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독도 운동을 해오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도를 지키려면 울릉도인들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6.25직후 독도가 어려웠을 때 울릉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 대원들은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독도를 지켜냈다.
신 한일어업협정 체결이후 어업이 힘들게 되자 3만명에 육박했던 울릉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제 1만명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울릉도인들을 일으켜 세우고 독도를 지키는 방법으로, 육지인들이 해외관광보다 울릉도, 독도관광을 많이 가야 한다는 말을 기자들과 인터뷰 할 때나 관계자들을 만날 때 계속 했다.
2001년도 국회의원들과 독도방문을 했을 당시 울릉도, 독도에 수학여행 온 일본고등학생들을 선플라워호 배안에서 만났던 일을 예를 들면서, 독도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수학여행을 울릉도 독도에 보내어 실물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교육청에 공문을 띄우고 교육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설득했다.
마침 독립기념관에서 연수 받은 선생님들을 모시고 독도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독도의병대와 공동주관으로 이 행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독도의병대에서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수상자들과 독도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 이 행사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에 나는 기꺼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께서 드실 찹쌀 주먹밥까지 준비하겠다고 했다.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이 드셨고, 일본에 갈 때 우리도 가져가서 먹었던 주먹밥!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시상식 때는 수상자와 내빈들에게도 대접했던 주먹밥!
그 주먹밥을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선 130여분의 선생님 께 대접하겠다는 나의 말을 들은 남편은 나보다 한술 더 떠서 주먹밥 속에 깨소금, 콩,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많이 넣어 이번엔 더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만해도 옛날 의병들이 드시던 험한 주먹밥에 비하면 최상의 주먹밥이에요. 이번에 독도에 가시는 선생님들은 관광하러 독도 방문 하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의병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이 행사의 취지를 더 이상 희석시키지 맙시다. ” 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실상은 고향에 계시는 시아주버님이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보내 주신 찹쌀을 우리가 쓰는 것도 미안한데 이것저것 더 보태는 것은 우리 형편상 무리라는 생각에서 나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그 말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울릉도로 출발하기 하루 전 날! 우리가 국회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가 있는 동안 친정어머님은 시어머니가 주신 찹쌀이 부족할까 봐 다섯 되를 더 보탠 후 방앗간에서 찹쌀밥을 만든 다음 다시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시어머님과 주먹밥을 만드셨다.
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는 주먹밥을 먹어본 남편은 그 주먹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심히 언짢아했다. 이것저것 넣자고 했는데 내가 막아 못했다고 책망하는 남편에게 나는 속으로 원망만 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 방에 군불을 때시다 가스가 터져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독도지지키기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시는 시어머니와 부족한 찹쌀을 사서 보태고 방앗간에 가서 쪄오느라 수고하신 친정어머니는 밤늦도록 주먹밥 만든다고 고생을 하시고도 인사 받기는커녕 내가 꾸지람 듣는 것을 보면서 같이 속상해 하셨다.
이미 만들어진 주먹밥을 다시 새로 만들 수도 없어 우리는 그 주먹밥을 가지고 다음날 새벽 포항 선플라워호 선착장으로 갔다.
화상 입은 시어머님을 홀로 두고 이틀 동안 울릉도에 들어 갈 수 가 없어 우리는 독립기념관의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먹밥만 전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황급하게 독립기념관 부장님이 이 행사 준비하는데 안내한다고 그 동안 수고했다면서 우리 손에 작은 꾸러미 하나를 전달해주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러미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호도과자가 들어 있었다.
호도과자 포장을 뜯어내니 전단지가 하나 나왔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리며-에벤에셀”
천안 명물 호도과자는 1934년 당시 최고의 제과 기술자였던 심복순여사의 부군인 고 조 귀금 선생에 의해 처음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양의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비타민 B1, 인, 칼슘이 들어 있습니다. 앙금 재료인 팥은 그 향미가 매우 독특한데 이것을 여러 번 거피 하여 곱게 앙금을 내어 사용합니다. 호도과자가 인기를 끌자 이곳저곳에서 모조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한결같이 양질의 재료로 정성을 다하는 ‘학화 호도과자-할머니 호도과자’만의 고유한 맛은 절대 흉내 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맛과 영양을 위해 연구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지금까지 저희 ‘학화 호도과자- 할머니 호도과자’ 를 아껴 주신 것처럼 더욱 애용해 주시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간직하시기를 삼가 말씀 올립니다.
-학화. 할머니 호도과자 구성 동 분점 직원 일동-
정성스럽게 만든 노란 전단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호도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호도과자 속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잣의 고소한 맛! 팥 앙금의 독특한 향미!
전날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에게 학화 호도과자의 독특한 맛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특별한 호도과자의 맛은 전단지에 쓰여진 만든 사람들의 정성스런 글과 함께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다음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밀물처럼 밀려오는 무엇이 있었다. ‘우리도 이런 주먹밥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품에 안고 돌아온 독도를 가르치겠다는 열망으로, 어려운 걸음을 내디딘 저 선생님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은 우리가 만든 맛있는 찹쌀 주먹밥을 대접하면서 독도를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들어서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남편이 주먹밥을 보면서 그토록 속상해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주먹밥 유감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 49회
그 동안 독도 운동을 해오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도를 지키려면 울릉도인들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6.25직후 독도가 어려웠을 때 울릉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 대원들은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독도를 지켜냈다.
