활을 해왔던 대리나 과장직함을 달고 있는 분들은 나에게 와서 '요즘 여자애들이 사회생활을 알겠어? 잘 하고 있어'라고 말했지만

실제 일처리 능력에 있어 이들이 부족한 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뛰어났다.

 

그리고 이는 개개인의 성공여부를 놓고도 결과로 직결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야 말로 가운데 있다.

패러다임의 가운데 끼어서, 어찌보면 우리야 말로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개념에 가장 적합한 세대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기도 하다.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속도가 그렇게 느리지도 않다.

 

프레시안紙는 사설을 통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공부의 신'이 학교와 입시의 실태를 보여주면서도,

 

정작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엔딩에서 주인공들의 명문대 입학과, 명문대에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을 미화시키는 것만으로 미온적인 결말을 냈다고 비판했는데

 

우리한테 필요한 건 구조적인 문제개선은 아니라고 본다.

 

대안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88만원 세대'는 베스트 샐러지만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바리게이트를 쳐 놓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짱똘을 들 필요도 없다. 다만 그들의 경쟁력을 배경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뛰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유능한 정치인들이 괜찮을 정도의 수준으로 대체로 모두에게 공평할 정도의 정책을 펴고 있다.

 

실제로 버릇이 없거나 흔한 말로 개념없는 후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매너를 갖추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더 이상 다른 패러다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기성세대의 패러다임과 강심장들의 패러다임 가운데에서, 이를 조율하면서 우리답게 행동할 때가 가장 경쟁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