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살인지 자살인지 알수없는 동생 군에서의 죽음 국방부는 선자살처리

. 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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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도와주세요 제동생은 지금 기계호흡기에 의존한채 오늘내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동생같이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없기위해서 이글많이 알려주세요

제대로 되어있지않는 대한민국 육군의 현제 상황을 보고합니다.

저희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20살 이제 대학교 한학년 교육을 다 마치지 못한채 자기가 원하는 직업군인이 되고자 군대에 스스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2009년 12월 8일 의정부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2010년 1월 5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우체국 44호 8285부대 본부포태

이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입대후 매번 전화통화를 할 때 마다 군생활이 재미있음을 이야기했던 동생이였습니다.

2010년 2월 21일 저희 첫째언니의 결혼날이 정해져 동생에게 알리자 자신의 100일휴가를 반납하더라도 나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1남 4녀 중 막내 아들이였지만 집안의 장남으로써 도리를 다하고자 청혼휴가를 신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에서는 20일 토요일날 나가서 21일 6시까지 자대 복귀와 100일휴가를 보내지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언니의 결혼식은 경남 진주에서 올렸으면 식시작 시간이 11시였습니다.

식만보고 간다고 한들 복귀시간을 지키기에는 너무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께서 전화를 걸어서 간절히 부탁하여 외출날짜를 조금더 연기를 시켰고

동생은 화요일날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휴가전에는 곧잘 집에 전화를 걸어오던 동생이 복귀후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알고봤더니.. 휴가 갔다가 오면 윗사람한테 밥한끼사주고 "잘먹었습니다" 인사를하고 돈백정도를 봉투에 넣은 책을 선물을 하면 군생활이 편해진다고 동생이 말했답니다.

솔직히 동생인솔해오고 기름값에 언니 결혼식이라 저희집에서 백만원은 너무 크고 힘들다고 어머니께서 동생에게 말했더니 동생이 "뭐 ..쯔...읍 그래 설마 괜찮겠지" 하며 쓴웃음을 삼키며 자대에 복귀했다하더군요

그리고 내무반에서는 "휴가나갔으면서 담배를 사와야지 왜 안사왔냐"고 제동생이 아끼던 후임병에게 "같이 놀지마라고" 했으며 기합을 주기가 일수였다고 합니다. 저희동생은 담배를 피지않았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것같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제동생이 이등병이라 근무는 제일 끝에 서고 밥을 빨리 먹다보니 급체에 걸려 소화제를 달라고 해서 약을먹고 저녁에는 조금 괜찮아져서 식사하러 가니깐 체했으니 밥은 먹지 말라고 안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동생은 굶주린 배를 움켜지고 잠을 청했다고 합니다.

제동생은 통신병중 유선을 맞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힘들어서 취사병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더니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끔 하여 동생은 양쪽일을 같이병행하여 잠을 못자기 일수였다고합니다. 너무도 힘들어 직접 타담당변경을 신청하였고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대에서 깨지기 일수였다고 합니다.

그소식을 들은 저희어머니는 그럼 대대장님한테 말해보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제동생은 군내에 배치되어 있는 소리함에 "대대장님 면담을 신청합니다 " 이병 박성구 라고 쪽지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사관에게 듣기에는 지난 12월 이후로 소리함을 열지않았다고 했으며 또다른 병이 적은 쪽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변색될동안 꺼내보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리고 대대장을포함한 그곳에 있던 군인들은 수차례 저에게 동생에게 여자친구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대답하였으나 그럼 혹 좋아하거나 짝사랑하는 여자는 없었냐고 또 묻더군요

사랑을 비관하여 자살한 군인으로 단정지어 이번사건을 무마시킬려는 모습이보였습니다.

그순간 제머리속에 스쳐지나갔던 뉴스들이 다 거짓된 혹 잘못된 보도가 아니였나?어찌 한사람의 죽음을 그렇게 매독할수있는지..

시시하려고 하는 군부대들의 행동에 화가납니다.

나라를 지키고 강인한남자가 되어라고 보낸 군대에서 제동생은 너무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기힘든 나날들을 보낸것같습니다.

2010년 03월 28일 오후 4시 20분에 동생이 목을 메달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파주 문산시 중앙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발할려는 순간 너무 안좋다고 경기도 일산시 인제대학교백병원으로 후송될예정이라고 그곳으로 내원하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때는 응급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동생은 누워있었습니다.

머리와 온몸은 얼음팩이 깔려있었으며 목에는 너무도 선명한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팔에는 마치 고양이 손톱으로 긁은듯한 아주 가벼운 자해자국이 있었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려고 팔을 긁었는지 아님 자살로 보이고자 다른이가 한 행위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의 동생은 귀를 살짝만 파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생이였습니다.