신 한일어업협정 체결이후 어업이 힘들게 되자 3만명에 육박했던 울릉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제 1만명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울릉도인들을 일으켜 세우고 독도를 지키는 방법으로, 육지인들이 해외관광보다 울릉도, 독도관광을 많이 가야 한다는 말을 기자들과 인터뷰 할 때나 관계자들을 만날 때 계속 했다.
2001년도 국회의원들과 독도방문을 했을 당시 울릉도, 독도에 수학여행 온 일본고등학생들을 선플라워호 배안에서 만났던 일을 예를 들면서, 독도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수학여행을 울릉도 독도에 보내어 실물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교육청에 공문을 띄우고 교육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설득했다.
마침 독립기념관에서 연수 받은 선생님들을 모시고 독도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독도의병대와 공동주관으로 이 행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독도의병대에서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수상자들과 독도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 이 행사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에 나는 기꺼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께서 드실 찹쌀 주먹밥까지 준비하겠다고 했다.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이 드셨고, 일본에 갈 때 우리도 가져가서 먹었던 주먹밥!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시상식 때는 수상자와 내빈들에게도 대접했던 주먹밥!
그 주먹밥을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선 130여분의 선생님 께 대접하겠다는 나의 말을 들은 남편은 나보다 한술 더 떠서 주먹밥 속에 깨소금, 콩,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많이 넣어 이번엔 더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만해도 옛날 의병들이 드시던 험한 주먹밥에 비하면 최상의 주먹밥이에요. 이번에 독도에 가시는 선생님들은 관광하러 독도 방문 하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의병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이 행사의 취지를 더 이상 희석시키지 맙시다. ”
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실상은 고향에 계시는 시아주버님이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보내 주신 찹쌀을 우리가 쓰는 것도 미안한데 이것저것 더 보태는 것은 우리 형편상 무리라는 생각에서 나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그 말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울릉도로 출발하기 하루 전 날!
우리가 국회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가 있는 동안 친정어머님은 시어머니가 주신 찹쌀이 부족할까 봐 다섯 되를 더 보탠 후 방앗간에서 찹쌀밥을 만든 다음 다시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시어머님과 주먹밥을 만드셨다.
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는 주먹밥을 먹어본 남편은 그 주먹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심히 언짢아했다.
이것저것 넣자고 했는데 내가 막아 못했다고 책망하는 남편에게 나는 속으로 원망만 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 방에 군불을 때시다 가스가 터져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독도지지키기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시는 시어머니와 부족한 찹쌀을 사서 보태고 방앗간에 가서 쪄오느라 수고하신 친정어머니는 밤늦도록 주먹밥 만든다고 고생을 하시고도 인사 받기는커녕 내가 꾸지람 듣는 것을 보면서 같이 속상해 하셨다.
이미 만들어진 주먹밥을 다시 새로 만들 수도 없어 우리는 그 주먹밥을 가지고 다음날 새벽 포항 선플라워호 선착장으로 갔다.
화상 입은 시어머님을 홀로 두고 이틀 동안 울릉도에 들어 갈 수 가 없어 우리는 독립기념관의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먹밥만 전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황급하게 독립기념관 부장님이 이 행사 준비하는데 안내한다고 그 동안 수고했다면서 우리 손에 작은 꾸러미 하나를 전달해주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러미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호도과자가 들어 있었다.
호도과자 포장을 뜯어내니 전단지가 하나 나왔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리며-에벤에셀”
천안 명물 호도과자는 1934년 당시 최고의 제과 기술자였던 심복순여사의 부군인 고 조 귀금 선생에 의해 처음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양의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비타민 B1, 인, 칼슘이 들어 있습니다.
앙금 재료인 팥은 그 향미가 매우 독특한데 이것을 여러 번 거피 하여 곱게 앙금을 내어 사용합니다.
호도과자가 인기를 끌자 이곳저곳에서 모조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한결같이 양질의 재료로 정성을 다하는 ‘학화 호도과자-할머니 호도과자’만의 고유한 맛은 절대 흉내 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맛과 영양을 위해 연구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지금까지 저희 ‘학화 호도과자- 할머니 호도과자’ 를 아껴 주신 것처럼
더욱 애용해 주시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간직하시기를 삼가 말씀 올립니다.
-학화. 할머니 호도과자 구성 동 분점 직원 일동-
정성스럽게 만든 노란 전단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호도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호도과자 속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잣의 고소한 맛!
팥 앙금의 독특한 향미!
전날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에게 학화 호도과자의 독특한 맛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특별한 호도과자의 맛은 전단지에 쓰여진 만든 사람들의 정성스런 글과 함께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다음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밀물처럼 밀려오는 무엇이 있었다.
‘우리도 이런 주먹밥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품에 안고 돌아온 독도를 가르치겠다는 열망으로, 어려운 걸음을 내디딘 저 선생님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은 우리가 만든 맛있는 찹쌀 주먹밥을 대접하면서 독도를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들어서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남편이 주먹밥을 보면서 그토록 속상해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독립기념관 독도 탐방행사에 참여하신 선생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혹시 다음에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정성을 다한 주먹밥을 만들어 대접하겠습니다.
비록 정성이 부족하지만 보내드리는 주먹밥 드시고
이 나라의 장래와 독도를 책임질 수 있는
소신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일에 앞장서 주셔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독도의병장이 되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독도의병대(www.o-dokd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