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저희 집안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휴.. 정말 이건 드라마보면 나올 그런 이야기예요.. 답답해서 이렇게 판에 글이라도 올려봅니다. 글 솜씨가 없어서 ㅠ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1992년도에 결혼하셨습니다. 1992년도에 절 낳으셨고요. 아마 두분이서 동거하시다가 결혼하신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내셨고 결혼 당시에도 상당히 부유하셨습니다. 반면 어머니가 말씀 하시길 저희 아버지는 돈 한푼 없었다고 하시네요. 하여튼 결혼 후에도 저희 아버지는 변변한 직업하나 없으셨죠. 처음에 홍천에서 거주했는데 월세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제 분유 살돈이 없으셔서 혹시나 하고 집에 있는 옷의 온 주머니를 뒤져서 겨우 만원을 찾아서 제게 분유를 먹일정도로 가난하셨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일용직으로 막노동 비슷한 일을 하시다가 자기 자신이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생각되셨는지 철도청공무원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으셨답니다. 공부를 시작하셨죠. 3개월동안 저희 어머니 외가댁에서 사골이며,한약,음식,서울에서 자취(외가쪽이 모두 서울에서 사십니다.)등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하네요. 결과는 한번에 붙으셨다고 합니다. 정말 기적이였죠.
그래서 1994년도에 제 둘째남동생이 태어났고 1995년도에 서울에 있는 연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서부터 저희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2남 1녀중 차남이십니다. 근데 1996년도에저희 아버지의 형님이시라는분이 아버지께 자신이 자동차로 사업좀 하겠다고 트럭 3대를 샀는데. 그걸 저희 아버지께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형님이 사업하신다니깐 그냥 툭하고 보증을 서주셨죠.. 그 후 1년도 안되서 저희 집앞으로 편지 한 봉투가 날아왔습니다. 빚 독촉 봉투였죠. 아버지 직장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빚 갚으라고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께서는 1997년도에 사표를 쓰십니다. 형님이라는 그 개xx(죄송합니다 생각만 하면 화가 나서..)는 연락조차 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저희가족의 보금자리마저 뺏기고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근데 더 충격이였던것은.. 저희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고 계셨던 겁니다. 제가 7살때니 정말 생생히 기억납니다. 어머니께서 현장을 잡으셨죠. 아마 철도청공무원을 그만두시고 몇일 안되서 였을겁니다. 무슨 모텔이였는데. 한 여자는 속옷만 입고있고 어머니는 우시면서 소리치고 아버지는 나가라고 소리치시고 모텔이 안이 완전 아수라장이였죠. 아마 이때부터 제가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이혼하기로 결정하셨고 아버지란 사람은 이혼하지 말자고 무릎까지 꿇으면서 빌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더 웃겼던건 그 시어머니 그러니깐 저희 아버지의 어머니란 사람이 한말이 네가 이혼하면 우리가 네 자식들 키워줄거같냐고 고아원에 갔다버린다고 이딴식으로 말했답니다. 어머니꼐서 이말 들으시고 충격받으셨는지 저희가 불쌍하게 될까봐 이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께서 반성을 하셨지만.. 그 후폭풍은 너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우시면서 그 바람피는 여자에게 저희 어머니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엄청난 돈을 쓰셨습니다. 무려 7000천만원 가량이었죠... 설상가상으로 1999년도에 막내동생까지 태어납니다. 정말 이때는 엄청 가난하다못해 찢어질듯이 가난했습니다. 아버지의 대안책은 고향으로 내려가는것이었죠. 고향이 어촌입니다. 고향에서 고기배를 타시기로 하셨습니다. 아마 그때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정말 가난해서 집은 세들어 살고 저희가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그래서 설탕물 타먹고... 한번은 어릴적에 학교에서 3천원짜리 요구르트 자동차? 만드는데.. 그 3천원이 없으셔서 요구르트병 줍고 나무젓가락 구해서 만들어 주신다는걸 저는 철없게시리 사달라고 떼를 쓰면 졸랐습니다. 결국 어떻게 어머니께서 돈을 구하셨는지 제게 사주셨고요... 정말 그때 생각하면 제 가슴도 아픕니다...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하여튼 그렇게 2000년까지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꼐서 또 시험을 치르시겠다고 합니다. 바로 군무원 시험이었습니다. 배타는것을 그만두고 군무원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는데 역시나 또 외가쪽에서 도와주셨습니다. 반면 이 개같은 친가쪽은 연락 한통없었죠.
