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다이어리] 늦는다는 것

김주영201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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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한창 수다를 떨다 커피가 떨어져 갈 때쯤에서야 그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어떤 대꾸를 해 줄지 대충 갈무리 해 둔 상태.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란게 있어서 한편으로 조심스럽다. 진절머리 난다는 십여분의 넋두리, 서로 맞지 않았다는 이십여분의 안타까움, 이젠 정리를 해야겠다는
삼십분 가량의  다짐. 이녀석 겉으로는 그래도 속은 천상 여자다. 결국 빨간 토끼눈을 하고서 빈 커피잔만
괜시리 입에 가져다 댄다. 
 


  그녀석 작년, 크리스마스가 몇일 남지않았던 어느날 그를 정리했더랬다. 남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이별,
남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이별 후를 바랬는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나 보다.
 용기가 없는걸 애써 무뚝뚝함으로 포장 했었던 그가 그제와서 어찌나 매달렸었던지 몇일을 시달린
전화이야기를 꺼내며 커피 때문에 씁쓸해진 입을 이제서야 과자하나로 달랜다. 말하자면 끝이 없을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땠는지를 녀석은 쏟아내기 시작한다.



 때론 안타까워 하면서 때론 화를 내면서 쏟아내는 이야기들. 사실 그에게는 같은 남자로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았지.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 3자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가 이해 되는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 그는 분명 나름 최선의 방법으로 녀석에게 뒤늦은 직무태만을 변호하려 한 것일거다.
 사귈 때, 누구나 겪게 되는 서로에 대한 태만. 단지라고 하면 너무 후한 그의 행동이 결국 이별통보를 불러왔고
바보같이 잃고 나서 무한한 용기를 발휘해버린게 그의 잘못. 미안하지만 이쯤되면 이미 상황은 겉잡을 수 없게
되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게다.




 




 이별에 무심했던 사람은 시련이 닥치고 나서야 용감한 사랑을 하게된다. 뭐 드라마에 나오는 미끈하고
늘씬한 주인공들처럼 쿨한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보통의 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골방에 쳐박아둔 기사 갑옷을
그때가 닥쳐서야 꺼내입곤 했다. 갈 곳이 없어진 무한한 사랑을 한아름 안고 절벽으로 뛰어내리는데 결론이
궁금하신가? 한 커플을 제외하고는 죄다 나가 떨어졌지.


 
 사람은 참 어리석다를 적으면 왠지 웃길 것 같다. 어디 중2병 걸린 학생의 옹알이 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살면서 가장 기본이라고 듣는 말들, 그중 태반을 어기면서 살고 심지어 그것을 어긴 줄도
모른채 사는게 우리들이다. 그에게도 '있을 때 잘하지'란 말은 분명 지겨울거다. 적는 나도 지겨워 죽겠는데
문제는 있을 때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겹게 그 소리를 듣는다.
 


 물론 사람 일이란게 1차원적으로 설명되는 것들은 결코 아니다. 분명 순간 순간의 선택이나 기회 따위로
지금의 것에 소홀하게 될 수도 때론 운 좋게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마다
따르는 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책임을 망각한 기회는 더 없이 달콤하지, 이면이 보이지 않는 미래는
꿈결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때 그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말들 이었으리라.
'왜 그걸 모르고 그렇게 지내다 이제와서 그러는거야?' 
  



 




 그렇게나 용감했던 그의 사랑, 녀석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추억으로 고이 접혀 어느 구석에
짜부러져 있을게다. 엄청 섭섭할 이야기, 하지만 뒤늦은 사랑은 어떤 영양가도 가지지 못한다.
물론 녀석은 어느날 문득 그때 생각을 하면서 아직 입가에 남은 씁쓸한 커피처럼 찝찔해 하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그가 바라는 시간이 돌아오는건 아니다.
 
 그녀석... 아니 그녀는 지금 자기 일에 몰두 중이다. 가끔  전화가 와서 그때 이야기를 아직 하곤 한다만
결코 그때를 바라는 심산은 아닐게다. 그러기에도 이미 늦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