더더욱 군대에 가기전 동생에게 제가 들은 다른사람 군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이야기중에는 목메달아 죽은 사람은 흉하다.

혀가 가슴까지 길게 나온다고 소름돋지않냐고 그런모습을 보게되더라도 크게 놀라지말라고 말했더니 제동생이 "누나야 어떻게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날수있겠냐며 ..."

말끝을 흐리며 쓴모습을 보여줬던 동생입니다.

그런동생이 목을 메달았다는게 전 도저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고 아버님과 저는 오열하는 어머니를 동생곁에 두고 군대에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제동생이 죽었는지 이유를 알기위해서 행한 군대길은 가족으로서는 도저히 참고 듣기 힘든 현장 브리핑을 하였습니다.

수사관들 왈" 동생은 화장실 옷걸이같은 여기에 끈을 메고 화장실입구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고 말하면 처음 제동생의 끈을 니퍼로 끊어준 첫목격자를 불러들었습니다.

그 상병의(목격자)왈"처음에 아무리 노크를 하여도 반응이 없어 옆화장실로 올라가 보니 제동생이 그렇게 목을메달아있어 급히 내무반에있는 니퍼를 들고와 절단을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전 제동생이마에 혹이 있길래 "혹시 쿵하는 소리 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좁은공간에 양변기도 있고 휴지통도 있기 때문에 혹 동생이 어디에 부딪치지는 않았을까? 그런 노파심에 물어보았더니 처음에 말하길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해놓고는 수사관왈"혼자들어왔다하지않았냐?"라고 대묻자 "넵 ..아 제가 정신이 없어 못들었습니다"라고 말을 번복했습니다.

두 번째로 제동생을 엎어서 군병원까지 옮겨준 병사를 불렀습니다.

"문이 반정도 부셔져있는데 혹 니가 그랬냐?"라는 수사관의 물음에 그 병사는 "넵 제가 꺼내기위해 문을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수사관이 "그럼 옆문도 한번 그렇게 만들어보렴"하고 말하자 그병사는 문을 부수려고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온 병사는 제동생의 상반신을 끌어서 꺼내준 병사였습니다.

그후 화장실 밑 바닥을보니 너무도 선명하게 발버둥친듯한 워커화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동생은 키가 187cm정도고 고통을 참을정도로 독하지 못하며 당시 무릎을 꿇고 있었다고 수사관이 말했지만 사람이란 반사신경이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너무아프면 일어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동생이 1차적 손목으로 자해를 시도해서 너무 아파서 포기하고 2차적으로 목을 메달았다면 1차시도때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러운걸 어떻게 참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상병은 분명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옆화장실에 찍힌 발자국은 슬리퍼자국이 아닌 워커화자국 또는 운동화자국처럼 보였습니다.

대조를 요청하자 슬리퍼랑은 확연히 다른 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은 그냥 넘어가려했습니다.

그러자 저희아버지께서 현장을 카메라폰으로 담으려 하자 부모지만 수사하는격이라면 못하게 제제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내무반 사람들과 저희동생에게 그렇게 못된짓과 못된말을 한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해놓고는 너무 늦은시간이라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불러줄수없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도 정신도 없고 새벽 3시30분정도였기 때문에 이해를 하고 다음날 오전에 와서 만나도된다는 확언을 받고 병원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그러나 24시간이 지난 낮에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고 2010년 3월30일 화요일 점심시간쯤 저희동생체온이 올라온다고 호전하고 있다며 뇌사진을 찍어보자하여 찍었는데...

뇌사진결과 쭈글쭈글해야한 뇌가 모두다 펴져있는 상태이며 그속에 있는 작은신경관이 모두 터져있는 상태이므로 호흡기만 빼면 끝이라는 선고아닌 선고를 받았습니다.

또한 제가 도저히 저희동생의 죽음을 믿지못하는 이유는 잠시 집을 떠나 어딜가려할때마다 메모나 말을 하고 가던동생이기에 이렇게 영영돌아오지못할 길을 가면서 아무나 말과 글을 남기지않았다는게 너무나도 믿기어렵습니다.

그렇게 글적기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가 왜 유서한장 적지않고 그렇게 갔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윗사람들이 1:1면담만 했어도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것입니다.

군내에 구타 왕따 문제성이 있다고 언론에 보도되어 1:1상담을 하는걸로 알고있는데 소리함은 그냥 형식적인 통에 불과한것같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군내 내물..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 제스스로 제몸 추스르기에도 역부족인 제가 이렇게 글을 적는 이유는 제동생같은 또다른 희생자가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습니다..

부탁입니다. 후임이라고 넘 나무라지말고 자기동생이라고 생각하시고 이쁘게 봐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저에겐 하나밖에 없는 동생 비록 먼 하늘나라로 보내야하지만 지금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만은 더 이상 이러한 군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뜻한 애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