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자 : 2010.02.28 (일) 8시 ◎ 연출 : 이은택 PD, 장기하 PD / 글 : 빈선화 작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한국 최초의 의사가 배출되었다.
1908년 의학교 교정에서 의사면허 1호부터 7호를 받은 7명의 의사들.
그런데 그들은 의사가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떠나게 된다.
조국에서 안정된 삶을 버리고 그들이 선택한 길은 독립투사의 길이었다.
# 이토 히로부미가 임명한 대한민국 첫 의사들. 한일병합 2년 전, 일본의 침략야욕이 점점 표면화되던 1908년 6월 3일. 최초의 서양 병원 의학교에서 7명의 1회 조선인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당시 조선에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이들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이 졸업식은 우리 의료 역사에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임명한 대한민국 첫 의사들은 누구인가.
# 의학교 졸업 1년 전,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1907년 8월 1일. 이토 통감부는 고종을 협박해 정미칠조약을 반포,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해버린다. 그날 대한제국의 군인들이 봉기한다. 서소문 밖에서 대대장 박승호의 자결을 시작으로 조선의 군인들은 낡은 창칼을 움켜쥐고 일본군에 항거한다. 그러나 신식무기에 맞선 봉기는 한나절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속출한 채 끝난다. 부상당한 한국군인들은 제중원으로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복도는 피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졸업을 1년 앞둔 일곱 명의 의사가 있었다.
# 한국 최초의 의사들이 사라졌다. 1908년 최초의 조선인 의사면허를 갖게 된 7인의 청년들. 조국에서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은 그들이 사라졌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간 것일까. 취재진은 중국 현지 북경, 류하, 하얼빈, 치치하얼, 용정, 연길을 따라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시대의 사명을 짊어진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신창희 1910년 중국으로 망명, 상해에 적십자 사상의원을 열어 독립운동을 전개. 주현칙 3.1운동에 가담한 직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활동., 김희영 3.1만세 사건의 연루자로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사망., 홍종은 독립운동을 했던 신창희와 함께 병원을 운영, 김필순 서간도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운영 및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 운영. 박서양 역시 북간도로 망명, 구세병원과 숭신학교 건립.
# 최초로 공개되는 고종의 조선의학교육 프로젝트 고종황제는 계속되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인 의사를 배출하고자 했다. 고종황제는 왜 한국인 의사를 배출하고자 했을까. 취재팀은 캐나다 현지취재를 통해 당시 고종황제의 명을 받을어 조선인 의사를 양성했던 에비슨 박사의 유일한 후손인 손녀 에이니 여사를 만나고 고종이 힘썼던 조선의학교육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한다.
한국 최초 7인의 의사 (1908)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김필순
한국 최초 7인 의사의 스승, 에비슨
김필순과 함께 영어 의학서적을 한국어로 번역/ 일본의 암살위협에 시달리던 고종 옆에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 중 한 명/ 한국인 스스로 의학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조선인 의사를 양성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함.
KBS스페셜 - 한국 최초의 의사 7인, 독립투사가 되다
(KBS에서 퍼옴!!)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637237_11686.html
한국 최초의 의사 7인, 독립투사가 되다.
◎ 방송일자 : 2010.02.28 (일) 8시
◎ 연출 : 이은택 PD, 장기하 PD / 글 : 빈선화 작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한국 최초의 의사가 배출되었다.
1908년 의학교 교정에서 의사면허 1호부터 7호를 받은 7명의 의사들.
그런데 그들은 의사가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떠나게 된다.
조국에서 안정된 삶을 버리고 그들이 선택한 길은 독립투사의 길이었다.
# 이토 히로부미가 임명한 대한민국 첫 의사들.
한일병합 2년 전, 일본의 침략야욕이 점점 표면화되던 1908년 6월 3일. 최초의 서양 병원 의학교에서 7명의 1회 조선인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당시 조선에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이들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이 졸업식은 우리 의료 역사에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임명한 대한민국 첫 의사들은 누구인가.
# 의학교 졸업 1년 전,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1907년 8월 1일. 이토 통감부는 고종을 협박해 정미칠조약을 반포,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해버린다. 그날 대한제국의 군인들이 봉기한다. 서소문 밖에서 대대장 박승호의 자결을 시작으로 조선의 군인들은 낡은 창칼을 움켜쥐고 일본군에 항거한다. 그러나 신식무기에 맞선 봉기는 한나절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속출한 채 끝난다. 부상당한 한국군인들은 제중원으로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복도는 피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졸업을 1년 앞둔 일곱 명의 의사가 있었다.
# 한국 최초의 의사들이 사라졌다.
1908년 최초의 조선인 의사면허를 갖게 된 7인의 청년들. 조국에서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은 그들이 사라졌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간 것일까.
취재진은 중국 현지 북경, 류하, 하얼빈, 치치하얼, 용정, 연길을 따라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시대의 사명을 짊어진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신창희 1910년 중국으로 망명, 상해에 적십자 사상의원을 열어 독립운동을 전개.
주현칙 3.1운동에 가담한 직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활동.,
김희영 3.1만세 사건의 연루자로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사망.,
홍종은 독립운동을 했던 신창희와 함께 병원을 운영,
김필순 서간도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운영 및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 운영.
박서양 역시 북간도로 망명, 구세병원과 숭신학교 건립.
# 최초로 공개되는 고종의 조선의학교육 프로젝트
고종황제는 계속되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인 의사를 배출하고자 했다. 고종황제는 왜 한국인 의사를 배출하고자 했을까.
취재팀은 캐나다 현지취재를 통해 당시 고종황제의 명을 받을어 조선인 의사를 양성했던 에비슨 박사의 유일한 후손인 손녀 에이니 여사를 만나고 고종이 힘썼던 조선의학교육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한다.
한국 최초 7인의 의사 (1908)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김필순
한국 최초 7인 의사의 스승, 에비슨
김필순과 함께 영어 의학서적을 한국어로 번역/ 일본의 암살위협에 시달리던 고종 옆에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 중 한 명/ 한국인 스스로 의학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조선인 의사를 양성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함.
에비슨과 박서양의 수술 장면을 담은 유리원판 필름
서양식 병원에서 이루어진 외과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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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을 이용하여 조선을 파고들었던 일본.
그런 일본 병원의 확산에 위협을 느끼고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을 설립하신 고종 황제.
언더우드 선교사의 강연에 감화받아 조선에 오게 된 토론토 대학의 젊은 의학도였던 에비슨의 지도 아래 키워진 7분의 최초 한국인 의사 분들은,
보장된 명예를 버리고 무너진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선택했다.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젊은 장병들이 너무 허망하게 죽어버려서 슬픈 요즘,
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이다.
발갛게 된 눈으로 그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한다.
생명을 희생하셔서 독립을 이뤄주셔서 우리가 자주 국가에서 살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신 그분들께 가장 큰 위대함이 함께 있고, 그분들의 옆에 계셨던 분들께도 그에 못지 않은 영광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잔인한 시대를 살아내시면서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고 견뎌내신 다른 분들께도 위로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평화, 그리고 선한 사람들의 평화가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