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여동생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집안에 장남인 나에게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을 허락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옷을 홀랑 벗고 다니던 참견할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과제와 학습세미나, 학생회 임원회의, 시국과 관련한 대자보 문구작성, 항의집회 등에 참석하고, 무엇엔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느라, 집안의 일에는 무관심했다. 나는 그녀를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중학생의 기억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모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디자인과 대학생이 되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어 하는 여대생이 되었다. 성숙한 여자가 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은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이제 성인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여자가 된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나이가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나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다니라고 했다. 짧은 치마를 입던, 옷을 벗고 다니던 자신의 자유라고 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녀는 진짜 속옷이 보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녔다.
이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된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녀가 없으면 죽겠다고 목 매달리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최첨단 산업의 연구원이었다. 숫자와 관련된 것이면, 귀신처럼 계산을 잘하는 친구였다. 두 사람들 사이에서 예쁜 남자 아이가 탄생했다. 지금 그 아이는 30개월이 되었다. 그 놈은 나의 조카이며, 나의 사랑스런 원수가 되었다. 나의 집에 오면, 나의 집안을 온통 쑤시고 돌아다며 마음껏 휘젓는다. 내가 그린 그림도 찢어놓고, 심지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캠코더와 노트북도 마음대로 만져서 망가트린다.
하지만 나는 싫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했을 테니까. 오늘은 신촌에 소재한 한 대학교를 작품 취재하러 갈 예정이다. 싱싱한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나의 싱싱한 소재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이다. 나도 싱싱한 생선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제 머리를 깎았다. 단골 미장원 누님에게 단단히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녀의 아들이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졌는데, 자신을 속였다고 했다. 평소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아들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녀는 아들이 잘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늦잠을 자고, 잘 씻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다고 불평을 했다. 빨리 일어나라, 그 옷을 입지 말고 저 옷을 입어라, 발을 씻고 잠을 자라, 과제는 했느냐, 학교에서 무엇을 했느냐, 그녀는 끊임없이 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아들과 TV드라마도 함께 보았다. 어느 날 드라마를 즐겁게 함께 보던 아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저 드라마는 영화 <올가미>와 비슷한데, 엄마와 너무 똑 같다.”
그녀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이, 여자 친구도 하나 없고, 집안에만 처 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용돈을 주면서 여자 친구 만들어 오라고 버럭 소리까지 쳤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 모임에도 전혀 나가지 않고, 오로지 그 아들만 생각하고 바라보았는데, 그 결과가 영화 <올가미>의 정신이 이상한 엄마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똑 같다, 고 말하는 아들이 정말 미워 죽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흥분된 가위질에 나의 머리카락이 마구 잘려나는 모습을 두려운 눈길로 말없이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짧은 치마를 입어라
짧은 치마를 입어도 된다!
“오빠 짧은 치마 입고 다녀도 돼?”
막내 여동생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집안에 장남인 나에게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을 허락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옷을 홀랑 벗고 다니던 참견할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과제와 학습세미나, 학생회 임원회의, 시국과 관련한 대자보 문구작성, 항의집회 등에 참석하고, 무엇엔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느라, 집안의 일에는 무관심했다. 나는 그녀를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중학생의 기억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모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디자인과 대학생이 되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어 하는 여대생이 되었다. 성숙한 여자가 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은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이제 성인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여자가 된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나이가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나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다니라고 했다. 짧은 치마를 입던, 옷을 벗고 다니던 자신의 자유라고 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녀는 진짜 속옷이 보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녔다.
이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된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녀가 없으면 죽겠다고 목 매달리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최첨단 산업의 연구원이었다. 숫자와 관련된 것이면, 귀신처럼 계산을 잘하는 친구였다. 두 사람들 사이에서 예쁜 남자 아이가 탄생했다. 지금 그 아이는 30개월이 되었다. 그 놈은 나의 조카이며, 나의 사랑스런 원수가 되었다. 나의 집에 오면, 나의 집안을 온통 쑤시고 돌아다며 마음껏 휘젓는다. 내가 그린 그림도 찢어놓고, 심지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캠코더와 노트북도 마음대로 만져서 망가트린다.
하지만 나는 싫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했을 테니까. 오늘은 신촌에 소재한 한 대학교를 작품 취재하러 갈 예정이다. 싱싱한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나의 싱싱한 소재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이다. 나도 싱싱한 생선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제 머리를 깎았다. 단골 미장원 누님에게 단단히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녀의 아들이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졌는데, 자신을 속였다고 했다. 평소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아들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녀는 아들이 잘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늦잠을 자고, 잘 씻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다고 불평을 했다. 빨리 일어나라, 그 옷을 입지 말고 저 옷을 입어라, 발을 씻고 잠을 자라, 과제는 했느냐, 학교에서 무엇을 했느냐, 그녀는 끊임없이 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아들과 TV드라마도 함께 보았다. 어느 날 드라마를 즐겁게 함께 보던 아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저 드라마는 영화 <올가미>와 비슷한데, 엄마와 너무 똑 같다.”
그녀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이, 여자 친구도 하나 없고, 집안에만 처 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용돈을 주면서 여자 친구 만들어 오라고 버럭 소리까지 쳤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 모임에도 전혀 나가지 않고, 오로지 그 아들만 생각하고 바라보았는데, 그 결과가 영화 <올가미>의 정신이 이상한 엄마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똑 같다, 고 말하는 아들이 정말 미워 죽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흥분된 가위질에 나의 머리카락이 마구 잘려나는 모습을 두려운 눈길로 말없이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