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새벽이다. 요즘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집에오면 뻗을정도로 밖에서의 생활이 빡빡하거나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과제가 나를 압박해 올때, 시험이 다가올때 외려 행복함을 느낀다.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곤 있긴 한데 멀리서 보면 과연 그게 나의 목적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돈은 많으면 좋겠고, 나의 신앙은 더 진실하면 좋을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전부라 고 느낄수 있는 순간에만은 외롭지 않을것 같다. 하지만 영원하진 못할것이고 날 외로움에서 진정 구 원하는건 불가능 하단 사실은 이미 알고있다. 또한 내가 직업으로 삼게 될 일에는 절대로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싶진 않다. 프로페셔널한 삶을 사는건 나에게도 만족을 주지만 그건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도리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 같다.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머리를 잘 못하고,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형편없을때, 교 수님이 되지도 않는 말로 우길때, 엄마가 밥을 해놓지 않을 때, 백화점에서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때. 나는 정말로 화가나고 짜증이나고 그러다 문득 내가 과외학생을 가르치거나 공부를 할때. 내 본분을 다하는게 나의 만족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반성아닌 반성을 한다. 지금 이순간 부터는 더욱 더 최선을 다할 걸 약속하지만. 글쎄. 늘 글은 행동보다 한발 앞서고 그래서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힘이 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TV에서는 그 죽은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다. 죽음이라는건 어둡고 칙칙할거라고 우리는 0살때부터 쇄뇌당하며 살아왔기때문에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고 애처로워하고 두려워하고 직면하기를 회피한다. 아빠는 늘 나에게 사람은 HOW TO LIVE 뿐만아니라 HOW TO DIE 도 중요하다는 말을한다. 처음엔 그런 말을 하는 아빠가 날 두고 죽는다는걸 암시하는 것만같아서 슬프게만 느껴졌는데 인생의 대략 사분의 일쯤은 살아온 지금에는 그다지 슬프다기보다 현명한 말처럼 다가온다. 나는 죽는 순간 어떤 미련을 가질까, 누구를 그리워 할까, 일말의 후회조차 없는 삶을 사는건 임파서블한 일이지만 조금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만 한다.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더뎌지고 생산적인 생활에서 멀어지기 쉽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되려 쉼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산하는 일이 속없는 껍데기에 덧칠만 백겹하는 것 마냥 느껴진다. 너무나 불가능한 과제가 삶이다. 마치 어디에 굳게 의지할 무엇이나 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의 삶을 건설하고 하루하루를 조각하듯 이 룩해 나가야 한다는 것, 모래로 해안에서 집을 만드는데 가장 열심히 성실히 만드는 것과 같은 것, 이런 과제, 이런 나날의 초극과 자기 극복과 어떤 눈가림을 요하는 작업이 삶이다. 라고 전혜린은 말했다. 몇년전에 고현정이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있다는 기사를 읽었고 그녀를 참 좋아한다고 했었던것 같다. 책을 한번 읽고 일년정도 시간이 흐르면 구체적인 내용보다 전체의 느낌만이 남는다. 수필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고 싶은 습관이 있는 내게는 책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것이 그렇게 뿌옇게 안개마냥 잘려진 일부분만이 기억되있다. 어쩌다 알게된 기자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뒤늦게 그녀의 글을 바탕으로 검색해본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던 시인이셨다.. 마치 객관적인 3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듯 덤덤하게 그래서 더 아리도록 글을 써놓은걸 그렇게 훔쳐보듯 읽었다. 밤에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다 많이 울었다. 그 여자는 또 전혜린을 정말 좋아했고 그래서 그 여자의 글을 읽으면 전혜린의 문체가 여기저기 보이곤 했다. 그녀를 닮고 싶었는지 지독히도 독립적이고 싶어하고, 사실은 긍적적인 삶을 살지도 모르지만 죽음에의 동경또한 심했다. 순간, 그녀가 자신의 이상향을 따라 똑같은 선택을 하진 않을까 주제넘은 걱정을 잠시. 했다. 도서관에서 다시 전혜린 일기를 빌려서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동안 빌린지 4시간도 되지않은 시간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키티가 세상사람들에게 공개될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안네처럼 안네를 참 좋아하던 전혜린도 아마, 내가 그녀의 글을 일게될줄 , 정말, 몰랐겠지. 그저께 택시 아저씨는 최진영이 죽은것을 두고 '삶의 문제를 회피하려고만한 아주 비겁한 행동' 이라고 단정지었다. 돈이 아까워서 택시타지말기 운동을 하고있던 나는 그날 9천원의 돈을내고 때로는 택시도 9천원의 가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욕만하는 택시는 백원도 아깝지만. 물론, 그 죽음이 의미있는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구나, 고통스러워하고 자기비하에 빠지고 우울해 하는것이 가치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은 이런 무의미한 감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죽지 않을거라고 확신해 하지마는 누가 알겠는가 자신이 이러한 감정의 폭풍속으로 휘말려 죽을지도 모르는 것을. 그냥.. 그렇게 슬퍼할 이유도, 그렇게 비난할 이유도 없다. 우리또한 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니까. 1
불안,, 죽음
또다시 새벽이다.
