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을 불쾌한 픽션으로? <그린 존>

. 2010.04.01
조회1,133

유명한 헐리웃 액션 스릴러 시리즈인 '본 3부작' 중 2편 <본 슈프리머시>와 3편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던 폴 그린그래스가 그의 '제이슨 본' 맷 데이먼과 다시 한 번 공연해 의미심장한 영화를 제작했는데, 바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이 영화 <그린 존>이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워낙에 본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데다 영화적으로도 이런 류의 액션물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걸작들이었기에 폴 그린그래스 하면 역시 '뛰어난 액션 연출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가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건 본 시리즈가 제작되기 이전부터로, 주로 과거의 실제 사건들을 재조명한 사실주의 시사물을 TV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직접 각본/연출해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고, 극장 영화로서 <블러디 선데이>(영국의 '피의 일요일' 사건)나 <플라이트 93>(미국의 9.11 테러 때 하이재킹 당한 유나이티드 93편 여객기 이야기) 역시 모두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연출되어 사실적인 묘사와 뛰어난 사건 재구성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린 존>

 

<블러디 선데이> 이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블러디 선데이> → <본 슈프리머시> → <플라이트 93> → <본 얼티메이텀>, 즉 '사실주의 시사물 → 액션 블록버스터'의 순서를 보여주고 있는데, <본 얼티메이텀> 이후 차기작으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그린 존>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린 존> 이후 차기작으로 본 시리즈의 후속작을 기획하고 있다는 점- 은 어느정도 패턴화된 감독의 작품 행보가 아닌가도 싶다. 다만 이번의 경우 차이가 있다면 -사실주의 노선은 변함이 없지만- 앞선 두 시사물과는 달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 시리즈 식의 액션 스릴러의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 지적은, 그러나 -캐릭터와 드라마를 최대한 배제한 채 사건의 재생에 힘썼던 <플라이트 93>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영화 전체를 부정할 수도 있는 큰 문제를 낳았는데, 이 부분은 뒤에 상술하겠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일단 단순히 액션물로서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논했을 때 이 영화는 그린그래스의 예의 본 시리즈들처럼, 한 마디로 "뛰어나다." 마치 실제 이라크 바그다드 길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현실감 있는 배경 재현(실제로는 스페인, 모로코, 영국에서 촬영)과 실전 투입되었거나 투입 가능한 전투 장비들, 베테랑 군인들의 자문과 시범을 통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 등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의 카메라는 늘 인물과 관객들의 거리를 조여오며 긴장을 창출하고, <007>처럼 가볍지도 <미션 임파서블>처럼 과하지도 <다이 하드>처럼 격하지도 않으면서, 가장 진지한, 가장 사실적인, 그리고 가장 믿을 만한 액션 신을 담아내었다.

