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느 선생님 못지 않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저에게 떡을 준 것도 옷을 준 것도 아닌 저에게 매일 매일 사랑해요를 외칩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늘 노력하죠. 퍼줘도 퍼줘도 늘 부족한 것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인 것을 알기에 닭살 스러운 멘트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안하는 말들을 아이들과 저는 나누곤 합니다. 여러분은 일부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며 시위하다가 징계를 받은 일을 아십니까? 저는 같은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와는 거리가 멀기에 부끄럽게도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제고사의 결과에 의한 서열화로 인해 그 여파가 초등으로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서열을 매겨 낮은 순위의 지역 교육청에서는 그 지역의 관내 교육청을 쪼아대고 그 교육청은 또 관내의 학교 교장을 교장은 교사들을... 결국 그 피해는 모두 아이들에게 가고 맙니다. 성적 올리는 것. 어려울 것 같습니까? 아니요. 엄청 쉽습니다. 프린트 물 나눠주고 외우고 시험보고 외우고 시험보고 그러면 됩니다. 초등학생들은 고등학생들처럼 모두가 미친듯이 공부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러겠습니까? 초등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무조건 재미없다. 싫다. 뛰어노는 게 좋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교육은 중고등 교육처럼이 아니라 여러 자료와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가 가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외우고 시험보고 외우고 시험보고 ... 이건 아예 공부에서 정때란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정권이 지난 뒤 일제고사가 사라진다해도 아이들은 지금의 이 나쁜 기억으로 다신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침자습에 문제집 국영수사과 위주에 체육이고 음악이고 미술이고 주지교과가 아니면 배울 가치도 가르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교육청에서 말합니다. 학원식으로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무조건 성적을 올리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하면서요. 이젠 국가기관인 교육청에서 아이들을 8/9교시까지 하라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불법을 조장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상황에서 교사의 신조와 사기와 교육에 대한 열정. 참교육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무시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모든 아이가 공부로 성공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시작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타고난 것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근 10 년동안 성적 순이 아닌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에 맞는 교육과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선진국형 교육을 표방하며 나아왔습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학력위주의 사회 풍토는 바뀌지 않았지만 이는 아직 10년이라는 시간 때문이지 절대 잘못된 방향이라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적이 최고다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지금 기득권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0 - 30년을 쭉 새교육. 선진국형 교육으로 듬직하게 밀고 나갔다면 분명 적게든 많게든 실효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는 본인이 임기에 있는 동안의 짧은 성과만을 보기 위해 일제고사를 통해 서열화하고 국가의 학력을 단기에 높이기에만 급급합니다. 이 모든 피해는 뛰어놀아야할 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부를 8교시 9교시까지 하며 학교를 지옥처럼 감옥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곳입니다. 감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행복할까요? 겨우 12살 된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반복된 노동을 시켜 지치게 만드는 학교에서 저같은 교사의 괴로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함에 스스로 자책밖에 할 수 없는 못난 교사의 하소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얘들아. 선생님이 정말 정말 사랑한다. 나도 너희들도 꼭 언젠가는 세상을 바꿔보도록 하자. 6
일제고사의 피해는 아이들에게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느 선생님 못지 않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저에게
떡을 준 것도 옷을 준 것도 아닌 저에게
매일 매일 사랑해요를 외칩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늘 노력하죠.
퍼줘도 퍼줘도 늘 부족한 것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인 것을 알기에
닭살 스러운 멘트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안하는 말들을
아이들과 저는 나누곤 합니다.
여러분은 일부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며 시위하다가 징계를 받은 일을 아십니까?
저는 같은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와는 거리가 멀기에
부끄럽게도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제고사의 결과에 의한 서열화로 인해 그 여파가 초등으로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서열을 매겨 낮은 순위의 지역 교육청에서는 그 지역의 관내 교육청을 쪼아대고 그 교육청은 또 관내의 학교 교장을 교장은 교사들을...
결국 그 피해는 모두 아이들에게 가고 맙니다.
성적 올리는 것. 어려울 것 같습니까?
아니요. 엄청 쉽습니다.
프린트 물 나눠주고 외우고 시험보고 외우고 시험보고 그러면 됩니다.
초등학생들은 고등학생들처럼 모두가 미친듯이 공부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러겠습니까?
초등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무조건 재미없다. 싫다. 뛰어노는 게 좋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교육은 중고등 교육처럼이 아니라
여러 자료와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가 가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외우고 시험보고 외우고 시험보고 ... 이건 아예 공부에서
정때란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정권이 지난 뒤 일제고사가 사라진다해도
아이들은 지금의 이 나쁜 기억으로 다신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침자습에 문제집 국영수사과 위주에 체육이고 음악이고 미술이고
주지교과가 아니면 배울 가치도 가르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교육청에서 말합니다.
학원식으로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무조건 성적을 올리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하면서요.
이젠 국가기관인 교육청에서 아이들을 8/9교시까지 하라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불법을 조장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상황에서 교사의 신조와 사기와 교육에 대한 열정. 참교육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무시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모든 아이가 공부로 성공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시작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타고난 것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근 10 년동안 성적 순이 아닌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에 맞는
교육과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선진국형 교육을 표방하며 나아왔습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학력위주의 사회 풍토는 바뀌지 않았지만
이는 아직 10년이라는 시간 때문이지 절대 잘못된 방향이라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적이 최고다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지금 기득권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0 - 30년을 쭉 새교육. 선진국형 교육으로 듬직하게 밀고 나갔다면
분명 적게든 많게든 실효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는 본인이 임기에 있는 동안의 짧은 성과만을 보기 위해
일제고사를 통해 서열화하고 국가의 학력을 단기에 높이기에만 급급합니다.
이 모든 피해는 뛰어놀아야할 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부를 8교시 9교시까지 하며 학교를 지옥처럼
감옥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곳입니다.
감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행복할까요?
겨우 12살 된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반복된 노동을 시켜
지치게 만드는 학교에서 저같은 교사의 괴로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함에 스스로 자책밖에 할 수
없는 못난 교사의 하소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얘들아. 선생님이 정말 정말 사랑한다.
나도 너희들도 꼭 언젠가는 세상을 바꿔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