아 그리고 저흭 가족에 쌓인 빚은 정말 이러면 안되지만 가족의 주소를 다른 사람의 주소로 옮겨가지고 값지 않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버지께서는 또 한번에 군무원 시험에 붙으셨습니다. 다시 한낱 희망이 보였죠. 아버지는 성실히 일하셨고 표창장까지 받으시며 호봉이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30평짜리 큰 아파트도 군부대에서 공짜로 주시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원래 술을 안드셨는데... 배타시면서 드시다가 군무원이 되시고나서 일이 많이 힘드신지 매일 술을 한두병씩 꼭 드셨습니다. 안주도 없이 말이죠. 그렇게 2001년. 2002년..2003년,,그리고 2004년 행복했던 저희 가정에 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어머니께서 계속 술을 드시는 아버지가 걱정되셨는지 병원에 두분께서 가보셨는데.. 그떄도 정말 생생히 기억납니다. 제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걸어오시더라고요.. 저는 반가워서 엄마! 아빠! 하며 달려갔는데 두분다 표정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그때 6학년떄 였으니.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걸 깨달았죠. 그래서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간식을 사먹으시라고 제 손에 용돈을 쥐어 주시고 가시더라고요.... 그날 학원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싸우고 계셨습니다. 알콜성 간경화라는 병을 판정받았는데 또 술을 드시고 계셔서 싸운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죽지 않는다고 걱정말라고 이러시면서 저희 가족을 안심시키고 술을 줄이시겠다며 걱정말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때 정말 그때... 완전 술을 끊게 했었야했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되셨고 정말 하루에 4병까지 드시는 사태까지 오셨죠... 어머니께서도 에이 저러다가 언젠가 그만 먹겠지 한게.. 어느덧 3년~4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중3때 두분께서 정말 많이 싸우셨습니다. 매일 술을 사들고오시는 아버지와 말리는 어머니의 싸움 정말 저희 형제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엔 정말 싫었거든요.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제가 중3떄 그러니깐 2007년 여름... 아버지가 병원에 가보니 간의 3분의 2가 굳었다고 합니다. 간경화라는 병이 원래 간이 돌처럼 굳다가 결국엔 간이 돌처럼 되어서 죽는 병이거든요. 저희 가족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생명이 더 소중하기에. 아버지가 더 소중하기에 결국 아버지께서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두시고 퇴직금이 한 5천만원정도 나왔는데 그 돈으로 간경화의 진행을 막고(간경화는 불치병입니다.ㅠ)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서 3천만원 가량을 썼습니다. 그 결과 저희가 살던 아파트에서 나가게 되었고 다시 월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군무원때 한달 월급이 350정도 셨는데 저희 3형제 학원도 모두 끊고 다시 가난한 생활이 시작됬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3이였으므로 고등학교 선택에 있어서...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바에 상업고등학교에가서 대학을 가지말고 취직을 하자... 이 생각과 내가 지금 만약 상업계고등학교를 가면 내가 중학교3년동안 해온 공부.. 성적은 다 무용지물이 되는건가라는 생각.. 사실상 상업고등학교를 갈꺼면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을텐데 3년동안 들인 아까운 학원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고민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꼐서 울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공부해라.. 너희가 이 엄마의 희망이다... 괜히 돈벌려는 생각하지말고 공부 열심히해서 네 아빠처럼 살지 않도록 열심히해라.." 이 말씀듣고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롤 진학을 합니다. 아버지꼐서는 1년정도 치료를 받으시고 다시 저희 품으로 돌아오셨고요. 허나 고등학교에 올라간 제게 가난이라는 시련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수업비,급식비지원.. 정말 고1때 어려서인지 창피하더라고요... 이러면 안되는데.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은 커녕 삐딱하게 나가려고 했죠.. 공부도 전혀 하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을 알고 계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교무실에서 몰래 지원고지서 주시고.. 신발도 주시고..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하지만.. 그떄 당시엔 정말 이런 관심도 싫었습니다. 제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정말 학교다니기가 싫었죠.. 저희 어머니는 파출부로 일하셨고 아버지는 아픈 몸떄문에 일하시지 못했죠..
정말 우울한 우리가정 이야기.(힘을주세요!)