자칫하면 동네 꼬마들의 골목 놀이처럼 유치하고 밋밋한, 혹은 자칫하면 볼썽사나운 슬랩스틱 촌극이 되기 십상인 액션 스릴러를 이만큼이나 단단하게 뽑아낸 데에 대해서는 역시 감독의 뛰어난 재능을 칭찬할 만하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하지만 <그린 존>은 단순히 '없는 얘기'를 담은 액션 스릴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외피적으로 액션물이지만 알맹이는 시사물이다. 더군다나 종결된 역사도 아닌, 지금도 한창 문제시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는 명백히 존재 이유에서부터 엄격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블러디 선데이>처럼 사실상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건('피의 일요일' 사건은 1972년에 일어났다)을 다룬 영화는 역사적인 관점으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그린 존>처럼 현재까지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사건을 다룰 경우엔 좋든 싫든, 혹은 옳든 그르든 영화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앞서 필자가 <그린 존>이 이제까지의 그린그래스의 시사 영화와는 그 궤를 달리 한다는 지적을 했는데, 풀어 말하자면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 93>이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건 재조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린 존>의 경우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실주의를 등에 업은 미국적 편협'으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농후하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 먼저 9.11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 아프간 국민들의 자유를 박해한다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2002년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라크에 대해 WMD(대량살상무기) 보유와 이로 인한 세계 평화 위협을 문제 삼아 2003년 미국, 영국 등의 연합군이 전쟁을 일으켰고(당시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였다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아이러니이다) 압도적인 전력차로 20여 년의 철권 통치를 이어온 사담 후세인 정권을 단 26일 만에 몰살시켜버렸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의 안정과 평화를 수립하고 각종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7년이 지난 지금도 국소적인 유혈 사태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두 국가의 자유와 세계 평화보다는, 중동 지역의 천연 자원 확보와 친미 세력 구축, 미국의 경기 불황 극복 등에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설득적이라는 것과, 심지어는 9.11 테러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련의 모든 상황들이 미국이 의도한 시나리오였다는 주장까지도 -다소 음모론적이지만 너무나 아귀가 맞기에- 충분히 그럴 듯하여 미국 내에서조차도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린그래스 역시 <그린 존>을 통해, 적어도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서 주장한 이라크의 WMD 보유 의혹은 미국 측에 의해 조작된 거짓이었다는 것, 즉 전쟁은 미국의 의도에 의해 '획책'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영화는,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WMD가 허위인 이상, 이라크 내부의 문제는 다른 나라들에 의해 간섭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빤히 보이는 질나쁜 속내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유치한 미명 하에 감춘 채 21세기의 로마 제국을 이룩하려는 미국의 '힘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린 존>은 "목적" 면에서 정치적으로 온당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 "목적의 뉘앙스"까지 온당한가?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시사물을 <그린 존>과 같은 드라마 형식으로 그려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주인공의 신념'이다. 드라마의 모든 사건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고 주인공에 의해 판단되며 주인공에 의해 결론지어진다. 따라서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를 갖느냐에 따라 시사물로서 드라마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그린 존>의 오류는 주인공이 '미국인'이라는 점에 있다.

물론 <그린 존>의 주인공 로이 밀러의 신념은 정치적으로 온당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너희와 관계 없으면 더 이상 한 나라의 명운을 너희 멋대로 좌지우지하지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WMD 문제에 의혹을 품는 것도, 전쟁의 진실을 밝혀낸 것도,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도 모두 '미국인' 밀러이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사건의 발단과 종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라크인 프레디를 밀러와 비교해서 보면 영화의 잘못된 구도는 더 명확해진다. 그가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미국인 주인공에게는 '조력자'였고, 알 라위를 위시로 한 이라크 지배층들에게는 (그들의 행태와는 무관하게 일단은) '밀고자'이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위기 극복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알 라위를 다분히 감정적인 이유로 죽임으로써) '매국노'이다.

영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전후 이라크 통제를 비난하며 이라크의 민족자결주의에 손을 들어주려는 듯하지만, 정작 이를 표상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영화의 의도와는 오히려 반대로, 심지어는 '그들의 민족자결주의조차도 결국은 미국만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인 뉘앙스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차라리 영화가 프레디의 알 라위 저격과 이후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듯한 긴 여운의 도심 야전 컷을 엔딩으로 했다면, 적어도 관객들은 영화를 다 본 후 -나약하고 감정적이며 합리적이지 못한 한 이라크인에 대해 갑갑한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화주의의 (마치 제국주의를 연상하게 하는) 이기적인 이면과 민족자결주의의 의미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 볼 여지를 가졌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왜곡된 진실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한 이 미국인 영웅은 정정된 사실을 전 세계 유수의 언론에 뿌려버리며 너무도 멋드러지고 의미심장하게 영화를 끝내버렸고, 그덕에 무거운 정치 영화가 아닌, 본 시리즈와 같은 웰메이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상당수의 관객들에게 "와우, 로이 밀러 완전 쏘 쿨, 브라보"라는 단순한 (그러면서도 충분히 위험한) 감상만을 남기도록 해주었다.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느냐'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누가 말하고자 했느냐'이다. 결국 <그린 존>에서 감독이 제기한 문제는 '감독이 제기한 문제' 자체가 해결해버림으로써 자가당착으로 끝이 나 버렸다.

한 지인은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은 아직도 수십 년 전 사건에 대해서조차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는데, 미국에서는 현재의 이슈까지 영화화가 될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글쎄, 이렇게까지나 -어쨌든 의도적으로는- 자국에게 날을 세우는 영화마저도 막대한 돈을 투입한 블록버스터로써 거대 자본 논리의 한 톱니로 이용하는 미국이, 필자는 도리어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드는데, 지나친 망상인지.

 

출처: [네이트 영화] <그린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