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 그리고 5년

ㅎ ...2010.03.13
조회3,108

성폭행 그 후 10년... 큰 용기를 내서 글을 적어보셨을 어떤분의 판을 보고

저도 제 얘기를 해 보고싶단 생각이 들어 끄적여봅니다

 

(짧게 끝난 얘기는 아닌듯합니다만, 읽어주세요...)

 

모든 일이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 약으로 도저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제게도 있습니다 .

 

저는 스물둘 경기도 사는 평범하지만. 또 그렇지 못한 여자입니다

 

우리나라의 성폭행에 관한 처벌법은..

피해자로서 정말 말로 하기 우스울만큼 가볍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경악케 했던 조두순 사건..

모든 국민이 치를 떨었지만.. 저도 참 많이도 울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12년...

20년 30년 살고 나온다고 해도.. 아니 사지가 찢겨 죽는다고 해도

조금도 통쾌하지 않을터인데 ... 아이의 말처럼... 장난이라는 생각밖에는..

 

 

이번 김길태의 범행을 뉴스로 접하고도 가슴을 쳤습니다

너무.. 가혹한 무거운 짐을 질 사람들이 또.. 늘어났구나 하는 마음에

짓눌리는 통증이 또.. 나를 찾아왔습니다

 

 

 

 

열 일곱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 열 한시쯤 집 앞 정류장에서 걸어오는데

집 까지의 거리는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서있지만 그 때는 공사장이었지요

정류장에서 아파트단지로 오는 길은 큰 길이었지만 그 시간엔 인적이 드물었고

조금 무서워 늘 그 거리는 뛰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 !

고개를 돌린 순간, 푹 눌러쓴 모자 아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공사장 바로 옆 한 건물 안 화장실로 끌려들어갔습니다

 

 

칼을 들고 있었고 내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것 저것을 요구했습니다

심한 욕설과 ...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

그리고 나에게 좋냐.... 고 잔인하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의지는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강간... 이 시작되었고

본인의 성기를 입으로 빨아줄것을 강제로 요구했고

거부하자 화장실 벽에 머리를 몇 번 부딫히게 했던 것 이후

어떻게 끝이 났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유유히 사라졌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시 묶고 교복을 주워입고는

건물을 빠져나와 황망히 집으로 오는데

그 짧은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벽에 머리를 부딫혀 두통에 오래 시달려야했고

항문과 성기에서 며칠 피가 보였는데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사건 이후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던 저는

되려 가족들에게 화만 내기 시작했고

 

동네에 살면 매일 그 길을 지나야했기에

고등학교 옆에서 홀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싫어져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친구들과도 틀어졌고

 

열 여덟 불면증에 밤새도록 침대에 앉아 천장의 한구석을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상처는 곪아만가다

우울증이 심해져 졸업반 열 아홉 고3에 자퇴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그저 남들 다 보내는 고 3 버텨내지못해 그만둔다 했습니다

 

지금은 자사고가 된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당시에도 명문고등학교였고.. (제 자랑하려는 게 절대아니라)

학교를 그만 둘 때 부모님의 상처도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용기를 내 병원을 찾았지만

신경정신과의 의사선생님조차도 신뢰할 수 없어서 

사건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고

진료시간내내 세상이 이래서 저래서 싫다고만 했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사람들은 날더러 참 철없다고 했지요 ... 

 

스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다들 좋은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고.. 자격지심에 공부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아 또 허망하게 스무살을 허공에 날려보냈습니다

 

스물하나 ... 부모님이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정신차리고 대학가자고 ... 도대체 왜 그러냐고 ...

죽을 용기가 없어... (몇 번 시도는 있었으나 실패했지요..) 살고있는 제게

대학은 참 사치였는데 그걸 요구하는 부모님이 더 미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디를 가도 손에 칼을 쥐고 다녔고 남자의 목소리만 들려도

꽉 쥔 손 탓에 매일 손에서 피가 났고

불안함에 시달려 양 손에 지문이 없을 정도의 칼집을 내 놓았습니다 ...

 

그 칼은 아이러니하게도 늘 나를 향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어떤 남자와 어깨만 스쳐도 내가 너무 싫어서

자지러지게 반응을 하고 어김없이 몸 이곳저곳을 그어

엄마는 엄마의 손으로 딸의 두 손을 꽁꽁 싸매 묶어두어야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그 사람을 봤습니다

언뜻 스쳐갔지만 분명...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보고 슬쩍... 웃었습니다

그 때의 섬뜩함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물 둘... 올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능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쌍한... 너무 불쌍한 우리 부모님께...

내가 이런 사정때문에 못한다... 얘기 할 용기가 도저히 없어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신고... 를 했었더라면.. 생각해봤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았을까... 고개를 젓게 됩니다 ...

분명 얼마지나지않아 동네에 나타나 나를 찾아와 같은 짓을 저지를것만 같았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법체계로는 불가능할것도 없을 일이었고..

피해자가 당한 일에 대해 진술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것이고

그것에 따른 보상(가해자사형이랄지하는)도 없는게뻔한데

그 모든 과정을 감당해낼 자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죽은 듯이.. 죽지못해 살고있습니다...

죽으려고 먹은 약 때문에 위궤양과 식도에도 궤양이 생겼고

목을 맸던 일때문에 검은 줄이 생겨 한여름에도 목티를 입어야만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병은 몸에도 이곳저곳 영향을 미쳐 하루에 먹는 알약만 서른알이 넘습니다

매일을 악몽에 시달리며 버텨내고 있습니다..

또 버스를 타러 나갈때면 모든 게 변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그 건물을 보기싫어 발끝만 보고 걸어야만하지요 ...

 

언젠가는 꼭 저도 좀 나아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싶습니다

행복한 가정도 꾸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지독한 사치일 뿐인 꿈이지만 말입니다

 

 

 

 

끄적여봤지만 제 안에 있는 분노와 상처를 적어내기에는 부족하네요 

 

 

모든 성범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꼭 제대로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흔적도 없이 당당하게 세상 살 수 있는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반드시 사라져야 할 범죄의 희생양은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