안녕하세요? 현재 수능준비하는 고3입니다.
제가 저희 집안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휴.. 정말 이건 드라마보면 나올 그런 이야기예요.. 답답해서 이렇게 판에 글이라도 올려봅니다. 글 솜씨가 없어서 ㅠ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1992년도에 결혼하셨습니다. 1992년도에 절 낳으셨고요. 아마 두분이서 동거하시다가 결혼하신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내셨고 결혼 당시에도 상당히 부유하셨습니다. 반면 어머니가 말씀 하시길 저희 아버지는 돈 한푼 없었다고 하시네요. 하여튼 결혼 후에도 저희 아버지는 변변한 직업하나 없으셨죠. 처음에 홍천에서 거주했는데 월세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제 분유 살돈이 없으셔서 혹시나 하고 집에 있는 옷의 온 주머니를 뒤져서 겨우 만원을 찾아서 제게 분유를 먹일정도로 가난하셨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일용직으로 막노동 비슷한 일을 하시다가 자기 자신이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생각되셨는지 철도청공무원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으셨답니다. 공부를 시작하셨죠. 3개월동안 저희 어머니 외가댁에서 사골이며,한약,음식,서울에서 자취(외가쪽이 모두 서울에서 사십니다.)등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하네요. 결과는 한번에 붙으셨다고 합니다. 정말 기적이였죠.
그래서 1994년도에 제 둘째남동생이 태어났고 1995년도에 서울에 있는 연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서부터 저희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2남 1녀중 차남이십니다. 근데 1996년도에저희 아버지의 형님이시라는분이 아버지께 자신이 자동차로 사업좀 하겠다고 트럭 3대를 샀는데. 그걸 저희 아버지께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형님이 사업하신다니깐 그냥 툭하고 보증을 서주셨죠.. 그 후 1년도 안되서 저희 집앞으로 편지 한 봉투가 날아왔습니다. 빚 독촉 봉투였죠. 아버지 직장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빚 갚으라고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께서는 1997년도에 사표를 쓰십니다. 형님이라는 그 개xx(죄송합니다 생각만 하면 화가 나서..)는 연락조차 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저희가족의 보금자리마저 뺏기고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근데 더 충격이였던것은.. 저희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고 계셨던 겁니다. 제가 7살때니 정말 생생히 기억납니다. 어머니께서 현장을 잡으셨죠. 아마 철도청공무원을 그만두시고 몇일 안되서 였을겁니다. 무슨 모텔이였는데. 한 여자는 속옷만 입고있고 어머니는 우시면서 소리치고 아버지는 나가라고 소리치시고 모텔이 안이 완전 아수라장이였죠. 아마 이때부터 제가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이혼하기로 결정하셨고 아버지란 사람은 이혼하지 말자고 무릎까지 꿇으면서 빌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더 웃겼던건 그 시어머니 그러니깐 저희 아버지의 어머니란 사람이 한말이 네가 이혼하면 우리가 네 자식들 키워줄거같냐고 고아원에 갔다버린다고 이딴식으로 말했답니다. 어머니꼐서 이말 들으시고 충격받으셨는지 저희가 불쌍하게 될까봐 이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께서 반성을 하셨지만.. 그 후폭풍은 너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우시면서 그 바람피는 여자에게 저희 어머니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엄청난 돈을 쓰셨습니다. 무려 7000천만원 가량이었죠... 설상가상으로 1999년도에 막내동생까지 태어납니다. 정말 이때는 엄청 가난하다못해 찢어질듯이 가난했습니다. 아버지의 대안책은 고향으로 내려가는것이었죠. 고향이 어촌입니다. 고향에서 고기배를 타시기로 하셨습니다. 아마 그때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정말 가난해서 집은 세들어 살고 저희가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그래서 설탕물 타먹고... 한번은 어릴적에 학교에서 3천원짜리 요구르트 자동차? 만드는데.. 그 3천원이 없으셔서 요구르트병 줍고 나무젓가락 구해서 만들어 주신다는걸 저는 철없게시리 사달라고 떼를 쓰면 졸랐습니다. 결국 어떻게 어머니께서 돈을 구하셨는지 제게 사주셨고요... 정말 그때 생각하면 제 가슴도 아픕니다...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하여튼 그렇게 2000년까지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꼐서 또 시험을 치르시겠다고 합니다. 바로 군무원 시험이었습니다. 배타는것을 그만두고 군무원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는데 역시나 또 외가쪽에서 도와주셨습니다. 반면 이 개같은 친가쪽은 연락 한통없었죠.
