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마산의거

DanTheMan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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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저 마우스휠만 굴리지 마시고 읽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오늘은 3월 15일이었습니다.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는 이미 16일이니)

오늘은 어머니 생신입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학교 가는 길, 신문을 뒤적이던 중 3.15 마산의거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는 기사가 눈에 띄입니다.

 

 

기억을 더듬습니다. 근현대사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3.15 부정선거라는 외워졌던 단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기사를 살펴봅니다. 어렴풋 외웠던 이름이 보입니다. '김주열 열사' 당시 17세의 어린나이로 눈에 최류탄이 박힌 체 숨졌습니다.

 

 

당신은 3.15 마산의거를 알고 있습니까? 그래도 국가기념일인데 혹여나 외국인 친구들이 물으면 울분에 찬 얼굴로 몇 마디는 건네야하지 않겠습니까.

 

3.15 의거가 무엇인가?

1960년 3월 15일 제 4대 정부통령 선거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마산시당이 '사전투표함'을 발견하고 선거 포기와 부정선거 무효를 선언하자 마산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사건입니다. 의거 첫날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 시신이 4월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떠오르면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돼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고 올해 41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3선에 성공하여 독재정권 장기 집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장기 독재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막고자 국가보안법까지 고쳤습니다. 결국 높고 좋은 자리에 계속 있고 싶어서 3.15 부정선거를 치루게 됩니다.

 

부정선거획책

(3.15 부정선거의 준비과정입니다. 이 글은 다들 읽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당은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지휘 아래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부정선거를 준비했다. 전국 경찰의 주요 간부는 모두 맹목적 충성 인물로 교체되었고, 야당의원들에 대해 집요한 분열 공작이 펼쳐졌으며, 정치깡패 등을 동원해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일반 공무원은 물론 교육 공무원들까지 부정선거 운동에 투입되어, 자유당에 투표할 것을 설득 권유하는 담임교사의 가정방문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신병 치료 차 미국으로 건너가자, 1960년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당겨 3월 15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조병옥 후보는 미국 육국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선거가 한달 남은 2월 15일 심장마비를 일으켜 서거하였다.
이에 대통령은 이승만 단일 후보로 당선이 확실해졌고, 부통령에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 계획은 더욱 구체화 된다.

 

3.15 마산의거

사진 중에 있는 허윤수 의원은 자유당의 꼬임에 넘어가 민주당 탈당을 선언합니다. 그 댓가로 동양주정을 인수하게 됩니다.

마산시민들은 자신들이 찍어준 표에 신의를 저버렸다하며 더더욱 크게 분노하게 됩니다.

 

3.15 마산의거

부정선거의 현장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난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3.15 마산의거

김주열 열사의 관련된 사진들입니다. 당시 나이 17세였습니다. 17세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17세였습니다.

 

3.15 마산의거

3.15 의거 당시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던 경찰관들은 5.16 군사정변 이후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들도 그 당시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훗날의 희생양을 만들기위한 위에서 내린 의도된 명령이랄까요.

토사구팽 정도라 생각해봤습니다. 아니면 시기로 볼 때 군사정변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어지자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국민들의 분노를 잠시 다른곳으로 돌리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솔직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당시의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부정부패에 맞서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이 문제점을 괜히 나라의 교육과정으로 돌리고 싶군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국사를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과거에 이러했기에 지금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부정선거에 맞서서 거리로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잘못된 일이 있었기에 그 때 목숨을 걸고 막아섰기에 지금 우리가 안정된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굳이 겪었던 일 다시 겪어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역사는 우리의 소중한 경험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가야겠다고 길을 정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시대의 부정에 저항했던 3월의 함성을 느낄 순 없다하더라도 일년에 하루 정도 그 날을 기억하고 잠깐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http://masan315.net/main/main.asp 3.15의거 기념사업회 와 동아일보 2010년 3월 15일자 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