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중략)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중략)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 봅니다...
이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여러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영화
위 최후변론시 송 교수의 목소리는 수 년간 바닷물에 잠기었다 마른 통나무와 같이 결진 목소리, 신념이 있는 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영화 중에 어느 인사가 송 교수에게 "노동당 가입했는데 무슨 경계인이냐. 그런 말 안 통한다. 시발 노동당 가입해서 미안하다. 시발 법질서 다 지키겠다. 나 이제 국적 포기하고 여기서 살겠다. 이래야 국민들에게 통한다"라고 주문하는 말이 나온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는 한 철학자에게 전향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의 최정점에 소재한 것으로 평가받을 나는 경계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김형태 변호사 (07. 01. 2004)
“백번 양보해서 후보 위원이라고 하더라도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지 않았으면 무죄이고, 책 역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전부 무죄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법정에 독일 사람들도 많이 왔는데, 좀 창피했습니다. 그들이 중세의 마녀재판이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구요. 굉장히 부끄럽죠.”
송두율 교수는 2004년 7월, 항소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독일로 돌아갔다. 2년 반 뒤 그는 <미완의 귀향, 그 이후>(후마니타스)를 펴냈다. 그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가졌던 의문과 편견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다..내가 말하기 전에 한국 사회가 먼저 대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한국 사회 안에서 아무도 이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2008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 혐의 중 송 교수가 독일 체류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던 기간 중 4번의 방북만을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하였다.
경계도시 2
[송두율 항소심 최후변론]
존경하는 재판장님,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중략)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중략)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 봅니다...
이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여러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영화
위 최후변론시 송 교수의 목소리는 수 년간 바닷물에 잠기었다 마른 통나무와 같이 결진 목소리, 신념이 있는 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영화 중에 어느 인사가 송 교수에게 "노동당 가입했는데 무슨 경계인이냐. 그런 말 안 통한다. 시발 노동당 가입해서 미안하다. 시발 법질서 다 지키겠다. 나 이제 국적 포기하고 여기서 살겠다. 이래야 국민들에게 통한다"라고 주문하는 말이 나온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는 한 철학자에게 전향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의 최정점에 소재한 것으로 평가받을 나는 경계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김형태 변호사 (07. 01. 2004)
“백번 양보해서 후보 위원이라고 하더라도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지 않았으면 무죄이고, 책 역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전부 무죄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법정에 독일 사람들도 많이 왔는데, 좀 창피했습니다. 그들이 중세의 마녀재판이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구요. 굉장히 부끄럽죠.”
송두율 교수는 2004년 7월, 항소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독일로 돌아갔다. 2년 반 뒤 그는 <미완의 귀향, 그 이후>(후마니타스)를 펴냈다. 그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가졌던 의문과 편견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다..내가 말하기 전에 한국 사회가 먼저 대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한국 사회 안에서 아무도 이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2008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 혐의 중 송 교수가 독일 체류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던 기간 중 4번의 방북만을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