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경희샘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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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텍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햇다. 미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극작자 중의 한명이라는

테네시 윌리엄스는 "유리 동물원"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그리고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까지

그의 작품은 연극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로도 유명하다.

주로 그의 작품을 영화로 봤었다. 나는 아주 어릴적 부터 영화 마니아였으니까.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에서  주연으로 나온 폴 뉴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멋졌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 반했었다.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영화로 기억되었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

연극으로는 그것도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늘 칭찬했던 배종옥이 어떻게 연기할 지 궁금해서

보러 갔는데....

 

아쉽게도 배종옥과 더블캐스팅 된 이승비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되었다.

배종옥을 보길 바랬던 나와 달리 같이 간 남편은 별 기대를 안했는지 아쉬움 없이 재미있게

본 모양이다.

 

나도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재미있었다. 다만 내가 보고 싶은 배종옥이란 배우의

연기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내용은  남부 명문가의 자매였던 블랑쉬가 동생 스텔라를 찾아 뉴올리언스 낙원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스탠리라는 노동자와 함께 살면서 현실에 순응해가는 스텔라와 달리 블랑쉬는 여전히 예전의 화려했던 생활에

대해 미련이 많다. 블랑쉬는 노동자 스탠리를 대 놓고 멸시하고 그런 블랑쉬가 좁은 아파트에 함께 사는 것을

스탠리 역시 못마땅해 한다.  집안이 망해 가고 결혼에 실패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린 블랑쉬가 사실은 남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가 쫓겨나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를  알게된 스탠리는 자신과 스텔라 사이을 이간질 하는

블랑쉬가 자신의 친구 미치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 싫어 미치에게 이 사실을 밝힌다. 단 하나 남은 희망으로

미치와의 안정된 결혼을 꿈꾸던 블랑쉬는 절망하고 블랑쉬의 생일날 아이를 낳으러 스텔라가 병원에 간 사이에

스탠리는 블랑쉬를 강간까지 한다.  점점 미쳐가는 블랑쉬. 결국 블랑쉬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러 떠난다.

 

만약 오래된 영화로 비비안 리의 명연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미모와 함께 영화의 감동이 더했을 텐데

이 연극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이승비라는 배우의 열연을 볼 수 있다.

타락했지만 예전의 영욕을 잊지 못하는 블랑쉬의 오만함과 가식적인 교양미. 그리고 점점 늙어가며 자신의

마지막 무기인 미모를 잃는 것이 두려운 감정까지 이승비는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다만 내 귀가 안 좋아서 그런지 스탠리로 분한 이석준과 이승비의 고함치는 장면에서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퓰리쳐 상을 수상한 이 멋진 작품의 멋진 대사를 말이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배경이 된 연극이라 그런지 막과 막사이 암전 때에 들려오던 멋진 기타 선율이

귀에 맴돈다. 그외에 나머지 모두는 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이어 줄 만큼 좋은 연극이였다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키기 위해 자신을  데리러 온 의사에게 블랑쉬가 하는 마지막 대사.

"당신이  누구든 간에 나는 언제나  낯선 이들의 친절함에 의지해 왔어요."

 

블랑쉬의  비극은 바로 이것에 있다. 남자 없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생활 할 생활력이 부족한 온실의 화초라는

것. 남부 지주의 딸이였기에 흑인 노예를 부리며 어려움없이 살다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 인생의 최대

목표였던 온실의 화초 말이다.  동생처럼 자신이 속한 현실에 순응하는 대신에 블랑쉬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기를  즐기며 여전히 자신의 예전 남자 친구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상류사회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성과 미모를 팔아서 살아야했던 과거에 대한 자괴감과 자신을 무시하는 스탠리때문에 깨닫게 되는  현실에서

오는 절망감. 이 모든 것이 블랑쉬를 점점 미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내기 위해 거짓말과 환상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블랑쉬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보면 여자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끔 하는 연극이다.

 

연극에서 블랑쉬의 모습은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한국의

블랑쉬들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설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고 있다. 남자의 사랑과 보호

만이 여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여자들이 너무도 많기에 아직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블랑쉬를 태우고 계속 낙원을 향해 달리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