아 그리고 저흭 가족에 쌓인 빚은 정말 이러면 안되지만 가족의 주소를 다른 사람의 주소로 옮겨가지고 값지 않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버지께서는 또 한번에 군무원 시험에 붙으셨습니다. 다시 한낱 희망이 보였죠. 아버지는 성실히 일하셨고 표창장까지 받으시며 호봉이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30평짜리 큰 아파트도 군부대에서 공짜로 주시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원래 술을 안드셨는데... 배타시면서 드시다가 군무원이 되시고나서 일이 많이 힘드신지 매일 술을 한두병씩 꼭 드셨습니다. 안주도 없이 말이죠. 그렇게 2001년. 2002년..2003년,,그리고 2004년 행복했던 저희 가정에 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어머니께서 계속 술을 드시는 아버지가 걱정되셨는지 병원에 두분께서 가보셨는데.. 그떄도 정말 생생히 기억납니다. 제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걸어오시더라고요.. 저는 반가워서 엄마! 아빠! 하며 달려갔는데 두분다 표정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그때 6학년떄 였으니.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걸 깨달았죠. 그래서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간식을 사먹으시라고 제 손에 용돈을 쥐어 주시고 가시더라고요.... 그날 학원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싸우고 계셨습니다. 알콜성 간경화라는 병을 판정받았는데 또 술을 드시고 계셔서 싸운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죽지 않는다고 걱정말라고 이러시면서 저희 가족을 안심시키고 술을 줄이시겠다며 걱정말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때 정말 그때... 완전 술을 끊게 했었야했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되셨고 정말 하루에 4병까지 드시는 사태까지 오셨죠... 어머니께서도 에이 저러다가 언젠가 그만 먹겠지 한게.. 어느덧 3년~4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중3때 두분께서 정말 많이 싸우셨습니다. 매일 술을 사들고오시는 아버지와 말리는 어머니의 싸움 정말 저희 형제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엔 정말 싫었거든요.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제가 중3떄 그러니깐 2007년 여름... 아버지가 병원에 가보니 간의 3분의 2가 굳었다고 합니다. 간경화라는 병이 원래 간이 돌처럼 굳다가 결국엔 간이 돌처럼 되어서 죽는 병이거든요. 저희 가족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생명이 더 소중하기에. 아버지가 더 소중하기에 결국 아버지께서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두시고 퇴직금이 한 5천만원정도 나왔는데 그 돈으로 간경화의 진행을 막고(간경화는 불치병입니다.ㅠ)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서 3천만원 가량을 썼습니다. 그 결과 저희가 살던 아파트에서 나가게 되었고 다시 월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군무원때 한달 월급이 350정도 셨는데 저희 3형제 학원도 모두 끊고 다시 가난한 생활이 시작됬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3이였으므로 고등학교 선택에 있어서...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바에 상업고등학교에가서 대학을 가지말고 취직을 하자... 이 생각과 내가 지금 만약 상업계고등학교를 가면 내가 중학교3년동안 해온 공부.. 성적은 다 무용지물이 되는건가라는 생각.. 사실상 상업고등학교를 갈꺼면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을텐데 3년동안 들인 아까운 학원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고민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꼐서 울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공부해라.. 너희가 이 엄마의 희망이다... 괜히 돈벌려는 생각하지말고 공부 열심히해서 네 아빠처럼 살지 않도록 열심히해라.." 이 말씀듣고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롤 진학을 합니다. 아버지꼐서는 1년정도 치료를 받으시고 다시 저희 품으로 돌아오셨고요. 허나 고등학교에 올라간 제게 가난이라는 시련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수업비,급식비지원.. 정말 고1때 어려서인지 창피하더라고요... 이러면 안되는데.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은 커녕 삐딱하게 나가려고 했죠.. 공부도 전혀 하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을 알고 계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교무실에서 몰래 지원고지서 주시고.. 신발도 주시고..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하지만.. 그떄 당시엔 정말 이런 관심도 싫었습니다. 제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정말 학교다니기가 싫었죠.. 저희 어머니는 파출부로 일하셨고 아버지는 아픈 몸떄문에 일하시지 못했죠..
후 힘들어서 나중에 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