요즘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집에오면 뻗을정도로 밖에서의 생활이 빡빡하거나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과제가 나를 압박해 올때, 시험이 다가올때 외려 행복함을 느낀다.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곤 있긴 한데 멀리서 보면 과연 그게 나의 목적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돈은 많으면 좋겠고, 나의 신앙은 더 진실하면 좋을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전부라
고 느낄수 있는 순간에만은 외롭지 않을것 같다. 하지만 영원하진 못할것이고 날 외로움에서 진정 구
원하는건 불가능 하단 사실은 이미 알고있다.
또한 내가 직업으로 삼게 될 일에는 절대로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싶진 않다.
프로페셔널한 삶을 사는건 나에게도 만족을 주지만 그건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도리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 같다.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머리를 잘 못하고,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형편없을때, 교
수님이 되지도 않는 말로 우길때, 엄마가 밥을 해놓지 않을 때, 백화점에서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때. 나는 정말로 화가나고 짜증이나고
그러다 문득 내가 과외학생을 가르치거나 공부를 할때. 내 본분을 다하는게 나의 만족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반성아닌 반성을 한다. 지금 이순간 부터는 더욱 더 최선을 다할
걸 약속하지만. 글쎄. 늘 글은 행동보다 한발 앞서고 그래서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힘이 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TV에서는 그 죽은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다.
죽음이라는건 어둡고 칙칙할거라고 우리는 0살때부터 쇄뇌당하며 살아왔기때문에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고 애처로워하고 두려워하고 직면하기를 회피한다.
아빠는 늘 나에게 사람은 HOW TO LIVE 뿐만아니라 HOW TO DIE 도 중요하다는 말을한다.
처음엔 그런 말을 하는 아빠가 날 두고 죽는다는걸 암시하는 것만같아서 슬프게만 느껴졌는데
인생의 대략 사분의 일쯤은 살아온 지금에는 그다지 슬프다기보다 현명한 말처럼 다가온다.
나는 죽는 순간 어떤 미련을 가질까, 누구를 그리워 할까, 일말의 후회조차 없는 삶을 사는건
임파서블한 일이지만 조금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만 한다.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더뎌지고 생산적인 생활에서 멀어지기 쉽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되려 쉼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산하는 일이 속없는 껍데기에
덧칠만 백겹하는 것 마냥 느껴진다.
너무나 불가능한 과제가 삶이다.
마치 어디에 굳게 의지할 무엇이나 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의 삶을 건설하고 하루하루를 조각하듯 이
룩해 나가야 한다는 것, 모래로 해안에서 집을 만드는데 가장 열심히 성실히 만드는 것과 같은 것,
이런 과제,
이런 나날의 초극과 자기 극복과 어떤 눈가림을 요하는 작업이 삶이다. 라고 전혜린은 말했다.
몇년전에 고현정이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있다는 기사를 읽었고
그녀를 참 좋아한다고 했었던것 같다.
책을 한번 읽고 일년정도 시간이 흐르면 구체적인 내용보다 전체의 느낌만이 남는다.
수필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고 싶은 습관이 있는 내게는 책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것이 그렇게 뿌옇게 안개마냥 잘려진 일부분만이 기억되있다.
어쩌다 알게된 기자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뒤늦게 그녀의 글을 바탕으로 검색해본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던 시인이셨다..
마치 객관적인 3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듯 덤덤하게 그래서 더 아리도록
글을 써놓은걸 그렇게 훔쳐보듯 읽었다. 밤에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다 많이 울었다.
그 여자는 또 전혜린을 정말 좋아했고
그래서 그 여자의 글을 읽으면 전혜린의 문체가 여기저기 보이곤 했다.
그녀를 닮고 싶었는지 지독히도 독립적이고 싶어하고, 사실은 긍적적인 삶을 살지도 모르지만
죽음에의 동경또한 심했다. 순간, 그녀가 자신의 이상향을 따라 똑같은 선택을 하진 않을까
주제넘은 걱정을 잠시. 했다.
도서관에서 다시 전혜린 일기를 빌려서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동안
빌린지 4시간도 되지않은 시간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키티가 세상사람들에게 공개될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안네처럼
안네를 참 좋아하던 전혜린도 아마, 내가 그녀의 글을 일게될줄 , 정말, 몰랐겠지.
그저께
택시 아저씨는 최진영이 죽은것을 두고 '삶의 문제를 회피하려고만한 아주 비겁한 행동'
이라고 단정지었다. 돈이 아까워서 택시타지말기 운동을 하고있던 나는 그날 9천원의 돈을내고
때로는 택시도 9천원의 가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욕만하는 택시는 백원도 아깝지만.
물론, 그 죽음이 의미있는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구나,
고통스러워하고 자기비하에 빠지고 우울해 하는것이 가치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은
이런 무의미한 감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죽지 않을거라고 확신해 하지마는
누가 알겠는가
자신이 이러한 감정의 폭풍속으로 휘말려 죽을지도 모르는 것을.
그냥.. 그렇게 슬퍼할 이유도, 그렇게 비난할 이유도 없다.
우리또한 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