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유천호20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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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사 작전(FALL Barbarossa)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기습공격한 작전명칭입니다. 작전 기간은 1941년 6월 22일부터 1941년 12월까지였으며, 작전 이름은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의 별명이었던 "바르바로사"(붉은 수염)에서 유래했습니다. 프리드리히 1세는 명군으로 불린 전설적 인물로 동방에 관심을 기울였기에 대소련전에 걸맞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일설에는 붉은수염은 스탈린을 암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 육군은 공격작전명에 색깔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어, 이것의 발전형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원래 목표는 소비에트 연방의 유럽 부분의 정복이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는 아돌프 히틀러의 전체 전쟁 작전에 차질이 생기게 했고 결국은 나치 독일의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 침공을 개시했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읽은 독자라면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책 내용에서 독일인을 위한 넓은 생존권이 필요하니 이를 위해 동쪽의 영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히틀러는 슬라브인을 열등인종으로 보고 그들을 추방하고 광대한 영토에 식민지를 건설할 계획이었습니다.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 침공 직전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우호관계를 맺었습니다. 이것은 독일과 소련이 동유럽의 분할지배에 합의하고 상호안전보장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독소불가침조약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절대 손을 잡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양대 적대세력이 손을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에게 있어 일시적인 보험에 불과했습니다.


독일 육군수뇌부는 영국을 후방에 두고 소련을 공격하여 2개의 전선을 만드는 것을 염려했지만, 히틀러는 측근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작전개시를 명령했습니다. 히틀러는 서방전격전의 성공에 힘입어 붉은 군대와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련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이 나라가 사라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붉은 군대에 대한 신속한 승리가 영국과의 화평을 촉진시키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소련국경에 250만 명의 대병력을 이동시키고, 소련영토에 대한 수많은 공중정찰을 실시했지만, 소련은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않아 독일의 기습공격을 용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독소불가침조약이 유효한 약 2년 간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탈린이 확신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영국과의 전쟁을 종료시킨 후에도 자국을 공격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정보기관으로부터 여러 번 경고를 받았음에도 무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정보가 독일과 소련사이에 전쟁을 일으키게 하려는 영국의 음모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히틀러와 독일군지휘부는 3개의 집단군을 소련의 특정지방에 있는 대도시를 공격, 점령목표로 삼아서 각각 할당했습니다. 2개 군(軍)과 제 4기갑집단으로 구성된 빌헬름 폰 레프원수가 이끄는 북부집단군은 발트해연안에 있는 발트3국을 경유해 북러시아에 침입하여 레닌그라드의 점령 혹은 파괴를 목표로 했습니다. 2개 군과 제 2, 제 3기갑집단으로 구성된 페드로 폰 보크원수의 중부집단군는 현재의 벨라루시를 통과하여 러시아의 중서부를 진군하여 모스크바에 직접 공격하여 점령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3개군과 제 1기갑집단, 루마니아 2개군으로 편성된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원수의 남부집단군는 소련의 최대 곡창지대이며, 거대한 공업지대이고, 인구밀도도 높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공격하여 키에프를 공략한 후 남러시아의 초원을 넘어 동쪽의 볼가강까지 진군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유럽부분까지 진출할 계획으로 그 때문에 동절기 장비도 준비하였습니다. 다만 수량이 부족했고, 또 작전중 병참의 혼란으로 전선부대까지 동절기장비가 거의 도착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